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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말이 필요 없는 잉카제국의 옛 수도 쿠스코(Cuzco)와 티티카카(Titicaca) 호수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으로 잘 알려진 푸노(Puno). 대다수 여행자들은 이 도시들의 시내만을 둘러보는 짧은 일정으로 이곳을 여행하고 떠나지만, 쿠스코에서 푸노로 이어지는 유일한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색적이고 재미있는 여행포인트들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다.

나흘간 일정으로 이 여행포인트들을 둘러보기로 한 나는 페루 친구들과 함께 작지만 성능 좋은 우리나라의 국민차 티코를 대절해 동틀 무렵 쿠스코를 떠났다.

▲ 안데스 산맥이 훤히 보이는 화창한 아침
ⓒ 배한수
화창한 날씨 속에 도로를 따라 양 옆으로 늘어선 안데스 산맥의 절경을 구경하며 달리길 20여분, 일행이 탑승한 차는 쿠스코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빵 굽는 마을 오로뻬사(Oropesa)에 도착했다.

빵 굽는 마을 오로뻬사

이곳은 마을 전체 가구가 빵을 굽는 것으로 유명한 마을로 안데스 산맥이 뒤로 펼쳐지는 아담한 중앙 광장을 가진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광장에서 주변 가옥들을 유심히 둘러보니 아침 7시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굴뚝 여기저기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마치 이곳이 빵 굽는 마을이라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이 말이다.

▲ 안데스 산맥의 절경을 뒤로한 아담하고 예쁜 오로뻬사 마을의 광장
ⓒ 배한수
연기가 피어나고 있는 저 집들 안에서는 어떤 광경들이 펼쳐질까. 잔뜩 궁금해진 나는 일행과 함께 광장 주변의 한 가옥으로 들어갔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일행을 반기는 것은 반원 형태의 커다란 불가마. 한쪽 방에서 빵 재료를 반죽하다 뒤늦게 나온 주인이 "이것은 빵이 구워지는 불가마다. 반죽된 빵을 굽기 전에 미리 뜨겁게 달궈놓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불을 때고 있는 중이다"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 빵이 구워질 불가마의 모습(뚜껑을 닫고 예열중이다).
ⓒ 배한수

불가마 안에 장작 넣어 내부 달궈

그런데 불가마를 달구는데 필요한 장작들이나 기타 예열 장치들이 보이지 않았다. 궁금해서 주인에게 가마를 달구는 장치가 따로 있느냐고 물어보니 "가마 아래에 불을 지펴 위를 달구는 것이 아니라, 가마 안에 직접 장작을 넣어 내부를 달군다"고 설명했다. 주인이 열어준 가마 안을 들여다보니 안에는 장작들이 곳곳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주인은 "빵이 구워지는 적정온도가 될 때까지 장작을 계속 넣어주어야 한다"며 갈고리를 부착한 기다란 막대를 이용해 장작을 이 곳 저 곳에 더 집어넣기 시작했다.

신기한 것은 불가마 내부에 연기가 하나도 안 찬다는 것이었는데, 장작에서 발생한 연기는 위로 연결된 통로로 자연스레 모두 빠져나가고 있었다. 기계의 열로 빵을 만들어내는 모습만 봐와서일까, 이렇게 전통 방법을 이용해 빵을 구워낸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불가마 구경을 마친 일행은 이내 불가마 옆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굳게 닫혀 있는 문을 여니,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빵을 만드는데 열중하느라 굉장히 분주한 모습이었다.

▲ 빵을 만드느라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
ⓒ 배한수
열 평 남짓한 빵을 만드는 공간은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영역이 나뉘어 각기 다른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는 빵의 재료를 혼합하고, 그 옆에서는 혼합된 재료를 반죽하고, 또 다른 구석에서는 반죽된 재료로 빵의 모양을 만드는 등 작은 공간은 빵을 만드는 여러 작업이 동시에 이뤄지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인은 "우리 마을에서 아침에 구워진 빵은 쿠스코, 푸노, 아레키파, 훌리아카 등 비롯한 주변 대도시와 근방 마을로 팔려나가기 때문에, 상인들이 오기 전에 빨리 빵을 만들어야 한다"며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이유를 설명했다.

▲ 빵을 만드는 과정.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각종 재료를 섞는 모습, 1차 반죽이 끝나고 숙성중인 재료, 기계에 넣고 2차 반죽을 거치는 재료.
ⓒ 배한수
빵의 재료가 되는 반죽은 우리가 먹는 것과 같은 재료가 사용되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 반죽되고 있는 과정을 지켜보니, 밀가루, 버터, 설탕, 계란, 이스트 등의 재료를 큰 틀에 차례로 부은 뒤 직접 손으로 반죽하고 있었다. 이렇게 손으로 반죽된 재료들은 잠깐 동안의 숙성 과정을 거친 뒤, 반죽을 더욱 찰지게 하기 위해 반죽기계에 서너 번 넣는 2차 과정을 거치게 된다.

