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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부부 사이란 어떤 것일까?

부부(夫婦)는 한 가정을 이루는 두 기둥이다. 그래서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가정이라는 보금자리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흔들리는 것은 집의 두 기둥일 뿐이지만 그 집의 지붕 아래 함께 살고 있는 아이들은 민감하게 눈치를 채서 그들의 마음까지도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문제 아동의 배후에는 문제 부모가 있고 문제 부모는 대개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라는 통념을 우리가 쉽게 부인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무엇보다도 부부 사이가 좋아야 한다는 결론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르게 된다.

그럼 좋은 부부 사이란 어떤 것일까? 진실하고 변함없는 애정과 상호 신뢰와 존경으로 태하는 태도와 같은 기본적인 요건에서부터 합리적이고 균형있게 가사 분담하기와 시댁과 처가집 식구들을 모두 공평하게 대하기와 같은 현실적인 요구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다. 그걸 요약하자면 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 다시 말하면 수평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여권(女權)이 많이 신장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의하겠지만 고개를 가로 젓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는 옛말을 들먹이면서, 어디 남편과 아내가 평등한 관계가 될 수 있냐고 눈을 부라리는 사람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한국 사회의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족 제도는 수백 수천 년을 전해 내려오면서 형성된 것이라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이 주창하는 수평적인 부부 관계를 부정하려 들 것이다. 과연 그럴까? 전통을 방패막이 삼는 이러한 사람들이 이 책 <향랑, 산유화로 지다>를 읽는다면 두 번 다시 그런 소리를 못하게 될 터이다.

한 여인의 자살, '열녀'와 '희생양'의 시각 차이

ⓒ 도서출판 풀빛
<향랑, 산유화로 지다>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이 책의 부제가 말해주듯이 '향랑 사건으로 본 17세기 서민층 가족사'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족사 중에서도 계모, 혼인, 가정폭력, 이혼, 재혼 등 주로 결혼과 관련되어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고찰이다. 따라서 부부가 핵심이 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여성인 아내의 입장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지은이가 이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숙종 28년(1702년)에 경상도의 한 지방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향랑이란 한 여인의 자살 사건이다. 그녀는 17세에 결혼을 했으나 주색잡기에 빠진 남편의 횡포에 못이겨서 결국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인 여인이다. 그러나 향랑을 자살로 밀어 넣은 주범은 포악한 남편의 학대라기보다는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가부장적 가족제도였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1702년에 일어난 향랑의 자살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향랑은 조선 후기 가족사의 변화 과정을 총체적으로 겪고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자결을 선택한 비극적 운명의 여인이었다. 비록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섣불리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조선 후기 가부장제 사회는 안동 김씨나, 장화와 홍련, 그리고 향랑처럼 수많은 여성들의 희생을 담보로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222쪽)

그런데도 향랑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당시의 작품 속에서는, 그녀는 주위에서 권하는 재가를 하지 않고 끝까지 절개를 지키기 위해 자결한 열녀로 그려지고 있다. 실제로 그녀가 자살하고 나서 2년 후에 숙종은 향랑에게 열녀 칭호를 내렸다. 당시 가부장제 사회는 이처럼 평범한 한 여인의 비극적인 죽음까지도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고 강화하는 수단으로 왜곡해서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향랑 사건에 대한 지은이의 이러한 비판적 재해석보다도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가 오랜 전통으로 여기고 있는 완고한 가부장제가 사실은 조선 후기인 17세기 이후에나 비로소 자리를 잡은 제도라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기껏해야 3백년 정도밖에 안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는 처가살이를 했기 때문에 여성의 지위와 권한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17세기 이후인 조선 후기에 이르자 남성 위주의 완고한 가부장제가 정착하면서 가장권이 강화되고 남존여비 의식이 팽배해져갔다. 그 결과 부부관계가 평등에서 상하 관계로 바뀐 채, 요즘 우리가 드물지 않게 목격하는 가부장적 가정폭력, 곧 '남편의 아내구타'가 본격적으로 문제시되기 시작하였다."(135-136쪽)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이나 당시 문인들이 남긴 개인일기나 편지 등에서 뽑아낸 글들을 읽어보면, 16세기인 조선 중기까지는 오히려 아내의 남편구타, 다시 말해서 '매맞는 남자들'이 더 문제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7세기 중반 이후인 조선 후기에 이르러 유학(儒學) 가운데 성리학, 더 나아가 주자학이 전사회적으로 침투하면서, 요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완고한 가부장제와 그에 따른 한 맺힌 여성사가 비로소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혹독한 시집살이, 이혼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재혼을 꺼리던 풍습, 여성의 사회진출 봉쇄 등 여권의 추락은 우리의 긴 역사에 비추어본다면 극히 최근에 일어난 일임을 알 수 있다.

<향랑, 산유화로 지다>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다양한 문헌들을 동원해서 밝혀놓고 있다. 지은이는 이러한 사실들을 향랑의 생애를 쫓아가는 이야기를 한 축으로 삼고 그것을 여러 문헌들에 비추어 재해석한 논평을 또 한 축으로 삼아 매우 설득력 있게 펼쳐내고 있다. 지은이 스스로는 '픽션과 논픽션의 중간적 글쓰기'라고 부르고 있는 이러한 독특하고 실험적인 글쓰기는 역사적 상상력이 요구되는 미시사 서술에는 매우 적합해 보인다.

향랑과 같은 비극적 여인이 다시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는...

<향랑, 산유화로 지다>를 다 읽고 나니, 가정의 달이라는 5월의 달력을 다시 쳐다보게 된다. 어린이날도 있고, 어버이날도 있고,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성인의 나이에 이르렀음을 축하하는 성년의 날도 있으며, 가정과는 좀 무관해 보이는 스승의 날까지 보인다. 그런데 정작 가정의 근본이요 핵심이요 중추인 부부를 위한 날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부부의 날'은 정말 없는 걸까? 여태껏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넷으로 뉴스를 읽어보니 지난해 12월에 국가법정기념일로 제정된 '부부의 날'을 올해 처음 맞는다고 한다. 그게 바로 오늘이다. '둘(2)이 하나(1)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만들자'는 취지로 5월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했다고 한다.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부부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제정된 '부부의 날'에 나는 '남자는 하늘이요 여자는 땅'이라는 옛말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 말이 남자는 하늘처럼 높고 귀하고 여자는 땅처럼 낮고 천하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단지 남성과 여성의 특성을 하늘과 땅에 비유한 것일진대, 어찌 부부 간에 높고 낮음이 있고 귀하고 천함이 있겠는가!

향랑과 같은 비극적 운명의 여인이 다시는 우리 역사 속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남편과 아내가 모두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고 힘을 합쳐야 할 때다. 그러한 부부 사이야말로 우리의 역사 속에서 오랜 전통으로 전해 내려온 것이기에, 오늘 처음 맞이하는 '부부의 날'이 더욱 뜻깊게 여겨진다.

덧붙이는 글 | <향랑, 산유화로 지다>

ㅇ정창권 지음
ㅇ도서출판 풀빛 펴냄
ㅇ2004년 5월 27일 초판
ㅇ값 10,800원

이 기사는 인터넷 서점 예스이십사의 독자리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향랑, 산유화로 지다 - 향랑 사건으로 본 17세기 서민층 가족사

정창권 지음, 풀빛(2004)


태그:#향랑, #부부의날, #열녀, #가부장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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