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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돈화문이 활짝 열렸다. 1976년 이래 가이드 인솔에 의한 관람만이 허용되던 창덕궁이 지난 15일부터 매주 목요일에 한해 자유 관람을 허용한 것이다. 대상 지역은 낙선재를 제외한 궁궐 일대와 후원의 거의 모든 구역으로, 이제는 창덕궁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온종일 만끽하며 사진이나 화폭에 담을 수 있게 됐다. 창덕궁이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자유 관람 되던 15일, 창덕궁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 후원으로 가는 길.
ⓒ 박정민
창덕궁이 갖는 의미는 여러모로 각별하다. 서울의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만큼 가장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조선 왕조 500년 동안 내내 왕궁의 기능을 수행했던 곳도 창덕궁뿐이다.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관리와 개보수를 해온 만큼 그 고아함과 조화미는 비길 데가 없다.

후원(한때 '비원'으로 불렸던)의 의미는 생태적 시각으로 볼 때 더욱 각별하다. 9만 평에 이르는 드넓은 궁중 정원인 창덕궁 후원은 홍릉 수목원과 더불어 강북에서 가장 소중한 숲이자 한국적 조경미학의 대명사와 같은 존재로, 사람과 동식물 모두에게 중대한 가치를 갖는다.

▲ 부용지에 연꽃처럼 걸쳐 있는 부용정은 한국 정자 건축의 백미로 꼽힌다.
ⓒ 박정민
▲ 부용지에서는 원앙, 왜가리, 해오라기 등 여러 종류의 물새가 관찰된다. 새끼 원앙이 가벼운 몸무게 덕에 연잎 위를 사뿐사뿐 걸어다니는 귀한 모습도 구경할 수 있다.
ⓒ 박정민
연재의 앞부분에서 기자는 유럽식 공원을 비판 없이 모방해 온 우리나라 공원들의 모습을 지적한 바 있다. 그 답이 바로 후원이다. 자연을 깎고 뒤엎어 그 위에 웅장한 건축물을 눌러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품에 편안히 안겨 그대로 녹아드는 차경(借景)의 미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 바로 창덕궁과 후원이다. 딴은, 왕실이 500년 동안 관리해 온 이곳을 두고 달리 어디에서 전범을 찾으랴.

▲ 사대부 저택처럼 지은 연경당 역시 전통 건축의 교과서와 같은 존재다.
ⓒ 박정민
▲ 반도지의 관람정. 이 땅에서 유일무이한 부채 모양의 정자다.
ⓒ 박정민
중국과 일본의 전통 정원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이라면 같은 동북아 국가인데도 뭔가가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들게 될 것이다. 얼굴이 비슷해도 음식은 판이하듯 전통 건축에도 다소간의 차이가 있는 것인데, 이는 궁궐뿐 아니라 사찰의 건축양식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예컨대 중국식 건물 배치는 폐쇄적인 형태의 긴 직사각형이다. 자금성을 가도 공묘나 소림사를 가도, 심지어 주장 고거촌의 대감댁을 들어가 봐도 똑같다. 그러나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울퉁불퉁한 지형 지세를 거스르지 않고 반듯한 직사각형으로부터 한참 벗어나는 파격적 건물 배치를 종종 구사해 왔다.

전통 사찰에서는 흔한 모습이거니와 애초부터 왕의 기거와 집무를 위해 지었던 창덕궁에도 이런 방식이 도입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선조가 얼마나 친자연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한 방증이다. 오늘날 한적한 시골 읍내에까지 고층 아파트가 들어차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과연 누구의 자식인지' 의아해지는 것은 기자뿐일까. 생태건축, 친환경조경이 하나의 산업분야로 성장해가고 있는 요즘, 활짝 열린 창덕궁을 거니는 맛은 더욱 각별하다.

