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늙지 않았다" 월드컵 16강전에서 프랑스가 스페인을 3-1로 꺾은 27일 밤 프랑스 팬들이 파리 샹젤리제거리에서 국기를 흔들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 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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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늙은 줄 알았던 휴화산이 힘차게 솟구쳐 오르는 것을 봐왔노라…."

벨기에 출신 가수 자크 브렐은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늙은 프랑스가 불을 뿜었다. 지난 23일 G조 예선 3차전에서 토고를 꺾어 2002 한일 월드컵의 악몽을 떨쳐버린 프랑스가 16강전에서 다시 스페인을 넘어 8강에 진출했다.

2006 독일 월드컵 프랑스-스페인 16강전이 3-1 프랑스의 승리로 끝난 27일 자정(이하 현지 시각) 무렵, 파리의 샹젤리제는 광란 그 자체였다.

타임머신을 탔던 것일까. 1998 프랑스 월드컵으로 돌아온 듯한 착각이 든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월드컵 결승에서 브라질을 3-0으로 누르고 프랑스가 우승컵을 거머쥐던 그 순간 샹젤리제로 쏟아져 나온 끝이 보이지 않던 인파들을 다시 보는 듯하다.

지난 23일 프랑스의 16강 진출이 확정된 날에도 샹젤리제는 삼색기와 자동차의 경적 소리로 뒤덮혔지만 교통만은 원활했다. 경기가 끝난 직후인 밤 11시경 프랑스팀의 푸른 유니폼을 입은 10여 명의 젊은이들이 20여 분간 샹젤리제의 교통을 방해한 일은 있으나 해프닝일 뿐이었다.

그러나 27일, 프랑스가 8강행 티켓을 따낸 이날 샹젤리제는 온전히 승리에 도취한 시민들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차량 진입이 통제된 공간을 자유롭게 '점거'한 시민들은 폭죽을 터뜨리고 횃불을 밝혔다. 샹젤리제가 시작되는 개선문 주변에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자동차들도 박자에 맞춰 경적을 울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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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 라프랑스(아자, 프랑스)'를 외치는 인파가 한바탕 휩쓸고 가면 그 뒤로 '지주(지단의 애칭), 지주, 지주!'를 연호하고 또 그 목소리가 잦아든 자리에 '리베리, 리베리, 리베리'가 파고들었다. 큰 원을 이루며 어깨를 건 인파 사이에서 '라 마르세예즈(프랑스 국가)'도 웅장하게 번져나갔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초대형 트럭 위에 올라탄 젊은이들은 삼색기를 흔들며 노래를 불렀고 여기저기서 샴페인이 터졌다. 축제였다. 이날 밤, 프랑스인들의 감격과 환호는 오랫동안 계속됐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일이다. G조 예선 1차전인 스위스전이 0-0 무승부로 끝나자 프랑스는 '레블뢰(푸른 군단)'를 비아냥거렸다. 2차전인 한국전이 다시 1-1 무승부로 이어졌을 때 비아냥은 거침없는 비난으로 바뀌었다.

예선 마지막 경기인 토고전이 끝나고 나서야 프랑스는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것은 프랑스와 프랑스팀의 극적인 화해를 이끌어낸 경기였다. 그리고 강호 스페인을 누르고 8강에 오른 이날, 프랑스는 푸른 유니폼 앞에 비로소 하나가 됐다.

프랑스의 월드컵 축제는 이제부터 다시 시작, 이번에는 8강이다. 다음달 1일 프랑스는 강력한 우승 후보 브라질을 상대로 8강을 겨루게 된다. 프랑스와 브라질이 월드컵을 통해 만나는 것은 1998년 월드컵 결승전 이후 처음.

"늙은 프랑스는 멀리 더 멀리 갈 것이다."

스페인전 직후 프랑스팀 감독 레몽 도메네크는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인들은 이제 도메네크를 의심하지 않는다.

ⓒ 박영신
2006-06-28 15:2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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