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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에게 문화충격을 받은 마르셀(가명)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영어로는 감사 인사, 한글로는 호스트 욕(빨간색 밑줄로 그은 부분)을 써놓은 어느 우프 방명록 화면을 옮기고 그에 대한 글을 올렸다.
ⓒ 우프 호스트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호주에서 열 달 동안 우프(일손이 필요한 현지 농가가 자신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숙식을 제공해주는 제도) 생활을 하면서 많은 호주 사람들과 같이 지냈고, 내가 이전에 쓴 글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러 가지 문화 충격을 받았다. 한국적인 눈으로 호주를 바라보니 그들에겐 당연한 것도 내겐 다르게 보이는 게 자연스러운 일.

그렇다면 호주 사람들은 나와 같이 지내면서 어떤 문화 충격을 받았을까? 그들도 나 못지않게 황당한 경우가 있지 않았을까?

우프 호스트는 대부분 여러 나라에서 온 많은 우퍼들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 예전에는 유럽 국가 우퍼들이 많았는데, 요 몇 년 사이에 일본인과 한국인 우퍼들이 급속히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문화적으로 봤을 때 호주도 유럽이나 마찬가지라, 양쪽은 서로 크게 다른 점을 느끼지는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과 호주는 많은 부분 차이가 있어 내가 그랬듯이 그들도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이해 못했는데 대답은 YES... "한국 사람들, 부끄러움 너무 잘 타!"

호주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Koreans are TOO SHY!"(한국 사람들, 부끄러움을 너무 잘 타!)이다. 이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할 한국인들이 몇이나 있을까? 나도 첫 번째 우프 호스트에게 이런 말을 들었을 때는 살짝 화도 났고 수긍할 수도 없었다. 부끄러움을 잘 탄다는 말이 곧 바보 같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결국엔 이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는데, 서양인과 동양인이 같은 상황에서 각각 어떤 행동을 하는지 비교해보니 답이 나왔다.

단, 비교하기 전에 우선 한국인과 일본인의 영어 실력이 유럽인에 비해 아주 형편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독일이나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우퍼들은 학교에서만 영어를 배웠다는데도 대부분 영어를 잘 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주눅 들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나, 단지 언어 때문만은 아니다.

호주인들의 눈에 비친 동양인들은 어떤 모습일까. 내 첫 번째 우프 호스트는 네덜란드에서 이민 온 부부(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이 글에서는 마르셀, 마리카라는 가명으로 부르겠다)였는데, 그들은 일본인 우퍼와 독일인 우퍼를 동시에 둔 적이 있었다.

마르셀은 그들에게 해야 할 일을 설명해주고 나서 이해했는지 물었다. 둘 다 "Yes"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인 우퍼는 매번 마르셀이 설명한 것과는 다르게 일을 했다. 그때서야 마르셀은 일본인 우퍼가 매번 영어를 잘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대답은 "Yes"라고 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마르셀은 처음에 그녀가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른 유럽인들의 경우 영어를 못해도 못 알아먹은 걸 안다고 대답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인 우퍼와 6주를 같이 지내고 다시 한국인인 나와 언니를 우퍼로 받으면서 마르셀은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부끄러움을 잘 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영어 못하고 권리 주장 약한 동양인의 약점 노리는 업주들

또 마르셀이 신문에서 봤다며 이런 이야기도 해주었다. 호주에 온 젊은 여행자들이 여행비를 벌기 위해 농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여행자가 묵는 숙소에서 일자리를 주선해 준다.

농장에서 여행자의 주급을 통장으로 송금하지 않고 현금으로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그 숙소에 맡겨둔다. 즉 여행자는 숙소를 통해서 주급을 받는다. 여행자가 그 전에 숙소를 떠난 경우에는 숙소에서 통장으로 부쳐준다.

하지만 간혹 나쁜 곳에서는 동양인들이 영어를 못하고 권리 주장을 잘 못한다는 약점을 악용해 의도적으로 주급을 횡령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건 내 친구 이야기이다. 우프 호스트 중에 다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간혹 아주 나쁜 사람들도 있다. 친구도 내 소개로 우프를 시작했는데, 먼저 간 곳이 별로 좋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 매일 내게 전화해 죽어가는 목소리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는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했지만, 주인아줌마에게 그곳에서 한 달을 지내겠다고 미리 말해버려서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친구에게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했고 내가 있던 곳 근방에 친구가 갈 만한 우프 집을 물색했다.

그중 한 곳만이 승낙했고 친구는 그 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그곳은 최악이었다. 친구는 더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해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일을 너무 많이 시킨다는 것이었다.

우퍼들에겐 최대 하루 6시간까지만 일을 시키도록 우프 관련 규정에 명시돼 있다. 그런데 내 친구가 있던 곳은 7~8시간씩 일을 시킨다고 했다. 또 "얼마나 지낼 거냐"는 우프 호스트의 질문에 친구는 "couple of weeks(몇 주)"라고 대답했는데, 다시 "3주?"라고 묻는 질문에 그만 "Yes"라고 대답하고 말았다는 것. 친구는 매일 내게 전화해 자신이 당한 부당한 대우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그 3주를 채울 수밖에 없었다.

