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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또 하나의 식구

▲ 카사의 깜찍한 모습
ⓒ 박도
‘카사(고양이)’가 우리 집 식구가 된지 그새 16개월이 지났다. 지난해 봄, 우리 내외가 서울생활을 접고 훌쩍 안흥으로 떠나오자 아들 녀석이 갑자기 외로움에 젖었는지 카사를 구해다가 길렀다.

그가 6개월 남짓 기르더니 지난해 섣달 그믐날, 카사를 데리고 와서 슬그머니 떨어뜨려 놓고 갔다. 아마도 아침에 회사로 출근하여 밤늦게 돌아오기에 하루 종일 빈방을 지키는 카사가 불쌍해서 두고 간 모양이었다.

카사는 ‘러시아 블루’라는 혈통의 고양이로, 여간 까다로운 놈이 아니다. 우선 주는 대로 아무 것이나 먹지 않고 정해진 사료만 먹기에 먹이를 별도로 사줘야 한다. 하지만 다른 음식에는 거의 혀를 대지 않는 좋은 점도 있다. 배설도 아무데서나 보는 게 아니고 꼭 자기 화장실에서만 해결하기에 크게 성가신 점은 없다. 이 놈은 제 몸단장에 여간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발로 제 얼굴을 닦고 제 몸 구석구석을 핥는다. 매우 정갈한 놈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몹시 냉정한 놈이다. 제 놈을 여간 거두지 않는 한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개는 기르면 며칠도 안 돼 꼬리도 치고 애교가 넘치는데 이 놈은 그런 법이 없다. 제 배가 고프면 찾아와서 밥 달라고 ‘앵앵’거릴 뿐이다. 곧 제 배가 부르면 언제 그랬느냐고 외면하기 일쑤다. 그러면서 틈만 나면 집밖으로 달아나려고 한다. 사람에게 잘 길들여지지 않는 매우 주체성이 강한 놈이다.

한 가지 기특한 것은 주인이 잠들면 꼭 잠자리 곁을 지켜준다는 점이다. 한밤중에 잠이 깨어서 보면 이 놈이 곁에서 지키고 있다. 때때로 벌레를 잡는다고 펄쩍펄쩍 뛰기도 하고, 이따금 자기를 예뻐해(애무해) 달라고 거실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서 애교를 부린다. 그때 애무해 주거나 긁어주면 ‘그렁그렁’거리면서 무척 행복해 한다.

▲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카사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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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도 겁내지 않는 고양이

▲ 애무를 기다리는 카사
ⓒ 박도
지난해 봄부터 우리 부부는 생면부지의 이 안흥 산골마을에 와서 단둘이 지내고 있다. 몇 친구들은 뒤늦게 산중의 ‘밀월생활’이라느니, 자기네도 한번 이렇게 단둘이 산골생활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둥, <오마이뉴스> 편집국 한 기자도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에 달콤새콤하고 아기자기한 부부생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 부부는 결혼 초나 이제나 담담 덤덤하게 살고 있다. “빨리 달아오르는 쇠가 빨리 식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동안 탈 없이 살아온 비결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없으면 나이 든 부부는 얘깃거리도 없다고 하더니, 카사가 우리 식구가 된 이후, 우리 부부 사이에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아내는 매끼 카사의 끼니를 챙겨주거나 화장실 청소를 해주면서 이 놈과 대화를 나누곤 한다. 이따금 목욕도 시켜주고 손톱발톱을 깎아줄 때는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때마다 아내는 제 놈이 알아듣건 말건 몇 마디하면 그 놈도 뭐라고 대꾸한다.

이따금 이놈이 바깥을 나가겠다고 발버둥을 치면 내가 이 놈을 안고서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하지만 이웃집 개소리만 들리면 부들부들 떠는 겁쟁이다. 들고양이에게도 잔뜩 겁을 먹고 내 품에 파고든다.

이 놈이 안흥 내 집에 오면 천장의 쥐들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이 놈이 오고도 쥐들은 겁도 없이 들락거린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이 놈에게 “바보야, 쥐도 겁내지 않는 너도 고양이냐?”고 놀렸다.

저도 고양이랍니다

▲ 잠을 자는 카사
ⓒ 박도
며칠 전 저녁이었다. 아내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았다.

“여보, 카사가…”
“무슨 일이요”
“카사가 쥐를 잡았어요.”
“뭐, 쥐를 잡았다고!”

뒤꼍에서 카사란 놈이 의기양양하게 생쥐 한 마리를 물고서 거실로 나타냈다. 생쥐는 아직도 살아서 ‘찍찍’거렸다.

“카사, 놓아줘!”

▲ 목욕 뒤 몸단장하는 카사
ⓒ 박도
아내의 큰 소리에 카사는 물었던 생쥐를 놓아주자 생쥐는 거실 구석으로 도망갔다. 하지만 고양이 앞의 생쥐는 멀리 도망을 가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기만 하였다. 내가 집게로 생쥐를 집어서 두엄자리에 갖다버렸다.

“아이고 우리 카사가 마침내 쥐를 다 잡았네.”

카사는 이제야 고양이로서 체면을 차린 것을 과시라도 하는 듯, “야옹, 야옹” 연거푸 소리를 지른다.

“보셨지요. 저도 고양이랍니다. 저를 보며 더 이상 쥐도 못 잡는다고 놀리지 마세요.”

카사는 목에다가 더 힘을 주면서 고함치는 듯 “야옹야옹”거렸다.

“그래, 이제 너도 고양이다.”

나도 카사에게 한 마디 했다.

▲ "저도 고양이랍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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