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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이 터오기 시작하는 말라가 항구의 대로. 피카소 탄생 125주년을 기념하는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내걸려 있습니다.
ⓒ 이은비
전날(2월 13일) 어찌어찌 투숙한 호텔방은 암울했지만 밤새 뒤척이지도 않고 푹 잤습니다. 원래 꽤 암울한 상황이어도 잘 자고, 잘 먹으면 기분이 회복되는 낙천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이미 눈을 뜰 때쯤엔 상쾌한 기분이 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비좁은 방에는 빛이 들어올 창문조차 없었으므로, 아무래도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더군요.

머리맡을 더듬어 핸드폰을 보니, 새벽 5시 45분입니다. 새로운 곳을 여행한다는 설렘 때문인지 눈이 쉽게 떠진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한국보다 8시간 느린 스페인의 시차에 금방 적응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아침 6시 30분. 언제든지 다시 떠날 수 있도록 캐리어를 꾸려두고 자물쇠로 잠근 뒤, 여권과 지갑을 넣은 작은 핸드백과 외투를 챙겨들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호텔은 유적지나 주요 명소와 가까운 곳에 있어, 호텔을 나서자마자 바로 전날의 장엄한 대성당과 로마유적지로 가는 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달콤한 꽃향기. 도시 전체가 꽃향기로 진동하고 있더군요. 어디서 이렇게 상쾌한 향기가 나는 것일까 궁금해하며 길을 걸어가 보니, 도로 곳곳에 꽃 장식을 한 거대한 토피어리를 세워둔 것이 보입니다. 미관상의 이유겠지만, 공기마저 달콤해 진정한 휴양지의 느낌이 듭니다.

피카소의 출생지로 널리 알려진 말라가

▲ 열렬한 가톨릭 국가답게 도시 곳곳에서 예쁜 성당들을 마주칠 수 있습니다. 출근하는 시민들이 아침 미사에 잠시 참석하기 위해 성당 앞에 차를 주차해 두었습니다. 경차가 일반적이로군요.
ⓒ 이은비
이곳 말라가는 스페인 최남단의 코르타 델 솔에서도 관문에 속하는 도시이자, 지중해에 속한 말라가만과 접해있는 항구도시입니다. 그 역사는 오래됐습니다. 페니키아 시대부터 면면히 사람들이 살아온 곳이지요. 화가 피카소가 10살까지 살았던 출생지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유럽인들은 겨울이 되면 북부의 추운 날씨를 피해 이곳으로 몰려온다고 하더니, 아닌 게 아니라 날씨가 굉장히 따뜻해서, 거리를 걸어가는 시민 중에는 반팔을 입은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두툼한 겨울용 외투를 입은 사람은 저뿐이로군요. 아무래도 혼자 촌스러워 보이는 것 같아, 이윽고 저도 외투를 벗어들었습니다.

말라가처럼 작은 도시는, 길을 바쁘게 재촉해야 하는 여행자들에게는 얼핏 주요 관광지가 두세 개뿐인 도시로 비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수세기동안 카르타고, 로마, 이슬람, 기독교 세력에 의해 차례로 지배됐던 이 유서 깊은 도시는 도시 그 자체가 보석이며 볼거리 입니다. 도시 곳곳에서 구석구석까지 다양한 양식이 혼재된 건물들과 마주칠 수 있지요.

항구도시답게 종려나무 사이로는 갈매기들이 날아다니고, 알돌이 깔린 중세의 길 사이사이에는 무어인들이 세운 옛 건물과 첨단 빌딩이 함께 들어서 있습니다. 열렬한 가톨릭 국가답게 도시 곳곳에서 예쁜 성당들을 마주칠 수 있습니다. 작은 성당 앞에는 출근하는 시민들이 아침 미사에 잠시 참석하기 위해 세워둔 색색의 차로 붐빕니다.

아직까지 동양인들은 자주 방문하지 않는 도시여서, 여행객 중에서 동양인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이른 아침, 개를 끌고 나와 산책하는 시민들이 도시 곳곳을 사진 찍고 있는 작은 동양 여자아이를 신기한 듯 쳐다보고 지나갑니다. 하지만 과연 수세기에 걸쳐 여러 문화를 경험한 도시의 시민들답게, 관대하고 개방적인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눈을 마주치니 밝게 미소 지으며 "올라(hola)"라는 스페인식 인사를 해옵니다. 저도 어느새 "올라!"라고 답해줍니다.

