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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고성. 햇살과 바람과 세월에 스러지는 옛 성은 고선지 장군을 기억이나 할까?
ⓒ 최성수
늦게 잠든 것 치고는 제법 일찍 일어났다. 여행의 아침, 낯선 풍경에 대한 그리움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특히 새벽에 나가 바라보는 거리의 풍경은 늘 여행을 시작하는 나의 그리움 중의 하나다. 그러나 어제 워낙 늦게 도착한 탓인지, 일찍 일어났다 싶으면서도 몸은 영 개운치 않다. 그리움보다는 몸의 피곤이 더 먼저인가보다. 거리 풍경 감상을 미루고 깔깔한 아침 식사 뒤 구자고성을 찾는다.

쿠처, 옛 구자국의 땅에 온 실감이 난다. 그러나 그 실감은 구자고성이라는 이름 때문이지, 실제의 모습 때문이 아니다. 그만큼 구자고성은 다 무너지고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큰 길 가에, 마치 시간 속에 마모되어가는 꿈의 조각들처럼, 구자고성은 자욱한 먼지와 매연을 온몸으로 감내해 가며 조금씩 조금씩 부서져가고 있는 것 같다. 원래는 내성과 외성으로 되어 있었다는 구자고성은 이제 그 위용을 숱한 세월 속에 다 내어주고, 그저 밑둥만 남아있을 뿐이다.

▲ 삼륜차와 자전거는 오아시스 마을 쿠처의 먼지 낀 길을 과거로 가는 것처럼 달려간다.
ⓒ 최성수
구자국(龜玆國)은 한때 서역에서 가장 큰 나라였다. 한나라 때만 해도 성 안의 집이 6970호에 인구가 8만1300명이었다고 한다. 인도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과 가까운 지리적 위치 때문에 국경 무역이 활발했던 곳이고, 인도의 불교가 가장 먼저 전해진 곳이기도 하다. 전한의 멸망 직후에는 흉노와 함께 이웃 카슈카르 지역을 정벌해 서역 지방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나라가 구자국이다. 구자국은 후한의 장군 반초가 이곳을 점령한 뒤, 그 화려한 시절을 뒤로하고 점점 쇠퇴의 길을 걸었다.

고선지 장군과 두보의 시 한 편

▲ 쿠처 길가의 허름한 식당. 쌓아놓은 음식 재료에도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다.
ⓒ 최성수
당나라는 서역 지방의 공략을 위해 이곳 구자국에 안서도호부를 설치한다. 그리고 그 안서도호부에는 고구려 유민의 2세인 고선지 장군이 등장한다. 군인이었던 아버지 고사계를 따라 이곳 쿠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고선지는 서역 지방을 중국의 영토로 만드는데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는 토번(지금의 티벳)과 사라센의 동맹으로 당나라가 견제를 받게 되자 1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토번 점령에 나선다. 서기 747년의 일이다. 파미르 고원을 넘는 이 원정은 서역 지방에 산재해 있던 72개국의 항복을 이끌어 내는 등, 사라센의 동쪽 진출을 막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고선지의 성공이 사라센을 막아낸 데 있었다면, 그의 실패 역시 사라센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에게 처참한 패배를 안겨준 탈라스 전투 역시 사라센 여러 나라들의 반격이었으니 말이다. 탈라스 전투의 패배는 고선지에게는 패배였지만, 이 전투를 통해 중국의 제지술이 유럽 쪽으로 전파되는 등, 중국문명과 사라센문명의 문화, 상업적 교류는 더욱 밀접해졌다고 한다. 서로 다른 세계들의 교류의 씨가 고선지를 통해 뿌려진 것이다.

