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개막돼 총 21편의 경쟁작을 소개한 올해 제 58회 칸 영화제가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제 7의 예술 '영화'를 만드는 작가를 향한 최대의 찬사, 최고의 예우로 이름 난 칸영화제의 스물 한 번째이자 마지막 프러포즈가 끝났다.

<극장전(2005)>, 홍상수 감독의 여섯 번째 작품이 그 주인공이었다. 자신의 두 번째 영화 <강원도의 힘(1998)>과 <오! 수정(2000)>으로 이미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두 차례에 걸쳐 초청된 바 있는 홍상수 감독은 지난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로 처음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올해 <극장전>으로 연속 2년 칸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칸 영화제 직전, 경쟁부문에 초청된 <극장전>은 지난 19일 총 21편의 황금종려상 후보작 중 마지막으로 관객에 공개됐다.

뒤늦게 칸에 합류했기 때문에 <극장전>은 다른 영화가 프레스와 일반관객을 대상으로 두 번씩 상영된 것과 달리 일반관객들을 대상으로 단 1회만 상영됐다. 관객들 사이에서는 이 티켓을 구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는 소문이 나올 정도였다.

▲ <극장전>의 홍상수 감독
ⓒ 박영신
홍상수 감독과 주연배우들이 붉은 양탄자를 밟고 뤼미에르 극장에 들어서자, 모든 관객들이 기립박수로 환영했다. <개입자>로 부산국제영화제에 VIP로 초청됐던 프랑스 명감독 끌레르 드니는 "홍상수 감독은 내게는 없는 지성을 갖고 있다"고 격찬했다.

열아홉 살의 고등학생 상원(이기우 분)과 영실(엄지원 분)이 벌이는 눈 오는 날의 우스꽝스러운 자살 소동을 그린 영화 속의 영화, 극장을 나선 동수(김상경 분)가 배우 영실을 만나고 헤어지는 이중구조의 <극장전>은 감독의 전작과 비교해 너그럽고 심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올해 칸의 수상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홍상수 감독을 영화상영 뒤 칵테일 파티에서 만났다. <극장전>은 오는 11월 2일 프랑스에도 개봉된다. 아래는 홍 감독과 나눈 대화다.

"극장전이 신파? 극장 이야기니까 '극장'이라는 표현을 쓴 것 뿐"

-'극장전'이라는 영화제목에서 얼핏 신파 냄새가 난다.
"극장에 관한 이야기니까 극장을 제목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고전에 '~전'으로 불리는 말이 많지 않나. 발음이 익숙하다 보니 쉽게 떠오른 것 같다. 극장이야기와 극장 앞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라 앞 '전(前)' 자와 전할 '전(傳)'의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이번 작품을 구상한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
"일상적인 상황 같은 것이 먼저 떠오르는데 1부는 한 남자가 연극을 본다, 2부는 영화를 본다 그리고 의식하건 못하건 이에 영향을 받는다는 일상적 상황이 어느 순간에 내 관심의 대상이 된 거다. 이게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

▲ <극장전>
-이번 영화에는 줌렌즈의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자칫 촌스러울 수도 있고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던데.
"줌렌즈를 사용한 영화를 보면서 내가 받았던 인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인상을 갖고 놀이를 하거나 패러디를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이전에 줌을 사용했던 감독의 마인드가 있는 것이고 그것과 비슷하거나 다를 수도 있는 내 마인드가 섞여서 줌을 사용했을 테니까.

영화 초입에는 조금 어색하거나 옛날부터 봐온 줌이 환기될 수도 있겠지만 조금 지나면 괜찮을 것이다. 인물에게 좀더 가까이 가야겠는데 컷으로 자르고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이 줌인 밖에 없었다. 줌은 배우가 하는 연기를 자르지 않아도 되니까 좋고 컷을 실용적으로 대체할 수 있다. 줌이 컷을 대체한다는 것도 있지만 '줌인', '줌아웃' 자체가 다른 것을 섞지 않고 그 자체만으로 대상의 느낌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작업하면서 깨달았다."