▲ 알카자빌라 대로에 있는,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노천카페. 이곳을 지나 위로 올라가면 피카소 생가가 나오고 아래로 내려가면 로마유적이 있습니다.
ⓒ 이은비
아직 모든 관공서와 관광지가 문을 열기 전인 오전 7∼8시 사이, 저는 발 닿는 대로 무작정 거리를 걸으며 도시를 온몸으로 느껴봅니다. 이른 아침에 도시를 보는 것은 참다운 즐거움을 느끼게 합니다. 늦은 시간에는 소매치기나 건달들을 두려워하느라 좁은 골목에 들어가길 주저하지만, 이른 아침에는 한적하고 방해하는 사람 없이 골목골목을 안심하고 들어갈 수 있어 도시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지요.

걷는 동안 해가 높이 떠오릅니다. 밤새 말끔하게 물청소한 도로 위로 파라솔을 하나 둘 펴면서 영업을 준비하는 레스토랑도 눈에 띕니다. 오전 8시가 넘어가니 영업을 시작해 출근길 시민들에게 에스프레소 커피를 대접하는 바르(Bar)들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스페인의 바르는 여느 나라의 바(Bar)와는 다른 독특한 공간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만큼이나 늦은 시간까지도 동료들과 이야기하고 술 마시기를 즐겨 하는 이 나라 사람들은 바르를 하나의 문화공간이자 생활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는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간단한 식사와 커피를 팔고, 점심에는 요리를, 저녁에는 술을 팔며 주점 노릇까지 하는 바르에서 스페인 사람들은 온 하루를 보냅니다.

점차 뭉툭해져 가는 메르세드 광장의 사자조각

▲ 로마 극장 유적 뒤로 알카자바 성채가 보입니다. 레콘퀴스타의 치열한 역사와 연루된 곳입니다.
ⓒ 이은비
멋진 바르와 레스토랑이 보석같이 숨어있는 골목골목을 기웃거리며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메르세드 광장(Plaza de la Merced)에 도착했습니다. 광장 입구 기둥 위의 대리석 사자조각이 고색창연합니다. 아마도 중세에 만들어졌을 법한 사자조각은 세월과 산성비에 부식돼 점차 뭉툭해져 가고 있습니다. 메르세드 광장 어딘가에 피카소의 생가가 있다고 하지만, 지금쯤 공사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그저 광장만 산책하고 돌아 나왔습니다.

메르세드 광장에서 알카자빌라(Alcazabilla) 대로를 따라 내려오면 옛 로마 원형극장을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발굴 중인 로마유적 뒤쪽으로는 알카자바(Alcazaba) 성곽이 있고, 그 성곽 끝에 히브랄파로 성채(Gibralfaro)가 서 있지요.

히브랄파로 성은 14세기 그라나다 왕이었던 유즈프 1세가 지었으며, 그 이름은 페니키아에서 유래했습니다. 울창한 파인트리에 둘러싸여 있는 견고한 성채는, 실제로 말라가 시민들이 3개월 동안 가톨릭 부부 왕에 대항해 싸운 곳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들도 레콘퀴스타(가톨릭의 국토회복전쟁) 앞에 무릎 꿇어야 했습니다.

공사 중인 로마유적을 천천히 돌아본 뒤, 개장 시간에 맞춰 말라가 카테드랄에 입장했습니다.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구경한 이 대성당은 제게 비할 바 없는 감동을 줬습니다. 확실히 그라나다나 톨레도, 바르셀로나 등을 먼저 구경한 관광객들에게는 말라가 카테드랄이 고만고만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말라가 카테드랄을 가장 먼저 구경했기 때문에 그만 압도되고 말았습니다.

오래된 고건축물 안에는, 당대의 거장들이 그린 마스터피스들이 여기저기에 내걸려 있습니다. 겨우 남부 소도시 성당에 불과한 말라가 카테드랄이 이 정도의 국보급 보물들을 소유하고 있다니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말라가 카테드랄 역시 스페인의 다른 유적들처럼 국토수복운동에서 끝내 승리한 기독교인들이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쌓아올린 성당입니다. 정확히는 이슬람 사원이 있었던 자리에 그 사원을 허물고 1528년부터 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자존심을 지키고자 성당을 쌓았으니만큼, 얼마나 화려한 규모로 지어졌을지는 미루어 짐작 가능합니다. 그들은 아마도 정면에 두 개의 근사한 탑을 올리려고 계획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대규모 공사는 끝내 자금압박으로 중단됩니다. 성당 위는 멋들어지게 축조됐음에도 두 개의 탑이 아니라 하나의 탑만 올라가 있지요. 그래서 오늘날, 이 대성당은 라 만키타(La Manquita : 외팔이 여인)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 (위) 정면에서 본 말라가 카테드랄이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습니다. (아래 좌) 라 만키타(외팔이 여인)이라는 이름대로 한쪽 탑이 미완공인 상태입니다. (아래 우) 대성당 내부.
ⓒ 이은비
역시, 자존심이 극치를 이루던 시대의 소산답게 성당 내부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내부 예배당에는 프라도 미술관에도 그 작품(<막달라 마리아>)이 보관돼있는 17세기 조각가 페드로 데 메나(Pedro de Mena)의 작품이 남아 있습니다.

