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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식구가 하나 더 늘었다

▲ 러시아 블루인 카사, 그의 눈매는 언제나 무언가를 동경하고 있다
ⓒ 박도
지난 섣달그믐날부터 우리 집에 식구가 하나 더 늘었다. 아들이 이곳에 내려오면서 자기가 기르던 카사(고양이)를 함께 데리고 와서 떨어뜨리고 갔다.

지난해 우리 내외가 훌쩍 서울 집을 떠나오자 갑자기 외로움에 젖었는지 아들 녀석이 카사를 구해다가 길렀다.

집안에 동물 기르는 걸 무척 꺼려했던 아내는 몇 차례나 카사를 다시 전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하였지만, 아들의 고집에는 그만 지고는 우리 식구로 맞았다.

아내가 집에다 동물 기르는 것을 꺼리는 것은 털과 배설물 처리 때문이요, 개나 고양이는 유정물이라서 인연이 다하고도 애틋한 정이 남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우리 내외는 서울 집에서 개를 기르다가 두 번이나 실패한 아픈 기억이 있었다. 한 번은 이웃에서 놓은 쥐약을 우리 집 개가 먹고는 입에 거품을 물고 죽은 것을 묻어 주었고, 그 다음에는 어느 여름 개장사가 팔라고 조르는 것을 문전박대했더니 이튿날 새벽에 그만 없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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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몇 해 후, 어느 날 제 발로 들어온 개를 기르다가 집수리하는 바람에 더 이상 기를 수 없어서 다른 이에게 분양해 준 뒤로는 애완동물을 먹이지 않았다. 애완동물을 집안에서 기른다는 것은 여간 정성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먹이고 씻기고 배설물 처리가 여간 조련치 않다.

▲ 그는 여간에서 눈길도 주지 않는다
ⓒ 박도
안흥으로 내려온 뒤 개라도 기르려고 하다가 이따금 며칠씩 집을 비울 때가 있어서 적적한 줄 알면서도 기르지 않았다. 아들이 가져다가 놓은 카사는 '러시아 블루'라는 혈통의 고양이로 보통 놈이 아니다. 여간해서 제 마음은커녕 눈길도 주지 않는다.

이 놈에게는 건성으로는 예뻐하는 척은 어림도 없다. 제 놈에게 먹이를 주고, 몇 날을 같이 놀아줘야 그제야 비로소 눈길을 준다. 그는 밥도 아무거나 먹지 않고 꼭 먹던 사료만 먹는다. 하지만 대소변은 아주 잘 가린다. 그는 무료한 시간에는 창가에서 하염없이 밖을 바라본다. 그런 모습이 측은하여 밖으로 데리고 나가면 이웃집 개를 보고 벌벌 떨면서 내 품을 파고든다.

그렇게 겁이 많으면서도 그는 문만 열려있으면 잽싸게 밖으로 뛰쳐나간다. 하지만 바깥은 그가 살 수 없는 세상이기에 애써 붙잡아 온다.

이상향에 이르지 못한 슬픔

▲ 카사는 털실꾸러미와 가장 잘 논다
ⓒ 박도
이미 야성을 잃어버린 카사(천장의 쥐도 무서워 하지 않음)는 이 겨울 내 집을 떠나면 단 몇 시간도 살 수 없다. 하지만 그는 그런 줄도 모르면서 뛰쳐나가려고 몸부림을 친다. 이는 모든 생명체들이 갖는 '자유'에 대한 근원적 향수가 아닐까.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 안 그는.


청마 유치환은 '깃발'을 통하여 영원한 이상향을 그리워하지만, 끝내 그 이상향에 이르지 못한 슬픔을 노래했다. 카사, 그도 바깥세상을 향한 그리움에 몸부림치지만 끝내 그 바깥에서는 제대로 자유도 누리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마감할 숙명을 타고 난 줄 모르고 있다.

카사, 그는 지금 내 무릎 위에서 새근새근 잠자고 있다. 주인이 제 이야기를 쓰는 줄도 모른 채, 그는 지금 꿈에서나마 머나 먼 제 고향을 헤매고 있으리라.

▲ 카사의 요염한 모습
ⓒ 박도

▲ 카사의 세수시간(1)
ⓒ 박도

▲ 카사의 세수시간(2)
ⓒ 박도

▲ 카사의 몸단장시간으로 무척 길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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