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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콩을 최소 12시간 불려야 합니다. 오래 담가둘수록 좋습니다.
ⓒ 김규환
아침부터 눈이 펄펄 내렸다. 오늘은 나무를 하러 가지 않아도 될까 모르겠다. 일어나자마자 또랑으로 가서 찬물에 세수하고 와야만 밥상 앞에 앉을 자격이 있는 형제는 동시에 일어나 눈곱을 비벼서 떼며 어슬렁어슬렁 나갔다.

마을 바로 앞 아이들이 썰매 타던 보(湺)는 꽁꽁 얼었으니 동네 공동우물이 있는 다리께로 내려갔다. 이른 아침녘에 누가 물을 길어 갔는지 징검다리에 떨어진 물이 얼어 있어 총총걸음으로 건너뛰었다.

"푸아 푸아."
"푸푸."
"으이 추워."

누군가 벌써 와서 세수를 한 건지 노란 잔존물이 남아 있다. 얼굴과 손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고개를 들어 뚜부집(두부집)을 보니 불이 난 듯 김이 집채를 덮치듯 감싸고 있다.

"성, 오늘 뚜부 쑬라네 보네."
"잉. 언넝 세수하고 가야 써. 폴새 엄니가 밥 차렸겠다."
"누가 빨리 간가 보까? 요리똥(시작, 출발의 일본말)!"

마구 집으로 뛰었다. 귓불이 떨어져나가는 줄 알았다.

"헉헉. 내가 이겼지?"
"니 맘대로 뛰어놓고?"
"글도 맨날 성이 먼저 출발했잖어."

오늘도 씰가리국이다. 대충 말아먹고 두부 먹을 생각에 오전 한때를 머리를 텅 비운 채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 갈아둔 콩물. 요즘 믹서에 갈면 그맛이 나지 않습니다. 너무 잘게 갈아지기 때문이죠.
ⓒ 김규환
어제 오후부터 뚜부집(두부집)에선 찬물에 담가 불린 노란 콩에 물을 치면서 맷돌로 계속 갈아댔다. 맷돌이라고 해도 어처구니(맷돌 손잡이)를 잡고 돌리는 방식이 아니라 꽤 큰 맷돌에 긴 막대를 연결하여 서서 연자방아를 돌리듯 온몸을 움직여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밀어댄다.

허리를 숙여 도리깨 길이만큼 긴 손잡이를 앞으로 끝까지 밀면 한 바퀴 빙글 돌아 다시 앞쪽으로 오면 몸을 뒤로 젖혀 돌린다. 뻑뻑하면 갈리지도 않고 콩물이 엉기므로 한 사람은 찬물을 주전자로 조금씩 흘려 계속 부어준다. 갈린 콩물이 주룩주룩 받쳐놓은 통에 흘러내린다.

혼자서 다 하기엔 벅차다 싶다. 20~30분 갈다가 번갈아가며 내외가 간다. 앞으로 갈아야 할 콩이 지금까지 간 양보다 훨씬 많았다. 두부 만드는 날엔 이른 아침 구(舊) 이장 댁 주막 겸 살림집엔 아주머니는 나이 어린 내 또래 아이들만 남겨두고 열댓 살을 넘긴 자녀들을 모두 대동한 채 150미터 떨어진 두부공장으로 나와 함께 일하고 있다.

콩을 고르는 건 평소에 해놓았다 쳐도 냇가에서 물 퍼오고, 장작불 때고, 콩 갈기, 솥단지 씻기 등 기본적인 일에서 본격적으로 두부를 끓이고, 참즙(엑기스라는 일본말을 글쓴이가 직접 만들어본 말)을 짜내기 위해선 대여섯 사람 손대로도 모자랄 판이니 두부집엔 일손이 없어서 안달이다.

인심 좋은 주인이 지나가는 사람마저 따끈따끈한 순두부 한 그릇 마실 기회를 주는 터에 가던 길 멈추고 거들면 누가 주인인지 모르도록 한데 어울려 일을 하는 게 두부 만들기다.