한참을 걸려 카테드랄 내부를 구경하고 돌아 나오는 길, 입구 바로 옆에 2층으로 올라가는 조그만 목조 계단이 있습니다. 이곳을 올라가면 라 만키타 카테드랄의 성물을 보관하는 자그마한 성당 박물관이 나옵니다. 박물관이라지만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은 방 두 개를 유물보관실로 개조한, 그야말로 아담한 곳입니다.

이곳을 보지 않고 그냥 나가는 관광객들이 참 많더군요. 보관실로 올라가는 계단 주변에는 독특하고 인상적인 중세 종교화들이 걸려있어, 한번 보면 잊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보관실로 꾸민 두 개의 방을 돌아보는 동안은 오롯이 저 혼자였습니다. 자그마한 방이지만 그 방을 혼자 구경하는 것이 조금쯤은 으스스하기도 했습니다.

오래된 목조 서까래가 천정을 받치고 있고, 고색창연한 모자이크 바닥장식은 몇몇 개가 구두 아래에서 흔들거릴 정도입니다. 그리고 방의 내부는 짙은 핏빛입니다. 창문 하나 없이 어두침침한 내부를 몇 개의 조명만이 밝히고 있습니다. 방도 어둡고, 대부분의 종교화는 어둡게 그려져 있어, 맨눈으로는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 (좌) 카테드랄 부속 박물관. 내부가 핏빛이어서 으스스합니다. (우) 섬세한 마리아상.
ⓒ 이은비
첫 번째 방에는 성자와 예수와 마리아를 주제로 한 10호 정도 크기의 예술품과 테피스트리가 전시돼있고, 두 번째 방에는 역대 라 만키타 주교의 화려한 예복과 정교하게 세공된 금, 은제 미사 접시며 성보들, 성자의 지팡이, 상체만 있는 마리아상 등이 전시돼있습니다.

탄생 125주년을 맞는 피카소, 그의 '여성들'을 만날 수 있는 곳

다시 바깥으로 나오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쾌청한 하늘과 종려나무들이 저를 반깁니다. 천천히 카테드랄을 구경한 뒤 아까 보아뒀던 피카소 미술관으로 향합니다.

스페인 태생인 피카소는 이곳 말라가에서 태어나 10세까지 살았습니다. 거리 곳곳에는 피카소 탄생 125주년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아름다운 남부식 저택을 개조해 만든 피카소 미술관 역시 한적한 오전에 둘러보시는 편을 추천합니다. 피카소의 초기 습작들과 스케치 따위의 소품들, 도자기, 조각품과 전성기 때의 초상화까지 다채롭게 있습니다. 입구에서 가방을 맡기고 들어가야 하며, 촬영은 엄격히 금지돼있습니다.

저는 특히 '피카소와 그의 모델들'이라는 이름이 붙은 특별전시실이 마음에 들더군요. 피카소가 사랑하고 또 모델로 삼았던 여성들의 초상화를 따로 모아둔 곳인데, 주로 그의 공식적으로 일곱 번째 연인이었던 자끌린을 대상으로 한 피카소의 말년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비슷한 빈도로 그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올가 파흘로바를 그린 그림도 많았는데, 특이한 점은 같은 여성임에도 올가의 초상화는 대개 과감한 큐비즘이 시도되거나 정신없이 그녀를 구획 지어 놓은 반면에, 자끌린은 꽤 아름답고 기품 있게 묘사됐다는 점이었지요.

뭐랄까, "아, 아저씨. 역시 말년이라 눈치 좀 봤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어버렸습니다. 자끌린이 너무도 아름답고 지적으로 묘사돼있어, 여행 중에 그녀의 사진을 찾아볼 정도였습니다. 찾아보니 그림보다 뚱뚱하더군요.

