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는 지칠 줄도 모르고 25년이란 세월을 달려왔다. 세월의 흔적은 차곡차곡 쌓여 '업적'을 만들었다. 송진우(한화 이글스)의 통산 200승,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의 56홈런 등 역사적인 순간을 창출해냈다. 25년이란 세월 동안 발전을 거듭하면서 다양하고 풍성한 기록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기록들은 프로야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프로야구가 넘지 못한 산이 있다. 바로 퍼펙트게임과 한 경기 20탈삼진, 그리고 한 시즌 200안타가 그것이다. 이른바 내가 바라는 한국프로야구의 '세 가지 소원'이다. 소원 하나. 퍼펙트게임
 퍼펙트게임은 투수 혼자서 이뤄낼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다. 정민철은 야수의 도움을 받지 못해 아깝게 퍼펙트게임이 무산된 케이스다.
ⓒ 한화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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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게임'은 모든 투수들의 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한 사람의 투수가 상대팀 주자를 한 명도 허용하지 않고 이긴 시합으로 볼넷이나 몸에 맞는 공으로 나가게 하는 것도 안된다. 투수가 경기를 완벽하게 지배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퍼펙트게임이 달성되는 순간만큼은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만큼 퍼펙트게임이 대기록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실제로 2004년 5월 19일(한국 시각)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랜디 존슨(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은 방문 경기였음에도 기립 박수를 받았다. 아쉽게도 한국프로야구에서 퍼펙트게임은 아직 단 한 차례도 달성되지 못했다. 사실 날이 갈수록 퍼펙트게임의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현대 야구에서는 투수 분업화가 이뤄지고 퀄리티스타트(선발투수가 6이닝 이상을 3실점 이하로 던지는 것)라는 기록이 부각되면서 선발투수가 경기를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일종의 소명의식은 사라진지 오래다. 물론 국내에서도 퍼펙트게임이 달성될 뻔한 적은 있었다. 1997년 5월 23일 대전구장에서는 정민철(한화 이글스)이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퍼펙트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모두가 숨을 죽인 가운데 정민철의 투구 하나 하나에 집중했다. OB 타자들은 이날 따라 뭐에 홀린 듯 방망이를 돌리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이제 남은 타자는 단 5명. 8회초 정민철은 심정수(현 삼성 라이온즈)를 삼진으로 잡았다. 그런데 심정수가 갑자기 1루로 뛰쳐나가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포수 강인권(현 두산 불펜코치)이 볼을 빠트린 것이다. 결국 포수 패스트볼로 기록되며 퍼펙트게임은 무산되었고 사상 첫 번째 퍼펙트게임에서 역대 9번째 노히트노런으로 바뀌고 말았다. 한국야구 역사에 있어 가장 아쉬운 순간으로 꼽히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퍼펙트게임이 달성될 확률은 얼마나 희박한 것일까. 퍼펙트게임은 여러가지 조건이 모두 부합해야 한다는 어려움을 갖고 있다. 투수는 잘 던지는 날도 있고 못 던지는 날도 있기 마련. 그런데 만약 투수가 평생에 또 있을까 말까한 환상적인 컨디션을 보인다면? 그렇다고 해도 퍼펙트게임이 달성되리라 보장할 순 없다. 야구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27개의 아웃카운트를 모두 삼진으로 잡는다는 게 불가능하다면 야수의 도움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국내 야구팬들은 언젠가 한국프로야구의 첫 퍼펙트게임이 하루 빨리 달성되길 기대하고 있다. 퍼펙트게임은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에게 큰 영광이고 자랑이 될 것이다. 소원 둘. 한 경기 20K
