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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의 휠체어를 안전하게 배치하는 모습(휠체어를 잡고 계신 분이 기사님)
ⓒ 이준혁
지난 7월 23일 오후 6시. 대구 서문시장 앞 버스정류장에서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휠체어 탄 지체 장애인 4명이 한꺼번에 840번 저상버스에 오른 것이다. 지나가는 시민들 중 일부는 이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지만, 매일 이 시간대에 이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는 시민들에겐 익숙한 풍경이었다.

저상시내버스 차량이 360여대에 이르는 서울에서도 보기 어려운 '저상버스 타는 휠체어 탄 지체장애인'의 모습을, 저상버스가 고작 30여대인 대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까닭은 여러 사람의 정성과 노력 때문이다. 한 달 뒤인 지난 28일 840번 버스의 찾아 다시 대구를 찾았다.

우여곡절 끝에 840번 노선에 투입된 저상버스

840번 시내버스는 대구시 업체인 세진버스와 한일여객에서 각 12대와 10대, 경산시 업체인 경산버스가 12대 등 총 34대의 버스 차량이 공동배차를 통해 7~8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다.

840번은 경산 동북부에 위치한 경일대학교에서 출발하여 대구가톨릭대학교, 하양읍, 대구대학교, 영남신학대학교, 진량읍, 영남대학교, 경산중앙로, 시지, 범어네거리 등을 거친 후 대구 도심인 서문시장에서 회차하는 장거리 노선. 경산 시내의 중앙로 우회와 대구대 경유를 제외하면 별다른 굴곡 없이 큰길을 통해 경산에 있는 주요 학교들을 거친 후 대구 중심부까지 운행하여 이용승객이 많은 편이다.

이 노선에 저상버스차량이 처음 투입된 것은 지난해 10월 31일. 840번 노선 운행업체 중 경산버스에 정부, 경상북도, 경산시에서 1억원이 넘는 저상버스출고보조금이 들어왔고, 경산버스는 이 비용으로 대당 1억 8천만원 전후의 저상버스를 구매했다. 애초 이 저상버스는 경산시의 권유로 타 노선에 투입될 계획이었지만 경산버스는 전국적으로 장애인 재학비율이 높기로 유명한 대구대 지체장애인 학생들에게 저상버스가 더 절실할 것이라 생각했다.

경북 경산시에 위치한 대구대는 지체장애학생만 70여명에 달한다. 이 때문에 대학교 중 전국 최초로 구입한 저상버스 차량이 1대 있다. 하지만 저상버스 1대로는, 등·하교 및 현장학습 등 공적 용도로 사용해도 부족한 실정.

그동안 장애인 학생들은 학습 관련 물품을 구매하거나 다른 젊은이처럼 세상을 한없이 접하고 싶어 시내에 나가려 해도 타인의 도움을 받거나 자가용을 이용해 몇 달에 한 번씩 힘겨운 발걸음을 떼야 했다.

결국 대구대의 요청과 학생들의 호소, 버스회사의 판단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러 노선의 경합 끝에 최종적으로 840번 노선에 저상버스가 투입됐다. 대구대학교를 지나는 840번 노선에 경산 최초로 저상버스가 투입됐다는 사실은, 대구대에 재학중인 많은 지체장애 학생들에게 희소식이었다. 그 결과 전국을 통틀어 유래를 찾기 힘든 지체장애인들의 높은 저상버스 이용률을 보이게 됐고, 버스 한 대에 휠체어 여러 대를 싣는 '진풍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10분의 조합, 80분의 걱정

840번 저상버스 차량 휠체어 정원은 고작해야 2대. 휠체어를 고정하는 장치로 체어락(Chair Lock, 현재 제거함) 1대와 안전벨트 1개(현재 2개)만이 있을 뿐이었으며, 이 상황에서 휠체어를 3대 이상 싣는 것은 안전상 무리였다.

그러나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이 3명 이상 기다리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2명만 태운다면 남은 사람은 무려 4시간(저상버스 하루 운행횟수 4~5회)을 기다려야 하는 했다. 그래서 840번 저상버스 기사들은 이들을 남김없이 태웠고 최대 5대의 휠체어를 안전하게 배치하고자 상황에 맞는 온갖 묘안을 구상했다.

