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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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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옛날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속치마를 입었나봐. 얘는 엉덩이를 쑥 내밀고 있네? 버선 신다가 꽈당 넘어져 버렸네? 히힛 웃긴다! 엄마 그런데 얘가 입은 한복이 참 예뻐. 나도 이렇게 입고 할머니 댁에 갔으면 좋겠다. 그런데 엄마도 어렸을 때 이런 옷 입고 자랐어요? 엄마 그런데 이 털배자라는 것이 참 예쁘다. 복주머니도 예쁘고…."

며칠 전 들른 서점 한켠. 엄마와 함께 다정히 그림책을 보고 있던 아이는 뭐가 그리도 재밌고 궁금한지, 쉴 새 없이 종알거렸다.

'대체 무엇이 그리 재밌을까?' 곁눈질로 흘깃 본 그림책 속 아이가 어찌나 앙증맞은지 욕심이 났다. '이렇게 예쁜 그림이 있을까?' 나도 모르게 책을 덥석 집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보면서 고운 한복으로 설빔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동저고리와 다홍치마, 설빔이야기 사실적으로 그려낸 <설빔>

설날 아침, 설빔을 입는 아이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책 <설빔>. 책은 설빔을 입는 순서와 그 순간순간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을 그림을 통해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책 속 아이는 몇 날 며칠 마음으로만 설빔을 수없이 입어보며 설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설빔을 입고 세배도 드리고 복주머니 가득 세뱃돈도 받고 싶어 한다. 드디어 설날이 되고 아이는 설빔을 하나씩 입기 시작한다. 어머니께선 알록달록 색동저고리와 다홍치마를 손수 지어 주셨고 솜버선에는 고운 꽃수까지 놓아 주셨다. 아이는 좌경 앞에서 귀밑머리를 땋고 배씨댕기와 금박댕기를 한다. 털배자를 꺼내 입고, 조바위도 썼으며 복주머니와 노리개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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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실로 꽃 수 놓은 솜버선 / 수눅을 맞추어 한발씩 차례차례 / 힘주어 당겨 신어요. "영차!" / 발라당! / "에고, 깜짝이야" - 책 속에서

아이는 버선이 잘 신어지지 않는지 눈을 질끈 감고 발을 쳐들어 버선을 당겨 신는다. 그 그림이나 표현이 어찌나 생생한지 버선을 신으며 힘들고 갑갑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아이가 뒤로 넘어지는 순간 엎드려서 함께 책을 보던 딸아이와 동시에 웃었다.

"오른섶은 안으로, 왼섶은 밖으로." "자칫하면 풀린다. 자주 고름아, 단단하고 곱게 매듭지어라." 작가는 한복을 입으면서 자주 혼동하고 어려워하는 부분을 아이들도 쉽게 알 수 있도록 사실적으로 풀어냈다.

어릴 적, 설빔 가득 담은 광목주머니 가져올 아버지를 기다리다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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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설빔>이란 책을 보고 있자니 어렸을 적 부모님이 만들어주셨던 '설빔'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 설을 코앞에 둔 장날이면 설빔을 가득 담은 광목 주머니를 메고 나타날 아버지를 기다리며 하루 종일 동네 어귀에서 놀곤 했다. '언제 오실까?' 우리 칠남매는 점심도 거른 채 아버지를 기다리곤 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장만해 온 한보따리의 설빔은 며칠 동안 어머니의 손을 거쳐야 했다. 동생들에게 물려 입히기 위해 큰 옷을 사왔기 때문에 일일이 접어서 꿰매야 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예쁘고 곱게 자라라'는 뜻으로 손수 뜬 꽃을 달아주곤 했다. 우리 칠남매는 아버지가 떠주신 털옷을 설빔으로 입은 적도 있다.

고향이 이북인 아버지의 뜨개질 솜씨는 보통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겨울밤이면 봄에 잘라 둔 대나무를 다듬어 뜨개질바늘을 만들었고 그것을 이용해 칠남매의 옷을 하나씩 뜨기 시작했다. 그 옛날 아버지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주신 설빔은 언제 생각해도 가슴 뭉클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옷이다.

그러나 설 때만 되면 칠남매가 항상 부러워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아이들의 색동저고리가 될 알록달록한 색동천이었다. 어머니는 바느질 솜씨가 좋아 농사일 틈틈이 한복 바느질을 주문받았다. 언젠가 한 번은 색동천을 잘라 가지고 놀아 어머니를 난처하게 만든 적도 있다.

설날, 아이와 함께 <설빔>을 보며 전통문화 알아가는 건 어떨까?