▲ 물이 끓으면 조금씩 끼얹어주며 끓입니다.
ⓒ 김규환
집집마다 늦가을 도리깨질깨나 해서 콩 타작을 하여 한두 가마 나오면 장에 내다팔 필요가 없다. 씨앗과 메주 쑬 분량만 남기고 웬만한 콩은 두부집으로 직행한다. 농사짓는 사람은 달구지에 싣고나갈 수고를 하지 않아도 몇 푼씩은 더 쳐주니 좋다.

두부집에서도 멀리 사러갈 일이 없으니 서로에게 이문이 남는 장사였다. 농사가 끝나가는 11월부터 이듬해 삼사월까지 물량을 확보해 두고 사나흘 간격으로 눈 오는 날을 골라잡아 두부를 만들었다.

동네 초입 다리거리에 있는 구판장 건물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성균이 형 두부집은 마을에선 처음으로 슬레이트 지붕에 벽돌을 쌓아 새로 지은 집이다. 마구간이나 다름없던 곳을 허물어 지어놓으니 꽤 넓어보였다. 네 마을 중 가장 큰 우리 동네에 두부집이 한 곳에 있으니 이웃 동네가 소비할 양까지 셈하여 한 번에 최소 3판 이상을 만들었으니 갈아야 할 콩은 적지 않았다.

▲ 끓고나면 보자기에 넣어 진국 참즙을 내서 간수를 부으면 이렇게 얼기설기 얽힙니다. 이거 한잔 떠먹으면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 김규환
콩 골라 씻고 콩 불리기를 12시간 남짓에 맷돌로 콩을 가는 고된 작업을 몇 시간 동안 해대는 동안 사람들마다 "우리 것 세모요", "나는 다섯모 맡아놨어라우", "울 아부지가 비지 좀 달라급디다" 등 콩을 삶기 전부터 주문을 해대는 통에 머릿속에 기억하고 뛰듯 바쁜 몸을 가누기조차 힘겹다. 얼추 갈려 가면 솥단지를 싹싹 밀어 말끔히 퍼내고 물을 끓인다.

"성균아 가서 두 바케스 더 퍼 와라."
"됐는 것 같은지라우."
"아녀 끓다보면 부족하당께. 자슥아 니가 더 잘 아냐?"
"알았어라우."

센 불로 얼마간 불을 때주니 솥단지 뚜껑과 솥 사이로 눈물을 찔끔 흘리더니 이내 팔팔 끓어간다. 쌀뜨물처럼 새하얀 콩물을 자루달린 바가지로 휘휘저어 물이 끓고 있는 솥에 휙 둘러 붓자 샘물이 몽글몽글 솟아올라 파도치듯 일렁인다.

"어이 박샌, 불 좀 줄이더라고."
"알았어라우."

때던 불을 줄이고 통을 옆에 바짝 붙여 다시 끼얹기를 열댓 번. 내용물이 더 들어가자 끓어 넘치기 직전으로 요동을 친다. 황급히 긴 주걱으로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젓고 또 저어준다.

▲ 순두부가 엉기는 동안 한쪽에선 콩비지를 털고 있습니다. 비지찌개도 옛맛 찾는 데는 딱입니다.
ⓒ 김규환
그야말로 꼬스름한 진짜배기 두부를 만들려면 지금 이 순간이 좌우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쉬지 않고 잘 저어주고 화력을 잘 맞춰야 싼내(탄내)가 나지 않고 고소한 맛을 낸다. 이때 조금이라도 넘치면 좋은 알갱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영양도 뚝 떨어진다. 솥 바닥에 조금이라도 누른 기색이 있으면 탄 냄새에 절어 전체 맛을 앗아가는 건 불을 보듯 빤하다.

처음엔 세상 모든 자잘한 거품을 모아 놓았는가 싶었다. 곧 알갱이가 송알송알 제들끼리 뭉치기 시작했다. 죄다 갈린 것으로만 알았는데 물과 노르스름한 알갱이가 조금씩 따로 놀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다. '흩어지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역설이 성립하는 놀라운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비린내 하나 나지 않은 구수한 내음이 사립문도 없는 마당에 가득 퍼졌다.

