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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중요하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빠진 환경담론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 십상입니다. 경외감은 체험에서 우러납니다. 서울이라는 콘크리트 정글 속에도 주말을 이용해 한 포기 풀과 한 마리 새를 찾아볼 수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서울의 대표적인 생태기행지들을 연재기사로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 여의도샛강생태공원 입구
ⓒ 박정민
'생태공원'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쓰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그리 낯설지 않은 용어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유럽식 정원을 비판 없이 모방한 기존의 공원과 달리 자연생태계의 보전과 생태관찰을 주목적으로 하는 생태공원은 도시라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과 자연 사이에 이룰 수 있는 타협의 한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서울에도 어느덧 10곳 가까운 생태공원이 조성, 운영되고 있다. 위락시설과 편의시설로 가득한, 또 하나의 대량 소비 공간인 기존 유명 공원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인지도와 규모. 하지만 대신 그곳에는 살아 숨쉬는 생명체들이 있다. 우리에 갇히지 않고 전지가위로 재단 당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낮은 인지도 덕에 주말에도 호젓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는 이점은 덤이다.

우리나라 생태공원 제1호는 여의도에 있다. 여의도 남단과 영등포 사이를 흘러 여의도를 섬이게끔 만들어주는 작은 개천, 이름하여 샛강 둔치에 조성된 '여의도샛강생태공원'이다. 1997년 9월에 조성되었다고 하니 벌써 9년 역사를 자랑한다.

△ 위치: 여의도 남단 여의교~서울교 사이 (길이 1200m, 폭 130m)
△ 면적: 약 5만4800평
△ 교통: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1번 출구에서 도보 5분 거리


▲ 샛강생태공원의 습지와 관찰데크
ⓒ 박정민
여의못 지구, 해오라기숲 지구, 생태연못 지구의 세 구역으로 나뉜 샛강생태공원에는 (다른 생태공원이 그렇듯) 별다른 시설물이랄 것이 없다. 강변 습지 특유의 갈대밭과 버드나무숲, 2개의 연못, 지하수 공급 시설, 그리고 사이사이로 조성된 목재 관찰데크가 전부다. 매점은 물론 휴게시설도 없으며 간이화장실도 잘 찾아야 겨우 눈에 띈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다'거나 '시설물이 미흡하다, 왜 좀 더 많은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았느냐'고 탓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결국 산에 다니기 편하게 케이블카를 놓자는 것과 같은 발상이다. 당장에 더 편하자고 지은 수많은 인공시설이 환경을 훼손하고 동식물을 쫓아내며 결국에는 인간 자신의 건강까지 해쳐온 악순환을 이제는 재고할 때가 되었다.

대신 샛강생태공원에서는 비록 자그마한 규모나마 통째로의 자연을 느낄 수 있다. 돈을 들여서 원예종 식물을 1년에도 몇 번씩 갈아 심지 않아도 때가 되면 알아서 갖가지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박새, 직박구리, 붉은머리 오목눈이, 노랑턱멧새 같은 작은 새는 물론, 갈대밭에는 꿩이 돌아다니고 연못에는 쇠오리가 노닌다.

▲ 직박구리. 도심 녹지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다. 무척 요란한 소리로 울어댄다.
ⓒ 박정민

▲ 장끼 한 마리가 기자를 발견하고는 부리나케 도망치는 중이다.
ⓒ 박정민
안내판에 의하면 2002년 12월에 조사된 것으로도 식물 104종, 조류 54종, 어류 16종, 곤충 124종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에서 확인되는 조류가 각각 50종을 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만만치 않은 종 다양성이다. 땅과 물이 공존하는 곳, 습지의 힘이다.

▲ 여의계류. 인근 지하철역에서 나오는 지하수를 끌어와 수질 개선 효과를 얻고 있다.
ⓒ 박정민

▲ 지하수를 끌어와 조성한 여의못은 1급수를 유지하고 있어 많은 물고기와 파충류, 양서류를 볼 수 있다.
ⓒ 박정민
생태공원이 도심지 생물들의 피난처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입장료도 관람제한시간도 없이 누구나, 아무 때나 들어가 호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곳은 그냥 산책코스로 여기고 찾아도 충분한 보상이 되는 곳이다. 버드나무숲과 연못 사이로 잘 연결되어있는 산책로와 관찰데크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평일 점심시간에 이곳을 찾아 머리를 식히는 직장인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 풀밭 사이를 돌아다니는 집토끼는 샛강생태공원의 명물이다. 인근 아파트에서 기르던 것이 땅굴을 파고 탈출해와 이곳에 정착한 녀석들이라고 한다.
ⓒ 박정민
샛강생태공원의 커다란 장점 하나는 찾아가기가 쉽다는 것이다. 서울 한복판인 여의도라는 점도 있지만, 지하철역에서 내려 5분만 걸어가면 다다를 수 있다. 가까이에 사는 주민들은 물론 다른 일로 여의도를 찾는 사람들도 잊지 말고 들러볼 만한 곳이다.

그리고 인근 여의도공원이나 한강시민공원 여의도지구와 한번쯤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단정하게 정비된 깍두기 형 공원과 촌닭처럼 우거진 생태공원, 과연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가.

▲ 샛강과 생태공원의 전경. 왼쪽이 영등포, 오른쪽이 여의도.
ⓒ 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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