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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70년대 교실 청소 풍경. 저 안에 있는 하나하나가 그립다. 중학교에 간 뒤로 마룻바닥을 물청소나 쓸기만 대충하고 말아서 아쉬웠고 고등학교 때는 콘크리트 바닥이어서 싸늘하기만 했다. 얼마나 미끄럼을 많이 탔는지 모른다.
ⓒ 김규환
“누나, 내 걸레 한나(하나) 맹글어(만들어) 주라.”
“벌써 다 떨어졌냐?”
“잉. 실밥이 떨어져각고 너덜거리거덩.”
“카만 있어봐봐. 벽장에 걸레감이 있을랑가 모르겠다.”


내 걸레는 실밥이 죄다 터져 다시 내복이 되었다. 6학년이던 누나가 어머니 대신 어두컴컴한 벽장을 뒤져 떨어진 바지 하나를 꺼낸다. 두 겹으로 접고 나서 커다란 무쇠 가위로 가장자리를 쓱쓱 잘라 흔들리는 호롱불 앞에서 한 땀 한 땀 홀쳐서 둘둘 꿰매주니 금세 네모나고 두툼한 걸레가 만들어졌다.

설을 쇠고 첫날 책보를 어깨에 메고 한 손에는 소나무 끌텅(나무를 베고 난 다음 썩기 전의 말라서 뿌리째 뽑히는 그루터기)을 들고 다른 손에는 걸레를 챙겨 학교로 뛰었다. 아직 2월이라 꽁꽁 언 땅 위에 볼가진 모난 돌과 얼음부스러기 기운이 고무신 밑바닥에 모두 전해져 무척 아팠다. 딱딱하고 시리다. 할딱거리며 뛰어 된바람을 쐬어선지 숨마저 밭아졌다.

점방을 돌아 학교 계단을 오르니 녹아서 질컥거리던 발자국이 운동장에 그대로 얼어붙어 아로새겨 있다. 화단을 따라 쭉 심어진 향나무만 싸늘한 교실을 감쌀 뿐 모퉁이를 바람이 휘휘감고 돌았다. 교실마다 아침 일찍부터 장작난로에서 연기가 솔솔 피어오른다.

긴 겨울방학을 끝내고 봄 학기가 시작되어 아이들이 뛰어 놀았는데도 며칠 동안 청소를 하지 않았다고 교실 바닥은 먼지가 자욱하게 앉아 있다. 난로는 불을 댕길 때와 수업시간에는 선생님 몫이었지만 쉬는 시간과 점심때는 당번이 장작을 밀어 넣어줘야 한다. 그날도 새 옷으로 갈아입었을 뿐 평상시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돈치기 하는 날, 여자애들은 평화롭다

“야 성호야 세뱃돈 많이 받았냐?”
“쓸어 담았제. 작은 아부지가 1000원 주시고 증조할매 100원, 할매 200원, 아부지가 500원 주셨지롱.”
“해섭이 너는?”
“내사 통틀어서 500원 받았어.”
“난 우리 성아들이 학용품 사라고 300원씩 줬으니께 엄마 아부지꺼 모트면(보테면) 딱 1200원이다. 그럼 우리 짤짤이나 해보까?”
“바깥은 추운께 돈이나 떤져먹기 하자.”
“좋아.”


교실에 잘 보이도록 빨간 분필로 금을 그어놓고 동전을 던졌다. 가장 가까이 던진 아이가 먹는 방식인데 몇 번 양지마을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양을 보고 옆 마을 강례 아이들도 둘째 쉬는 시간에 합류해 어느새 남자 19명 중 절반 이상이 돈 던지기에 열중이다.

“툭!”
“에잇!”

“툭!”
“아따매 쬐끔만 더 가지.”

“옆으로 물러서봐. 확실히 맞혀불텨. 뒤로 물러서보랑께.”
“툭!”
“또르르 촬촬촬촬촬 똑!”
“지미~”


빈 자리를 휘젓고 빙그르르 돌아다니던 동전이 자리를 잡았다. 내 것은 금을 넘어가 실격처리 됐다.

이제 던지기에 일가견이 있는 상복이가 눈에 대고 왔다 갔다 몇 번을 가늠하며 움직이더니 툭 밀듯 던졌다.

“튕!”
“야 맞았다.”
“야색꺄! 너 떤짐시롱 금 밟았지?”
“아념 마.”


▲ 10원짜리 동전을 던져서 따먹는 게 어찌보면 가장 공정한 시합이었다.
ⓒ 김규환
바닥에 좌악 깔려 있는 동전을 긁어모으는 상복이는 마냥 신이 나 있다. 종이 울릴 때까지 돈 따먹기가 계속되었다.

“땡땡땡! 땡땡땡! 땡땡땡!”

