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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2007 대선, '아름다운 선택'으로의 초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대선은 나라의 운명뿐 아니라 개인의 운명도 바꿔놓는다. 2007 대선 공간에서도 선택의 기로에 선 사람들이 있다. 대권주자에서 평범한 유권자에 이르기까지. 그들과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련다. 때론 세상이 '실패한 선택'으로 규정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곳 어느 한 켠에 있을 아름다운 도전, 아름다운 고뇌를 찾아내보련다. 그 과정에서 2007 대선의 시대정신을 추려담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이 글은 그 일곱번째다. <편집자주>

표, 표, 표…. 표는 이미 투표함에 모두 담겼다.

 

이명박이냐, 박근혜냐를 선택한 표들이 월요일(20일)의 개표를 기다리고 있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는 경선투표가 일요일인 19일 오전 6시부터 8시까지 계속됐다. 최종투표율은 70.8%, 예상보다 높다. 이처럼 높은 투표율은 어느쪽에 유리할까?

 

월요일의 개표는 낮 12시경부터 이뤄지며 오후 4시 30분경에 최종 승자가 발표된다. 경선과정에서 극한의 대결을 했던 박근혜, 이명박 두 사람의 운명이 갈린다. 뿐만이랴, 그 두 사람을 위해 뛰었던 캠프 사람들의 운명도 갈린다.

 

지난번 <오연호리포트: 선택 2007대선 6>의 주인공은 이명박 캠프 대변인 박형준 의원이었다. 그는 왜 이명박 대통령이어야 하는지를 역설했다. 이번엔 그 반론 격이다.

 

박근혜 캠프의 허용범(許容範․43)공보특보를 만났다. 그는 왜 이명박이 아니고 박근혜여야 하는지를 말했다. 박형준은 "내가 지금 고 3때보다도 더 잠을 못자고 있다"고 했다. 허용범도 "내가 서울대 법대 목표로 입시 준비했을 때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두 사람 다 몇 달째 잠을 서너 시간 밖에 자지 않았다. 후보도, 캠프 사람들도 그렇게 열심히 뛰었다. 그러나 내일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웃을 수 있다.

 

허용범 공보특보는 참 특이한 선택을 했다. 그는 나이가 나랑 동갑이다. 64년생. 그와 일면식도 없었지만, 지난 5월말 그가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에서 박근혜 공보특보로 직행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그를 한번 만나고 싶었다. 그는 왜 '<조선일보> 기자'를 벗어버렸을까? 워싱턴 특파원이라는, 동료들이 부러워하는 현직에서 무엇이 그리도 급해 박근혜 캠프로 곧장 달려갔을까?

 

그는 "지난 80일 동안 정말 열심히 살았다, 내 생에 이토록 치열하게 산 때는 없었다"고 했다. 기자생활 19년(89년 입사)을 버리고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선 마흔세 살 사나이의 선택, 이 사나이는 과연 경선 당선자가 발표되는 내일 웃을 수 있을까?

 

"역전을 믿는다"... 만약 박근혜가 진다면?

 

'경선 D-01, 정권교체 D-123.'

 

18일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있는 박근혜 캠프 사무실에 들어서자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그 숫자였다. 마지막 선거운동일의 긴장감이 사무실을 덮고 있었다. 홍사덕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역전을 확신한다"면서 지역 일꾼들에게 격려전화를 연신 했다. '<조선일보> 기자' 대신 '박근혜 공보특보'라는 명함을 내민 허용범 특보도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는 순간까지 마지막 운동을 했다. 그는 핸드폰으로 상대방에게 이렇게 말했다.

 

"200일 운동을 해온 게 내일 하루를 위한 겁니다. 캠프 사람들의 긴장이 이완되지 않게 내일 아침 일찍 나와서 독려하는 게 필요합니다."