영어로는 감사 인사, 한글로는 욕 쓰는 속사정

사흘째 되던 날, 친구는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며 내게 전화했다. 그동안 그 집에서 머문 우퍼들이 쓴 방명록을 찾았다고 했다. 서양인들의 흔적은 별로 없고 죄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글이었는데, 한 페이지에 감사 인사와 욕이 동시에 기재돼 있다는 것.

다들 공책 위쪽에는 영어로 감사 인사와 함께 '음식이 다 맛있었고 또 돌아오고 싶다'는 글을 적어놓고, 그 밑에는 한글로 '이곳은 정말 나쁜 곳이고 일을 너무 많이 시킨다'며 호스트를 욕하는 글을 적고 '최대한 빨리 떠나라'는 글을 남겨두었다고 한다. 심지어 그 호스트의 웹사이트에 스캔한 사진이 올라있는 어느 한국인 여성도 그런 글을 남겼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더 웃긴 사실은 그런 글을 쓴 사람들이 대부분 자신의 글 위에 쓴 거주 기간은 보통 3주에서 한 달 이상이었다는 것. 도대체 그런 글을 남길 정도로 그 집이 싫었다면 왜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그 집에 머무른 걸까?

아마도 내 친구처럼 자신이 처음에 말한 기간을 다 채우려고 그런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도 호스트가 화를 내거나 기분 상할 것이 두려워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우프 호스트는 기간을 강요하거나 사람을 붙잡아 두지 않는다. 물론 기분이야 나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게 전부다. 좋게 말하면 한국적으로 공손하려고 애쓰는 거지만, 사실은 해야 할 말을 안 하고 그냥 참는 게 문제다.

"서양인들은 싫으면 바로 떠나지, 절대 안 참아"

이 이야기를 마르셀과 마리카에게 하니, 배꼽을 잡고 뒤집어졌다. 그러더니 "만약 서양인들이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라며 "그 집에 들어간 첫날이라도 그 곳이 나쁜 곳이라고 생각하면 바로 뛰쳐나왔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런 괴상한 방명록도 쓸 일이 없다. 그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참지 않는다고 했다. 마르셀은 이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지 이 일에 대해 자신의 홈페이지에 쓰기도 했다.

우리는 왜 싫으면 싫다고 말을 못하는 걸까? 한국 사회는 상하수직 관계가 강해 상대방이 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거나 나이가 많으면 자연스레 수그러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자신이 더 낮은 위치라고 생각하면 아주 잘(?) 참는다. 심지어 농장에서 일할 때, 그날 일당이 얼마인지 궁금하지만 괜히 찍힐까봐 물어보지 못하는 한국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실제로 호주 사람들은 그런 질문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사나 권리를 당당하게 표현하는 듯 보였다. 받아들이는 사람도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

마르셀의 집에서 두 달 동안 살고 헤어질 때, 마르셀은 나한테 다음 우프 집에 가서 호스트의 설명을 못 알아들었을 때는 꼭 못 알아들었다고 대답하라고 당부했고, 절대로 처음부터 그 집에서 오래 지내겠다고 하지 말라고 했다. 그 이후 나는 점차 바뀌어 갔다.

호스트 이름이 폰섹스?

여기 또, 배꼽잡고 쓰러질 만한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시드니에서 기차로 2시간 걸리는 블루마운틴에서 우프를 할 때였다. 호스트 이름은 존(가명, 55)이었는데, 그곳에 머문 한 한국인 여자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 여자가 그 집에 머무른 지 일주일 정도 됐을 때, 여자가 슈퍼에 가고 싶다고 해서 존은 길을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이해했느냐고 묻자, 여자는 사실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Yes"라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길을 잃었다. 결국 이웃 사람이 정원에서 여자를 발견했다.

다행히 이웃 사람은 좋은 사람이어서 여자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렇지만 여자는 집 위치를 몰랐고 전화번호도 당연히 몰랐다. 이웃 사람은 다시 집주인 이름이 뭐냐고 물었는데, 여자는 다른 가족들의 이름은 모르고 달랑 "존"만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참 흔한 이름이라서 이름만으로는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웃 사람은 존의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사실 존은 기타와 드럼을 치고 작곡을 하는 음악가이다. 하지만, 여자는 존이 색소폰(saxophone)을 연주한다고 잘못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만 이렇게 대답했다. "폰섹스(phone sex)!"

다행히 이웃 사람이 온 동네를 다 돈 덕분에 여자는 집을 찾았지만, 존은 졸지에 음란한 음악가가 되고 말았고 한 달 동안 온 동네 사람들이 존만 보면 키득거렸다고 한다. 이후에 난 이 이야기로 많은 호주 사람들을 쓰러뜨렸다. 족히 30번은 쓰러뜨린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김하영 기자는 2005년 9월 22부터 2006년 7월 1일까지(총 9개월 반) 호주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그중 8개월 동안 우프(WWOOF; Willing Worker On Oganic Farm)를 경험하였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바탕으로 호주 문화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본 기사에 첨부 된 사진의 저작권은 김하영 기자에게 있으며 기자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다른 곳에서 쓰일 수 없습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우프 호스트들의 이름은 그들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모두 가명으로 처리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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