ⓒ 사계절
솜씨 좋은 어머니가 한복을 짓고 남은 천으로 우리 옷을 만들어 줄 법도 한데 야속한 어머니는 우리의 이런 마음은 전혀 모르는 듯, 해마다 다른 아이들의 곱고 고운 색동저고리만 지을 뿐이었다. 사실 어린 마음에 만들어 놓은 색동저고리를 몰래 입어보고 싶었으나 좀처럼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다 크고 나서야 어머니가 설빔을 만들어주고 받은 바느질삯이 우리 칠남매의 설빔을 사주는 데 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머니는 무엇이든 늘 부족했던 가난한 살림에 명절 때나 입고 마는 고운 색동저고리보다는 동생들까지 물려 입힐 수 있는 튼튼한 옷이 더 절실했던 것이다.

▲ <설빔> 겉그림
ⓒ 사계절
잊혀졌던 설빔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게 해 준 그림책 <설빔>. 이 책은 추억 외에도 기존엔 미처 몰랐던 전통문화에 대한 것들도 알려준다. 복(福)주머니에는 두루주머니와 귀주머니가 있다는 것, 한복이며 버선에 꽃수를 놓는 이유는 복(福)과 함께 좋은 운을 불러들인다는 것, 색동은 물, 불, 쇠, 흙, 나무 등 세상을 이루는 모든 원소들이 잘 화합하듯 아이가 무탈하게 잘 자라도록 바라는 마음이라고 하는 등. 작가는 이 내용들을 모두 함축해 예쁘고 앙증맞은 그림으로 표현해 냈다.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담겨 있는 '설빔'과 어머니의 정성을 그림으로 표현해 낸 배현주 작가의 그림책 <설빔>. 이번 설에 아이에게 색동으로 만든 '설빔'은 못 해주더라도 함께 방바닥에 배 깔고 누워 그림책 <설빔>을 보는 건 어떨까?

"전통문화, 자연스럽게 알려주고 싶다"
[인터뷰] <설빔>의 저자 배현주

ⓒ김현자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다는 <설빔>의 저자 배현주(35)씨. 지난 21일 오전 서울 강남역 근처에 있는 작업실에서 배현주씨를 만나 책을 만들게 된 계기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들어봤다.

- <설빔>이란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나 의도 등이 무척 궁금한데.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엔 온 가족이 모인다. 할아버지를 비롯해 아이들까지…. 그때 다함께 공감하면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없을까? 아이들이 좋아할 수 있는 건 뭘까? 이것 저것을 생각하다 보니 '설빔'이 떠올랐다. 특히 설빔에 담긴 우리 어머니들의 정성을 알리고 싶었다."

- 어렸을 때 전통문화를 많이 접했나? 특별히 설빔을 소재로 책을 만든 이유는?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새 옷을 입으면 늘 기분이 좋았다. 어렸을 때 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늘 아쉬워했던 점이 중국이나 일본 아이들은 자기네 나라 모습과 옷을 입은 인형을 가지고 노는데 우리에겐 왜 '바비인형' 같은 것밖에 없는가란 것이었다. 그래서 그림책에 우리의 모습을 담아보고 싶었다."

- 책 속에 등장하는 아이가 매우 사실적이다. 따로 모델이 있는 건 아닌지.
"특별한 모델은 없다. 늘 생각하던 아이였고 그림으로 반드시 표현해 내고 싶었던 모습이었다. 나이는 9~10살 정도인데, 꼭 그 나이를 생각한 건 아이들이 그 나이가 되어야 옷에 대해 구체적인 관심이나 애정도 생기고 자기가 입는 옷을 매무새 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구 딸에게 한복을 입혀 수십 장의 사진을 찍어 참고했다."

- <설빔>엔 주인공 이름도 없고 페이지도 없다. 일부러 의도한 것인가?
"우리 것을 알려주려는 책들은 주로 교훈이나 교육적인 측면을 앞세우다보니 많은 이야기와 박물관 전시자료들이 들어간다. 그래서 아이들 중에서는 따분해 하는 아이들도 있다. 많은 아이들이 <설빔>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무언가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이후 계획은?
"현재 남자아이 모습을 스케치 하고 있다. 조만간 책으로 나올 것이다. 앞으로도 <설빔>처럼 아이들에게 우리 것을 자연스럽고 친근감 있게 알려줄 수 있는 그림책을 꾸준히 만들고 싶다." / 김현자

명절에 읽는 책 6종 세트 - 솔이의 추석 이야기/설빔/신나는 열두 달 명절 이야기/명절 속에 숨은 우리 과학/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 길벗어린이(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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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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