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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정신이 살아있는 빵굽는 마을 오로뻬사(Oropesa)를 떠나 뿌노로 향해 달리길 10분쯤 지났을까, 도로의 양측에 'Cuy'라고 쓰인 간판이 내걸린 가게들이 여럿 보이기 시작했다. 십여 개의 레스토랑이 길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 마을은 페루 전통 음식 중 하나인 꾸이(Cuy)요리를 파는 동네.

▲ 길가에 꾸이를 파는 레스토랑이 늘어선 띠뽄 마을의 모습
ⓒ 배한수
꾸이만 요리해 파는 마을 띠뽄(Tipon)

방금 전 마을 전체가 빵만 굽는걸 보고 왔는데, 기막히게도 이 동네 사람들은 꾸이만 요리해 판단다. 아마도 이 근방 지역은 한 가지 것만 전문으로 만들어 파는 장인의 고장인가 보다.

일행은 조금 허름해 보이지만 유명하다는 한 식당 앞에 차를 세웠다. 그런데 빵 굽는 마을에서도 본 불가마가 식당 문 앞에서도 보였다. 일행에게 물어보니 "꾸이를 구울 때, 빵 굽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이 불가마를 이용한다"고 한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한창 바빠 보이는 인디오 아주머니 한분이 "꾸이 먹으러 왔냐?"며 환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졌다. 오전 10시,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요리해 놓은 꾸이가 없다는 말에 나는 "한국에서는 생소한 쥐 요리인 꾸이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고 주인 아주머니께 부탁했다. 맘씨 좋은 아주머니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여주신 덕분에 나는 '꾸이'의 조리과정 전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꾸이 요리의 정체는?

식당을 지나 집이 있는 뜰 깊숙이 들어가니 한쪽 어두운 방에서 찍찍거리는 요란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은 꾸이를 키우는 방.

▲ 어두운 방안에서 사육되고 있는 꾸이의 모습
ⓒ 배한수
어두운 방안을 들여다보니 약 200여 마리의 팔뚝만한 꾸이들이 정신없이 풀을 뜯고 있었다. 쥐목 고슴도치과에 속하는 동물인 꾸이는 페루가 원산지이며, 돼지같이 통통하다 하여 영문명으로는 '기니피그'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애완용 동물로 잘 알려져 있는 꾸이는 원주민들이 고기를 얻기 위해 집단으로 사육하던 전통이 이어져, 현재까지도 페루 사람들의 별미 요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꾸이는 원주민들이 빛없는 부엌에서 키우던 전통이 그대로 내려져와 별도의 조명장치 없이 어두운 방안에서 사육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애완동물로 애지중지 키워지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문 앞으로 다가온 꾸이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 보니 앙증맞은 얼굴에 길고 통통한 몸집을 가진 게 참 귀엽게 생겼다. 특히 꾸이는 털 색깔이 참 예뻤는데, 몸 전체가 흰색인 것부터 갈색, 고동색, 검정색의 털이 섞여 있는 것 등 그 종류가 다양했다.

▲ 앙증맞게 생긴 꾸이의 모습
ⓒ 배한수
"이렇게 귀여운 동물을 먹다니…."

살아 있는 꾸이의 모습을 보면서 내내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이것도 문화의 차이이리라. 이곳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은 보신 음식으로 개를 먹는다"란 말을 들으면 경악하는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 아니겠는가.

꾸이가 요리되는 과정

귀여운 꾸이들을 열심히 구경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주인이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꾸이 다섯 마리를 잡아 밖으로 나왔다. 오후에 올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요리를 준비해야 한단다.