▲ 사람들의 빠른 손놀림으로 모양새를 갖추는 빵
ⓒ 배한수

빵모양 내는데 5~10초면 거뜬

이렇게 반죽이 마무리된 빵은 옆 영역으로 이동되어, 사람들의 빠른 손놀림으로 빵의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이렇게 사람의 손에 의해 일일이 만들어지는 빵은 작고 동그란 모양의 일반 빵부터 꽈배기를 틀어놓은 듯한 모양, 커다란 케이크만한 빵 등 그 크기와 종류가 다양했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빵 모양을 만드는데도 불구하고, 반죽을 덩어리에서 떼어내어 빵모양을 만드는데 불과 5~10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빵모양을 만들어내는 이들의 손놀림은 빠르고 정교했다.

▲ 빵에 모양을 찍고 장식을 하는 모습
ⓒ 배한수
다른 한쪽에서는 이렇게 모양새가 갖추어진 빵을 받아 모양을 찍어내고 장식을 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 화려한 무늬와 장식은 아니었지만, 마무리로 정성스럽게 이루어지는 작업은 빵의 맛을 한층 돋워줄 것임이 분명했다.

▲ 불가마 안에 각각 구워질 자리가 배치된 빵의 모습
ⓒ 배한수
이렇게 최종 작업까지 마무리된 빵은 주인의 손으로 불가마 안에 일일이 자리를 배정받은 뒤 30~40분 구워지게 된다. 천연 불가마 안에서 구워질 빵들을 생각하자니 벌써부터 입에 군침이 가득 고였다.

150여년 빵 공급 중추 역할

약 40분 뒤, 가마에서 갓 구워진 따끈따끈한 빵을 맛볼 수 있었다. 안에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한낱 밀가루 빵이지만, 사람들의 정성스런 손길을 거쳐 천연 불가마에서 갓 구워진 빵의 맛은 그 어떤 빵보다도 맛이 훌륭했다.

▲ 팔려나가기 전, 한쪽방에서 식혀지고 있는 갓 구워진 빵
ⓒ 배한수
이렇게 만들어진 빵들은 다른 한쪽 방에서 식혀진 뒤, 이내 근방으로 팔려나간다. 페루 사람들은 대개 아침식사를 빵과 버터 및 음료(차, 커피, 주스 등)로 해결하고, 평소에도 빵을 즐겨먹기 때문에 이곳에서 만들어진 빵은 근방 사람들의 먹을거리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렇게 마을 전체가 빵을 굽는 이색적인 광경이 갖춰지기까지는 15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처음 이 마을에서 빵이 구워지기부터 지금까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오로뻬사 마을은 빵을 만드는 마을로 주변에 알려졌고, 현재는 주변지역에 대량의 빵을 공급하는 중추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빵 만드는 과정을 재미있게 구경한 일행은 갓 구워진 빵을 한 아름 사가지고 마을을 떠났다. 그런데 이날 차를 몰아준 택시기사가 굉장히 유명한 가게가 있다며, 마을을 떠나기 전 그 가게에 들러볼 것을 권했다.

빵마을 사람들의 장인 정신

마을 입구에 있는 가게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벽에 진열된 수많은 트로피들과 상장들이었다. 이 가게는 매년 열리는 오로뻬사 빵축제에서 맛있는 빵을 만드는 집으로 수차례 1등을 차지해 유명해진 집이라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해맑은 미소에 전통복장을 곱게 차려입은 인디오 아주머니가 일행을 반겼다.

▲ 빵마을의 전통 복장을 차려입은 인디오 아주머니
ⓒ 배한수
아주머니는 봉지에 가득담긴 빵들을 가리키며 "하루에도 수십 명이 우리 가게에 와서 빵을 사간다. 이젠 많이 유명해진 모양이다"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주인은 이내 각종 트로피들과 상장들을 언제 받은 것인지 설명하며, 오랜 시간 열심히 빵을 만들었더니 유난히 좋은 일이 많은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이렇게 마을 전체가 빵을 굽는다는 이색적인 볼거리를 구경한 일행은 이내 다음 행선지로 발을 돌렸다. 혹자는 누구나 싼값에 사먹을 수 있는 한낱 밀가루 빵을 굽는 마을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랜 세월 장인정신을 갖고 열심히 빵만을 구워 마을을 널리 알린 오로뻬사 사람들을 보고 진정한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하나하나 정성스레 만들어진 빵이 주변 페루 사람들의 배를 든든히 채워줄 생각을 하니 이들의 노력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쿠스코-푸노 여행기는 총 8부로 연재됩니다.

현재 페루에 체류 중입니다. 

본 기사는 중남미 동호회 "아미고스(http://www.amigos.co.kr)에 칼럼으로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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