고선지 장군의 숨결이 배어 있을 쿠처, 그러나 쿠처의 어디에도 고선지의 유적이나 유물은 없다. 그저 고선지를 기억하는 우리 같은 여행자들의 기억 속에만 장군은 살아있을 뿐이다. 마치 시간 속에 제 몸을 하나하나 부서트리고 있는 저 구자고성처럼, 고선지 장군도 어쩌면 사막의 햇살, 혹은 흙먼지 바람 속에 스러져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사막은 모든 것을 무화(無化)시키는 곳이다.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는 사막의 시간 속에서, 유물이니 유적이니 하며 인간이 만들어 낸 형식적 형체들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고선지 장군은 자신을 기억하는 우리 같은 여행자들을 덧없다고 웃어버리고 말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두보가 지은 '고도호총마행(高都護驄馬行·안서도호부 고선지의 말을 노래함)'이라는 시만이 지금도 고선지 장군의 옛 삶을 되살려 줄 뿐이다.

고선지 장군의 푸른 말
높은 이름 싣고 돌아오네
오랜 세월 전쟁터에서 맞설 이 없었으니,
말과 사람 하나 되어 큰 공 세웠네
주인의 은혜 입어 돌아오는 길,
아득한 모래땅에서 달려오네
마구간에 엎드려 은혜를 받지 않고
싸움터에서 내달릴 생각을 하는 용맹함이여
짧은 발목, 높은 굽 쇠를 디디듯
교하(交河)에서 몇 번이나 얼음을 밟아 깨었으랴
오화문(五花紋:매화꽃 문양의 말의 반점) 흩어져 구름처럼 몸에 가득하고
만리를 달리면 땀에서 피 섞여 흐르네
장안의 젊은이여 감히 이 말 타려 하지 마시게
번개를 스치며 달리는 것 모두 알 텐데
푸른 실로 머리 묶고 고 장군 위해 늙어갈 뿐이니
언제 다시 횡문(橫門:장안성 북쪽, 실크로드의 옛 길)으로 달려보려나

(安西都護胡靑驄/聲價欻然來向東/此馬臨陣久無敵/與人一心成大功/
功成惠養隨所致/飄飄遠自流沙至/雄姿未受伏櫪恩/猛氣猶思戰場利/
腕促蹄高如蹄鐵/交河幾蹴層氷裂/五花散作雲滿身/萬里方看汗流血/
長安壯兒不敢騎/走過掣電傾城知/靑絲絡頭爲君老/何由卻出橫門道)


▲ 내성과 외성으로 튼튼하게 지어졌었다는 구자고성에는 이제 사막의 먼지만이 켜켜이 내려앉아 있다.
ⓒ 최성수
사람은 없고 그 자취도 없고 오직 시만이 남아 옛날을 기억하게 한다. 나는 자꾸 두보의 시의 한 어휘 '아득한 모래 땅(流沙)'을 떠올린다. 흐르는 모래가 있는 곳, 그 유사가 바로 타클라마칸 사막이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이 사막의 길, 그 모래 먼지와 한겨울의 살을 에일 듯한 바람과 막막한 시절을 넘어 고선지 장군은 말을 몰았으리라.

교하 고성의 얼음을 깨며, 자신이 갈 길을 바라보다 한 숨 쉬었을 그 고선지 장군을 떠올린다. 그러자 창밖으로 보이는 쿠처의 풍경이 마치 먼 세상에 두고 온 내 이웃 마을같이 푸근하게 느껴진다.

버스는 그런 내 상념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열 종대의 백양나무를 지난다. 길가로 허름한 가게에 한 보자기만큼이나 될까 한 물건을 쌓아놓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양고기를 탁탁 자르더니 팬에 넣고 볶아내는 가게도 있고 막 구워낸 란(위그르의 빵, 화덕에 굽는다)을 늘어놓은 가게도 있다. 길에는 길고 긴 트럭이 지나고, 그 옆을 할아버지가 당나귀 마차를 끌며 지난다. 현재와 과거가 마구 뒤섞여 있는 것 같다.

