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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의 파인애플이라 불리는 우렁쉥이
ⓒ 이종찬
그해 봄날 오후
너 나의 사랑을 가로지르는 수평선을 치우기 위해
해운대의 하늘과 바다에게 욕지거리를 했다
수평선의 마빡에 조약돌을 수없이 던졌다
시퍼런 멍 박힌 하늘을 부채질하는 갈매기 한 마리
내 욕지거리를 쪼며 힐끗 비웃었다
피멍 든 바다를 또 때리는 파도 서넛
쌩 날아가는 조약돌을 통통 튕기며 울었다
수평선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날이 흐리고 마음마저 흐려
눈물이 빗방울로 송송 돋아날 무렵
수평선 저만치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은
허름한 포장마차촌에 갔다
오륙도란 이름이 붙은 그 집에 들어서자
거기 우렁쉥이가 눈을 흘기고 있었다
나는 수평선이 담긴 소주를 부르고
너는 우렁쉥이 되어 내 속으로 들어왔다
그때 소나기가 후두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늘과 바다가 수평선을 치우고
너 나에게 욕지거리를 하며 조약돌을 던졌다

- 이소리, '해운대, 포장마차에 앉아' 모두


▲ 해운대 동백섬 앞바다
ⓒ 이종찬
▲ 지금 남녘바다 곳곳에는 붉은 우렁쉥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사람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하고 있다
ⓒ 이종찬
붉은 우렁쉥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남녘바다

바다의 파인애플이라 불리는 우렁쉥이. 흔히 사람들에게 '멍게'라고 불리는 우렁쉥이는 껍데기에 젖꼭지 모양의 돌기가 많이 나 있어 언뜻 보기에 파인애플처럼 보인다 하여 바다의 파인애플로 불린다. 더불어 우렁쉥이는 물을 빨아들이는 입수공과 물을 내뿜는 출수공이 있어 '바다물총'이라 불리기도 한다.

일본에서 우렁쉥이를 '램프(lamp)의 유리통'이란 뜻에서 '호야'라고 부르고, 영어권에서 피낭(몸을 싸고 있는 젤리 상태, 또는 두껍고 단단한 주머니 모양의 조직)이란 뜻의 '튜니케이트(tunicate)' 혹은 바다의 물총이란 뜻의 '시스커트(sea squirt)'란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금 남녘바다 곳곳에는 붉은 우렁쉥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사람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하고 있다. 우렁쉥이는 껍데기를 깐 뒤 초장에 찍어 입에 넣으면 입안 가득 퍼지는 향긋하면서도 짭쪼롬한 바다 향과 씹으면 씹을수록 달착지근한 깊은 맛이 우러나기 때문에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게다가 우렁쉥이는 양식이 쉽고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값도 아주 싸다. 흔히 횟집이나 초밥집, 심지어는 포장마차에 가더라도 우렁쉥이가 서비스 안주로 나오는 것도 흔하고 값이 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즈음은 우렁쉥이를 단순히 회로만 먹는 것이 아니다. 우렁쉥이 젓갈, 우렁쉥이 비빔밥, 우렁쉥이 열무김치 등 갖가지 조리법이 참 많이도 생겨났다.

▲ 우렁쉥이는 양식이 쉽고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값도 아주 싸다
ⓒ 이종찬
▲ 수산물 가운데 해삼, 해파리와 더불어 3대 저칼로리 식품으로 불리는 우렁쉥이
ⓒ 이종찬
우렁쉥이, 당뇨병과 스태미너 증진에 뛰어난 효과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만 해도 대략 56종이나 되는 우렁쉥이. 우렁쉥이는 바다의 암초나 조개껍데기에 붙어 산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우렁쉥이는 한 개체가 정소와 난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자웅동체다. 번식방법은 하나의 개체가 자손을 낳는 무성생식과 정자와 알을 수정하여 자손을 낳는 유성생식 두 가지다.

무성생식은 어미의 몸에서 새로운 개체가 솟아나오는 출아법이다. 이때 새로운 개체는 어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우렁쉥이의 새끼는 1년 뒤에 약 10mm가 된다. 이어 2~3년째가 되면 10~15cm 정도로 자라며 알을 낳기 시작한다. 수명은 5∼6년.

우렁쉥이는 다른 물체에 붙어 입수공으로 빨아들이는 물에 있는 플랑크톤을 먹으며 살아간다. 우렁쉥이는 우리나라의 모든 연안에서 자라지만 동해와 남해안에 특히 많이 자란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우렁쉥이를 먹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때부터다. 그 앞에는 남쪽 몇몇 바닷가 사람들만 우렁쉥이를 먹었다 전해진다.

요즈음에는 우렁쉥이가 제약이나 화장품의 원료로도 사용된다. 우렁쉥이에 들어 있는 끈적거리는 액체 형태인 콘드로이틴황산(탄수화물의 일종)이 피부미용과 노화방지, 동맥경화 억제, 뼈 형성 작용, 세균감염 억제 등에 탁월하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렁쉥이는 당뇨병 개선효과와 스태미너 증진에도 뛰어난 효과를 발휘한다고 한다.

