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짜 비린내 진동하는 고약하게 멋진 영화

나홍진의 장편 데뷔작 <추격자>는, 한 마디로 징글징글 생짜 비린내가 진동하는, 수산물 시장 오물 처리장 바닥에 두텁게 쌓인 이끼 같은, 눈빛과 몸뚱이와 내 것을 지키고자 하는 이기심이 습기를 헤치고 바랜 불꽃을 튀기며 후지게 충돌하는, 고약하게 멋진 영화다.

영화는 말 그대로 추격을 그린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김윤석은 보도방 업주다. 예전에는 형사였다. 비리에 연루돼 때려치웠다. 그는 최근 자꾸 재산이 줄어(데리고 있는 여자들이 실종돼) 잔뜩 화가 나 있다. 도망간 년, 팔아 치운 놈 잡히면 죽여 버리겠다고 자주 다짐한다. 그러다가 하정우를 만난다. 곧바로 여자들을 잡아간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하지만 그는 하정우가 여자들을 데려다가 무슨 짓을 했는지까지는 알아채지 못한다.

<추격자>를 즐기기 위해 반드시 유영철의 기억을 소환해야 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이 영화는 여러모로 유영철의 피비린내 나는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건 다큐멘터리도 전기 영화도 아니다. 그러므로 기록필름을 사족으로 덧붙여 영화로 못 다한 내러티브의 완결을 스크린 밖에서 맺으려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 놈 목소리>의 성공 이후 이건 일종의 유행이 된 듯하다.) 텍스트는 온전히 영화 안에서 완성된다.

 <추격자>

<추격자> ⓒ 비단길


여기에는 장단이 있다. 필연적인 잡음을 감수하고서라도 현실의 기억을 명백하게 가져와 뿌려놓는 게 좋았을 수 있다. 어쩌면 그게 더 상업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신에 찬 영화는 다른 길을 택한다. 단지 자극적인 소재에 함몰돼 한 때 이슈로 그치길 거부한다. 이야기의 속도감과 리얼리티에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끊임없이 어떤 이면을 드러내 보이려 애쓴다. 그 실체는 처참하게 일그러진 인간의 내면, 혹은 부조리를 부조리로 덮는 사회질서의 알량한 밑바닥이기도 하다.

김윤석은 하정우를 쫓아 <탄환러너> 마냥 달리고 또 달린다. 그 이유가 즐겁다. 정의나 영웅심리가 아니다. 사회의 악성 종양을 제거하겠다는 단죄의식 따위가 아니다. 밥그릇을 뺏겨서 화가 난 거다. 내가 팔아먹어야 할, 내 사유재산의 노동력을 앗아간 어떤 놈이 죽도록 미운 거다. 그래서 잡아 쥐어박고 돈 몇 푼이라도 뜯어내고 싶은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공권력은 미덥지 못한 존재다. 우선 공공질서의 능력(그 무능함은 영화 내내 증명된다)을 믿지 못하고, 그 순수함을 신뢰하지 못하고, 무엇보다 그 자신이 법과 현실의 경계 사이에 버젓이 존재하는 매춘사업의 종사자인 까닭이다.

절대 악을 마주한 어느 비열한 자의 좌절

그는 혼자 힘으로 재산을 지켜내야 한다.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부를 만한 게 없다. 그 순간 영화는 한 가지 질문을 제시한다. 법과 현실의 경계 사이에서 치졸한 돈벌이를 하고 있는 자는 사회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없는 것인가. 질문을 뚫고 나온 김윤석은 거의 동물처럼 보인다. 언뜻 짐승이 드러난다.

하지만 하정우를 쫓는 추격의 동선 위에서 김윤석의 낯빛은 진동한다. 개과천선과 반성의 뜨거움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밥그릇을 빼앗긴 이리가, 자신이 상대해야 할 존재가 코끼리임을 깨달았을 때 느낄 만한 흐트러짐과 닮았다.

굴욕감과 함께 공포가 닥친다. 나보다 더 나쁜 놈이라서가 아니라, 살인마라서가 아니라, 그저 너무 거대해서다. 초라해진 이리는 갑자기 밥그릇에 대한 연민으로 번뇌한다. 아직 살아남은 단 한 명의 그녀를 걱정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해, 그건 연민이 아니다. 따뜻한 배려나 정의감처럼 보이지만 실은 공포를 이기려는 몸부림인 것이다. 택할 수 있는 길은 뻔하다. 공포를 이기는 방법은 상대를 없애 지워내는 길 뿐이다. 그래서 그는 또 달리기 시작한다.

 <추격자>

<추격자> ⓒ 비단길


요컨대, <추격자>는 우연찮게 절대 악을 마주한 어느 비열한 자의 좌절, 굴욕, 공포, 그리고 궁극적인 구원을 다루는 영화다. 영혼에 대해 일언반구 입을 열지 않으면서도 은연중에 구원을 논하는 영화의 심도가 꽤나 수준급이다. 유머감각도 괜찮은 편이고, ‘빠른 전개’가 아무 생각 없이 초각을 다퉈 이어붙인 필름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특히 추격을 좇는 카메라의 바쁜 시점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공간감을 찾는 망원동 골목길의 풍경은 스크린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이 생생하다.

물론 <추격자>는 완벽한 영화가 아니다. 곳곳에 배치된 유머 코드는 제 역할을 하다가도 가장 결정적일 때 호흡을 방해하고야 만다. 러닝타임은 좀 길다 싶고(2시간 이내로 끊을 수 있을 텐데), 치명적인 편집의 실수도 발견된다. 무엇보다도 제도 권력과 질서에 대한 은연중의 비판의식이 다소 위악적으로 다가온다. 충분히 살아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격자>는 기억될 만한 영화다. 이 영화가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추격하는 자와 추격당하는 자가 마주치는 파국의 지점들이다. 이 때 관객을 집어삼키는 영화의 공기는 단순한 날카로움과 다르다. 오히려 무딘 날로 여러 번 되풀이해 난도질당하는 것 같은 심정이다.

김윤석과 하정우의 몸뚱이가 충돌하고 파괴되고 가루를 날리다 허물어져 내린다. 두 배우를 에워싼 이 파괴적 정서를 설명해내기에는 문자가 궁하다. 혀 끝에서 비롯된 인간의 논리와 합리의 규칙으로 설명해낼 수 없는, 순전히 그 거친 동물적 에너지만으로도, <추격자>는 어떤 경지에 다다르는데 성공한다.

2월 14일 개봉.

덧붙이는 글 허지웅 기자는 영화주간지 필름2.0을 거쳐 현재 GQ KOREA 에 재직 중이다. ozzyz review (ozzyz.egloos.com)을 운영하고 있다.
추격자 개봉영화 김윤석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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