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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녘을 누렇게 물들이고 있는 벼. 이 벼는 쌀이 되고, 그 쌀은 힘의 근원입니다.
 가을 들녘을 누렇게 물들이고 있는 벼. 이 벼는 쌀이 되고, 그 쌀은 힘의 근원입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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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외식할까?”
“좋아요.”


“그런데 뭘 먹지?”
“통닭 먹으면 안 돼요? 피자는?”


외식을 하자고 하면 슬비와 예슬이는 십중팔구 치킨과 피자를 들먹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장면, 냄비우동, 탕수육, 돈가스, 떡볶이를 언급합니다. 그냥 맛있는 반찬에다 밥을 먹자고 한 적이 없습니다. 집에서도 가끔은 밥 먹기 싫다면서 라면을 끓여 먹자고 합니다.

하긴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을 하더라도 밥은 먹기 싫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밥보다 더 맛있는 게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밥은 또 날마다 먹는 것이니까요.

이 벼를 훑어내면 쌀이 나옵니다. 그 쌀 한 톨, 한 톨이 밥으로 변해 우리 몸을 움직여 주는 것입니다.
 이 벼를 훑어내면 쌀이 나옵니다. 그 쌀 한 톨, 한 톨이 밥으로 변해 우리 몸을 움직여 주는 것입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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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쌀 소비가 줄고 있다고 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해마다 줄어 지난 1996년 106.5㎏에서 99년 96.9㎏, 2001년엔 88.9㎏까지 떨어지더니 급기야 최근엔 80㎏ 안팎까지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 국민 1인당 하루 평균 두 공기의 밥도 먹지 않는다는 수치랍니다.

쌀 소비 감소는 비만 등 각종 성인병으로 이어지고 있고, 우리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쌀에는 밀가루보다 섬유소 함량이 두 배나 많고, 인슐린 분비는 적어 변비와 비만, 고혈압 등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크다고 합니다.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들녘. 고향집에 가는 도중 잠시 멈춘 곳입니다. 슬비와 예슬이는 이곳에서도 서로 장난을 하면서 놀았습니다. 결국엔 예슬이가 논두렁에 빠져 흙범벅이 됐습니다.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들녘. 고향집에 가는 도중 잠시 멈춘 곳입니다. 슬비와 예슬이는 이곳에서도 서로 장난을 하면서 놀았습니다. 결국엔 예슬이가 논두렁에 빠져 흙범벅이 됐습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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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추석을 맞아 아이들 할머니 댁으로 가다가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보고 차를 세웠습니다. 문득 그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지난 여름의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벼가 익어 가는 것을 보니 과연 식물은 위대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이 벼를 훑어내면 쌀이 나올 것입니다. 그 쌀 한 톨, 한 톨이 밥으로 변해 우리 몸을 움직여 줍니다. 하여 벼는 쌀이고, 그 쌀은 힘의 근원입니다. 쌀 한 톨을 훑어서 한참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예슬이가 궁금했는지 말을 걸어왔습니다.

“아빠! 뭐하시는 거예요?”
“응, 쌀을 보고 있어. 이 쌀이 밥으로 돼서 우리 예슬이 키를 쑥-쑥- 크게 해주잖아.”


"예슬아! 이 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니?”
“당연히 알죠. 봄에 기계로 모내기를 하잖아요.”

“그래. 근데 기계로 심기만 하면 이렇게 벼가 익고 쌀이 되는 건 아니야. 쌀을 만들기 위해선 농부 아저씨들의 엄청난 노력과 정성이 필요해. 한번 생각해 봐! 모를 심기 위해서 먼저 논을 갈아야지, 볍씨를 소독해야지, 그 다음엔 못자리를 만들어서 볍씨를 뿌려야지.”
“….”


“그것뿐인 줄 알아? 방금 네 얘기처럼 기계로 모를 심으려면 논을 갈아야지. 모를 심은 다음엔 잡풀을 뽑아주고 나쁜 벌레들도 잡아야지. 일이 엄청 많아.”
“정말 그러네요.”

“또 있어. 지난번에도 태풍이 왔잖아. 그때 벼가 많이 쓰러졌어. 예슬이도 오면서 봤잖아. 쓰러진 벼를…. 그런 벼들은 일으켜 세워줘야 해. 그렇지 않으면 쌀알이 다 썩어버리거든. 또 이렇게 벼가 다 여물면 거둬들여야 해. 탈곡해서 말리고 또 방아를 찧어야만 비로소 쌀로 되는 거야.”

예슬이와 슬비가 논두렁에 잠시 앉아 가을햇볕을 받으며 서서히 익어가고 있는 벼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예슬이와 슬비가 논두렁에 잠시 앉아 가을햇볕을 받으며 서서히 익어가고 있는 벼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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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슬이는 그동안 모만 심어놓으면 저절로 쌀이 되는 줄 알았는지 사뭇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예슬아! 그러니까 밥을 먹을 때 농부아저씨의 고마움을 잊으면 안 돼. 밥 한 숟가락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해서 맛있게 먹어야 해. 알았지? 그리고 아침밥도 꼭 챙겨 먹고.”
“예. 그럴게요.”


예슬이는 이야기를 듣고 굳은 결심이라도 했는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반찬투정도 하지 않고. 옆에서 지켜보던 슬비도 농부아저씨의 고마움을 한시도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겠다고 했습니다. 예쁜 녀석들.

물론 예슬이의 그 약속은 연휴를 끝내고 학교에 가는 어제와 오늘 아침 여지없이 뭉개졌습니다.

“얘들아! 학교 갈려면 빨리 밥 먹어라!”
“안 먹을래요.”

“왜?”
“그냥 먹기 싫어요.”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다만 들판이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는 이 가을에 우리 아이들이 쌀 한 톨, 한 톨을 소중히 여기면서 농군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산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니까요.

누렇게 채색되고 있는 가을 들녘이 우리네 마음까지 풍성하게 해줍니다.
 누렇게 채색되고 있는 가을 들녘이 우리네 마음까지 풍성하게 해줍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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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벼, #쌀, #슬비, #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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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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