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칸에서 시위를 벌인 최민식씨는 "왜 많은 영화인들이 칸까지 와서 스크린쿼터를 외치는 지 냉철하게 봐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 박영신
"통과됐어요. 만장일치랍니다!"

지난 21일 칸 영화제의 선언문이 발표되던 날, 배우 최민식씨를 찾았을 때 들은 그의 첫 마디였다.

이날 칸 국제영화제 최고 의결 기구인 이사회는 우리나라의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을 지지하는 공식선언문을 발표했다. 칸 영화제 질 자콥 조직위원장과 프랑스 문화장관을 비롯한 감독, 배우, 제작자, 배급자 대표 등 20여 명이 모인 이날 연례 이사회에서 한국의 스크린쿼터 지지 선언문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이다.

지난 17일 칸 국제영화제 개막과 동시에 칸 현지에서 '문화침략 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이하 스크린 대책위)' 칸 원정투쟁단이 벌여온 평화적 시위는 칸 시민뿐 아니라 현지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이것은 칸 영화제의 스크린쿼터 지지 공식 선언문 발표로 구체화됐다. 이례적인 일이다.

칸 영화제 이사회에 스크린쿼터 지지안이 상정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통과될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다. 상정 자체에 만족하던 터였다. 낮에는 현지 언론 인터뷰, 밤에는 1인시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최민식에게도 이것은 예상치 못한 성과였다. 그를 만났다.

"칸 이사회에 경의... 우리가 집단이기주의 아니라는 증거다"

- 칸 영화제 이사회가 공식적으로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을 지지하는 선언문을 채택했다. 어떤가?
"먼저 칸 영화제에 경의를 표한다. 이사회에 스크린쿼터 논의가 상정된다는 말만으로도 기뻤으나 상정안이 통과되기를 내심 기대했다. 우리가 <올드보이>로 칸을 찾았을 때 <화씨 9/11>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런 정황을 볼 때 영화제가 중립을 지킨다고는 하나 칸 영화제의 돌발성이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그러나 만장일치라니 놀라울 뿐이다.

칸 영화제가 우리의 스크린쿼터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했다는 것은 단지 한국이라는 특수한 나라의 영화산업이라는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한국의 스크린쿼터 축소는 지난해 유네스코를 통과한 문화 다양성 협약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을 국제사회가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세계 문화인들의 깊은 우려를 끌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영화인들만의 집단이기주의가 아니라는 말이다."

- 칸 영화제가 개막된 지난 17일 당신은 스크린쿼터 사수 플래카드를 들고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영화계 스타들이 팔레 데 페스티발의 붉은 양탄자를 오르고 있었다. 당신도 이미 두 차례에 걸쳐 붉은 양탄자를 밟았는데, 영화배우가 영화를 가지고 칸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투쟁하러 왔다. 당시에 무슨 생각을 했나?
"나의 칸 방문이 이번이 처음이라면, 내가 칸과 전혀 연관이 없었다면, 좀더 투철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칸에서 두 차례 나름대로 융숭한 대접을 받은 경험이 있다. 그야말로 영화제를 소비하고 즐겼던 기억이 있어 씁쓸하다.

첫 날 침묵시위 도중 팔레 데 페스티발에 개막작인 <다빈치 코드>(2006, 론 하워드)가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서글펐다. 회한이랄까? 2년 전에는 우리 영화가 저 스크린을 채우고, 우리 감독과 배우가 팔레 데 페스티발 계단을 올랐고, 세계 언론이 주목했고, 관중이 박수 쳤고, 심사위원단이 우리 영화에 찬사를 보냈다."

- 며칠 전 한국의 5개 부처 장관은 다음달 3일 미국으로 향하는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 본부 미국원정투쟁단'에 경고성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안 막으려 한다. 충분한 대화가 있고 의견 수렴 과정이 있었다면 원정단이 왜 미국까지 가나. 원정단은 우리나라 국민이 아닌가. 자국민 보호라는 말이 무색하다. 무엇보다 과거의 군사정권이 아니라 참여정부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어처구니 없다."