▲ 전동휠체어의 저상버스 승차 모습
ⓒ 이준혁
대구 중심부인 동성로에서 서문시장 회차점까지 오는 데 비장애인은 도보로 10분이지만 전동휠체어로는 20분 정도 걸린다. 반월당역까지는 그 절반 정도 걸리지만 840번 저상시내버스에 승차하는 지체장애인들도 기사들의 고충을 알고 일부러 먼 걸음을 한다. 일반 정류장에서 탈 경우 다른 승객에서 불편을 준다는 이유다. 840번 노선은 보통 회차점 정류장 전의 정차지역에서 10분 정도 쉰 후 출발한다. 하지만 저상시내버스의 기사들은 쉴 틈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 시간에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을 안전하게 승차하도록 조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휠체어가 2대 이하인 경우는 안전벨트 2개로 휠체어를 고정하면 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지만 3대 이상일 경우에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안전벨트가 총 2개인 상황에서 마치 '블럭 맞추기' 마냥 휠체어를 어떻게 배치해야만 이들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리고 갈 수 있을지 신경 써야하기 때문. 그렇다고 안전벨트를 더 설치할 수 있는 것도, 설치한다고 해서 효과가 좋은 것도 아니다. 휠체어가 비스듬하게 배치할 경우 안전벨트는 있으나 마나 하기 때문이다.

지난 28일 기자가 찾았을 때도 총 4대의 휠체어를 싣고 있었다. 전동휠체어 3대와 일반휠체어 1대였는데 역시 공간이 넉넉지 않았다. 전동휠체어는 혼자 편히 이동할 수 있는 반면 일반 휠체어보다 가격도 비싸고 크기와 무게도 많이 나가는 편이다.

저상버스 차내에서, 좌측의 넓은 공간에 전동휠체어 1대는 온전히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다른 1대의 전동휠체어를 더 배치해야 한다면 비스듬히 배치할 수밖에 없다. 우측의 공간 또한 전동휠체어 1대는 온전히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우측의 경우 좌측보다 좁아 전동휠체어는 물론 일반휠체어 또한 비스듬하게 배치하기도 힘들다. 결국 저상버스 차내 좌·우측의 넓은 공간에는 비스듬하게 배치한 1대를 포함해도 3대가 상한선이다. 그렇다면 다른 2대는 어떻게 배치할까?

방법은 저상버스 차량 뒷문 폐쇄였다. 즉, 4대의 휠체어를 배치할 경우 가장 큰 전동휠체어를 저상버스 차량 뒷문에 배치하며, 5대의 휠체어를 배치할 경우 휠체어를 양옆으로 바싹 붙인 후 복도에 1대의 휠체어를 더 놓아 차내 복도가 협소하더라도 5대의 휠체어를 들이는 것이다.

물론 배치에 순서는 있다. 전동휠체어는 건장한 남자 2인도 쉽게 들지 못할 정도로 그 자체 무게만 해도 상당하며 덕분에 웬만한 급정거 시에도 큰 무리가 없다. 결국 안전벨트 공간은 일반 휠체어에 우선 배분된다.

▲ 4대의 휠체어를 모두 배치한 후의 모습(서있는 분이 복지교통전문가 이정석님)
ⓒ 이준혁

쉴 틈 없는 기사들, 하지만 사랑으로 감싼다

360여대의 저상버스차량이 출고된 서울시와 달리, 대구·경북 권역에서 저상시내버스차량은 귀한 편이다. 경산시에서는 840번에 투입된 저상버스차량 1대가 유일하며, 경상북도 전체를 통틀어도 저상버스차량은 4대(경산 1대, 경주 2대, 포항 1대) 뿐이다. 좀 사정이 나은 대구광역시를 합쳐도 간신히 30대를 넘을 정도다.(8월 출고분 4대를 포함하면 대구광역시 저상시내버스차량은 총 28대.)

이러한 상황에서 저상버스를 이용하려는 승객들은 '언제 올지 몰라' 못 타는 경우가 많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대구광역시가 홈페이지에 저상버스시간 안내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으나, 근본적으로 '시내버스 타려고 시간표 보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상황에서 웹페이지 이용률은 낮다.

더군다나 840번 노선 저상버스의 경우 대구광역시 면허가 아닌 경상북도 경산시 면허로서 웹페이지에서 조회가 불가능하다. 대구대 지체장애인 학생들의 경우 학내 장애인 관련 카페에, 복지교통전문가 이정석(복지교통연구모임 '마이낮은버스' 운영자)씨가 제공하는 정보를 통해 시간을 파악하는 실정이다.

승객들만큼 힘든 사람은 저상버스 차량 운전기사들이다. 일반 시내버스 기사들이 느끼는 고충에 더해, 앞서 언급한 회차점 휠체어 배치작업 및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을 3인 이상 태웠을 때 느끼는 안전에 대한 걱정, 속도를 빨리 낼 수 없어 벌어지는 배차간격 탓에 더욱 쉴 틈이 없다. 게다가 저상버스가 천연가스버스(CNG)를 연료로 사용하는 상황에서 경산지역에서는 가스충전이 쉽지 않다는 점 등도 저상버스차량 운전이 쉽지 않은 데 한몫한다.

