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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小寒)

 

눈이 내렸다. 

쉽게 결심을 무너뜨리고 

향기로운 새해 첫 담배를 피웠다. 

조동진의 노래 몇 구절을 흥얼거리며 

겨울을 견디기로 했다. 

빈가지 위에 쌓이는 눈 

또는 가난한 그리움. 

나이테를 숨기고 있는 

나무들의 속이 환히 들여다보였다.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의 

매듭이 확실한 등뼈를 

겨울이 지나면 더욱 선명해질 

나이테 하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밤이 들면서 

거리엔 다시 얼음이 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어둠 속에 숨어있는 

빙판을 두려워하며 

조심스레 발을 옮기고 있었다. 

삶의 길목을 위협하는 겨울밤의 빙판 

또는 굳어버린 추억. 

바람은 어둠 쪽으로 자주 몰렸다. 

첫 겨울을 나던 어린나무의 

희미한 나이테 속으로 

얼음이 깊게 박히고 

등뼈가 시려왔다. 

봄을 기다리기로 했다. 

<시작 노트>

 

이 소품을 내가 썼던 것은 1990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결국 나랑 침대를 함께 쓰는 사이가 되었지만, 동갑내기 그녀와 나는 다투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수차례 되풀이했다. 이 시는 그렇게 그녀와 헤어지고 홀로 겨울을 나던 시기에 쓰여진 것이다.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은 추울수록 더 따뜻한 기억으로 추억되었다. 나는 소한 추위 속에서 금연 결심을 무너뜨리는 첫 새해 담배를 피우면서 내 마음 속 추위를 이겨보려고 했다. 그리고 새로 결심했다. 이 겨울이 지나면 매듭이 확실한 나이테 하나를 나도 갖게 되겠지, 그 나이테를 사랑하기로 하자고.

 

그러나 소한 추위, 아니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진 허전함이 어디 담배연기 한 모금으로 따뜻해질 수 있을 것인가.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자기 위안으로 어찌 달랠 수 있을 것인가. 어두워지는 창 밖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 등뼈에 새겨진 나이테를 깊숙히 찔러오는 차가운 얼음을 느꼈다. 그 얼음을 녹여줄 봄을 기다리기로 했다는 것은, 따라서 희망이 아니라 절망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대한은 소한네 집에 가서 얼어죽었다고 했지만, 우리 사랑은 소한 추위에도 얼어죽지 않았다. 오랜 날들을 함께 건너 온 우리 사랑 앞에서는 소한은 말 그대로 '작은 추위'에 불과해서 새봄이 오기도 전에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리고 다시는 헤어짐이 없었고 그 해 가을에 우리는 결혼을 했다. 이후 함께 맞이하게 된 우리의 겨울에는 소한이 없었다.


태그:#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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