"관료들의 모욕적인 발언이 나를 투사로 만들었다"

▲ 칸 영화제에서 촛불시위를 벌이고있는 최민식.
ⓒ 박영신
- <취화선>, <올드보이> 등으로 승승장구하던 당신이 이제는 '투사'가 된 배경이 궁금하다.
"모욕감이었다. 작년 11월까지만 해도 정동채 전 문화관광부장관이 '스크린쿼터제는 우리나라 영상산업을 위해 지켜져야 한다'고 말해놓고 올 1월 한덕수 부총리는 '영화계에 조직적인 집단이기주의가 있다'고 발언하는데 모욕감을 느꼈다. 권태신 재경부 차관은 '(배우가) 외제차는 왜 타나, 명품은 왜 하나' 등 발언을 하기도 했다."

- 국무회의에서 스크린쿼터를 연간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하는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된 지난 3월 7일, 당신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식량 주권과 문화주권을 팔아먹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는 등 강경 발언을 해왔다. 그로 인해 적잖은 반발을 사기도 했는데, 대중의 사랑이 필요한 배우로서 이같은 정치적 발언을 하는데 두려움은 없었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했다. 나 또한 말하고 보니 세긴 셌던 것 같다. 그 여파가 전혀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내가 철이 없어 그런 지는 모르겠으나 대중 예술인으로서 내 생각을 솔직히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지금 가만히 있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 영화인들의 집단 이기주의 논쟁이 불거진 가운데 지난 2월 17일 한·미 FTA 저지 촛불문화제 '쌀과 영화'에 참석해 농민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당시의 감회가 궁금하다.
"절 할때 나 스스로도 낯 간지러웠으나 누군가는 해야 했다. 처음에는 '살려달라', '손 잡자'는 심정으로 엎드렸다. 그러다가 그분들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며 만나다 보니 친해져버렸다. 다른 노동·농민 단체들과 한 울타리에 살면서 영화인들이 사회문제에 너무 무관심했다는 걸 느꼈다. 우리를 비판하는 세력에 그것이 빌미가 돼 우리의 투쟁이 흐려진 것도 사실이다. 알고 안 하는 것과 모르고 안 하는 것은 다르다. 이제 알았으니 하는 것이다. 시작이 중요하다."

- 지난 2월 7일자 <오마이뉴스>는 자신을 귤 농사꾼이라고 소개한 한 시민기자의 기사를 실은 바 있다. 기사는 영화뿐만 아니라 광고계까지 인기를 휩쓸고 있는 당신이 델몬트 주스를 광고하면서 문화산업 운운하며 '정부에 대해 배신감'이라는 발언을 할 수 있는 지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심정적으로 이해한다. 내가 그 사람 입장이었어도 최민식이 미웠을 것이다. 대중예술인들이 평소에 사회 문제에 관심 없다가 갑자기 스크린쿼터 운운하는 거 가관이다. 변명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델몬트 광고는 6~7년 전 일이다. 심정적으로 이해하나 그것이 이번 사안을 논리적이고 공정하게 비판하는 잣대가 되면 안된다. 평소 농민들에게 관심이 있었다면 델몬트 광고를 찍었겠냐는 말은 맞지만, 언론의 자세는 아니다."

- "대한민국 배우들, 돈 너무 밝혀요", "영화계 전체가 돈 벌어서 몇몇 스타들에게 갖다 바치는 꼴"… 스크린쿼터 축소에 항의하는 영화인을 비판하는 이들은 강우석 감독의 이 발언을 종종 인용하곤 했다. 당사자 입장에서 이것을 어떻게 봤나?
"그것이 좋은 공격의 빌미가 됐다. 철저히 사견이지만 기가 막힌 시나리오라는 생각이다. 당시 수많은 언론이 강 감독과 함께 있었는데 그 발언을 기사화한 유일한 신문이 <조선일보>다. 가설이지만 우리 영화인들이 이용당했다 할 수 있다. 사건을 이슈화하기 위해 나와 송강호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때 외제차니 양극화니 하는 말이 나왔다. 배우들의 개런티에 딴죽 걸고 표피적인 숫자인 억대 개런티와 말단 스태프의 최저생계비를 단순 비교해 몇몇 스타 감독들이 마치 스태프를 착취하고 방관하고 우리만 잘 먹고 잘 살자는 지주와 노예에 비유하며 전 언론이 다퉈서 보도했다.