 

- 선거운동이 끝났는데, 2달 반여 동안 힘들었겠다.
"글쎄, 이제 잘 되기만 바란다. 나도 개인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캠프에 6월 2일부터 출근했는데, 지난 80일 중 70일은 새벽에 내가 문을 따고 들어왔다. 새벽 5시 반에서 여섯시 사이였다. 하루에 잠은 서너 시간 밖에 못 잤다. 지금은 몸이 분해되는 느낌이다. 내 여동생이 '오빠, 그러고 어떻게 버텨?'하더라. 매제가 약사인데 보약을 지어주더라. 약기운으로 버텨왔다."

 

- 그동안 기자들에게 "역전한다, 역전한다" 했는데, 내일 허용범 특보는 웃을 수 있을 것 같은가?
"믿는다. 우리 조사대로라면 3~4% 차이로 이긴다. 확신까지는 아니지만 믿는다."

 

- 만약 박근혜 후보가 진다면?
"이런 질문 안할 거라 생각했는데…. 나는 우리 후보가 이길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확신이라고까지는 할 수는 없지만, 정말 믿고 있다. 또 이겨야 한다고 당위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이날 낮 출입기자들의 같은 질문에 이렇게 답했었다. "(웃으면서) 집에 가야지. 술이나 마셔야지. 지면 통한의 술, 이기면 기쁨의 술, 일주일 간 술만 먹을 거다."

 

한 여론조사(한국리서치 13일 조사)를 보면 박 후보 지지자 중 48.9%가 '지지후보가 지면 아예 다른 당 후보를 찍거나 투표를 포기하겠다'고 하고 있다. 허용범 특보도 그 48.9%에 속할까?

 

- 만약 박근혜 후보가 지면, 이명박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뛸 것인가?
"나중에 생각해볼 일이다. 달리는 가속도가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이다. 박근혜 후보가 어떻게 할지가 중요하다. 정권교체를 위해 힘을 합쳐 돕는 것이 지상명령이라고 했으니 아마 그렇게 할 것이다."

 

"<조선> 연봉 8천만원이지만... 내 청춘이 다하기 전에..." 
 

- 왜 잘나가는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을 그만두고 정치판에 뛰어들었나?
"내 청춘이 다하기 전에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내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월급벌이에 연연하는 회사원으로 굳어버리는 것이다. 기자생활을 19년째 해왔는데, 내 삶이 답답한 측면이 있었다. 나의 에너지, 열정이 소진되기 전에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워싱턴 특파원하면서 우리나라에 과연 미래가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됐다. 어떤 날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우리나라의 현실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개인의 답답함과 나라의 답답함에서 함께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내 청춘이 다하기 전에"라고 했는데, 백발이 될 때까지 평기자로 일하겠다고 다짐하는 기자도 있을 텐데, 기자라는 직업에 어떤 한계를 느꼈나?
"기자는 이점이 많은 직업이다. <조선일보> 기자는 보수도 대단히 많다. 내가 19년차인데 연봉을 8천만원 가까이 받았다. 그런데 내가 50이 되면, 기자를 그만두었을 때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생각해봤다. 답이 안 나왔다. 나뿐 아니라 기자들이 대부분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 지금처럼 심층분석과 탐사보도가 실종되고 단편적인 뉴스들이 주로 생산되는 환경에서는 전문적인 지식도 가질 수도 없고…. 특히 내 나이가 되면 부장자리도 차지하고 데스크에 앉게 되는데… 그러면 더 이상 기자 역할을 하지 못하는 거고."

 

- 박근혜 캠프로 간다고 하니까 <조선일보> 기자들이 "놀라워하면서도 다소 황당하다는 반응"(<미디어오늘>, 6월 7일)이었다고 하던데, 동료 기자들이 뭐라던가.
"그런 반응이 사실일 것이다. 박 캠프로 가기로 결심하고 워싱턴에서 한국에 들어오기 전까지 <조선일보> 동료 단 한 사람하고도 상의하지 않았다. 지난 3월부터 고민했는데 소문이 날까봐 아내하고만 상의했다. 들어와서 처음으로 사장님께 말씀드릴 때도 회사 밖에서 말씀드렸다. 캠프 오고 꼭 한 달 간은 회사에 안 갔다. 그래서 욕 많이 얻어먹었다. 한 번 안 들르느냐고, 왜 전화도 안 하느냐고."