가이드가 된 늦둥이의 목소리는 사막으로 흩어지고

▲ 백양나무 가로수 길가에 서서 쿠처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은 어쩌면 버스가 아니라 아득하게 지나간 옛 구자국에 대한 그리움일지도 모른다.
ⓒ 최성수
백양나무 가로수가 끝나고 나자 이내 또 막막한 사막이다. 내 상념의 끝을 함께 여행을 떠난 늦둥이가 잡아챈다.

"아빠, 내가 고선지 장군 이야기 해도 돼요?"

여행을 떠나기 전, 실크로드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은 녀석은, 함께 여행하는 아빠의 친구들에게 제가 아는 이야기를 해 보고 싶은 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버스 안의 마이크를 녀석에게 쥐어 준다.

녀석은 입 가까이에 마이크를 가져다 댄 채 제가 아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곳 쿠처는 고선지 장군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래요. 고선지 장군은 고려의 유민이었거든요. 아버지 고사계가 이 쿠처에서 군인을 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답니다. 어려서는 동네 친구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대요.

'이 못난 고구려 놈아'하고 아이들이 놀려댔지만, 고선지 장군은 그런 놀림을 이겨내고 이 실크로드를 호령하는 장군이 되었지요. 많은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지만, 탈라스 전투에서 패한 뒤 당나라의 서울인 장안에서 살았대요. 그런데 안록산이 난을 일으키자 황제는 또 고선지 장군을 불러 난을 막으라고 명령했답니다."


녀석은 책에서 본 이야기를 잘도 기억하고 있다가 주절주절 털어놓습니다. 안록산과 싸움을 벌이던 고선지 장군은 싸움에서 밀리게 되자 군량미를 풀어 군사들에게 배불리 먹이고, 남는 것은 적의 손에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불태워 버렸다.

그런데 고선지를 미워하던 그의 변령성이 이 사실을 왜곡해 싸우기 싫어 일부러 패배했으며, 귀한 군량미를 남용했다고 황제에게 고했다. 이 일로 고선지 장군은 참수형을 당하게 된다. 목이 베이기 직전, 고선지 장군은 형장에 나온 부하들에게 자신의 결백을 믿는다면 잘못이 없다고 세 번 소리치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잘못이 없다'고 세 번 외친다. 그 소리를 들으며 고선지 장군은 목이 잘려 죽게 된다.

▲ 고선지 장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늦둥이. 어쩌면 고선지 장군이 늦둥이의 나이였을 때 이곳 쿠처에서 자랐는 지도 모른다.
ⓒ 문정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고선지 장군의 이야기를 읊어대는 늦둥이 나이쯤에, 고선지 장군은 이곳 쿠처에 살았을지도 모른다. 고선지 장군이 처형단한 것이 755년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이다. 천년도 더 되는 그 아득한 세월을 고선지 장군 이야기는 이 타클라마칸 사막을 떠돌다 우리 늦둥이의 이야기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모든 이야기는 이야기꾼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법이다. 고선지 장군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이곳 쿠처에서 그 나이 또래의 우리 아이를 통해 장군이 이야기로 환생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을, 나는 잠시 했다. 그런 착각이 가능한 것은 이곳이 더 기댈 것 하나 없이 막막한 사막이고 사막에서 살아있는 것은 바람과 햇살뿐이기 때문이다.

사막의 쨍쨍한 햇살과 건조한 바람은 때로 사람의 생각을 하얗게 지워버린다. 지워진 생각 속에는 전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이야기들이 환상처럼 조합되기도 하는 법이다.

키질 천불동을 향해 달리는 버스 차창으로는 결코 변할 것 같지 않은 무채색의 사막 풍경이 이어지고, 나는 그 풍경들 속에서 그저 멍하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텅 빈 내 머릿속의 사막으로 고선지 장군이 스쳐 지나간다. 그 환영 또한 한 줄기 햇살이거나 혹은 바람인지도 모른다.

▲ 자동차와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사이좋게 뒤섞여 모래처럼 바람에 흐르는 쿠처의 길
ⓒ 최성수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비롯한 저의 글들은 제가 운영하는 카페(cafe.naver.com/borisogol.cafe)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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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교사이며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사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