"자자 비키더라고. 자루!"

▲ 자 그러면 이제 모판에 굳어가는 순두부를 붓고 굳히기 단계에 들어가겠습니다. 너무 굳지 않게 숨구멍을 주듯 하는 것도 맛있는 두부를 만드는 요령입니다.
ⓒ 김규환
마당엔 큰 다라이 통이 하나 있고 그 위에 얼기설기 엮은 대나무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더 위엔 긴 'Y'형 나무가 걸쳐 있다. 무명으로 된 흰 자루에 뜨끈한 콩물을 붓는다. 비집고 빠져나오는 물과 안에 남아 있는 찌꺼기가 분리되는 순간이다.

한 솥단지를 가득 퍼서 담고 물이 밖으로 나오도록 꾹꾹 누른다. 가늘고 고운 입자인 참즙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자르르 밖으로 빠져 나와 두부가 되고 안에 남아 있는 굵은 입자는 콩비지가 된다.

자루 입을 막고 식을세라 북채만한 막대 두 개로 꾹꾹 누른다. 곧 두셋이 어울려 지렛대를 열십자(+) 모양으로 만들어 우격다짐으로 안간힘을 쓰며 돌려서 몇 번을 꾹 누르고 있으면 웬만한 물기는 다 빠져나오는데 보자기 겉엔 아이가 게워낸 듯 콩 알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자루를 끌러 비지가 쌓여 있는 통에 다 부으면 옆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은 서로 차지하려고 봉지를 들이밀었다. 콩비지 찌개만 해먹으면 좋을 텐데 돼지에게 주려는 사람들도 있으니 금방 동이 나고 만다. 나도 그 틈에 끼어 황급히 두 되 가량을 집어넣고 한줌 입에 넣어보니 구수한 맛은 그대로다.

▲ 천을 덮고 위에 판대기를 올려 지그시 눌러 물이 빠져나오게 하세요. 이제 두부가 완성되어 나옵니다.
ⓒ 김규환
구(舊) 이장 강덕기씨는 콩 참즙이 들어 있는 통에 소금가마니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 몇 해 전부터 저장해둔 간수를 병에서 주루룩 따른다. 맹물에 가깝던 콩물이 서로 뒤엉킨다. 단백질 덩어리만 모여 굳기 시작했다. 뭉게구름이 춤을 추듯 남실거린다. 알갱이가 살아 꿈틀거린다. 실로 두부 만들 때 이때처럼 마음이 요동을 치며 움직인 적은 없었다.

침이 꼴딱꼴딱 넘어간다. 사람이 많지 않을 때 어른들을 따라가 거들다가 멀뚱멀뚱 쳐다보면 "예따"하며 한 그릇 떠주는 물 반, 두부 반인 순두부 물을 먹는 그 맛은 절대 잊지 못할 천하일미였다. 따끈한 부드러운 국물을 "호로록 후루룩 호호" 불며 마시면 목구멍을 타고 거침없이 내려가고 혀에 감겨 감칠맛이 더하다. 자잘한 알갱이가 기분 좋게 간지럽힌다.

두부 모판에 다시 무명천을 깔고 위에 자르르 넘치지 않도록 순두부를 부어 제대로 굳히기에 들어간다. 천을 덮어 나무판을 올리고는 돌덩이를 짝수로 올려 균형을 잡아주고 2~30분 기다리면 물이 거의 다 빠져 응고되기 시작한다.

▲ 자, 시골 두부입니다. 이 두부는 제 형이 직접 지은 콩으로 전남 화순 북면 원리마을 가게에서 만든 두부입니다. 이 집은 절대 방부제를 쓰지 않으므로 겨울철에만 두부를 만들어 팝니다. 한 모에 2,000원입니다. 그런데 요즘 유기농두부도 만든다지요? 현혹되지 않길 바랍니다.
ⓒ 김규환
아직 김은 모락모락 쫄쫄쫄 소리를 내다가 멈추면 덮개를 조심히 열고 비프스테이크(돈가스) 잘라 먹는 무딘 칼로 구획선을 따라 쭉쭉 잘라나간다. 옆에선 한 모 한 모 부서지지 않도록 찬물에 담가 단단히 굳도록 마지막 작업을 하면 긴긴 시간 공들였던 두부 만들기가 끝이 났다.

