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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 대천해수욕장을 출발하여 서해안을 따라 태안반도를 돌고 아산만을 거슬러 올라가 매향리와 시화호를 거쳐 인천까지 2박 3일을 달렸다. 이로써 우리나라 3면의 해안을 따라 도는 것은 거의 끝냈다. 이제 인천에서 판문점을 거쳐 철원과 양구를 지나, 고성 통일전망대를 북쪽 끝으로 속초를 거쳐 강릉에 도착하는 내륙 일주만 남아있다.

예년과 달리 8월에 많은 비가 내려 여행을 계속 미루고 있었다. 결국 날씨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개학을 눈앞에 앞둔 2007년 8월 29일 수요일에 여행을 시작하였다. 날씨는 매우 흐렸으나 다행히 출발할 때는 비가 오지 않았다. 대전에서 보령까지는 버스를 이용하여 내려갔다. 활기찼던 대천해수욕장은 썰렁한 분위기이고 한철 번성했음을 알려주는 쓰레기만 여기저기 아직 치우지 못한 채 남아있다.

오전 9시에 대천해수욕장을 출발하여 바닷가 산책길을 따라 대천항으로 갔다. 이른 아침이라 횟감 파는 장터에는 아낙들이 부지런히 주변 정리를 하고 있다. 인근 대천연안여객선터미널 앞 넓게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보령시로 들어가니 서해안고속도로가 나온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지도에도 나오지 않은, 그래서 생각도 못한 농기계를 위한 길이 바로 고속도로 아래로 놓여있고 때마침 썰물이라 건너갈 수 있어 거리를 줄인 것이다. 대천제방을 따라가니 멀리 대천항이 아스라이 보이고 썰물인지라 갯벌로 이어지는 작은 섬이 나타났다.

대천항을 멀리서 바라보며
 대천항을 멀리서 바라보며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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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화학발전소를 앞두고  오전 10시가 못되어 비가 간간히 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장대비로 변한다. 주변에 인가는 없다. 달리다 보니 버스 정류장이 있어 비를 피했다. 1시간이 지나도  비가 그칠 줄 몰라 잠시 약해진 틈을 타 주행을 계속하였다. 빗속을 달려보니 비가 얼굴에 와 닿는 촉감이 너무 좋았다. 비오는 여름 날 벌거벗고 자전거 타는 모습을 상상하며 달렸다. 주교면에 들어서니 토정비결을 지은 이지함 선생의 묘소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반듯하게 정비가 되어 있었다.

이 비를 맞으며 달렸다.
 이 비를 맞으며 달렸다.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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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면에 들어서자 보이는 농협 건물 처마에서 잠시 비를 피했다. 안에 있던 직원 한 분이 나와서 이런저런 말을 걸더니 들어와서 커피 한잔하라고 청한다. 따뜻한 커피는 몸에 기운을 불어넣어주었다. 자전거여행을 하면 가끔 이처럼 인정 많은 분들을 만난다.

다시 빗속을 달리며 보령방조제를 넘어 굴로 유명한 천북과 새우로 유명한 남당리를 거쳐 96번 도로를 타고 서산방조제로 들어섰다. 안면도에서 올라오는 77번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 32번을 타고 만리포해수욕장으로 들어섰다. 30년 전 대학시절 딱 한 번 방문한 곳으로 감회에 젖어본다. 천리포와 백리포해수욕장을 돌아 원북면을 거쳐 다시 태안읍으로 들어서니 오후 5시 30분이 되었다.

만리포해수욕장
 만리포해수욕장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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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전 9시에 태안을 떠났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으나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날씨는 하루 종일 흐려 자전거 타기에 매우 좋았다. 팔봉면과 지곡면을 지나 77번 국도로 갈아  타고 대산읍을 지나 대호방조제에 도착하였다. '대호간척 친환경농업시범지구'라는 커다란 돌비석이 간척이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당진화력발전소가 나오고 서해안에서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왜목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커다란 돌비석이 간척이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커다란 돌비석이 간척이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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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왜목마을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왜목마을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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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최대의 길이라고 알려진 11km짜리 석문방조제를 달려나오니, 현대제철(예전 한보철강)과 동부제강 등 철강업계가 줄줄이 보인다. 넓게 포장된 77번 국도에는 인도와 구별된 자전거도로가 설치되어있다. 출퇴근시간이 아니어서인지 도로를 지나가는 행인이나 자전거는 매우 보기 어려웠다.

