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th C Fox
역사는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루카스 감독이 밝히는 바에 따르면, <스타워즈> 시리즈는 1970년 당시 미국사회를 채웠던 반전의식의 토양 위에서 잉태되었다고 한다. 베트남 전 후 루카스의 <스타워즈>가 스필버그의 <조스>와 더불어 미국의 영화산업을 재편하기 시작했을 때, 그의 영화는 '블록버스터'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블록버스터(blockbuster)'란 2차 세계대전에서 시가지 폭격에 사용된 살상용 폭탄으로, 말 그대로 폭탄 하나로 도시의 '블록' 하나를 날려버릴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닉슨의 호전적 정책에 대한 반감이 담긴 영화가 흥행에 성공을 거두며 '블록버스터'라는 '군사적' 애칭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후 레이건 시절부터 <스타워즈>는 소위 "전략방위구상(SDI)"이라는 미 군사전략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다시 십여 년이 지난 현재, 이 영화 시리즈가 또 다시 극장에는 관객을, 정가에는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자 세 번째 에피소드인 <스타워즈3: 시스의 복수>는 개봉 3일 만에 1억2470만 불의 수입을 올려 역사상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다. 깨기 힘들 것으로 예상되었던 <스파이더맨>의 흥행기록을 넘어선 것이다. 28년 전 '블록버스터'라는 이름을 만들어냈던 영화가 이번에는 이름의 위력을 새로이 규정한 것이다.

 <스타워즈3>초반의 전투장면.
ⓒ 20th C Fox

<스타워즈3>, '반부시' 영화인가?

<스타워즈3>가 가져온 기록은 흥행성적만이 아니다. 많은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화씨911>이후 가장 강력한 반부시 블록버스터'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블록버스터'는 호치민과 바그다드뿐 아니라 워싱턴의 '블록'까지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과연 역사는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다른 나라의 집들이 날아가는 거라면 모를까, 자기 영토가 위협받는 것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애국자'들이 아니다. 백악관의 안전을 걱정하는 보수단체들은 당연히 이 '괘씸한 영화'를 성토하고 나섰다. '반미 할리우드를 반대하는 애국 미국시민(PABAHH)'라는 긴 이름의 보수단체는 <스타워즈3>를 '봐서는 안 될 영화'의 목록에 올렸다. 그리고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반전메시지를 담은 할리우드 영화를 반대하는 보수단체의 웹사이트. 이곳에는 조지 루카스를 포함한 감독과 배우 백여 명이 '보이코트' 대상으로 올라와 있다.
ⓒ PABAHH
"할리우드는 도대체 언제 철이 들 것인가? 조지 루카스와 그의 작품들은 이제 우리의 거부명단에 올랐다. 슬프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조국이 지금 전쟁 중인데, 루카스는 어떻게 이런 쓰레기를 토해낼 수 있단 말인가?"

반면 '무브온'과 같은 진보단체에서는 이 영화가 국민들에게 미국사회의 문제점을 깨닫게 하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믿고 있다. '무브온'은 극장에서 관객들에게 나누어 줄 전단을 발행하는 동시에 <스타워즈>를 패러디한 텔레비전 광고를 제작했다. '프리스트의 복수(Revenge of the Frist)'라는 제목의 이 홍보물은 공화당측이 헌법개정을 통해 야당의 의사 방해를 막으려는 '무소불위의 권력화' 시도를 비판하고 있다.

관객의 일부는 <스타워즈> 속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은 지나친 과대해석이라고 비판한다. 물론 모든 영화텍스트를 정치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영화 역시 특정한 역사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영화 텍스트를 사회와 전혀 무관한 별개의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무브온(MoveOn.org)"에서 제작한 텔레비전 정치광고. <스타워즈3>를 패러디하고 있다.
ⓒ MoveOn.org

<스타워즈3>가 반부시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의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을 때, 극중 아나킨/다스 베이더의 역을 맡았던 배우 헤이든 크리스텐슨이 이 열기에 기름을 부었다. 캐나다의 일간지 <오타와 선>은 그를 인터뷰하면서, <스타워즈>가 닉슨과 두 부시로 이어지는 미국의 호전적 정책을 비판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결했다.

"물론입니다."

그는 더 나아가 미국의 이라크전쟁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정치적 메시지로 인해 <스타워즈3>를 더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관객들이 영화에 담긴 정치적 메시지를 알아챌 것이며, '나와 함께 하지 않으면 너는 나의 적'이라는 대사를 특히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외에도 영화는 현 상황을 '아프게' 꼬집는 대사들로 가득하다. 예컨대 아미달라는 공화국의 전시상황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남편 아나킨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영화 속에서 아마딜라는 공화국 의장 팰퍼타인의 절대권력을 공공연하게 비판한다.
ⓒ 20th C Fox

"우리가 잘못된 편에서 싸우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우리가 추구하고 있다고 믿던 민주주의는 오래 전에 사라지고, 공화국이 오히려 이전에 맞서 싸우던 바로 그 악의 세력이 되어 버린 건 아닐까요?"