 '국보투수'도 한 경기 20탈삼진은 달성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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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고교생 투수 정영일(당시 광주진흥고)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한 경기에서 무려 23개의 탈삼진을 잡았기 때문. 2006년 4월 18일 경기고전에서 정영일은 괴력의 투구를 선보이며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이후 정영일은 LA 에인절스에 입단, 메이저리거의 꿈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까지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한 경기 20탈삼진을 잡은 선수는 아무도 없다. '국보투수'였던 선동열(현 삼성 감독)도 18개, 거기까지였다. 선동열은 1991년 6월 19일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전에서 13이닝을 던지며 18개의 탈삼진을 올렸다. 그 뒤는 김상진(현 SK 와이번스 투수코치)이 잇고 있다. 김상진은 OB 시절 자신의 최전성기이던 1995년 5월 23일 한화전에서 12회동안 17개의 탈삼진을 뺏으며 이 부문 2위에 랭크됐다. 그런데 이 둘은 모두 연장으로 넘어간 기록이다. 9이닝으로만 따지면 16개가 한국프로야구 최다 기록이다. '9이닝 16K'는 총 3명이 달성했는데 순서로 따지면 최동원(현 한화 2군 감독)이 1983년 6월 7일 삼성전에서, 선동열이 1992년 4월 11일 OB전에서, 이대진(KIA 타이거즈)이 1998년 5월 14일 현대 유니콘스전에서 달성했다. 여담이지만 이대진은 당시 경기에서 10타자를 연속으로 삼진 처리해 역사의 한 획을 긋기도 했다. 정녕 '9이닝 20K'는 볼 수 없는 기록일까. 현재 추세로 봤을 때 역시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최근엔 한 경기에서 10개 이상 탈삼진을 잡는 투수조차 '희귀종'으로 불리는 판에 20탈삼진은 어불성설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차피 삼진으로 잡나 땅볼로 잡나 아웃카운트만 늘어날 뿐이지 큰 차이는 없다. 따라서 코칭스태프도 땅볼 유도를 많이 요구하는 추세다. 또 초반부터 삼진을 많이 잡는다고 해서 경기 끝까지 던지게 한다는 보장도 없다. 실제로 2000년 9월 29일 잠실구장에선 구자운(두산)이 삼성을 상대로 6회까지 14개의 탈삼진을 잡았으나 7회에 교체되는 비운을 맛봐야 했다. 투구수가 무려 120개에 도달했기 때문. 20개 탈삼진에 단 6걸음 남겨둔 아쉬운 강판이었다. 요즘 같은 세상엔 신천지나 다름없는 '한 경기 20탈삼진'. 팬들은 '타는 목마름으로'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소원 셋. 200안타
 200안타는 안타 생산 능력과 내야 안타란 '플러스 알파'가 더해져야 한다. 이종범은 지난 1994년 이 조건을 충족시켰지만 아쉽게 194안타에서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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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KIA)의 1994시즌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입단 첫 해(1993년)부터 범상치 않았던 이종범은 이듬해 대형사고를 칠 뻔 했다. 4할 타율과 200안타를 동시에 달성할 뻔 했던 것. 그러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면서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아쉬움은 컸지만 그래도 당시 이종범은 투고타저 속에서도 대기록에 근접하며 '야구천재'란 영예로운 호칭을 얻었다. 200안타 도전은 이병규(주니치 드래곤즈)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이병규는 LG 트윈스 시절이던 1999년 엄청난 타격 페이스를 보이면서 200안타란 신천지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병규는 30홈런-30도루 클럽에도 욕심을 보였고 홈런을 의식한 나머지 힘이 들어간 탓에 안타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결국 시즌이 끝나고 그가 거둬낸 안타수는 8개 모자란 192개였다. 두 명의 야구천재도 이루지 못한 만큼 200안타는 참으로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우선 한국프로야구는 경기수부터 제약을 받는다. 팀당 126경기를 치르므로 한 경기당 약 1.6개의 안타가 필요하다. 어려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또한 200안타 달성을 위해선 발도 빨라야 한다. 왜냐하면 발 빠른 선수는 다른 선수보다 내야 안타를 만들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타 생산 능력과 더불어 내야 안타란 '플러스 알파'까지 더해져야 200안타에 근접할 수 있다는 얘기다. 200안타에 도전했던 이종범과 이병규 모두 공격과 주루에서 일가견이 있는 선수들이다. 앞서 열거한 퍼펙트게임과 20탈삼진과 함께 200안타도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천천히 기다려보련다. 언젠가는, 또 누군가는 이 기록의 주인공이 되리라는 믿음은 변하지 않을테니.

프로야구 퍼펙트 게임 20탈삼진 200안타 정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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