파블로 피카소는 생전에 이 아름다운 도시 말라가에서 자신의 갤러리를 열고 싶어했지만 당시의 스페인 정부였던 프랑코 정권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생을 마감한 지 30년이 흐르고 나서야 피카소 미술관이 문을 열었고, 약 170여 점 정도가 현재 미술관을 채우고 있습니다.

피카소 미술관을 모두 둘러보고 나오니 벌써 오전 11시. 호텔 체크아웃을 하기까지는 1시간여가 남았고, 슬슬 배가 고파져 옵니다.

결정했습니다. 아까 카테드랄에서 피카소 미술관으로 오는 길에 보았던 바르에서 점심을 먹어보기로. 스페인에서의 첫 식사입니다. 이 바르는 아까 도시를 구경하던 오전 8시에도 문을 열고 츄러스와 핫초코를 팔고 있었는데, 역시 스페인의 바르답게 점심시간이 되니 파스타와 빠에야가 적힌 메뉴판을 길거리에 세워두고 있습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르 안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잠깐 동양인 여자아이를 쳐다보다가 다시 자신들의 대화를 하기 시작합니다. 바에 가서 앉습니다.

"올라!", 3초 뒤 영어가 통하지 않음을 알고 당황하기 시작한 매니저

▲ 스페인에서 첫 점심을 먹은 바르 'Cafe de la Abuela'의 내부. 카페 콘 레체가 1.20유로, 크라상 콘 초콜라테가 1.50유로로, 대성당에서 피카소 미술관으로 향하는 골목 사이에 있습니다.
ⓒ 이은비
나이가 지긋한 매니저는 친절하게 "올라!"라고 인사를 합니다. 저도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만, 3초 뒤 영어가 통하지 않음을 알고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 난감한 일 발생! 메뉴가 온통 스페인어 뿐이라니!
ⓒ 이은비
메뉴를 보니 하나같이 스페인어뿐.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천천히 메뉴를 훑어보니, 영어와 비슷한 스펠링으로 쓰여 있어 유추할 수 있는 단어들도 꽤 있습니다. 그 중에서 어렵게 초콜라테 크루아상과 에스프레소라고 쓰여 있는 메뉴를 짚어, 그것을 매니저에게 보여줍니다.

유럽의 에스프레소라면 필시 엄청나게 쓰겠지만, 다른 걸 주문할 줄 모르니 도리가 없습니다. 매니저가 조용히 이마에 주름을 잡더니, "우노(Uno)?"라고 묻습니다. 오, '우노'라면 알아듣습니다. 하나라는 뜻이지요. "씨(Si: 네)"라고 대답합니다.

작은 접시에 초콜릿을 끼얹은 바삭한 크루아상 세 개가 담겨 나오고, 갓 뽑은 뜨뜻한 커피가 그 옆에 놓입니다. 주의 깊은 매니저는 내가 한 모금 마시는 걸 지켜보더니, 아무래도 여행객 입맛에는 맞지 않으리라 예상했던지 뭐라고 묻습니다.

"카페 콘 레체?"

제가 못 알아듣는 시늉을 하자, 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짧은 영어로 말합니다.

"커피 위드 밀크!"

와아, 좋고 말구요. 제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리니 그는 몸을 돌려 기계에서 증기를 쐐 스팀 밀크를 뽑아냅니다. 곧이어, 매니저가 거품이 풍성하게 올라온 스팀 밀크가 가득 담긴 주석냄비를 가져오더니,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커피에 우유를 부어 카페 콘 레체를 만들어 줍니다.

오, 향긋하고 풍부한 커피. 굉장합니다. 약 15시간 만에 처음으로 맛보는 음료는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었습니다.

이처럼 훌륭한 커피를 여느 바르(Bar)나 카페테리아에서 맛볼 수 있는 나라에 어째서 스타벅스 따위가 진출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하기만 하더군요. 하긴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스타벅스가 이탈리아를 위시한 유럽 여러 나라로 진출해서, 전통적으로 훌륭한 커피를 뽑아오던 수백 년 된 커피가게들을 문 닫게 하고 있다지요. 다국적 기업 따위 엿이나 먹으라지…, 저는 느긋한 기분으로 커피를 음미하며 마십니다.

배가 고프지만 조금씩 나이프로 초콜라테 크루아상을 잘라 먹다가(손에 묻히긴 싫었거든요), 슬쩍 곁눈질하던 금발의 주방장과 눈이 마주칩니다. 금방 선량한 웃음을 지으며 "올라!"라고 인사를 던지는 그녀에게도 함께 인사를 던지고는 주방을 훔쳐봅니다.

