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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흥 장터마을 들머리에 걸려 있는 귀성객 맞이 환영 현수막
ⓒ 박도
한가위 맞이 대청소

온 나라가 한가위 명절 분위기에 들뜬 듯하다. 한가위는 우리 겨레의 가장 큰 명절로, 예로부터 “더도 덜도 말고 팔월 한가위만 하여라”고 하였다. 바야흐로 들과 산에는 오곡백과가 익어서 풍성한 계절을 맞았기 때문이다.

안흥 산골마을에서는 며칠 전부터 마을회관에 마련된 방송 스피커를 통하여 마을 이장님의 말씀이 정적을 깨트렸다.

▲ 안흥4리 전연철 이장님
ⓒ 박도
“안흥 4리 주민 여러분, 추석을 앞두고 마을 안길 대청소가 있으니 9월 16일 아침 5시 30분까지 마을 장승 앞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예초기가 있는 집에서는 예초기를 가지고 나오시고, 나머지 집에서는 낫이나 빗자루를 들고 나오십시오. 다시 한번 알립니다. 안흥 4리 주민 여러분 ….”

아마도 한가위를 앞두고 마을 대청소를 할 모양이었다. 사실 지난 봄부터 제멋대로 자란 길섶의 풀들이 그새 한 길은 더 자랐다.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객지로 나간 자식들이 돌아오는데 기왕이면 마을청소를 하여 정성껏 맞자는 헤아림인가 보다. 사실 나는 오늘 아침 일찍 추석을 쇠고자 서울로 갈 예정이었지만 그 핑계로 빠지면 마을사람들에게 욕먹을 것 같아서 일찍 일어나서 낫을 들고 서둘러 집합장소로 갔다.

이른 아침의 자욱한 안개로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칼날이 무섭게 돌아가는 예초기는 열 사람 이상의 몫을 하기에 낫질은 별 소용이 없었다. 서투른 낫질보다는 각자 주특기대로 일하는 게 더 좋을 듯하여 나는 다시 집에 가서 카메라를 메고 나와서 어른들의 일하는 모습을 담았다. 예초기를 가지고 온 사람이 대부분인데다가 트랙터까지 동원되자 한 시간 남짓 만에 마을 청소 일은 끝났다.

▲ 한가위를 앞두고 꼭두새벽 안흥4리 주민들이 마을 길섶에 풀을 베고 있다.
ⓒ 박도
집에 돌아온 뒤 곧장 짐을 꾸려 서울로 출발하였다. 올해는 추석 연휴가 짧은데다가 아들 녀석이 연휴 전날에도 늦도록 근무한다기에 딸 아들이 늦은 밤 막힌 길을 헤집고 찾아오기보다는 아직은 거동에 지장이 없는 부모가 자식을 찾아가는 게 더 나을 듯하여 올 추석은 우리가 제수를 장만하여 아이들을 찾아간 것이다.

포근한 보름 달밤이 되었으면

안흥면 장터마을로 들어서자 들머리에는 올해도 귀성객을 맞이하는 펼침막이 요란하게 나부꼈다. 이런 풍경은 아마도 전국 방방곡곡 어느 시골마을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언제부터인지 한가위와 설 명절은 흩어졌던 가족들이 만나는 기간이 되었다. 객지에 나간 자식들은 이 만남을 위해 그동안 땀 흘려 일하여 부모님에게 드릴 선물꾸러미를 들고 힘든 귀향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고, 고향의 부모들은 여름내 애써 지은 곡식과 채소 과일들을 거둬들여서 다시 자식들이 돌아갈 때 차에 실어주려고 벌써부터 준비를 하였다.

▲ 자식들을 주려고 고추를 말리고 있다.
ⓒ 박도
한가위 전날 오랜만에 만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딸과 친정어머니가 함께 송편을 빚으면서 웃음꽃을 피우는 정경이 바로 우리네 한민족의 정다운 명절 풍습이었다. 하지만 이런 미풍양속이 점차로 변질되거나 웃음꽃이 피는 집안보다 비탄에 빠지거나 기다림에 지쳐버리는 집안이 늘어나는 현실에 가슴 아프다.

요즘 시골에는 주로 젊은 엄마들이 남편도 자식도 팽개친 채 집을 떠나버린 일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고 한다. 어느 두메마을에서는 늙은 시어머니와 남편, 자식 남매를 두고서 잠적한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내 귀에까지 들렸다. 지금 우리 농촌에는 이런 집이 숱하다고 한다. 비단 농촌뿐이랴 만은 단란한 가정이 깨어지고 있는 현실에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으로 ‘사람답게 사는 길’을 깊이 생각하게 한다.

나도 이제는 남남끼리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기르는 게 엄청 어렵다는 걸 모르는 바가 아니다. 부부간의 일이란 당사자들만이 아는 말 못할 사정도 있을 수 있다. 시부모를, 남편을 버리는 것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낳은 자식을 매정하게 떼어버리고 떠나는 모정에는 할 말이 없다. 반대로 남자들이 가정을 버리고 떠나는 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여자들이 더 훨씬 많다고 한다.

한 여인이 남편에게 버림을 받고는 자기가 낳은 딸을 버리고 개가하였다. 하지만 다시 만난 남자와도 해로를 하지 못하고 이내 헤어졌다. 그 뒤 그는 절간의 공양주로 돌다가 딸이 결혼한 가정을 찾아가서 외손녀를 안고서 눈물을 떨어트리자, 그 딸이 “어머니, 더러운 눈물을 아이에게 떨어트리지 마세요”라고 했다는, 아주 유명한 사람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고향할머니로부터 들은 바 있는데, 그때 그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다. 사람은 한때 실수도 할 수 있다. 돈에, 정욕에 눈이 어두워 잠깐 사리를 잘못 판단할 수도 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자기가 저지른 실수를 깨닫고 제자리로 돌아와서 지은 죄를 참회하면서 사는 사람이 더 인간적이 아닐까? 참회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어느 짐승이 어린 새끼를 팽개치고 제 둥지를 떠나는가.

곧 한가위 대보름달이 떠오를 것이다. 행여 자식을 두고 떠나온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어서 자식 곁으로 돌아가시기를 바란다. 당신의 자녀들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부모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당신이 집을 떠나 천금을 얻은들, 자식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그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이번 한가위에는 집을 나간 아버지가, 어머니가 슬그머니 옛 집에 돌아와서 달빛 아래 아이들을 꼭 껴안아주는 그런 포근한 보름 달밤이 되었으면 좋겠다.

▲ 귀성객을 맞고자 활짝 핀 들국화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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