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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맹공을 퍼부으며 대항하자 능효봉은 길게 휘파람을 불더니 신형을 공중에 떠올렸다. 이어 우뢰와 같은 소리와 함께 거대한 천룡의 형상이 나타나며 그의 쌍장에서는 백광이 뿜어졌다. 

우르릉 빠직

“!”

순간 그들의 드잡이 질을 바라보고 있던 추산관 태감은 퍼뜩 정신을 차린 듯 갑자기 뒤로 신형을 날렸다. 지금까지 느긋한 태도와는 달리 무슨 생각이 났는지 매우 급한 듯 보였다. 그의 몸놀림은 매우 가벼워 놀라울 정도의 경신술을 보이고 있었다.

판단은 빠를수록 좋다. 지금 이렇게 생사림에서 드잡이 질 할 것이 아니다. 이미 상만천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움직일 것이고 이 생사림 안에서 벌써 빠져나갔을 터였다. 그가 갈 곳은 뻔했다.

호위가 없다하더라도 이제는 상관이 없었다. 흑교신이 죽음을 당했다는 말에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아마 매교신은 자신의 주위를 맴돌 것이다. 그가 서둘러 가야할 곳은 바로 운중각이었다.

추태감이 갑자기 신형을 날려 도망가는 것을 보자 능효봉은 마음이 급해졌다.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할 놈이었다. 또한 무엇보다 그가 위험에 빠지면 분명 귀산노인을 죽인 매교신이 나타날 것이다.

그의 손속이 더욱 위맹하고 잔혹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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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림에서 벌어진 술래잡기에서 배제된 인물들은, 그리고 다른 목적을 가진 인물들은 모두 운중각으로 모여들었다. 귀산노인의 시신을 안고 우슬의 일행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는 운중은 또 다시 탄식을 터트렸다.

이제는 아니 어젯밤부터 이들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허나 지금 손을 쓰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일단은 성곤의 손에 들린 해약을 제자들에게 복용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제자들을 해독시킨 후에 손을 써도 늦지 않았다. 참는다는 것은 언제나 고통을 주지만 참고난 후에는 자신이 목적한 바를 달성할 수 있다.

이미 복용한 해약이 효과가 있는지 괴로워하던 궁수유가 점차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붉게 달아오르고 땀을 많이 흘리던 그녀가 제 낯빛을 찾고 있었다. 마침 그 모습을 본 중의가 성곤에게 말했다.

“이제 붉은색 주머니의 붉은 단약을 하나씩 복용시키게.”

잠시 노화를 누르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허나 성곤은 선뜻 주머니를 고르지 않았다. 그러고는 슬쩍 운중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운중의 태도여하에 따라 줄 것인지를 결정하겠다는 모습으로 보였다. 해약을 가지고 있는 성곤으로서는 일종의 인질들을 잡고 있는 셈이었다.

“…”

허나 운중은 뭐라고 하지도 않았고 성곤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이럴 때 자신이 나서는 것은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침묵하는 것 역시 인내다.

성곤은 운중이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머쓱해졌다. 그러고는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장문위를 비롯해 네 명의 제자들의 눈빛은 간절한 기색을 담고 있었지만 달라고 사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때였다. 밖에서 잠시 나직한 말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이 열렸다. 들어온 인물은 의외로 창월이었는데 그는 문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문에서 약간 비켜난 자리에서 성곤에게 예를 올리더니 갑자기 운중 쪽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는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용서를…”

무엇을 용서하란 말인가? 창월은 그 자세를 풀지 않았다. 보면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운중의 시선이 날카롭게 창월의 머리통 위로 꽂혔다. 아마 눈빛이 비수라면 창월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것이다. 허나 곧 운중은 시선을 돌려 자신의 잔을 바라보았다. 그를 나무랄 것이 아니다. 나무라야 할 대상은 성곤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 본 성곤은 어쩔 수 없는지 붉은색 주머니에서 검붉은 빛이 감도는 단약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조금 전과는 달리 일일이 제자들에게 다가가서 복용시키거나 주지 않고 한 알씩 제자들에게 던졌다.

아마 틈을 주면 운중이 자신을 해할 것 같다고 걱정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중의와 마찬가로 성곤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인물이 있다면 바로 친구인 운중이었다.

“더 복용해야 하는가?”

제자들이 단약을 모두 복용하는 것을 본 운중이 고개를 돌려 중의에게 물었다. 그것은 마치 이제 움직여도 되느냐는 물음과도 같았다. 중의로서는 바라던 바였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 반전을 꾀할 수 있는 것은 운중의 움직임뿐이다. 늑대를 쫓아내려고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지 몰라도 일단은 상만천에게 모든 것이 넘어간 상황에서 기대할 것은 그것뿐이다.

“아니네. 일각 후부터 한 시진 안에 검은색 주머니에 들어있는 단약을 마지막으로 복용해야 하네. 그리고 아무리 속성으로 해도 운기토납을 일각 정도는 해야 마지막 찌꺼기까지 배출해낼 수 있다네.”

중의는 아주 정확하게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운중 뿐 아니라 제자들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았다. 제자들의 시선이 다시 성곤에게 향했다. 그것은 기다리지 말고 빨리 나머지 해약을 주었으면 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마지막 해약을 그냥 주지는 않을 것이야.”

제자들의 간절한 시선을 외면하면서 성곤은 다시 운중을 힐끗 쳐다보았다. 비겁한 일일지는 몰라도 뭔가 거래를 하고 싶은 눈치다. 그러자 옆에서 그 모습을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던 상만천이 은근한 목소리로 권했다.

“그런다고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소. 제자들까지 볼모로 잡을 필요가 있겠소?”

대인다운 풍모를 애써 보이는 것일까? 그러나 상만천의 뇌리에는 상인답게 이미 손익 계산이 끝난 것이다. 아예 해약을 처음부터 주지 않았으면 몰라도 지금 두 번째 해약까지 복용한 상태에서는 제자들이 무공을 펼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애써 제자들까지 적을 만들 필요는 없다. 제자들은 최악의 경우에 해약을 얻기 위해서라도 성곤을 공격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장문위가 자신에게 동조하기로 했지만 사부에게만은 칼을 들이댈 인물이 아니었다.

조금 전 해약도 자신이 복용하지 않고 사부에게 던져준 바가 있지 않았던가? 다만 다른 제자들을 견제할 정도는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제자들을 해독시킨들 달라질 것은 없다는 계산이다. 방법이야 어찌되었든 모든 것은 운중과 결론을 내야한다.

“그렇군.”

운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무의식중에 위축되고 실태를 보였던 성곤 역시 상만천의 계산을 비로소 알아차렸다. 그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검은색 주머니에서 단약을 꺼내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하나씩 날려 보냈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 복용하고 운기를 하도록 해.”

중의가 주의를 주었다. 그 때였다. 밖에서 추태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모두들 여기에 모여 있었군.”

그는 혼자였다. 하지만 아주 태연하게 빈 자리의 의자를 빼내더니 털썩 몸을 실었다. 그는 지금 유람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처럼 아주 여유가 있어 보였다.


태그:#천지, #추리무협, #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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