주방의 테이블 위에는 훈제 돼지넓적다리가 나무걸이에 길게 걸쳐져 있고, 그 옆에 긴 식칼이 놓여있습니다. 훈제 돼지넓적다리를 저 긴 칼로 조금씩 잘라내면 그대로 햄이 됩니다. 이 훈제 돼지넓적다리가 바로 스페인의 전통음식인 '하몽'이라는 건 훗날에서야 알았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그 햄으로 온갖 요리를 다합니다. 굽거나 튀기거나 찌거나 혹은 생으로 빵 사이에 넣어서 먹지요.

어쨌든 시간이 벌써 오전 11시 28분. 슬슬 호텔 체크아웃을 한 뒤 그라나다로 떠날 시간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에서는 아무도 카운터로 가서 돈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대신 나갈 때 즈음 점원을 불러 계산서를 갖다 달라고 하면 점원이 조그만 접시에 계산서를 올려서 내갑니다. 그러면 손님들은 그 접시에 돈을 올려둔 뒤 카페를 나서더군요.

저도 한번 해봅니다. 매니저에게 다 먹었다는 시늉을 하니 매니저가 계산서가 담긴 접시를 내오며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아마도 맛있었느냐는 뜻 같습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뒤, 접시 위에 동전을 딱 맞춰서 올려놓고는 "그라치아스(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며 카페를 나섭니다.

지중해의 햇살을 받으며 그라나다를 향하여...

호텔로 돌아가 하루 묵은 숙박요금을 지불하고, 다시 캐리어를 끌며 큰길로 나옵니다. 길에는 점점 관광객과 이 고장에 처음 오는 뜨내기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다들 이 고장 날씨에는 맞지 않는 긴소매 옷을 입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곧 저처럼 긴 외투 따위는 벗어던지게 되겠지요.

마리나 광장에서 버스터미널까지는 약 3.5유로 정도가 나옵니다. 이곳의 친절한 택시기사들은 캐리어를 들고 내릴 때마다 일일이 자신도 내려서 짐을 옮겨줍니다. 다시 덜덜거리는 캐리어를 끌고 버스터미널 안으로 들어가니 난생처음 이용해보는 스페인의 버스터미널이 생소하기만 합니다.

전반적으로 우리네 지방 버스터미널과 비슷한 구조로 돼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매표소가 한 곳인 반면, 스페인 버스터미널에는 버스회사마다 창구가 개설돼있어서 복잡합니다. 더구나 각 버스회사마다 서비스하는 이동지역도 다 다릅니다. 보통은 창구 앞 유리창에 어느 지역으로 가는 버스표를 파는지 써붙여 놓습니다만…,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할 수 없이 눈에 보이는 아무 창구에나 가서 물어봅니다. "I wanna go to 그라나다!"라고,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을만한 짧은 영어로 외치니 안에 앉아있던 여성이 "여긴 없어요, 저 안으로 가 봐요"라고 말합니다. 대충 물어물어 가보니 가장 안쪽에 모여 있는 버스회사들이 그라나다로 가는군요.

오, 이제 분명히 보입니다. 그라나다라고 쓴 타임테이블이 창 앞에 붙어있습니다. 낮 12시 발 차가 하나 있군요. 이런. 불과 3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창구직원들은 느긋하기만 합니다. 차표를 사는 사람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도 옆 사람과 이야기할 건 다 이야기하고, 웃으면서 느긋하게 차표를 끊어주고 있습니다.

제 차례에 급하게 "그라나다, 우노(그라나다, 한 장)!"라고 말하니 창구직원이 버스표를 출력해주며 역시 느긋하게 말합니다.

"너, 서두르지 않으면 버스가 출발 할꺼야. 12시 발이거든."

아, 그러면 빨리 출력해주던지! 스페인 사람들은 정말 너무 느긋합니다! 낚아채듯 버스표를 받아들고 돌아서려다가 다시 유리창에 달라붙어 묻습니다.

"근데 몇 번 플랫폼?"
"14번!"

저는 "그라치아스!"라고 외치며 툴툴거리는 캐리어를 끌고 뛰어갑니다. 저 멀리, 제가 타고 갈 그라나다행 고속버스가 보이는군요. 간신히 도착해 캐리어를 짐칸에 밀어 넣고 버스에 오릅니다. 세이프!

버스가 지중해의 햇살을 받으며 출발합니다. 여행을 시작하기에 좋은 날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07년 2월 13일부터 일주일간 스페인을 여행한 뒤 작성한 것입니다.


태그:#배낭여행, #스페인, #안달루시아, #말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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