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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털 깎는 창고 바로 앞에 길게 줄을 선 양들
ⓒ 김하영
양 수천 마리가 울타리 안에 한데 모여 있는 풍경은 가관이었다. 그중 20% 정도는 항상 볼일을 보고 있었는데 소변볼 때 내는 소리가 모여 마치 폭포수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바닥은 금세 동그랗고 검은 배설물로 뒤덮였다. 또 양들은 그 특유의 떨리는 목소리로 쉼 없이 울어댔는데, '양들의 침묵'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 같았다.

또 양들이 어찌나 겁을 많이 먹는지 내가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자 나를 피해 저쪽 끝으로 도망갔다. 마치 내가 특수한 전자파를 내뿜어 커다란 보호막을 가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장난기가 발동해서 한 발짝, 한 발짝씩 그들에게 다가가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머리를 벽 쪽으로 들이미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새끼 양들 역시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어미를 따라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 양털 깎는 창고 안으로 막 들어와 차례를 기다리는(?) 양들. 자꾸 밖을 바라보지만 환한 빛 밖에 없다.
ⓒ 김하영
자, 이제 이 양들을 나눠서 겹겹이 있는 다른 울타리로 다시 몰아넣어야 했다. 이 작업은 양털을 깎는 창고에 가까운 울타리로 밀어 넣는 일로 양털을 깎는 기간에는 매일 이 작업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전에도 말했듯이 양털깎이(Shearer) 한 명이 보통 하루에 150~200마리의 털을 깎기 때문에 그들이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양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게는 일이 아닌 재미있는 '놀이'

양 농장 주인인 톰(60, 가명)은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특별한 경험을 해볼 수 있도록 항상 배려해 주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양치기' 아니 '양 넣기'를 해보라고 했다.

물론 이 '양 넣기' 일에도 몇 가지 요령이 필요하다. 일단 사람 몇 명이 양들 뒤에 간격을 두고 선다. 그리고 입으로 큰 소리를 내면서 양들을 앞으로 몬다.

물론 멍청한 양들은 절대 문을 통과하지 않기 때문에 한 명이 재빠르게 문쪽으로 뛰어가 단 한 마리의 양이라도 문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 중요한다. 그 다음에 양들 뒤에서 다시 양을 쫓으면 양들은 문 안에 들어간 그 한 마리를 보고 안정감을 느끼는지 뒤쫓아 들어간다. 그러면 그때 문을 닫으면 된다.

이런 작업을 수없이 반복해야 양털 깎는 창고 안까지 연결된 마지막 울타리 안으로 양들을 넣을 수 있고 그래야 양털깎이들이 한 마리씩 끌어다가 양털을 깎을 수 있다.

▲ 양털깎이 코 앞까지 온 양들. '아, 떨린다 떨려'
ⓒ 김하영
시작하자마자 양에게 치이다

톰은 내가 일을 하기 전에 당부했다. 양들이 겁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도 위협을 받으면 난폭해지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궁지에 몰리면 도망가려고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는데 그런 양에게 치이면 아주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여기 양들은 메리노(Mereno 양의 종류 중 하나로 일반 양들보다 덩치가 크다)였다. 나는 물론 조심하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그다지 걱정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눈에 그들은 그저 겁 많은 소심쟁이로 보였기 때문이다.

1주일 전부터 고대하고 고대한 일이라서 그런지 나는 내내 신이 나 울타리 뒤편에서 콩콩 뛰며 양팔을 흔들어 댔다. 양들을 몰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양들이 겁을 먹은 채 이리저리 도망가려고 빠르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뭔가 잘못됐다 싶은 순간 갑자기,

쾅!

무언가 내 왼쪽 옆구리에 부딪혔다는 것을 안 때는 이미 내가 공중에 한번 떴다가 바닥에 쓰러진 후였다. 그 큰 양이 덩치가 작은 나를 순식간에 찬 것이다. 재빠르게 털고 일어났는데 그리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다음 날부터 한동안 왼쪽 어깨가 편하지 않았다.

나중에 톰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때 다른 양들이 쓰러진 내 위를 밟고 지나갔더라면 아주 큰일이 났을 거라고 했다. 나를 그냥 지나쳐준 다른 양들에게 감사했다. 어쨌든 그 다음부터는 양들한테 젠틀(Gentle 점잔)하기로 다짐했다.

이렇게 양과 함께한 첫날은 놀람과 감탄의 연속이었다. 오늘은 톰에게 그다지 도움을 주지 못했다. 내가 양을 모는 게 아니라 양이 나를 모는 것 같았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서 어찌나 피곤하던지 하품이 연방 나왔다. 모든 일을 마치고 노을을 보면서 집으로 향하는 길에 저편으로 장작불이 보였다. 양털 깎는 팀이 도착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하영 기자는 2005년 9월 22부터 2006년 7월 1일까지(총 9개월 반) 호주에서 생활했습니다. 그 중 8개월 동안 우프(WWOOF-Willing Worker On Oganic Farm)를 경험하였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바탕으로 호주 문화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본 기사에 첨부 된 사진의 저작권은 김하영 기자에게 있으며 기자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다른 곳에서 쓸 수 없습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우프 호스트들의 이름은 그들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모두 가명으로 처리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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