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BC4의 <아시아인의 침공> 한국영화 편 웹 사이트.
드디어 한국영화가 영국의 안방에까지 침투했다.

지난 24일 밤 10시(현지시간), 영국 공영방송 BBC의 지식문화 전문채널 BBC4는 한국영화와 한류를 다룬 1시간짜리 특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했다. 영국 공영방송이 한국영화를 1시간짜리 방영물로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BBC의 영화비평 전문프로그램 <영화 2006>의 진행자인 조나단 로스에 의해 진행된 이 프로는 <아시아인의 침공(Asian Invasion)>이라는 3부작 다큐멘터리로 제작됐다. 한국영화 편은 일본영화와 홍콩영화에 이어 3부 순서에 방영됐다.

BBC는 특히 이번에 처음으로 집중조명한 한국영화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BBC4는 <아시아인의 침공> 방영 전후로 아시아 영화 8편을 선보였는데 이중 3편이 <고양이를 부탁해>(2001), <취화선>(2002),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2003) 등 한국영화였다. 이번 특집과 관련해 BBC4가 웹사이트에서 진행 중인 경품행사의 질문도 '누가 <올드보이>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을 감독했나'다.

영국인들의 안방을 노크한 한국영화

조나단 로스의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 인사로 시작된 한국편은 '한류(Korean wave)'에 대한 설명으로 프로그램을 열었다.

로스는 최근 10년간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영화들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 전에 한국 현대사를 알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일본의 식민지배, 해방과 남북 상황, 한국전쟁, 남북분단의 아픔, 군사독재와 민주주의 등이 한류의 내용적 바탕이 되고 있다고 해석한 것.

▲ 한류를 알기 위해서는 한국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조나단 로스. <공동경비구역 JSA>가 촬영된 판문점 앞이다.
ⓒ BBC4
프로는 이런 다양한 한국적 상황들과 이 상황들이 만들어낸 문화가 한국영화에 깊이 녹아있으며, 이것이 세계시장에 어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진단했다. 특히 80년대 이후, 영화에 대한 검열이 없어지면서 한국영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BBC는 "사회에 대한 비평과 구습을 반성하는 내용이 신세대 스타일로 새롭게 편집되어 영화계로 급속하게 흡수되면서 한국영화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이어 박찬욱 김기덕 공수창 강제규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영화의 특징들을 주요 장르에 맞춰 소개했다.

BBC가 만난 4명의 감독 : 박찬욱 김기덕 공수창 강제규

▲ 이번 한국관련 다큐에서 집중조명을 받은 박찬욱 감독.
ⓒ BBC4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집중조명을 받은 감독은 박찬욱이었다. BBC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3편과 그의 시상식 장면까지 보여주며 각별한 관심을 표했다. 프로는 우선 남북대치 상황을 다룬 2000년작 <공동경비구역 JSA>에 관심을 보이며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 모두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을 소개했다.

칸에서 심사위원 대상(2004)을 수상한 <올드보이>(2003)에 대해서는 폭력성이 거론됐다. 특히 주인공 오대수가 산 낙지를 먹는 장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는데, 박찬욱 감독은 "주인공 오대수의 폭력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해 이 장면을 넣었다"며, 자신의 폭력 장면은 인간의 고통을 묘사하기 위한 방도라고 말했다. 위 두 영화와 함께 <복수는 나의 것>(2003)도 함께 소개되었다.

▲ 폭력 장면에 익숙한 서양인들조차도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산낙지를 먹는 장면에는 충격을 받은 듯하다. 서울의 한 낚지 전문 음식점 앞에서 <올드보이>에 대해 찬사를 하고 있는 조나단 로스와 <올드보이>의 한 장면.
ⓒ BBC4
▲ 김기덕 감독. 김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영화의 장소가 차지하는 위치가 크다고 강조했다.
ⓒ BBC4
김기덕 감독에 대해서는 정식으로 영화공부를 하지 않은 그가 세계를 놀라게 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특히 김기덕을 베를린과 베니스를 포함한 많은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감독이라며, 세계영화평론가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김기덕 감독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 속의 장소인 로케이션이며, 이에 따라 시나리오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2003)이 그의 대표적 영화로 거론됐는데, 물 위에 떠있는 사찰, 1년에 걸친 촬영 등을 상세히 소개했다. <사마리아>(2004)와 <빈 집>(2004)도 함께 소개되었다.

▲ <알포인트>의 공수창 감독은 한국식 공포영화와 귀신의 상관관계에 대해 "한국에서 묘사되는 귀신은 한이 서려 있는 처녀 귀신이 많다"고 말했다.
ⓒ BBC4
한국식 공포영화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BBC가 이를 위해 만난 감독은 <알포인트>(2004)의 공수창 감독. 공수창 감독은 <알포인트>에 등장한 흰옷 입은 귀신에 대한 BBC의 질문에 "한국에서 묘사되는 귀신은 한이 서려 있는 처녀 귀신이 많다"고 강조했다. 또한 공 감독은 <엑소시스트>(1973)에서처럼 방울소리로 관객들의 공포를 유발시키려 했다고 술회했다.