 

"왜 그랬나?"하고 묻자 그는 "이것만은 꼭 써 달라"고 했다. <조선일보>의 선후배, 동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라면서.

 

"한 달간은 일부러 안 갔다.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 출신이라고, 의자 젖히고 앉아서 전화하면서 나 여기로 왔다, 낄낄거리고 싶지 않았다. 폼만 잡는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은 역시 다르구나 하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가장 앞서 매일 출근했다. 거의 매일 새벽 5시 반에 와서 문을 땄다. 캠프 오고 딱 한 달 되던 날 회사(<조선일보>)에 찾아갔다. 사장님부터 간부들, 동료 선후배를 만났다. 이해해주는 사람, 여전히 이해 못하는 사람…. 회사에서 나오는데, 내 청춘을 태평로에 묻어두고 나오는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매일 새벽 5시에 문 따고, 기자 뒷바라지하고"

 

- 그간 정치권으로 간 <조선일보> 선배들이 적지 않았는데, 정치부 기자를 12년하면서 쭉 지켜봤을 텐데, 그들의 모습이 좋아 보이던가?
"아니다. 배울 것보다는 사실 변화시키고 싶은 것이 더 많았다. 그동안의 한국정치는 패거리 정치에 불과하지 않았는가."

 

- 직접 안에 들어와 보면 만만치 않다고 느낄 텐데. 그런 흐름에 휩쓸려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이번에 결심을 하기 전에 한 만번은 자문자답해봤다. 너는 정말 이 길을 원하느냐, 잘 할 수 있느냐, 아니 그 이전에 최선을 다 할 수 있느냐. 결론은 사나이가 해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는 거지, 뭐 그리 고민하느냐였다. 아내도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거면 하라고 했다. 남자가 한 번 인생을 사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국가적 일에, 권력을 창출하는 일에 몸을 담고 싶었다. 권력에 참여해 의미 있는 변화를 주고 싶었다."

 

- 그동안 캠프 내에서 어떤 역할을 주로 해왔나.
"공보특보니까, 후보의 언론관계에 대한 특별보좌역이다. 그런데 사소한 심부름, 잡일도 많이 한다. 복사도 하고, 청소도 하고, 기자들 위해 밥 주문도 하고, 기자 심부름도 하고…. 때론 그보다 좀 더 중요한 일도 한다."

 

19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해온 그는 박근혜 캠프에서 출입기자들 뒷바라지를 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다. 그가 말한 '그보다 좀 더 중요한 일'은 공보기획. 대변인 성명, 논평의 방향성을 잡는 데 힘을 보태는 일이다. 그리고 그는 캠프 내에서 안병훈, 홍사덕 두 공동선대위원장을 하루 종일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중 한 사람이다. 박근혜 캠프의 사령탑 역할을 해온 매일 아침의 ‘16인 전략회의’ 멤버이기도 하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월급은 받을까? 그는 "안 준다,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한 푼도 안 받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인상적이다. "<조선일보>에 있을 때 연봉이 8천만원 가까이 됐지만 지금은 무일푼이다. 그래도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되돌아보면 지난 80일이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고 열심히 산 기간이었다." 이게 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 박근혜냐고? 이명박으론 안 된다"

 

- 왜 박근혜를 선택했나? 올해 내내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후보보다 여론조사에서 줄곧 뒤졌는데, 박근혜의 무엇을 믿고 2위 후보 진영에 뛰어들었나?
"내가 박근혜 캠프에 간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친한 친구들이 '너 정말 할래'라고 물어봤다. 그리고 '그런데 왜 박근혜냐'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물론 이명박 후보도 우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인생을 살아왔지만 이 시대 대통령의 리더십은 아니다. 국가지도자의 진정한 권력은, 지도력은 국민을 설득하는 언어에서 나온다. 건설공사식 리더십에서는 그런 설득력이 나오지 않는다."

 

허용범 공보특보는 "이명박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를 10가지라도 댈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낙마 가능성"이라고 했다.