"내 영화가 어렵나? 진정한 의미의 '보편성'을 추구할 뿐인데..."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경쟁부문에 초청돼 칸을 방문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애초에는 칸에 올 계획이 없었는데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이 권유해 오게 됐다고 들었다.
"칸 경쟁에 연속 2년 초대 된 것은 우연에 불과하다. 시간도 촉박했고 작년에 여기 왔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냥 베니스로 가는 게 좋은 결과를 얻지 않겠냐고 프랑스 공동제작자와 이야기 했었다. 나는 영화제 세부적인 것에 자신이 없으니 프랑스 측 의견을 받아들여서 그냥 베니스 쪽에 보여주기로 하고 기다리던 차에 칸 집행위원장 측에서 내 영화를 보여 달라고 한 것 같다. 자막을 준비하느라 프랑스에 보낸 프린트가 있었는데 그것을 좋게 본 모양이다."

-<극장전>을 보면서 서울에서 시작된 감독의 여행이 강원도(강원도의 힘, 1998), 경주(생활의 발견, 2002), 부천(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2004)을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떤 장소에 끌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고 의미는 있는데 내가 그것을 의식 못하고 있을 수도 있거나 의식하고 있는 등 셋 중의 하나 아니겠나. 강원도를 택한 이유가 있고 부천을, 경주를 택한 이유가 있는데 각 영화마다 그 장소로 가게 된 이유가 다 다른 것 같다. "

-<극장전>은 감독의 전작과 달리 대중에게 말을 걸고 있는 영화라는 인상을 받았다.
"반가운 말이다. 진정한 의미의 '보편성' 즉 대중의 취향에 지나치게 자기를 희생하지 않고 자기 것을 하면서 점점 그 속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 같은 걸 가졌으면 싶다.

나는 영화를 설명하는 자체가 거북하다. 애시당초 '중학교 학생부터 노인층까지 한 치의 주저도 없이 100% 이해하는 영화를 만들어야지'하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든 건 아니다. 내가 끄집어내고 싶은 것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있는 것이지 일부러 어려운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는 없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을 보는 사람들 중 이해 못하는 사람이 있는 거다. 때문에 차근차근 실력을 더 쌓아서 보편성이 확보가 되면 그나마 좀더 많은 분들에게 접근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하는 거다."

-<극장전>에는 내레이션이 많다. 1부 단편영화 속에서 상원이 자살하겠다고 아파트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서 흘깃 뒤를 돌아볼 때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다'라는 말처럼 내레이션은 순간적인 웃음을 자아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굳이 내레이션이 필요 없어 보이기도 했다.
"인물이 하는 행동만 갖고도 무슨 이야기인지 훤히 아는데 내레이션을 넣은 이유는 일단 조금 더 명확히 해주고 싶은 내 안달일 수도 있겠다. 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영화를 까탈 부리지 않고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 가지 행동에 내레이션이 반복해서 보여 지는 건 즐거운 일일 수도 있다."

▲ <극장전>에 출연한 배우 이기우, 엄지원, 김상경.
ⓒ 박영신
-감독이 지금까지 해온 영화처럼 한 영화가 다음 영화를 반복하고, 한 편 속에서도 반복행위가 이어지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행동과 내레이션의 반복으로 나타난 것으로 봐도 무방한가? 하나의 행동을 보여주고 내레이션으로써 달리 해석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내레이션에 의해서 행동이 완전히 다르게 규정될 수 있다. 그러나 분석은 나중에 해야 할 것 같다. 줌을 쓰는데 있어 몇 가지 다른 종류의 목적이 있었다고 한 것처럼 내레이션도 작업하면서 다른 종류의 목적을 갖고 쓴 걸 의식하게 됐다. 그러나 촬영이 다 끝나고 편집을 하면서 내레이션을 쓴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다른 대사처럼 썼기 때문에 좀더 생각해 보고 분석해 보면 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

"내가 영어 인터뷰만 고집하는 이유는..."

-프랑스의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와 가진 인터뷰에서 프랑스의 거장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에 관한 노트>에 대해 언급했던 적이 있다. 브레송이 그랬듯 감독도 고정카메라를 선호한다.
"브레송은 영화가 뭔가에 대해서 본질적으로 고민하던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내게 자극을 많이 준 사람이다. 브레송의 영화와 영화에 관한 일종의 명상록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저서 <영화에 관한 노트>를 통해서 장르영화에 관해 공부했고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하는데 자극을 많이 줬다는 말이다.

그러나 브레송의 영화 중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1951)>와 <사형수 탈옥하다(1956)> 이 두 편을 제외하면 내가 좋아하지 않는 영화가 더 많다. 이유는 브레송이 갖고 있는 배우에 대한 연출론이다. 내가 좋아하는 두 편에서는 배우들이 갖고 있는 선천적인 파워가 있어서 배우들을 그의 연출 의도처럼 다림질 못한 거다. 의도를 이해는 하지만 그의 배우 연출론은 관념적이다. 그런데 <어느 시골 사제…>와 <사형수…> 속의 배우들은 그냥 훌륭하다. 브레송에 눌리지 않는 거다."

