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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덕적기행, 셋
- 북리(北里)에서 

녹슨 닻이 움켜쥐고 있는 뻘 밭,
버려진 폐선의 용골이 꿈꾸는 바다는 멀다.
푹푹 빠지는 발자국을 따라
방파제 끝까지 쫓아온 아이는
속이 빈 소라껍질을 내밀고는 말이 없고
나는 상한 내장이라도 꺼내
그 빈 껍질 속을 채우고 싶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많은 어둠이
내 삶 속에 웅크리고 있는지.
신발에 묻어 온 뻘처럼
내 오래된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이 어둠을
나는 어쩌지 못한다.

이제 곧 밤이 오리라.
한번 삶 속으로 들어오면
쉽사리 물러서지 않는 추억처럼
나는 저 어둠이 무섭다.
탐조등의 부릅뜬 두 눈이 지나간 자리마다
파충류의 피부처럼 번들거리는
검은 물결의 추억,
기억하라, 기억하라 등을 떠미는 파도 소리 너머
오늘도 수 천 개의 별자리를 불러낸
저 버려진 폐선의 항해는 기약이 없고
상한 꿈을 안고 돌아서는 아이의 머리 위로
나는 별똥별 몇 개를 던져주었을 뿐이다.

[시작 노트]

산길을 걸어 도착한 덕적도의 북리는 폐항의 기미가 완연했다. 인적 없는 거리를 배회하는 개들의 적의에 찬 으르렁거림에서 내가 낯선 이방인임을 아프게 깨달았다. 폐선이 처박혀 있는 검은 뻘밭을 지나 방파제로 걸어가는 도중에 만난 얼굴이 검은 섬소녀. 그녀는 막 바다에서 건져온 듯한 소라껍데기를 내게 내밀었지만 그 속은 비어 있었다.

마을 안쪽의 허름한 여인숙에 여장을 풀어놓고 해 질 녘을 기다려 나는 다시 바닷가로 나왔다. 오래지 않아 어둠이 내리고 수평선 근처에서 뻗어나오는 탐조등이 검은 바다의 표면을 훑고 지나갔다. 나는 그 불빛을 받아 순간순간 드러나는 추억의 잔해들을 오래도록 응시하였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밤하늘에 뚜렷이 드러나는 별자리 몇 개. 몇 개의 별똥별이 그 사이를 통과하여 검은 바다로 떨어졌다. 마을 안쪽에선 개 한 마리가 짖어대는 소리를 신호로 하여 한꺼번에 짖어대기 시작한 개들의 집요한 컹컹거림이 짙은 어둠과 적요를 흔들고 있었다.

그 다음날 아침 나는 덕적도를 떠났다. 서울로 돌아오니 스물여섯 번째 맞는 해의 첫 달이 지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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