 

"본선과정에서 낙마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도곡동 땅(이상은씨 지분)이 이명박씨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우리 캠프의 강신욱 법률지원단장이 대법관 출신인데, 그분에 의하면 이명박 후보는 도곡동 땅 문제로 현재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5년 이상 실형을 살 수 있다. 만약 이명박 후보가 본선에 나가면 재산등록을 해야 할 텐데 심각한 딜레마에 빠진다. 도곡동 땅을 재산에 넣어 신고하자니 지금까지의 거짓말이 문제고, 신고 안 하자니 그 후에 밝혀져 허위사실 기재로 후보자격이 박탈될까봐 그렇고…. 아무 문제가 없는 박근혜 후보가 있는데 왜 매일저녁 가슴 졸이면서 TV뉴스를 봐야 하나?"

 

그러면서 허 특보는 박근혜 후보의 상대적인 장점을 이렇게 정리했다.

 

"그에 반해 박근혜 후보에겐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투철한 국가관, 넘치는 애국심, 깨끗한 심성, 바른생활 소녀 같은 모범성. 나는 그것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국민적 에너지를 통합해낼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후보는 우리 시대의 최선은 아니지만, 지금 선택할 수 있는 대안 중 가장 훌륭한 사람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박근혜 후보의 마지막 연설(서울지역 연설회, 17일)이 화제다. 모든 것을 던진 사람 같던데, 현장에서 지켜본 한 기자는 소름이 돋았다고 하더라.
"우리 캠프 내에서도 놀랐다는 사람들 많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냈다. 굉장히 설득력이 있었다. 지지자들의 마음을 격동시킨 점에서는 굉장히 잘했다고 본다. 한 가지 조금 아쉬운 것은 왜 이명박 후보가 되서는 안 되는가에 중점을 주다 보니 왜 박근혜 후보여야 하나에 시간 안배가 부족했다."

 

"수권능력 부재? <조선> 사설에 1%도 동의 안 해"

 

- 그런데 <조선일보>가 사설(18일자)에서 두 후보를 심하게 비판했더라. 실망이 대단했나보더라. 둘 다 수권능력이 없다고, 12월 19일 본선에서 질 것 같다고 썼더라. 읽어봤나?

 

두 달 전까지 <조선일보> 기자였던 허 특보는, 한나라당 경선을 최종 평가한 <조선일보> 사설을 "자세히는 읽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사설의 다음 대목을 읽어줬다.

 

"두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나 기대는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이게 이·박 두 사람의 본모습과 실력일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대선 후보로 당선되든 12월 19일에 대통령은 되기 어려울 것이다."

 

허 특보는 친정 신문의 격분에 가까운 사설에 대해 "단 1%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언론은 그렇게 쓸 자유가 있다. 비판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사설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대통령 자격이 없다,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점에 대해 단 1%도 동의할 수 없다. 솔직히 기자들은 후보의 정책에 대해 차분히 공부할 시간이 없다. 두 후보가 싸워 대서 수권능력을 못 보여줬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무조건 싸우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서로 경쟁을 하나? 반대로 밋밋해서 조금만 재미없어지면 언론은 또 흥행실패라고 비판했을 거다. 그렇게 국민적 관심도 못 얻으면서 어떻게 대권 잡으려 하느냐고 비판했을 거다."

 

- <조선>을 포함해 조중동이 다른 언론에 비해 이명박 후보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안 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조선> 기자 출신으로 어떻게 보았나?
"그런 점이 분명 있었다. 그래서 내부에서도 감정이 복받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캠프에서는 해당 언론사에 찾아가 항의하는 사태는 벌이지 않았다. 더 설득하고, 더 강하게 전달하자는 생각만 했다. <조선일보>에 대해서도 섭섭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내가 그 출신이니까 우리 캠프에 출입하는 <조선일보> 기자들에게 더 열심히 설명해주고, 설득하고 그랬다."

