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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나나리보의 버스터미널
ⓒ 김준희
"도착하기만을 원한다면 달려가면 된다. 그러나 여행을 하고 싶을 때는 걸어서 가야 한다."

장 자크 루소가 했던 말이다. 물론 이 말은 옳다. 여행을 하려면 걷는 것이 가장 좋다. 마다가스카르를 걸어서 여행할 수 있을까. 아마 그랬던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그럴만한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 위의 글을 이렇게 바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도착하기만을 원한다면 비행기를 타면 된다. 그러나 여행을 하고 싶을 때는 버스를 타야 한다."

바오밥나무를 보려면 마다가스카르의 서쪽 해안에 있는 작은 도시 무릉다바(Morondava)로 가야 한다. 수도인 안타나나리보(타나)에서 무릉다바에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비행기를 타는 것이다. 기차는 없고 현지인들이 '택시브루스'라고 부르는 시외버스를 타면 약 18시간 정도가 걸린다.

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비행기는 비싸기도 하거니와, 덜컹거리는 비좁은 버스를 타고 20시간 가까이 달려가는 과정 자체가 여행의 묘미이기 때문이다. 현지인들과 함께 어울려서 타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 특유의 냄새가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몸에서 풍기는 냄새라면 나도 만만치 않다. 마다가스카르에 오고나서 2일동안 샤워도 한번 안했고, 머리도 제대로 감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몸의 냄새 때문에 함께 버스를 탈 현지인들이 불쾌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타나에서 무릉다바로 가는 버스는 오후 2시에 출발한다. 김기권 사장님은 직접 나를 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 주셨다. 버스표의 가격은 3만 4000아리아리. 우리 돈으로 약 1만7000원 정도이다. 오후2시 출발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2시에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2시부터 출발준비를 하는 것 같다. 15인승 미니버스는 텅 비었고, 그 지붕에 짐을 싣기 시작한다. 내 배낭도 그 위로 올라갔다.

장사꾼들은 터미널을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팔고 있다. 과일, 빵, 모기향, 휴대용랜턴, 손목시계 등을 판다. 건기인 겨울철 답지 않게 하늘은 흐리고 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난 운전석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여기에도 1명의 승객이 더 앉을테지만, 바깥 경치를 구경하려면 이 자리가 가장 좋을 것 이다.

이 터미널에는 수많은 미니버스들이 있다. 그리고 버스들을 관리하는 각기 다른 회사 사무실도 많이 붙어 있다. 낯선 사람이 터미널로 들어서면, 사람들이 다가와서 어디로 가냐고 물어본다. 자기네 회사 버스를 이용하라고 하는 호객꾼들이다. 이 버스들은 모두 마다가스카르의 남쪽으로 향하는 버스들이다.

마다가스카르의 지도를 보면 안타나나리보는 거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타나가 위치한 중심부는 해발 1400m의 고원지대이다. 이곳에서 출발한 버스가 안치라베, 미안드리바조를 거쳐서 남서쪽으로 내려가다가 해발 0m에 가까워지면 그곳이 바로 무릉다바이다. 무릉다바가 위치한 서쪽 해안은 건조한 숲이고 바오밥나무가 살기에 적당한 지형이다. 반면에 타나의 동쪽에서는 열대우림을 볼 수 있다.

▲ 타나에서 무릉다바로 가는 미니버스. 지붕에 짐을 싣고 있다
ⓒ 김준희
오후 3시가 되자 버스에 사람들이 타기 시작했다. 버스 지붕에 얹은 짐들 위에 커다란 방수천을 두르고 끈으로 묶는다. 그리고 3시 20분에 버스는 출발했다. 타나를 벗어나자 마다가스카르의 넓은 자연이 펼쳐진다. 황토색의 높고 낮은 언덕과 그 사이에 놓인 역시 황토색의 집들.

마다가스카르에는 철도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해서 포장도로가 지방곳곳을 연결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형이 워낙 험하고 다채롭기 때문에 길을 만들지 못하고 철로를 놓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형이 험하기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는 숲을 밀고 산을 깍고 터널을 뚫어서 포장도로를 깔고 철로를 연결했다.