꾸이는 여느 동물 요리와 마찬가지로 우선 뜨거운 물에 3~4분간 데쳐 손으로 털을 깨끗이 뽑은 뒤, 면도칼로 잔털을 제거하게 된다. 깨끗이 털이 제거된 꾸이는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한 뒤 세척의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깨끗이 손질된 꾸이는 약 20분여간 준비된 양념장에 재운다. 꾸이 요리에 있어 양념장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들어가는 재료를 물어보니 마늘, 카민(약용 조미료), 소금 등의 각종 재료를 섞어 만든다고 했다. 특히나 양념장을 골고루 바른 꾸이의 뱃속에 마지막으로 와까따이(Huacatay)라는 나무 잎을 넣게 되는데, 아메리카산 박하의 일종인 이것은 꾸이 특유의 냄새를 없애고 고기에 좋은 향이 배도록 하기 때문에 조리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 양념된 꾸이의 뱃속에 와까따이(Huacatay)를 집어넣는 모습
ⓒ 배한수
이렇게 조리 준비가 완료된 꾸이는 입구에 있던 불가마로 옮겨진다. 주인은 커다란 철판에 양념이 완료된 꾸이를 나란히 정렬한 뒤, 일일이 손으로 기름을 정성스레 발랐다. 주인은 "이렇게 최종 기름칠까지 완료된 꾸이는 불가마 속에서 약 30분간 구워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 철판에 정렬한 꾸이에 기름을 칠하는 모습
ⓒ 배한수
이곳의 불가마는 빵마을의 것과 동일한 것으로 내부를 충분히 뜨겁게 달군 뒤, 꾸이를 비롯해 음식과 곁들여져 나오는 감자, 순대, 파스타 등을 조리하는데 사용하고 있었다. 빵을 굽는 것부터 음식의 조리까지, 다용도로 사용되는 페루의 천연 불가마는 참 흥미로웠다.

▲ 불가마 안에서 조리되고 있는 음식들
ⓒ 배한수
30분여의 조리시간 동안 주인은 꾸이를 서너 번 꺼내어 골고루 익도록 뒤집고 약간의 향신료를 뿌렸다.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아보니 껍데기가 노릇노릇하게 익어가고 있는 꾸이에서는 향긋한 박하향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 노릇노릇하게 익은 꾸이의 모습
ⓒ 배한수
꾸이의 맛은 과연?

잠시 뒤, 처음 맛보는 생소한 음식을 잔뜩 기대하고 있는 나에게 완성된 꾸이요리가 나왔다. 머리도 제거되지 않은 채,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꾸이. 측은한 마음과 생소함에서 오는 약간의 거부감이 일긴 했지만, 처음 보는 음식에 대한 호기심에 이내 맛을 보았다.

▲ 접시에 담겨진 꾸이와 뚜얀(Tullan), 타야린(Tallarin), 로꼬또 레예나(Rocoto rellena)의 모습
ⓒ 배한수
불가마에서 갓 구워진 꾸이는 바삭한 껍질과 함께 닭고기와 비슷한 육질을 가졌다. 맛은 약간 짭짤했지만 부드러운 육질과 고기에 배어 있는 박하향이 잘 어울어지는 음식이었다. 또한 함께 곁들여져 나온 뚜얀(Tullan, 꾸이의 내장에 야채와 고기로 속을 채워넣은 우리나라의 순대와 비슷한 음식)과 로꼬또 레예나(Rocoto rellena, 로꼬또라는 고추에 야채와 고기로 속을 채운 뒤 기름에 튀겨낸 음식)은 우리나라의 음식과 흡사한 맛이어서 먹는 재미를 선사했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생소한 재료와 색다른 맛을 가진 꾸이는 잉카시대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페루의 전통음식이라고 한다. 특히나 쿠스코 근방 지역의 사람들은 꾸이를 매우 특별한 음식으로 여겨, 매년 꾸이축제가 열리며 크고 작은 행사에 메인요리로 등장한다고 한다.

▲ 5월 26일 열린 Corpus Christi 축제에 등장한 꾸이 요리 장식
ⓒ 배한수
이렇게 잠깐 동안의 띠뽄 마을의 방문은 나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때로는 이국에서의 새로운 음식체험이 버거울 때도 있지만, 이렇게 하나씩 그들의 음식을 맛보며 그들의 문화의 일부분을 체험하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쿠스코-푸노 여행기는 총 8부로 연재됩니다.

현재 페루에 체류 중입니다. 

본 기사는 중남미 동호회 "아미고스(http://www.amigos.co.kr)에 칼럼으로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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