▲ 영화 <극장전>의 한 장면.
-감독이 파리에서 관객과의 대화나 TV 인터뷰에 응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감독은 영어로 말할 것을 고집하기 때문에 질문자나 대답을 하는 감독이나 양쪽이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대화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것은 감독이 관객과 소통을 거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억측까지도 가능하게 한다.
"최소한 내 의도는 정반대다.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기억에 의존해서 혹은 준비를 해서 뭘 한다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가능하면 준비를 안 하고 한순간에 문이 열리면 탁 튀어나오는 것이라든가 어떤 대상 앞에서 어찌 하다 보니 말이 나오는 식의 스타일이 매우 강하다.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이 내 말을 못 알아듣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얘기가 잘 안 된다. 통역자를 통해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관객 중에 영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한 사람은 있으니까 그 사람들을 대상으로 얘기를 할 때 생각이 좀 더 나오더라. 그게 제일 큰 이유다."

- 이런 일도 있었다. 관객과의 대화나 인터뷰 중간 중간 감독은 질문자에게 '피곤하지 않느냐'고 물어서 당황시키곤 했다. 상대방이 '피곤하지 않다'고 대답하면 '나는 피곤하다'고 말함으로써 대화를 중단시키는 경우를 몇 차례 목격했는데 '내 영화를 내 입으로 설명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로 봐도 되나?
"내 생각에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거의 비슷할 것이다. 뭘 만든다는 행위도 하나의 '이상한' 언어다. 자기에게 맞고 제일 잘 표현하기 때문에 그 언어를 쓰는 것이고 기껏 해놨는데 자기가 '잘 못하는' 언어로 다시 설명하라는 것 아닌가. 두 번 하는 거니까 지겹고 자기가 잘 못하는 거니까 꺼려지고 또 잘 못 하면 자기가 조금 더 잘하는 언어로 표현한 걸 망가뜨리게 될까봐 걱정되는 거다. 뭔가를 만든 다음에 말로 하는 설명을 즐기는 사람은 소수일 거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말을 통해서 홍보를 해야 되니까 하는 거지 즐기기에는 너무 재미없는 일이다."

ⓒ 박영신
수상 가능성이 점쳐지는데? "...(웃음)"

-폴 세잔느와 오즈 야스지로를 좋아한다고 들었다. 감독에게 그들과 닮은 점이 있어서인가?
"대학 때 처음으로 세잔느의 한 정물화 원본을 봤는데 그 그림을 보고 5~10분 만에 떠오른 말이 '이거면 됐다'였다. 그 이상 바랄 게 없다. 그림으로는 이거면 됐다는 생각이었다. 그 후로 세잔느의 그림을 열심히 보게 됐고 관련 자료도 읽어보게 되면서 내 속의 어떤 부분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게 됐다.

영화 역사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은 매우 많지만 한 사람의 전 작품을 좋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브레송의 경우처럼 몇 작품은 좋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은 게 일반적일 텐데 오즈는 다 좋다. '조금 덜'과 '조금 더'의 차이는 있겠지만 루이스 브뉘엘과 장 르누아르도 여기 해당한다. 다른 이들의 작품은 맘에 드는 것도 있고 보기 싫은 것도 있는 반면 이들의 작품은 그냥 다 좋다. 이들은 나와 교감이 되는 모양이다."

- 주변에서 수상을 점치는 분위기도 있던데?
"...(웃음)"

- 상 받으면 한국관객들도 매우 좋아할 것이다.
"만약에 좋아해 준다면 제가 좋은 거죠."

(* 인터뷰 하루 뒤인 21일(현지시간), 칸은 장 피에르와 뤽 다르덴 형제(벨기에)의 <더 키드>에 황금종려상을 안겨줬다. 다르덴 형제는 99년 <로제타>에 이어 두번째로 황금종려상의 영광을 안았다. 그랑프리는 짐 자무시(미국)의 <브로큰 플라워즈>에, 감독상은 미카엘 하네커(오스트리아)의 <히든>에 돌아갔으며 아쉽게도 홍상수 감독의 이름은 끝내 불리지 않았다.)
2005-05-21 16:4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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