수업을 알리는 종이 세 번씩 반복해서 울렸다. 공부가 시작되었지만 아이들은 어서 종이 “땡땡땡” 세 번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2, 3교시를 거쳐 점심때가 되자 나물과 부침개 등 설에 남은 음식을 허겁지겁 밀어 넣고 햇볕이 내리쬐는 뒤뜰로 몰려나가 동전 던지기를 계속했다. 여럿이 왔다 갔다 하는 통에 땅이 질컥거린다. 흙이 녹아 손은 흙투성이가 되었다.

우리가 짤짤이와 돈치기로 며칠을 보낸 동안 여자 아이들에겐 평화로운 시기다. 남자애들을 피해 멀찌감치 떨어질 필요도 없이 고무줄놀이를 즐기니 이때 한번 고무줄을 맘 놓고 접었다 돌리고 휘감아 재주를 한껏 부려보니 얼마나 다행인가.

교실 대청소 하는 날

선생님들은 며칠간 설을 쇠고 온 뒤끝이 개운치 않은 건지 서둘러 수업을 마쳤다. 오후 세시가 조금 안 된 시각 6학년, 총 여섯 반 첩첩산중 산골 학교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손 걸레를 꺼내 청소를 서둘렀다. 학년마다 거의 동시에 책걸상을 한 곳에 모으느라 마룻바닥 끄는 소리에 교정이 천둥치듯 요란스럽다.

책상 위에 걸상을 올려놓고 일부는 먼지떨이를 들고 유리창으로 달라붙었다. 먼지를 털고 창살에 양다리를 올려 위에서부터 아래로 입김을 호호 불며 마른 걸레를 돌려가며 닦는다. 아래로 내려와서는 퍽석 엉덩이를 깔고 앉아 다리를 흔들며 유리창을 껴안고 닦는다.

나는 3학년 부급장이라 그날그날 상황과 기분에 따라 구역이 다르다. 유리를 닦기도 하고 바깥으로 나가 휴지를 줍는 걸 돕다가 같이 놀기도 한다. 교실 바닥 걸레질을 할 때도 있다. 몇몇은 바깥 운동장으로 나가 휴지를 줍고 낙엽을 쓸어 모아 들것에 담아 쓰레기장으로 향한다.

청소도 서열이 있는지라 겨울에는 유리창 청소가 제일 편하고 그 다음이 엎드려서 마루를 닦는 바닥 청소다. 이 두 가지는 청소시간에도 난로가 활활 타고 있으니 추위는 피할 수 있어 좋다.

바깥 청소는 가장 한직으로 거의 헤지거나 든든한 윗옷 하나 걸치지 않은 행색이며 양말도 신지 못한 아이들에겐 피하고 싶지만 선생님께 한마디도 꺼내지도 못하는 아이들 주변머리와 급장에게 밉보여 밖으로 쫓겨난 아이들에겐 중강진이나 아오지 탄광쯤으로 여겨도 되는 서러운 곳이다.

달달거리며 자글자글 주전자 뚜껑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온화한 기운이 감도는 교실청소는 물청소를 해야 하는 여름, 가을철과 달리 겨울과 봄에는 우물에 달려가 빨아올 필요마저 없었다.

일단 실내가 정돈되면 비질을 하여 먼지와 휴지, 지우개밥과 끊어진 연필심을 쓸어 모으고는 분단별로 정해진 아이 한둘이 초를 한번 빠짐없이 득득 칠한다. 선생님이 구해놓은 네모난 양초가 떨어지면 분단장 책임아래 집에서 쓰던 초를 가져와야 한다.

가로세로 앞뒤로 마구 돌려가며 칠하면 그 다음엔 마른 걸레로 교탁 쪽에서 환경미화 게시판 쪽으로 엉거주춤 엎드려 몇 번을 쏜살같이 내달린다. 아이들이 서로 일찍 끝내려고 내달리는 통에 부딪히기도 한다.

이때까지는 그래도 미끄럽지도 위험하지도 않다. 본격적으로 교실이 한 번 더 소란스러워지는 건 각자 갖고 있는 소주병을 꺼내와 바닥을 빈틈이 없이 오밀조밀하게 병 바닥을 문질러댈 때다.

“득득”
“드글드글”


이를 잡듯 빠짐없이 앞으로 밀고 좌우로 회전하면서 전진을 거듭한다. 마음씨 착한 아이들이라 눈치를 보는 법이 없이 분단 경계를 조금씩 넘나들기도 한다. 뒤따르던 아이들이 한 번 더 훑고 지나간다. 간혹 “쨍!” 병끼리 부딪히지만 깨지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얼마나 꾹꾹 힘을 줘가며 문질러주고 돌려댔던가 여태까지 그냥 밋밋했던 바닥이 관솔이 배긴 것처럼 색깔이 더 짙어지고 나무 결이 확연히 드러나 윤기가 흐른다.

중간에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잘들 하고 있냐? 오늘은 후딱 파해줄 것인께 싸게싸게 해치워라. 알았쟈? 글고 야, 춘자야 너 땀 안 나믄 집에 못 간께 알아서 혀라, 알았제?”
“예.”


춘자는 선생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알아들었다. 열심히 닦았지만 땀이 나지 않은 건지 허벅지에 알이 배기도록 닦고도 곧 울음보가 터질 기세다.