▲ 후원 중의 후원, 옥류천의 소요암. 바위에 살짝 물길을 내어 운치를 더했다. 인조의 어필과 숙종이 지은 싯구가 새겨져 있기도 하다.
ⓒ 박정민
▲ 옥류천이 거느린 정자 중의 하나인 청의정. 궁궐 유일의 초가지붕 건물이다.
ⓒ 박정민
끝으로 자유관람에 따른 입장료 인상 논란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창덕궁은 자유 관람을 하면서 입장료를 1만5천 원으로 정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기자는 이에 대해 별다른 불만이 없다. 우선 쌀수록 좋다는 것은 판매자를 대하는 소비자의 입장이지 우리 모두의 문화유산을 대하는 시민의 입장은 아니다. 자유관람만큼은 받을 만큼 충분히 받는 것이 무분별한 행락객의 물결을 방지하는 현실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간단하다. 다른 날 오면 된다. 비싼 자유 관람은 목요일에만 실시하는 것이며, 이것은 사실 '마니아'와 '업자'들을 위한 배려라고 봐야 옳다. 다른 날은 예전과 동일한 방식, 동일한 가격이다. 김밥도 마음대로 못 먹게 하는 궁궐에서 평일날 온종일 있을 각오일진대 1만5천 원이라는 액수가 과연 장애물이 될까. 창덕궁의 가치는 커피 3잔의 적어도 10배는 된다고 기자는 믿는다.

▲ 대조전 옆에 딸린 수라간. 20세기 초에 다시 만든 것이라 서양식 주방처럼 생겼다. 일반관람 때는 챙겨보기 어려웠던 곳의 하나다.
ⓒ 박정민
창덕궁은 그런 곳이다.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고 보이는 건물은 죄다 국보가 아니면 보물이다. 더구나 후원의 대부분은 숲이기 때문에 관리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홍대앞 클럽에 가서 왜 이렇게 의자가 불편하냐고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창덕궁은 좀 특별한 곳이라고 치고 말자.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런 곳을 멋대로 개조하고 외국 사람들 파티를 차려준 일은 백 번 잘못됐다. 책임 있는 조치가 뒤따르리라 믿는다. 이 모든 논란도 창덕궁을 지켜보는 애정어린 눈길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 아닐까. 나는 벌써 백련으로 가득한 한여름의 부용지와 온갖 단풍으로 꿈같이 치장한 가을의 애련정이 몹시 기다려진다.

▲ 창덕궁 일대에서 가장 나이를 많이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느티나무. 1000년은 족히 넘었다고 한다. 가운데 줄기는 아직 정정하게 푸른 잎을 달고 있다.
ⓒ 박정민
▲ 천연기념물 194호로 지정되어있는 750년 된 향나무. 이밖에도 창덕궁 안에는 무려 650년 된 진귀한 다래나무(천연기념물 251호) 등 무수한 노거수가 설화처럼 서있다.
ⓒ 박정민


창덕궁을 찾으려면

창덕궁 관람 방법은 얼핏 들어서는 무척 까다로워 보이지만 정작 가보면 그렇지도 않다. 아래와 같은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하면 된다. 방식에 관계 없이 월요일은 휴궁이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으며, 더욱 상세한 정보는 창덕궁 홈페이지 http://www.cdg.go.kr 를 참고하면 된다.

▲ 일반관람 :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1시간 20분 동안 기본구역을 관람하는 방식. 입장료 3000원. 매일 매시 15분과 45분에 입장하며 예약도 필요 없고 인원 제한도 없기 때문에 그냥 찾아가면 된다(목요일은 제외). 창덕궁이 낯선 분들은 처음부터 자유 관람 욕심을 내지 말고 우선 한번은 일반관람을 하실 것을 권한다.

▲ 자유관람 : 하루 종일 마음대로 관람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는 방식. 4~11월에 한해 매주 목요일에만 실시하며, 예약은 필요없다. 입장료 15000원. 하루 1000명으로 인원을 제한하지만 여기에 걸려 발길을 되돌리는 일은 별로 없을 듯하다. 불안할 경우 창덕궁 관리소에 전화로 확인해 보면 된다(762-0648). 단, 창덕궁 내에는 음식물 반입과 흡연이 일절 금지되어 있음은 고려해야 한다.

▲ 특별관람 :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특정구역을 관람하는 방식. 옥류천 특별 관람과 낙선재 특별관람이 있다. 입장료 각 5000원.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는 것이 안전하며, 약간의 분량은 현매용으로 남겨두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예약 없이 가도 표를 구할 수 있다(목요일은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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