故 정용훈에 대한 추모 열기  수원 팬들은 매년 그의 기일 근처의 홈경기 마다 잊지 않고 추모하고 있다.

▲ 故 정용훈에 대한 추모 열기 수원 팬들은 매년 그의 기일 근처의 홈경기 마다 잊지 않고 추모하고 있다. ⓒ 이인철


지난 10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홈구장 올드 트레포드. 이날은 2007-2008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26라운드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와의 '더비 매치(연고지가 같은 팀과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진한 감동을 남긴 맨유의 '뮌헨 참사' 50주기 추모 행사 

보통의 더비매치는 뜨겁다 못해 과열 양상이다. 이날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뮌헨 참사' 50주기 추모 행사가 시작되자 분위기는 일순간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백파이프 연주에 맞춰 검은 띠를 두른 선수들이 줄지어 입장했다. 맨유 알렉스 퍼거슨과 맨시티 고란 에릭손 감독의 헌화가 이어졌고 경기장을 가득 채운 7만 5천여 양 팀 팬들은 모두 일어서서 머플러를 머리 위로 들어올려 펼친 뒤 1분간의 묵념 시간을 가졌다. 맨유 선수들은 사고 당시 유니폼을 입었고 맨시티 선수들은 스폰서 로고가 없는 유니폼으로 추모경기의 의미를 깊게 했다. 

경기를 앞둔 며칠 동안 BBC나 스카이스포츠 등 주요 방송들은 사고 50주기에 맞춰 추모 프로그램을 방영했고 경기 당일에는 생중계에 앞서 다시 한 번 '뮌헨 참사'에 대한 각종 행사 프로그램을 내보내 전 세계 모든 맨유 팬들과 함께했다.

'뮌헨 참사'는 지난 1958년 2월 6일 맨유 선수들이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마치고 비행기로 잉글랜드로 돌아가는 도중 중간 경유지인 독일 뮌헨에서 비행기가 추락해 선수 8명을 비롯해 기자, 구단 직원이 사망한 사고다. 사고 후 맨유는 각고의 노력 끝에 오늘날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자리 잡았다.

'뮌헨 참사' 추모 경기에서 맨유는 1-2로 패했다. 하지만, 이날 보여 준 다양한 이야기들은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깊이 파고들었다. 동시에 맨유의 가치를 확실히 높였다.

추모 경기가 끌어낸 故 정용훈 

故 정용훈의 걸개  그의 기일 무렵 벌어지는 홈 경기에는 사진과 같은 걸개가 단독으로 걸린다.

▲ 故 정용훈의 걸개 그의 기일 무렵 벌어지는 홈 경기에는 사진과 같은 걸개가 단독으로 걸린다. ⓒ 이성필

맨유가 만든 이번 행사를 보며 갑자기 한 사람이 생각났다. 그의 이름은 수원 삼성의 촉망받던 미드필더 故 정용훈.

청소년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정용훈은 2003년 8월 31일 오전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서울 은평구 홍제3동 한 아파트 앞 도로를 지나다 도로변 방호벽을 들이받았다. 승용차는 전복됐고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던 정용훈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사고 당일 수원은 광주 상무와의 원정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수원 서포터 <그랑블루>의 소모임 '로얄블루' 회장을 역임한 이상열(32)씨는 원정응원 버스를 타고 광주를 향하다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멈춘 휴게소에서 구단관계자를 통해 정용훈의 비보를 전해듣게 됐다.

머릿속이 멍해진 이씨는 착용하고 있던 티셔츠를 꽉 잡았다. 티셔츠 뒷면에는 정용훈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이씨는 故 정용훈의 팬클럽 '마이스터(MEISTER)'의 회원이기도 했다. 마이스터는 독일어로 '정복자'라는 뜻이다. 저돌적인 경기력으로 팬들을 매료시킨 그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광주월드컵경기장에 도착한 이씨와 원정 응원단은 모두 울면서 '정용훈'을 외쳤다고 한다. 이씨는 자신이 입고 있던 티셔츠를 난간에 걸어놓고 그를 하늘로 떠나보냈다. 경기는 1-0수원의 승리로 끝났지만 '검은색 리본'을 맨 선수와 원정 응원단 모두 울고 말았다.