 

 

역전? 내부 사기진작용인가 사실인가

 

월요일(20일) 오후면 모든 것이 결판난다. 그동안 <오마이뉴스> 정치부의 정보보고란에는 박근혜 캠프에서 자체 조사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계속 올라왔다. 내용은 2주전부터 계속 역전 이야기였다. "역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역전하기 시작했다"는. 선거운동 마지막 날까지도 그랬다. 그러나 다른 언론사들의 조사는 달랐다. 객관적 사실을 생명으로 다뤄온 기자생활을 19년이나 해온 허용범 특보. 그는 캠프의 낙관적 여론조사 결과를 어느 정도로 믿을까? 속마음을 알고 싶었다.

 

- 내부 사기진작용인가, 사실인가.

"이 부분만큼은 기자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보고 싶다. 이번 경선의 결론은 그동안의 언론사의 여론조사처럼 이명박 후보가 7~8% 이기거나 아니면 우리 내부의 조사처럼 우리가 3~4% 이기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1% 게임은 아니다. 문제는 언론들의 조사방식이 22만명의 선거인단의 표심을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느냐다. 우리는 언론들의 조사보다 더 정확한 방법을 쓰고 있다. 언론사가 1천명 정도를 조사한다면 우리는 수만명을 조사한다."

 

- 월요일이면 다 밝혀질 것이다. 정말 3~4%로 이길 것이라고 확신하나?
"확신하지는 않지만 기대하고 있다. 만일 이긴다면 언론에 할 말이 많다. 우선 '너희들 조사는 다 틀렸다!'라고 말하고 싶다."

 

- 박근혜 지지층이 더 넓어지지 않는다는 분석이 있다. 이른바 '수구꼴통'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니까 그 이미지 때문에 더 넓은 지지층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나는 극단적이지만 않다면 좌에서 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럼 면에서 본다면 현재 우리나라는 이념면에서 적절한 균형이 이뤄져 있다고 본다. 소위 수구꼴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문제는 그들이 다른 이념을 포용하지 못하고 배제하려는 데에 있다. 물론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줄 의회 세력이 존재한다면 그들이 그렇게 과격한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목소리를 안 들어주니까 시청 앞에 모이는 것이 아닌가."

 

허 특보는 박근혜 후보가 "수구꼴통이 아니며 매우 유연하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후보는 수구꼴통이 아니다. 김정일이 만나자고 했을 때 가서 만나는 것 보면 모르나?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 박근혜 후보를 도와주니까 그런 인상이 있는 것 같은데 알고 보면 굉장히 유연한 사람이다. 본선에 가 보면 그 참 모습이 더 드러날 것이다. 박근혜 후보는 북한문제에 대해서도 엄청나게 유연하다. 딱 하나, 핵문제를 상호주의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너희가 한 발짝 양보하면 우리도 한 발짝 양보한다는 것이다.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이다. 이것은 이념과 상관없는, 실질적 해결을 위한 원칙이다."

 

그는 현재의 자신도 "보수지만 수구꼴통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서울대 법대 83학번인데 대학 다닐 때부터 '고민하는 중간지대'에 있었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 2학년이 되면 3부류로 나눠진다. 한 부류는 운동권, 또 한 부류는 고시준비생, 마지막 한 부류가 중간인데 나는 거기에 속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시골의 가난한 아버님의 기대를 생각하면 고시공부를 해야겠는데, 데모하는 친구들이 잡혀가는 판에 고시공부를 하는 것은 죄악 같았다. 시위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앞장서지도 못했다. 한편으론 두렵고, 한편으론 아버님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위하다가 붙잡히면 고시 면접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을 때였다. 그래서 그나마 그 시대에 가장 자유가 있다는 언론계에 들어간 것이다. 왜 <조선일보>였냐고? 군 제대 후 첫 언론사 시험이 <조선일보>였다." 
 

 

캠프 사무실에서 약 2시간가량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는 근처 호프집으로 향했다. 맥주잔을 기울이면서 더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는 정말 '열심히' 살아온 것 같았다. 하버드대 케네디 정치행정대학원 석사를 졸업(2001년)했는데, 그 준비를 위해 <조선일보> 기자생활을 하면서 2년 동안이나 새벽 5시부터 2시간 동안 매일 영어공부를 했다고 한다. 어쩌면 비극적인 이야기이지만, 기자생활 19년동안 저녁에 가족과 식사해본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핵심 2가지를 더 물어봤다.