▲ 우렁쉥이회는 제대로 씹을 것도 없이 그대로 혓바닥에 사르르 녹아내린다
ⓒ 이종찬
▲ 몇 번 우물거리다보면 달착지근한 감칠맛이 배어져 나오면서 그대로 꿀꺽 삼켜진다
ⓒ 이종찬
해삼, 해파리와 더불어 3대 저칼로리 식품으로 불리는 우렁쉥이

수산물 가운데 해삼, 해파리와 더불어 3대 저칼로리 식품으로 불리는 우렁쉥이. 5월부터 8월까지가 제철인 우렁쉥이는 3~4년생이 가장 맛이 좋고 향기가 뛰어나다. 특히 요즈음 낮의 기온이 초여름 날씨를 웃돌면서 남녘 바닷가 어시장 곳곳에 우렁쉥이가 흔히 눈에 띈다. 남녘 바닷가에는 이미 우렁쉥이의 계절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지난 달 29일(목) 오후 4시. 여행작가 김정수, 조찬현 기자와 함께 동백섬, 해운대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잠시 들렀던 해운대 포장마차 10호집 오륙도. 라면과 우동, 국수를 비롯한 여러 가지 싱싱한 해산물을 팔고 있는 이 허름한 집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이 붉은 몸뚱이를 통통하게 드러낸 우렁쉥이다.

수족관 한 귀퉁이에 수북이 쌓여 있는 우렁쉥이, 올챙이처럼 배가 빵빵한 우렁쉥이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군침이 절로 넘어간다. 소주 한 병과 싱싱한 우렁쉥이 한 접시를 시키자 주인 아낙네가 오이 썬 것, 감귤 몇 개를 밑반찬으로 낸다. 밑반찬은 그것뿐이다. 이어 커다란 전복껍데기 하나를 덤으로 올린다.

나그네가 "이 전복껍데기는 왜 올리는 겁니까?"라고 묻자 주인 아낙네가 "재떨이"라고 말을 짧게 끊어 친다. 나그네가 다시 "거 참, 이렇게 아름다운 전복껍데기를 재떨이하기에는 좀 아깝구먼"이라고 혼잣말처럼 내뱉자 주인 아낙네가 "뭐가 아까운교? 이곳에 흔해 빠진 게 전복껍데긴데..."하며 빙긋 웃는다.

▲ 돌우렁쉥이는 보기에는 푸짐해 보이지만 막상 먹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 이종찬
▲ 하지만 일반 우렁쉥이보다 향기가 더 짙고 훨씬 더 부드럽게 잘 넘어간다
ⓒ 이종찬
씹을 것도 없이 혓바닥에 사르르 녹아내리는 맛

"성이 뭔교?"
"이가라예."
"이름은예?"
"이름은 말라꼬 물어쌓소? 종순이라예."
"그라모 종자 돌림인교?"
"그걸 우째 아능교?"

"내가 종자 돌림 아인교. 세상이 좁기는 좁구먼. 여기서 일가를 만나다니."
"그라모 아재도 경주 이가인교?"
"내는 신라 아가라예."
"신라 이가도 있능교?"
"신라의 수도가 어딘교? 경주 아이요."


이윽고 이 집 주인 이종순(57)씨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우렁쉥이 한 접시를 초고추장, 막된장과 함께 탁자 위에 올린다. 노오란 우렁쉥이 속살을 나무젓가락으로 한 점 들고 초고추장에 콕 찍은 뒤 소주 한 잔 털어 넣고 입에 넣는다. 금세 입안에 향긋한 내음과 함께 짭쪼름한 바다내음이 가득 찬다.

우렁쉥이회는 제대로 씹을 것도 없이 그대로 혓바닥에 사르르 녹아내린다. 몇 번 우물거리다 보면 달착지근한 감칠 맛이 배져 나오면서 그대로 꿀꺽 삼켜진다. 소주 한 잔, 우렁쉥이 한 점 먹다보니 온몸에서 바다향이 솔솔 배어나는 듯하다. 이 지역사람들이 말하는 우렁쉥이귀(머리에 붙은 오돌토돌한 껍데기)도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

▲ 재떨이로 나온 전복껍데기
ⓒ 이종찬
"이기 그 비싼 돌멍게 아인교"

"이거는 서비스입니더."
"이기 뭐요?"
"돌멍게 아인교. 이거는 귀하기도 하지만 값도 비싼 기라예. 오늘 특별히 일가를 만난 기념으로 드리는 기라예."
"아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카더마는, 안주보다 서비스가 더 좋으모 우짜능교?"
"담(다음)에 또 해운대 놀러오모 꼭 우리집으로 오이소."


돌우렁쉥이는 보기에는 푸짐해 보이지만 막상 먹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알맹이보다 껍데기가 훨씬 더 크다는 그 말이다. 하지만 일반 우렁쉥이보다 향기가 더 짙고 훨씬 더 부드럽게 잘 넘어간다. 향긋한 감칠맛의 우렁쉥이와 부산 갈매기 아낙네의 넉넉한 인정이 어우러지는 해운대 포장마차촌. 살갑고도 즐거운 봄날 오후 한때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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