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되었으면서 가장 대중적인 종교가 뭘까?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땡! 땡! 땡! 정답은 연애교다. 연애는 연애교의 이상향이고, 연애교의 유일한 가르침은 끊임없이 연애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쏟아붓는 지난한 노력과 열정은 독실한 신앙심 그 자체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행위들, 돈을 벌고 공부를 하고 살을 빼고 하는 것 등도 조금 더 폼 나는 연애를 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연애로 우리의 삶은 윤택해진다. 그건 사회도 마찬가지. 연애는 꽃집과 초콜릿 공장을 먹여 살리고, 연애의 다음 수순인 결혼과 출산은 예식업, 식품업, 여행사를 비롯한 갖가지 산업의 원동력이 된다. 역시 연애는 최고선이다. 적어도 이 사회에서 연애하지 않는 것은 곧 '죄악'이다.

연애교의 가르침을 받들어 우리는 연애하고 또 연애한다. 왜? 그 목적은? 없거나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 아니, 죽을 것처럼 사랑해서 시작했다가 죽을 것처럼 미워져서 끝내는 것이 '연애'라고 하면, 그 답이 되려나. 사실 맹목적인 신앙에는 애초부터 이유랄 게 없다. 그런데 그 목적을 알려주는 영화가 개봉했다니, 귀가 솔깃하다. 게다가 강혜정과 박해일이 주인공을 맡았다니, 거부할 이유가 없다.

연애의 '목적'을 알려준다고?

영화 <연애의 목적>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남자는 죽자고 "하자"고 들이대고, 여자는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섹스를 하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도 "정 하고 싶으면, 50만원 달라"고 뻗대다가 결국 대낮에 모텔에서 그 남자와 잔다.

 교생과 담임 선생님으로 만난 최홍(강혜정)과 유림(박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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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초 기대와 달리 영화를 보는 마음은 그리 간단치 못했다. 영화 초반, 이 바닥(교사) 선배랍시고 유림(박해일)이 홍(강혜정)에게 무조건 말을 놓는 것부터 거슬렸는데, 유림은 파트너십 운운하며 홍을 억지로 술자리에 불러들이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조개 무지 드시네, 난 다른 조개 먹고 싶은데"라고 어줍지 않은 수작을 건다.

또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여자의 모성 본능을 자극해 홍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는가 하면, 싫다는 홍에게 "5초만"이라며 치근대는 유림은 유치하다 못해 짜증스럽기까지 하다(이 영화 그 어디에도 해맑은 미소가 빛나는 박해일은 없다. 비열한 미소라면 모를까).

이맛살을 찌푸리며 "쟤 왜 저래"를 반복하는 사이, 영화는 점점 더 복잡해져 간다. 홍의 트라우마가 드러나면서 유림은 애초 마음먹었던 단순한 '연애'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둘의 사이도 더 가까워지는 듯했으나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학교에 돌면서 영화는 급물살을 탄다. 바로 이 때, 일순간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였던 이들의 관계를 홍이 부정하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나는 이 영화가 이른바 홍상수식의 두 가지 시선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데이트 강간, 별 게 아니다. 바로 문제의 그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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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이런 의심이다. 홍이 절규하기 전까지를 유림의 시선으로 그리고 그 이후를 홍의 시선으로 그린다면 이런 앞뒤 모를 영화가 나올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유림의 행동은 그 자신의 입장에서 보자면 쿨한 연애를 위한 '수작'이었는지 몰라도 홍의 관점에서는 엄연히 선배 선생의 강간이다.

유림에겐 '연애'지만 홍에겐 '강간'

홍의 시각으로 <연애의 목적>을 재구성해 본다면, 대략 이렇지 않을까.

이 남자, 처음부터 집적거리고 치근대더니 결국 성폭행까지 저질렀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날 이후 뭘 잘했다고 시종일관 뚱한 표정으로 사람 심기를 계속 건드린다. 홍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실습 점수를 맡고 있는 인간이라 어쩔 수도 없는 상황. 이런저런 소문 나봐야 홍 자신한테 좋을 것은 눈곱만큼도 없을 터. 그런데 이제 그는 집에까지 찾아와 소리를 지르며 행패를 부린다.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 줬더니 제 집처럼 눌러앉아 나갈 생각을 않는다.

 "여자가 다 너 같은 줄 아냐?"고 말하는 유림. 자신의 여자친구와 홍은 다른 사람이라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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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 말도 못하고 그저 실습 기간이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설상가상 학교에 '이 선생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떠돈다. 추문은 언제나 그렇듯 빠르게 그리고 (대체로 여자들에게) 점점 더 나쁜 방향으로 퍼져나가기 마련. 홍은 대학 때 당했던 것처럼 '스토커'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쫓겨나오다시피 할 수는 없었다. 홍은 상황반전을 시도한다. "아니에요, 사실은 저 성폭행 당했어요."

맙소사! 이건 커플의 앙큼뻔뻔한 멜로 영화가 아니라 한 여자의 처절한 성폭행 경험담이 아닌가. 제목도 <연애의 목적>대신 <강간의 목적>이라고 해야 더 어울리는 게 아닐까. '연애의 목적=강간'이라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연애의 목적>이 아니라 <'강간'의 목적>

사실 영화 <연애의 목적>은 허무맹랑한 허구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당장 우리의 연애를 떠올려보자. 두 사람이 만나 사귀고 섹스를 시작할 무렵, 사랑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둘의 권력 관계이다. 대개 남자가 먼저 섹스의 의지를 밝히고(집요한 애무와 직·간접적 요구를 통해) 여자가 받아들인다. 섹스 할 때 역시 여자는 너무 주도적이어선 안 된다. 왜? 헤픈 여자라고 의심받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거절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진 못한다. 말이 나가기가 무섭게 남자는 "날 사랑하지 않냐"며 역정을 부리거나, "곧 결혼할 사이니까 괜찮다"며 달래기 시작할 테니.

 우여곡절 끝에 '자는' 데 성공한 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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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싫다"는 말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섹스를 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데이트 강간'이다. 데이트 과정에서 사랑을 핑계 삼아 상대의 동의 없이 섹스를 하는 것이다. 수학여행에서의 유림이 저지른 행동이 그 전형적인 예다.

그리고 데이트 강간은 <연애의 목적>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올 만큼 흔하디흔하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그걸 작업이라고 여길망정 '강간'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데는 인색하다. 강간과 섹스, 폭력과 합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심지어 스토킹도 열렬한 사랑으로 해석되는 사회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섹스와 강간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고, <연애의 목적>이 현실적이라고 입을 모으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보면 <연애의 목적>은 누추하고 폭력적인 연애를 현실적으로 그림으로써 우리가 연애를 총체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한 편의 계몽(?) 영화다. 그걸 보고선 '아 우리가 하고 있는 게 역시 연애였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면 또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진짜 잘못은 이 영화가 아니라 영화가 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우리의 후진 사고와 현실에 있다. 내가 짜증내고 분노했던 대상 역시 유림으로 대표되는 폭력적이고 멍청한 현실이었을 게다. <연애의 목적>의 유일한 죄는 그 현실을 아주 잘 그려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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