 

- 왜 정권교체가 되어야 하나.
"노무현, 김대중 세력의 재집권은 국가적 재앙이다. 개개인은 옳은 사람들인지 모르지만 그들의 국가경영능력은 이미 검증됐다. 열린우리당이 4년도 안 가서 사라지는 것이 그 증거다.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는 것이 그 증거다. 한나라당이 한두 번 정권을 잡은 다음에 그들이 다시 잡으면 모를까, 그들이 계속 국가를 경영하면 대한민국은 좌초된다. 그걸 생각하면 걱정이 돼서 잠이 안 온다. 이런 나라에서, 현재와 같은 교육체계에서 자란 우리 아이들이 10년 후에 중국,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면 어떻게 될까? 한숨만 푹푹 나오고 아찔해진다."

 

-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이거여야 한다, 뭐 그런 게 있다면.
"대선에서 미리 정리된 시대정신이 따로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사실 이기는 사람의 정신이 시대정신이다. 만약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김종필씨와 손을 잡았다면 이회창 스타일이 시대정신이 됐을 것이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명박보다는 박근혜가 되어야 한다. 이명박 후보는 개발공사식 경제리더십이라면 박근혜 후보에겐 법과 원칙을 바로세우면서도 국민을 화합시킬 수 있는 자질이 있다. 우리 국민은 유능하다. 문제는 정치지도자다."

 

"가장 힘든 것은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지 못한 것"

 

더 할 말 없냐고 했더니 "이거 두 가지는 꼭 써주면 좋겠다"면서 기자출신답게 준비한 메모를 건네줬다.

 

하나는 캠프 사람들에게 감동했다는 이야기였다. "2등 후보인데도 지난 10개월 동안 의원이나, 실무진이나 너무 열심히 일했고, 그 중에 이탈자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했다.

 

또 하나는 두 아들(15세, 4세) 이야기였다. "함께 놀아주지 못한 게 제일 미안"하단다. 그는 너무 급하게 워싱턴에서 캠프로 합류했기 때문에 가족과 따로 산다고 했다. 자신은 상계동 여동생 집에서 얹혀살고, 아내와 두 아들은 개포동 친척집에서 살고.

 

"2달 동안 아이들 얼굴을 거의 못 봤다. 한번은 밤 12시에 개포동에 들를 거라고 했더니, 아내가 아빠 보고 싶어 하던 아이들을 억지로 깨워놨더라. 졸린 눈을 하고 있는 아들들을 보니 안타까웠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하지 못한 게 제일 힘들다."

 

그 힘든 과정도 이제 끝났다. 그는 월요일 오후 4시 30분 웃을 수 있을까? 이명박, 박근혜 두 예비후보뿐 아니라 허용범 특보의 운명도 결판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연재 [오연호리포트: 선택 2007대선] 전체기사보기

덧붙이는 글 | 기사수정: 8월19일 밤 9시

<오연호리포트> 6, 7을 위해 이명박 캠프의 박형준, 박근혜 캠프의 허용범과 대화를 나누면서 참 열심히 하는구나, 감명을 받았다. 이제 한나라당 선수는 20일 정해진다. 
그렇다면 그와 맞설 범여권 혹은 제3의 후보들은, 그 캠프 사람들은 지금 얼마나 열심히 할까? 저 한나라당 사람들처럼 절실할까? 
대선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인생 선택 이야기를 계속 담아가련다. 그 주인공이 될만한 사람들을 쪽지나 댓글을 통해 추천해주기 바란다. 지난주에 예고한 박원순 변호사 이야기는 이후 적절한 때 전해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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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대표기자 & 대표이사. 2000년 2월22일 오마이뉴스 창간. 1988년 1월 월간 <말>에서 기자활동 시작. 사단법인 꿈틀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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