편파보도에 짓밟힌 배우들의 인권은 속수무책이었다. 고소득 저소득 때문에 사회 구성원으로서 부당한 현안에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건가. 스태프 처우를 방관했던 점은 철저히 반성하고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스태프의 몫을 뺏은 것은 아니다. 스태프의 몫이 배우의 과도한 개런티에 뺏긴다는 말은 지나가는 개도 웃는다. 배우의 개런티가 깎여 스태프에게 돌아간 예가 없다. 제작 시스템을 투명하게 밝힌 제작사가 없다."

- 노무현 대통령과 영화인의 만남에서 대통령은 말했다. "그렇게 자신 없습니까?"라고.
"현 정부가 가진 문화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처사였다. 특히 정동영 의장이 기자 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영화의 총 수익은 연간 5천억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중소기업의 수익률과 비슷하다. 이것 때문에 국익에 도움되는 산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 발언을 하고 5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한류 이야기를 꺼냈고 '영상, 미디어 산업이 부가가치가 높다.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인다'고 역설했다. 장동건씨 등 한류 스타들 덕에 동남아에서 장사하기 좋아졌다고도 했다. 어떤 장단에 춤 춰야 하나. 5분 전에는 영상산업을 매도하고, 5분 후에는 지식 기반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헷갈린다. "

- 솔직히 당신은 스크린쿼터가 축소된다해도 큰 피해를 볼 만한 배우는 아닌 것이 사실이다. 왜 전면에 서 있나?
"낯 간지럽지만, '보은'이다. 은혜를 입었으니 돌려줘야 한다. 평생 이 울타리 안에서, 이 창작의 굴레 안에서 살다 죽고 싶다. 주연만 고집하지 않고 영화 이야기 하면서 영화인들과 어우려져 살고 싶다."

"싸움이 정리되는 모습을 보고 영화에 복귀할 것"

▲ 18일 칸 영화제 주 행사장 앞 광장에서 기습 1인시위를 시도한 최민식이 경찰에 제지를 받자 시민들이 그를 에워싸 호위했다.
ⓒ 박영신
- <주먹이 운다> 이후 당신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보기 어려워졌다. 현재 촬영하는 영화도 없는 것으로 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스크린쿼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영화 촬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고, 같은 맥락에서 11개의 시나리오를 거절했다는 말도 들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 싸움의 윤곽이 드러날 때가 있을 것이다.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내 모든 열정이 스크린쿼터 운동에 쏠려있는 가운데 영화를 찍게 되면 CF광고 연기 밖에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정리가 되는 모습을 보고 영화로 돌아가고 싶다."

- 영화인 중에서도 유일하게 투쟁하고 있는 것 같다. 동료 영화인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후배들이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왜 미안한가. 싸움은 쪽수 많아 되는 것 아니다. 열심히 영화 찍어라. 정말 필요할 때 도와달라.' 이렇게 말해줬다. '우리'가 필요하면 전화달라고 하더라. 그런 말이 힘이 된다. 대부분의 후배들이 응원과 격려를 보내줘 고맙다."

- 덧붙이고 싶은 말은?
"정부에는 할 말 없다. 영화를 자국문화의 소중한 일부분으로 보는 정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왜 많은 영화인들이 칸까지 와서 스크린쿼터를 외치는지, 정말 그들의 집단이기주의인지 관심을 갖고 들어와 냉철하게 봐주기 바란다. 관심이 동반된 비판이라면 얼마든지 수용한다. '배부른 돼지' 등 선정적인 단어를 동원한 비상식적인 비판으로 인신공격하지 말라. 내가 자국의 영화를 지키기 위해 거리를 헤매는 마지막 배우이길 바란다."

▲ 최민식의 1인 시위를 경찰이 제지하자 프랑스 기자가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박영신
2006-05-23 12:31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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