대신에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주요 도시마다 공항을 설치했다. 그래서 돈 많은 여행자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마다가스카르 전역을 여행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지방에 갈때 많은 시간을 들여서 이렇게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어쩌면 도로를 뚫지않고 철로를 깔지 않았기 때문에 마다가스카르의 자연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인지 모른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주위는 금방 어두워졌다. 도로의 주변에는 불빛하나 없다. 고요한 자연 그 한복판에 뚫린 길을 따라서 버스는 달려간다. 나는 그 버스에 앉아서 마다가스카르의 밤하늘에 박힌 별을 바라보고 있다. 이거야말로 밤새도록 달리는 장거리 버스의 묘미일 것이다.

이곳에서 보는 별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별과는 차원이 다르다. 글자그대로 은하수가 온통 밤하늘을 차지하고 있다. 6월의 남반구에서는 어떤 별자리를 볼 수 있더라? 나는 오래전에 했던 별자리 공부를 기억하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떠오르지 않는다. '카페인과 알코올'로 인해서 둔해진 머릿속에서는 그때의 기억이 이미 사라져버린 것 같다. 그렇다면 그냥 앉아서 별 구경이나 하는 수 밖에. 낡고 좁은 버스가 불편하기는 하다. 하지만 몸이 편하길 바란다면 그냥 집에 있지 뭐하러 여행을 오겠나.

▲ 타나를 벗어나면 이런 풍경을 많이 볼 수 있다
ⓒ 김준희
내 옆자리에 앉은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아이는 날 보더니 소리없이 웃는다. 나도 마주보고 웃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인과 한국어로 대화하면서도 말이 안통할 때가 종종 있다. 여행하면서 현지인과 말이 안통하는 것은 오히려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는, 말이 통할거라고 애초부터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에서 중요한 것은 '언어'가 아니라, 소통하려고 하는 의지다. 의지만 있다면 노트에 그림을 그리고, 숫자를 쓰고, 손짓발짓을 하면서 대화한다. 대화라기 보다는 각종 상징과 기호를 교환하는 것에 가깝다. 구석기시대로 돌아가서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소통을 주고받는 것이다. 이런 '대화'로도 상대방과 수많은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물론 나와 상대방 모두 소통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밤 9시에 작은 마을 하나를 지나쳤다. 버려진 마을은 아니다. 약 20여채의 작은 집들이 도로 양옆으로 늘어서 있다. 그런데 마을에 불빛은 하나도 없다. 고요하고 어두운 마을. 마치 유령의 마을을 지나는 것 같다. 타나를 벗어나면 전기공급이 안되는 지역이 많다고 한다. 이 마을도 그런 곳일지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것도 서로 연관된 문제 아닐까. 집도 마을도 모두 밤에는 마치 정전된 것 처럼 어두워지는 곳이 많다. 그러니 아이들이 많을 수 밖에.

이제 밤 9시니까 출발한지 약 6시간이 경과한 것이다. 타나에서 무릉다바까지 18시간이라고 가정하면, 이제 1/3 가량을 달려온 것이다. 나는 이 버스를 타면서 아무것도 먹을거리를 가지고 타지 않았다. 김기권 사장님 댁에서 점심식사를 한 것이 마지막으로 음식을 먹은 것이다.

사실은 무엇을 사서 타야하는지 조차도 알지 못했다. 물 한병을 사서 가방에 넣는 것 조차 귀찮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라마단 금식기간을 보내는 무슬림들처럼 나도 한번 굶어보자,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18시간 동안 굶으면 볼록해진 배도 조금 집어넣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배가 조금 고프다 한들 그래봤자 18시간 아닌가. 그런데 이것이 착각이었다.

▲ 함께 버스를 탔던 여자아이
ⓒ 김준희

덧붙이는 글 | 2007년 여름, 한달동안 마다가스카르를 배낭여행 했습니다.


태그:#여행, #바오밥나무, #마다가스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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