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관중석

축구, 야구, 농구 종목을 가릴 필요가 없다. 관중석엔 있어야 할 관중 대신 파랑, 빨강, 노랑의 의자만 보인다. 그나마 공중파 TV의 중계방송이 줄어들어 빈 의자를 볼 기회도 줄어들고 있다.

프로 스포츠 종목을 막론하고 관중 수가 줄고, TV중계 횟수가 줄며, 구단의 가치도 출범초기와는 비교할 수 없이 하락하고 있다. 국가가 성장함에 따라 국민 소득, 스포츠에 대한 관심, 스포츠 산업은 같이 성장하지만 유독 프로 스포츠의 관중 수는 심각한 반비례를 보인다.

월드컵이면 많은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되어 대한민국을 외치고, 스포츠 뉴스의 시청률은 정치, 사회, 문화뉴스를 전할 때보다 훨씬 높게 나오는 스포츠의 나라 한국에서 프로 스포츠가 맥을 못 추는 이유가 뭘까?

경기력과 상품성의 불일치

@BRI@미국은 야구와 미식축구, 농구를 잘하고, 국민들은 이 스포츠를 사랑한다. 또한 아르헨티나나 브라질의 남미국가들은 축구를 잘하고 국민들은 축구를 열렬히 사랑한다. 자국의 경기력과 상품성이 일치하기에 이 종목의 미래에는 별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는 축구, 야구, 농구, 배구를 잘하진 못한다.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분명 세계 수준의 경기력을 갖춘 종목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 스포츠를 열렬히 사랑한다.

여기서부터 근본적인 문제가 시작된다. 마치 부모가 공부에 재능이 없는 자녀에게 희망만으로 공부를 강요하는 모습이다. 공부는 성공할 수 있는 상품성을 가진 종목이지만 그 자녀는 공부에 재능이 없다. 시험을 보면 57등(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발표 K-리그 순위)밖에 못한다.

순리대로라면 이 자녀에게 태권도를 시키고, 양궁을 시키고, 핸드볼을 시켜야 하지만 자녀도 부모도 사회도 원치 않는, 누구 하나 환영하지 않는 선택이다. 결과를 알지만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계화의 공세 - 그들만의 리그

프로 스포츠 출범 초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1982년과 1983년에 각각 출범한 야구와 축구를 비롯한 프로스포츠는 국가의 유례없는(?) 지원 아래 무수한 스타플레이어를 낳으며 양적으로 또 질적으로 성장해갔다. 적어도 박찬호가 잠실구장이 아닌 다저스타디움에서 시속 160㎞의 스트라이크를 꼽고 마이클 조던이 멀찌감치서 에어 덩크를 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기 전만 해도 그랬다.

국민들은 당황스러웠다. 최고의 플레이어 농구대통령 허재도, K- 리그 트로이카 3인방(이동국, 고종수, 안정환)도, 바람의 아들 이종범도 더 이상 그들의 우상이 될 수 없었다. 합리적 소비자로서 저 멀리서 전송되어 오는 높은 수준의 경기력과 고도의 상업성을 두루 갖춘 채널을 애국심 하나 만으로 물리치기는 힘들었다.

국내 프로경기를 보면 볼수록 혀를 차는 국민들이 늘어만 갔다. 프로농구는 5명중 2명이 용병 센터이고, 센터놀음인 농구에서 이들의 역할에 따라 팀 성적이 좌우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뛰는 용병은 NBA의 하부리그 수준 또는 그 이하의 선수들이었고, 우리 선수들은 이 선수들 앞에서 꼼짝 못하고 덩크슛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프로야구도 다르지 않다. 메이저리그의 하부리그인 트리플A, 혹은 더불A 수준의 용병이 우리나라에 와서 홈런왕이 되고, 안타왕이 되었다. 프로축구도 프로배구도 비슷한 실정이다.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봐주는 이 없고, 경기를 하는 이조차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저 모른 척 하고 애국심에 호소(그나마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다) 해보고, 초보적인 마케팅이란 것도 해보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매년 프로 리그가 시작되고 처음에는 언론의 지원에 괜찮은 관중 동원력을 보이지만 1∼2개월만 지나면 부실한 기초체력을 여실히 드러내고 만다(K-리그를 포함한 올해의 프로리그도 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해법은 있는가?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우리 애가 공부를 못하니, 공부를 열렬히 하고 싶어 하는 아이와 부모의 심정을 무시하고 정말 태권도를 시킬 작정인가? 서두에도 말했듯이 누구도 원치 않는 답이다.

그렇다면 답안은 있는가? 모법답안은 없지만 노력한다면 부분점수는 받을 수 있다.

첫째 KBS 시사기획 <쌈>(박찬호와 마이클 조던편, 정재용 연출)에서 주장했듯이 정부차원의 규제가 필요하다. 스크린쿼터 시행으로 우리 영화의 기초체력을 기른 것처럼, 유망주의 무분별한 해외 진출을 막고, 3S정책을 벌일 당시 국가의 유례없었던 지원을 똑같이 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이천수의 프리킥이 베컴의 프리킥보다 국민의 마음을 훨씬 흐뭇하게 하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체계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한 장기적인 경기력 향상을 꾀한다면 그들만의 리그를 전 국민의 리그로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둘째, 아시아 시장을 노리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세계인에게 인기가 있고 우리 국민에게 인기가 있는 스포츠에서 아시아인은 신체구조나 자본의 힘 측면에서 서구인을 상대하기가 어렵다. 인종을 바탕으로 신체적 우위를 설명하는 원초적이고 진부한 주장이지만 월드컵의 각 나라 평균 성적이나 인기 스포츠의 유래지를 살펴보면 이 인정하기 싫은 주장에 일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스포츠는 세계시장이 아닌 아시아 시장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와 미 프로야구(MLB), 미 프로농구(NBA)에 맞서 싸울 것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 대만, 중동에 상대적 우위를 확보해야한다. 아시아 시장 최고 수준의 프로리그를 운영해 세계시장에서 공급자 역할을 하는 동시에 전 아시아인이 한국 프로리그를 즐기고 소비하는 수요자가 되게 해야 한다.

규제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라면, 스크린 쿼터의 규제가 결국 완화됐듯이 정부차원의 규제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해법은 아시아다. 아시아 시장을 목표로 장기적인 경기력 향상과 체계적인 운영을 꾀할 때 침몰위기의 국내 스포츠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2007-03-07 11:00 ⓒ 2007 OhmyNews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