“야, 춘자야 그만 혀라.”
“선상님이 이마빡에 송글송글 땀이 안 나믄 집에 못 간다고 혔는디….”
“야 이 가스나야, 열심히 닦으란 말이제 시방 선상님이 진짜 그런 것이 아닌께 찬찬히 혀. 글고 인자 곧 끝난께 정리혀라.”


남녀 구분 없이 나일론 양말에도 양초가 끼어 앞뒤 벽에 의지하지 않고는 미끄러지고 고꾸라져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한다. 앞에서 굴려 끝까지 가고 뒤쪽에서 다시 굴려 앞까지 단박에 걸레를 밀고 간다. 얼마나 문댔을까. 도저히 서서는 다닐 수 없는 바닥이다. 빙판이 이렇게 미끄러울까. 남자 아이들 몇몇은 얼음판 위에서 쭉 미끄러지듯 미끄럼을 탄다.

▲ 꽃샘추위에 친구하나 버릴뻔한 사건이었다. 그 일이 있고서는 반장과 두고두고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그 친구와 고등학교까지 함께 갈 줄이야.
ⓒ 김용철
대충 청소가 끝났으려니 생각하고 밖으로 나갔다. 교실에만 있던 나는 옷깃을 여몄다. 눈발이 가늘게 날리며 가장 큰 4학년 형들 교실 옆에 있는 쓰레기 소각장 옆으로 바람이 세차게 불어 건물에 바짝 붙어 옷깃을 세우고 걸었다. 몇몇 아이들은 배꼽을 드러내놓고 제기를 차고 있었다.

“야! 청소 다 끝났으먼 언넝(얼른) 교실로 들어가라.”
“쫌만 더 차고.”
“거짐 끝나간께 얼렁 들와. 춥잖아.”


동무들 중에 가장 왜소한 찡거리 종호가 보이지 않았다.

“야, 찡거리는?”
“몰러.”


청소를 대충대충 하는 둥 마는 둥 마치고 추위를 몰아내려고 놀이에 빠진 아이들에게 물어본들 무슨 소용이랴. 뚤래뚤래 주위를 살펴보니 건물 사이 바닥에 한 아이가 잔뜩 웅크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다가가 보니 입술이 파랗게 질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얌마 종호야 여기서 뭐혀? 가자. 이러다 너 큰일 난다. 가자 가.”
“응응.”


입마저 얼어붙었는지 모기만한 소리로 웅얼댄다. 살아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알았다. 학교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평지에 사는 종호는 평소에도 잔병치레를 많이 해 훅 불면 날아갈 듯한 아이다. 붙잡아 끌고서 교실로 들어가 난로 옆에 앉혔다.

“야 너 찡거리 왜 청소 안하고 왔냐?”
“이런 개놈의 새끼. 동무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말이 나와? 니가 급장이여?”
“뭐라고?”


싸움이 붙을 뻔 했지만 참는 수밖에 없었다. 매사 2등이었던 내가 견제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정의의 사도가 없는 교실이란 암흑이다. 선생님은 그런 일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고 급장이 선생님 대신 모든 일을 처리해주니 오히려 고맙다고 생각했고 눈감아 주는 일도 잦았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탓이다. 10살에 학교에 들어온 급장은 친구들에게 악랄했다. 공부도 1등이었지만 만화책을 죄다 빼앗아 가고 여자애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면 앞장서서 끊거나 가져가고 선생님이 시키지 않는데도 대신 매를 때리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뿐만이 아니다. 제 맘에 들지 않으면 당번을 다시 시키기도 하고 청소 구역을 제멋대로 조정하기도 했다. 밥을 빼앗아 먹기도 했던 아이였다. 영웅답지 못한 악질의 권력이 무너진 건 5학년 1학기 때 새로 오신 선생님이 내리 2년간 담임을 맡고 나서다. 선생님은 그런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2달에 한 번씩 반장을 번갈아가면서 하도록 배려했기 때문이다.

교실에 들어와 한 동안 난로를 쪼이고 따뜻한 물을 한잔 먹였더니 곧 기력을 회복했다. 하교 길에도 산촌엔 가느다란 눈발이 하염없이 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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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꼬마 녀석들 추운 줄도 모르고 연을 날리고 있네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2년 남짓 써왔던 고향이야기 600여 편 중 몇 개를 묶어 <잃어버린 고향풍경1>을 냈다. 고향의 맛을 찾는데 열심인데 음식과 홍어를 다룬 책이 따로 나올 계획이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hongaclub) 대표이며 올해 말에 전남 화순 백아산으로 귀향하여 <산채원(山菜園)>을 만들 작은 꿈을 꾸고 있다.

삽화를 그린 김용철 님은 <강아지를 부탁해> <공포탈출일기> <아싸! 똥파리> <느낌표> <아이러브햄스터> 등 50여 권의 어린이 만화집을 냈고 최신작으로 <학교 짱의 22가지 행동>이 있다. 홍어클럽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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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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