<스타워즈3>, 어떤 영화인가?

시리즈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조각인 <스타워즈3>는 앞의 어떤 에피소드보다 치밀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3편은 전편인 <스타워즈2: 클론의 습격>을 확장하는 동시에, 가장 처음 개봉된 1977년의 <스타워즈4: 새로운 희망>에 극적인 동기와 이해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스타워즈3>가 다루어야 할 이야기는 레아와 루크의 출생 배경과 그들의 아버지인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악의 편에 서게 된 과정이다. <스타워즈3>는 대단히 고전적인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 등장인물의 성격과 사건의 전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소개된 비극의 요소를 충실히 계승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아나킨은 관객들이 동일시할 수 있을 만큼 인간적인 인물이다. 그는 완벽한 인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사악한 존재도 아니다. 그가 매력적인 주인공에서 악당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통제할 수 없는 운명적 요소와 연관되어 있다. 그는 비탄의 눈물을 삼키면서 서서히 악의 세계로 빠져 들어간다.

 아나킨 스카이워커. 그는 스스로 제다이의 길을 버리고 팰퍼타인의 편에 선다.
ⓒ 20th C Fox

그가 암흑의 힘을 갈구하는 것은 세계를 손아귀에 넣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순수한 혈기와 호기심, 그리고 자존심으로 인해 조심스럽고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린다. <스타워즈3>가 그려내고 있는 다스 베이더는 음흉한 웃음을 흘리는 '악의 화신'이 아니라, 고뇌하는 맥베스인 동시에 자신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는 오이디푸스다.

비록 광활한 우주공간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스타워즈>는 인류역사 이래로 끝없이 반복되어 온 보편적 인간사에 초점을 두고 있다. 삶과 죽음, 사랑과 우정, 환희와 고뇌, 충성과 배신, 억압과 해방 등 <스타워즈> 시리즈가 누려온 인기는 새로움보다는 바로 이 '친숙함'에 있다. 즉 관객들을 사로잡은 것은 스크린을 채운 경이로운 신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낯선 공간으로 확장된 익숙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스타워즈>에 처음으로 붙여진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명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소프 오페라(soap opera)'라는 멜로연속극의 인간관계가 우주 공간으로 확장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가 다 하는 순간까지도 그 익숙한 이야기에 울고 웃을 것이다.

28년 전의 구상, 28년 후 미국사회를 강타하다

 <스타워즈3>에서 다스 베이더는 관객이 동일시할 만한 고전적 비극의 주인공으로 그려진다.
ⓒ 20th C Fox

아나킨/다스 베이더는 기괴하지만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리고 <스타워즈3>는 마스크 뒤에 가려진 다스 베이더의 인간적인 면에 적지 않은 비중을 둔다. 이 부분은 '반 부시 논란'의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만일 일부가 주장하듯 <스타워즈>가 부시진영을 비판하기 위한 '음모'의 일부였다면, 그를 그렇게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인물로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스타워즈3>는 '절대권력'에 대한 보편적인 비판으로 보인다. 루카스는 자신의 영화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말하면서, <스타워즈3>는 이미 28년 전 베트남전과 닉슨대통령의 호전적 정책을 지켜보면서 떠올렸던 시나리오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루카스는 현대 미국에서 자신의 작품이 갖는 의미 역시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 때의 상황이 오늘날의 상황과 이렇게 잘 부합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에서 늘 되풀이되는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저는 제 영화에서 일어난 일이 미국사회에서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 영화가 사람들에게 그런 경각심을 갖게 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전 미국이 베트남에서 했던 일이 지금 이라크에서 똑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말문이 막힙니다." - 브루스 커클랜드, <런던 프리 프레스> 2005. 5. 16.

 조지 루카스의 작품세계를 특집으로 다룬 월간지 <와이어드>.
ⓒ The Wired
루카스 감독은 칸 영화제에서 자신의 영화에 대해서 소개하면서,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는 <스타워즈>가 '부시정권 하에서 몰락해 가고 있는 민주주의적 자유에 경종을 울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비록 자신의 영화가 특정 정치인이 아니라 보편적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작품이 사회를 다시 돌이켜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면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28년 전 '최초의 블록버스터'가 '최고의 블록버스터'가 된 현재, 28년 전 타국에서 전쟁을 벌이던 그 '제국'은 28년 후에도 여전히 다른 나라의 땅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왜 지금 이 영화가 나왔느냐'가 아니라, 왜 미국사회가 28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을 벌이고 있느냐고 물어야 한다. 영화에 투영된 자신의 얼굴이 추하다면, 영화를 탓할 게 아니라 자신의 얼굴을 씻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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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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