휠체어 배치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순서대로 모든 휠체어가 들어온 후 뒷문을 폐쇄하고 각자의 위치에 배치하는 데 드는 시각은 보통 10분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사들이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은 물론, 뒷차를 먼저 보내는 일도 발생한다. 휠체어 배치가 주로 회차점에서 다른 승객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기에 별다른 민원은 없지만, 저상버스차량 기사와 뒷차 기사는 장시간 휴식 없이 강행군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10개월째 840번 저상버스차량을 운전하고 있는 2명의 베테랑 기사 허정관·정규성씨는 이러한 상황에 큰 불만이 없다. 오히려 차량에 대해 더 잘 알고자 노력하여 타지역에서는 차량제작업체에 정비를 맡기는 가벼운 사안은 직접 해결할 정도이며, 지체장애인 승객과 더욱 친해지려 노력한다.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 승객이 간발의 차이로 늦게 나와 버스를 못 탈까 하는 걱정에, 전화번호를 교환하여 유사시에 대비하기도 한다. 학교 정류장에 나오기까지 1~2분 정도 걸릴 경우, 다른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해 기다려가며 지체장애인 승객을 태우고, 회복운행을 통해 배차간격을 유지한다.

▲ 840번 노선 저상버스차량을 운전하는 정국성 기사(왼쪽)과 허정관 기사
ⓒ 이준혁
자주 타는 지체장애인 승객과는 스스럼없이 대화하기도 한다. 특히 말주변이 좋은 허정관 기사는, 대구지역 특유의 말투로 "너희들 조용히 못할까, 너희들 이렇게 떠들었으니 다음번에 캔커피 하나 사 온나"라고 악의 없이 말한다. 이런 식으로 친해진 지체장애인 승객도 십여명. 얼굴과 체형, 휠체어 종류만이라도 기억하는 경우는 수십여명에 이른다.

허 기사는 이렇게 말한다. "몸이 장애일 뿐이지 마음은 정말 푸근한 친구들이에요. 열에 아홉은 운전석까지 나와 '고맙습니다' 혹은 '수고하세요' 등의 인사 후 내려요. 캔커피 얘기는 웃자고 시작한 얘기인데, 실제 사오다 보니 저 또한 고마워 다음번에 준비하게 되고 이것이 계속 이어진 거지요."

보람을 느끼는 이들에게도 고충은 있다. 허 기사는 "가장 고충인 점은 '840번인데 이상한 차에요'라는 식으로 얘기하면 금방 알아채기 때문에 속도 위반이나 신호 위반도 마음대로 못 한다"라는 농담으로 운을 뗀 뒤, "차량에 있어서는 가스를 채우는 점이 가장 고충이고, 기타 측면에 있어서는 '장애인차량' 혹은 '빨리 못 가는 차' 등으로 백안시하는 일부 시민들의 시선이 가장 큰 고충"이라고 밝혔다.

실제 경산시에는 천연가스(CNG)를 충전할 수 있는 충전소가 없어 가스 충전을 하러 매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까지 이동해야 하며, 새벽에 가스를 가득 충전하더라도 오후 4~6시 정도면 추가로 충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승객을 미리 내리게 해야 하는데,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 승객이 탔을 경우, 다른 저상버스로 갈아타기가 쉽지 않아 차량에 남아 20분 정도 시간 기다려야 해 미안함 마음이라고 든다고 한다.

저상버스차량 2대 추가 투입 추진

▲ 대구광역시 저상버스 운행안내
ⓒ 대구광역시
이번 취재는 교통전문가 이정석(복지교통연구모임 '마이낮은버스' 운영자)씨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이정석씨는 "대구대 지체장애인 학생들의 저상버스 이용에 있어 가장 좋은 방법은 버스 운행 시각의 고정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840번 노선의 경우 경산면허 버스라 할지라도 대구광역시에서도 840번의 저상버스차량 시간표 안내했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더불어 "관련 기관에서 교육과 조정 역할을 통해 저상버스 운행기사들의 능력을 향상했으면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다행히 올해 안으로 경산버스 외에 840번을 운행하는 다른 두 회사에서 각각 한 대씩 저상버스 차량 투입을 추진해 총 세 대가 운행될 전망이다.

진정 교통약자가 많이 이용하는 노선을 파악하여 840번과 같은 적합한 노선에 저상버스출고보조금 지급과 실제 저상버스 투입이 확정되어 지금처럼 '한 버스에 휠체어 네다섯 대가 한꺼번에 실리는 일'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기획취재기자단 기사입니다.

힘든 인터뷰 시간을 낸 '경북 70자 7361' 버스를 운전하는 두 기사님과 이정석님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태그:#장애인, #휠체어, #저상버스, #대구대, #지체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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