이어 분단과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한국형 블록버스터 <쉬리>(1998)와 <태극기 휘날리며>(2004)를 만든 강제규 감독과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강제규 감독의 <쉬리>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남과 북의 대치상황을 그렸다는 면에서 흥미만을 위해 만들어진 팝콘 영화는 아니라는 게 BBC의 해석이다.

▲ 한국 최대의 블럭버스터로 평가받은 <태극기를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 강 감독은 이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영화관과 영화들의 설정에 대해 설명했다.
ⓒ BBC4
<태극기...>와 관련해서는, 스필버그식의 전쟁 휴먼드라마 요소가 강하지만 형제의 비극이란 면에 집착해서 제작된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강조되었다. 강제규 감독도 "당초 이 영화는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로 만들어질 예정이었으나 한국전쟁의 비극을 강조하기 위해 형제애로 내용을 바꾸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 밖에도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김상진 감독의 <주유소 습격사건>(1999), 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2001) 등도 주목할만한 최근의 한국영화로 소개되었으며, 북한영화 <불가사리>(1985)와 신상옥 감독의 납북문제 및 그에 대한 일화들도 간략하게 소개됐다.

조나단 로스, "한국 일본 홍콩은 동쪽의 빅 보이"

BBC4는 공중파 채널이 아니라 '세트톱박스'를 TV에 부착해야 시청이 가능한 디지털 프리뷰 채널이지만 상당수의 영국인들이 시청하는 방송이다. 또한 공중파 채널 BBC1과 BBC2에서는 매일 수차례에 걸쳐 <아시아인의 침공> 프로그램에 대한 광고를 대대적으로 내보냈으며, BBC4는 이번 특집을 각 나라별로 3회에 걸쳐 재방송했다.

▲ <아시아인의 침공> 프로그램 로고와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는 듯한 한국편 로고. 이번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는 서울 모습이 많이 등장했다.
ⓒ BBC4
방영이 끝난 뒤 BBC 웹사이트 게시판에는 이번 다큐멘터리 기획에 대한 반응이 속속 올라오고 있는데 이번 기획에 대해 만족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또한 일본영화와 홍콩영화에 비해 영국인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한국영화를 알 수 있게 돼 좋았다는 내용도 있다. 그런가 하면, 한국편에 등장한 영화들의 줄거리를 너무 자세히 소개했다는 불평도 있다.

조나단 로스는 한국편 프로의 첫머리에서 90년대부터 본격화된 한국영화의 약진을 '경이로운 사건'이라고 말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90년대 이후의 한국영화가 60년대의 프랑스영화, 70년대의 할리우드영화, 80년대 홍콩영화에 비교될 수 있다고 극찬한 데 이어 프로그램의 끝 부분에서는 한국을 일본, 홍콩과 더불어 '동쪽의 세 빅 보이'라고 칭했다.

현재 한국영화들은 간간이 영국에 수입되어 극장 개봉을 하거나 아마존 같은 홈쇼핑 사이트나 일반 전문점에서 DVD로 구입하는 정도다. 영국의 일반시민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게 사실. 이번 BBC의 다큐멘터리가 한류의 영국 및 유럽 상륙으로 이어지는 초석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시아인의 침공>은 어떤 프로?

조나단 로스의 <아시아인의 침공>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철저히 영국적인 시각의 프로그램이다. 영화를 최초로 만들고 발전시켜 아시아에 전파했던 서양인들이 이제는 아시아인들로부터 영향을 받게 됐다는 것. 이에 따라 <아시아인의 침공>에서는 아시아 각국 주요감독들에 대한 인터뷰, 최근 영화경향들에 대한 소개가 주로 다뤄졌다.

1부 일본영화편에서는 키타무라 류헤이, 오시이 마모루, 미야자키 하야오, 기타노 다케시 등 유명 영화감독 인터뷰와 이들의 영화 소개 및 간략한 분석들이 제시됐다. 언급된 주요 영화는 <공각기동대>(1995), <아바론>(2001),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캐산>(2004), <베수스>(2004) 등 한국에도 익히 알려진 것들이다.

2부 홍콩영화편에서는 주성치, 왕가위, 이동승 감독들과의 인터뷰와 주윤발, 양자경 등 유명 배우들에 대한 소개가 주로 다뤄졌다. 특히 최근 홍콩영화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소림축구>(2001), <쿵후허슬>(2004) 등의 주성치 영화들과 <무간도>(2002) 등의 홍콩 느와르 영화들에 대한 분석도 곁들여졌다.

무엇보다도 이 프로그램들에서 관심 있게 볼만했던 내용은 개괄적으로나마 각국의 영화들을 그 나라의 문화 및 역사와 연결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진행자인 조나단 로스는 직접 각국의 현지에서 현재 모습과 역사 및 문화를 배경으로 각 나라의 영화를 소개했다. 3부인 한국영화편도 이런 맥락에서 제작, 방송되었다.
2006-01-26 18:0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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