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덕적기행, 하나 - 서포리 저녁노을 길은 바다에 이르러 끝났다. 동행한 발자국은 이내 파도에 지워지고 내 지나온 모든 길들이 문득 보이지 않는다.
손목 부근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손금처럼 내 삶이란 것도 결국 내가 거느리는 이 땅 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가끔씩 돌아보라 그대는 말하였지만 함부로 방치된 해변의 빈 바라크 집들처럼 내 오래된 몸 속에는 표지판도 없이 뒤엉켜버린 어두운 길의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 하루에 한 번씩 수평선에 목매달고 천천히 죽어가면서 흘리는 피여, 황홀히 불타오르는 서포리 저녁노을이여. 너 죽은 뒤, 어두운 무덤을 열고 환하게 솟아오르는 별자리를 내 손금에 새겨놓을 수 있다면. 그대에게 가는 길 하나 새로 낼 수 있다면. <시작 노트> 섬을 찾아 떠돌던 상심한 영혼의 발길이 어느 해 겨울, 서해 바다의 덕적도에 닿았다. 매서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한참을 걸어 도착한 서포리 바닷가에는 빈 바라크 집들만이 을씨년스럽게 해변을 지키고 있었다. 마치 내 삶의 흔적처럼. 파도는 조금씩 먼 바다로부터 해변쪽으로 어둠을 실어나르고, 수평선 부근에 번지기 시작한 핏빛 노을은 더 이상 뱉어낼 어둠이 없어지자 이내 출혈을 멈추었다. 완전한 어둠, 그 어둠 속에 나는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내 안에서 떠오를 새로운 별자리를 기대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