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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회에 이어서)
7월 초순 어느 날. 어머니랑 운봉 장 구경을 나갔다. 첫 나들이가 크게 성공한 이후 점점 나들이 범위를 넓혀 오다가 드디어 지리산까지 진출을 했는데 지리산 정령치 계곡에 있는 어느 수련 터에서 어머니랑 1주일을 보내게 되었었다.

운봉장에서 쪽파를 사시는 어머니
▲ 운봉장 운봉장에서 쪽파를 사시는 어머니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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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내가 3년여 전 우연한 기회에 수련을 하기위해 찾아갔던 곳이다. 당시는 초겨울이었는데 새벽 5시에 계곡의 살얼음을 깨고 물 속에 들어가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생활을 했었다. 강한 물 기운을 받아 큰 변화를 겪었던 곳이라 어머니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 같이 간 것이다.

3일짼가 되는 날이었다. 마침 남원시 운봉읍 5일장이 서는 날이라 해서 어머니께 물었다.
“어무이. 운봉이 요 아랜데요. 장 구경 갈끼요?”

하루 전날 이미 해발 1170m인 정령치 휴게소까지 나들이를 다녀 온 어머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구름과 산등성이가 발아래로 밟히는 높은 곳에 갔었던 뿌듯함이 있던 차에 ‘운봉’에 가자고 하니까 여간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운봉이 친숙하다. 고향마을 가까운 친척이 운봉으로 이사를 갔는데 그곳에서 양은장사를 했었다고 한다. 양은을 어깨 짐 해서 고향마을을 철마다 찾아오니 자연히 호칭이 ‘운봉양반’으로 바뀌게 되었다.

또, 조카뻘 되는 사람이 새색시를 맞았는데 운봉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안에 처음으로 전라도 색시가 오게 되었고 택호는 ‘운봉댁’이었다.

“운봉이 요기락꼬? 말로만 듣던 운봉이 바로 요기라카믄 한 번 가 복까?”

이렇게 해서 운봉 장 구경을 나선 것이다. 당연히 나는 아주 멋진 나들이가 될 것이라고 믿었고 재미있는 장 구경이 어머니에게 좋은 치유의 과정이 되리라 여겼다.

집에서 따 왔다는 참외를 길가에 펼쳐놓고 앉아있는 쪼그랑 할머니에게서 참외를 한 봉지 사고 새까맣게 그은 할아버지 좌판에서 2천원에 쪽파 한 소쿠리를 살 때까지는 어머니가 별 까탈을 안 부리셨다.

고등어를 사려고 할 때였다.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트집을 잡았다. 고등어 장사가 듣는지도 모르고 ‘순 도둑년’이라고 욕설을 했다. 민소매 셔츠를 하나 사려고 해도 싫다,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를 하나 사드리려고 해도 ‘종아리가 벌겋게 나오는 옷을 남우세스럽게 어떻게 입으라고 그런 걸 사려고 하느냐’며 역정을 내시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뻥튀기를 즉석에서 만들어 파는 리어카가 있기에 한 봉지 사려고 했더니 ‘저런 거는 안 먹는다’며 끝내 사지 못하게 했다. “길거리에서 거라지처럼 우물우물 묵으란 말이가?”라고 버럭 화를 내셨다.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뻥튀기 아저씨는 자기도 어머니라면 한이 맺혀 있다면서 바퀴의자를 밀고 장 구경 나온 우리를 그냥 보내지 않고 굳이 뻥튀기 새로 튀겨 새로 한 봉지를 싸 주시는 것이었다. 이것을 어머니는 상대가 민망할 정도로 야멸치게 거절하였다.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그러다 바퀴의자가 보도블록에서 털컥거리면 버럭 짜증을 냈다. 볕이 뜨겁다고 또 짜증이었다. 날씨는 무덥고 하는 일마다 거절을 당하다보니 나는 맥이 탁 풀렸다. 농협 하나로마트가 옆에 있었는데 유리창 너머로 느껴지는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이 나도 모르게 어머니 바퀴의자를 밀고 들어서게 하였다.

역시 마트 안은 시원했다. 겨우 살 것 같았다. 그것도 잠시, 어머니가 버럭 내 지르는 짜증이 내 평온을 뿌리 채 뒤흔들었다.

“쫍아 비킬데도 없는데를 머 할락꼬 들어와 가지고 궁디도 못 움직이고로 사람 잡을락카나?”(24회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치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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