행담도를 연결하는 서해안고속국도 아래를 지나 삽교천방조제로 들어선다. 삽교천에는 많은 무리의 철새가 떼지어 있다. 아산만방조제와 남양방조제를 건너 화성시 우정읍에 들어서니 오후 6시이다.

삽교천의 철새
 삽교천의 철새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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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와 시화호를 답사할 수 있기에 서해안 여행 마지막 날엔 이른 시간인 오전 7시에 출발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우정읍에서 기아자동차가 있는 매향리로 가는 도로에는 차들이 많았다. 언론에서만 듣던 매향리. 꼭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다. 가구가 약 200호 정도 있는 조그마한 바닷가 마을인 매향리는 우정읍에서 불과 10여km 떨어진 곳이었다.

매향리 입구에서 마주친 것은 역사박물관이 될 장소를 알려주는 팻말과  그 앞에 설치된 포탄의 잔해물로 설치된 조형물이다. 조형물은 마치 전쟁의 참혹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사격장이 폐쇄된 지 2년이 넘었지만 역사적 사실을 후대에 길이 알려주어야 할 역사박물관 건립이 아직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포탄의 잔해물로 설치한 조형물
 포탄의 잔해물로 설치한 조형물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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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번 국도를 타고 끝까지 가니 매향리선박출입항이 나온다. 바닷가 언덕에서 바라보니 미군이 사격 연습한 농섬이 마을에서 빤히 보이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섬 위에 표적을 해놓고 그곳에 사격을 했다는 것이다. 이곳에는 이 섬 말고도 10년 전까지는 육지사격장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 피해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문명국가인 척하는 미국이 앵글로색슨 계통이 아닌 다른 민족의 나라에서 야만적인 행동을 끊임없이 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현장을 직접 목격하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미국은 그렇다 치고 당사국인 우리나라는 그것을 54년간이나 방치해왔다는 생각에 과거 정권들에 대하여 이루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다시 인다.

미군의 사격 연습장이었던 농섬
 미군의 사격 연습장이었던 농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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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많은 매향리를 뒤로 하고 화옹방조제로 갔다. 아산만과 남양만을 사이에 두고 길이도 엇비슷한 석문방조제와 화옹방조제는 마주보고 있다. 아직 완공되지 않아 낮에만 개방한다는 화옹방조제의 통제된 도로 한 편을 마음껏 내 달린다. 왼쪽으로는 자신을 좀 더 보아달라는 듯 농섬이 계속 모습을 바꾸며 나타난다. 10km에 달하는 방조제를 나와 궁평리를 지나 화성시로 들어선 후, 서신면을 지나 탄도방조제를 건너 안산시로 들어섰다.

말썽 많은 문제의 시화호방조제가 나타났다. 방조제 길 주변 건설업자들이 붙인 현수막에 그럴싸한 환경구호가 즐비하다. 도대체 누가 환경론자인지 모르겠다. 방조제 건설을 반대한 자들인가 방조제를 만든 자들인가?

송전탑이 즐비하게 놓여있는 시화호
 송전탑이 즐비하게 놓여있는 시화호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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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버스터미널에서 시화호방조제는 오이도로 연결되고 인천으로 이어진다. 바다 건너편 아파트 단지로 조성된 송도해상신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국제도시로 계획되면서 자식들 향학열에 불타는 학부모들로 인해 벌써부터 부동산투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곳이다. 인천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2시다.

인천버스터미널에서
 인천버스터미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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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1. 높은 언덕이 없어 자전거 타기에 수월함
2. 수많은 방조제 위로 바다 바람을 만끽하며 달릴 수 있음

거리 : (340km) 대천해수욕장-121km-태안읍-134km-우정읍-85km-인천


태그:#매향리, #시화호, #자전거여행, #방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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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통해 사회를 분석한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 역사가 담긴 자전거기행문 <미안해요! 베트남>, <체게바를 따라 무작정 쿠바횡단>, <장준하 구국장정6천리 따라 자전거기행> 출간. 전 대전환경운동연합 의장, 전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 현 배재대 명예교수, 피리와 클라리넷 연주자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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