이후 벌어진 9월 3일 대전 시티즌과의 홈 경기. 경기는 숙연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선수들은 그의 등번호 '13'과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연습에 나섰다. 골대 뒤 서포터도 '13'을 새긴 카드섹션을 선보였다. 난간에는 수많은 흰 국화꽃들이 청테이프에 고정되어 매달렸다.

정용훈의 사진이 박힌 걸개를 제외한 모든 응원 문구나 선수 현수막은 설치되지 않았다. 원정팀 응원단 역시 이런 취지에 동의하며 아무런 걸개도 걸지 않았다. 경기 종료 뒤에는 촛불을 켜고 전광판에 방영되는 추모 영상으로 그를 하늘로 떠나 보냈다.

모든 관중이 '정용훈'을 외치는 장면을 볼 수 없을까?

故 정용훈의 흔적  이상열씨는 "정용훈에게 국가대표 파란 양말을 직접 선물도 받고 너무 좋았다. 그러나 사망소식을 들었을때는 멍했다"고 그와의 추억을 회상했다.

▲ 故 정용훈의 흔적 이상열씨는 "정용훈에게 국가대표 파란 양말을 직접 선물도 받고 너무 좋았다. 그러나 사망소식을 들었을때는 멍했다"고 그와의 추억을 회상했다. ⓒ 로얄블루 제공

그는 1998년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대회에 대표팀으로 선발돼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같은 해 수원에 입단해 26경기 출전해 3골 3도움으로 팀 우승에 공헌하기도 했다.

당시 사령탑이었던 김호(현 대전시티즌 감독) 감독으로부터 "재능이 있는 선수다. 잘 키우면 대성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런 정용훈이 김호 감독의 두 눈을 적시고 말았다.

그를 기리는 추모행사는 매년 그의 사고일을 전, 후로 한 홈 경기에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그의 추모 열기는 사그라지고 있다. 서포터 '그랑블루'가 주관이 되어 국화꽃을 준비해 경기 시작과 함께 그라운드에 던지며 추모하고 있지만 구단은 되도록 개입하지 않고 있다.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소소한 것 하나라도 이야기로 만들어 팬들을 경기장으로 이끄는 그들의 문화가 부럽기도 하지만 '상품 가치'가 되어 팬들의 가슴속을 파고드는 마인드가 K리그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에게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뮌헨 참사' 50주기 추모 행사, 경기 뒤 국내 축구팬들의 반응은 "K리그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왜 없느냐"가 상당수다.

짧은 역사의 K리그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기에는 '태생적 한계'라는 말이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이것을 극복하고 관중을 경기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작은 것 하나에 대한 구단의 집착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형 선수의 활약이나 스타 감독의 지도력이 한순간의 효과로 그치는 것을 수없이 목도했기 때문이다.

마침 올해는 故 정용훈의 5주기다. 게다가 그의 기일에 수원은 '운 좋게' 부산 아이파크와 홈 경기를 치른다. 그의 부모님을 경기장으로 초대하고 당시 같이 뛰었던 감독과 선수들 역시 관중석에서 그의 동영상을 보며 함께 추모하면 그것만큼 좋은 이야기도 없을 것 같다. 

더불어 서포터만이 아닌 모든 관중이 그의 응원 구호였던 '랄라랄라라 랄라랄라라 랄라랄라랄라 정! 용! 훈!'을 외친다면 큰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이야기가 없어 고전하는 K리그도 이렇게 만들어가면 참 좋을 것 같다.  

故 정용훈 뮌헨 참사 K리그 추모 경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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