콩 심은데 콩 나듯 콩으로 메주도 쑤고 두부도 만든다. 콩이 밭의 쇠고기라면 두부는 콩의 알짜배기다. 발이 시린 줄도 모르고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나는 집으로 뛰었다.

"엄마, 엄마, 성균이형 뚜부집에서…."
"어쨌다고? 뚜부집에 불이라도 난 거냐?"
"그게 아니고라우. 뚜부 맹그랐당께요. 우리도 사야 되는 거 아닌게라우?"
"가만 있어라 세 모만 사오니라. 그럭(그릇) 챙겨각고 가그라."

바가지만한 양푼에 100원짜리 석장을 담아 다시 뚜부집으로 뛰었다. 아직 자르고 있었다.

"한 모는 담그지 마시래요."
"그려, 김치에다 싸묵을라고?"
"예."

우리 집에선 생두부를 사오면 물에 담그지 않아 따끈한 채로 한 모를 접시에 놓고 일부러 칼로 자르지 않고 김장김치에 젓가락으로 부셔서 먹곤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술 한 잔을 드셨다. 우린 서로 눈치를 봐가며 먹었다.

▲ 이렇게 찬물에 담가놓으면 바스러지지 않고 단단하게 잘 굳습니다.
ⓒ 김규환
처음에는 크게 집어 한 입 가득 채웠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몫을 자르고 또 잘라 작은 토막으로 만들어 감질나게 먹었다. 아버지도 아쉬웠는지 술을 한잔 더 따르신다.

"한 모 더 묵어불제? 짐치(김치)가 많이 남았구만."
"좋을 대로 허싯쇼."

우린 결국 한 모만 남기고 두 모를 먹어치웠다. 뜨끈한 두부를 김치에 싸서 먹는 그 맛 일품이었다. 저녁 땐 어머니께서 비지찌개를 해주셨다.

예전 시골에서 먹었던 오리지널 그 두부는 알갱이가 씹혔다. 두부 숨구멍이 보였다. 헛배가 부른 듯 배가 차올랐다. 깨금발을 하고 고샅을 쏘다니다가 아이들을 몇 명 만나 활과 화살촉을 만들려고 대밭으로 갔다.

식구대로 온종일 두부를 만드느라 점심은 대충 먹는 모습이 보였다. 눈발이 날리는데도 따끈한 두부를 몇 모씩 사가려고 이웃 동네에서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남는 건 자기네 주막에서 그날그날 술과 함께 팔면 되었고 겨울이라 상하지도 않으니 오래 두어도 맛이 변함없이 좋았다.

▲ 막걸리 받아놓고 김치와 날두부를 접시에 올려 젓가락으로 잘라 드셔보십시오. 날렵하게 잘리면 그건 가짜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렇게 토실토실 일어나야 국산 재래 두부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두부가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이유를 알면 시중 두부 먹기 겁이 날 겁니다.
ⓒ 김규환
아! 나는 지금 강릉 초당두부를 먹을까, 시골두부 만드는 집을 찾아 떠날까 고민에 빠졌다. 밀가루 냄새나지 않은 진짜 날두부 한번 먹어보면 원이 없겠네. 이번 주말엔 고향집으로 달려가 콩 부자(富者) 내 형님에게 두부 만들어 먹자고 졸라보련다. 설도 다가오매 더 간절한 이 맘 억누를 길 없구나.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2년 남짓 써왔던 고향이야기 600여 편 중 몇 개를 묶어 <잃어버린 고향풍경1>을 냈다. 고향의 맛을 찾는데 열심인데 올 2월에 음식과 홍어를 다룬 책이 따로 나올 계획이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hongaclub) 대표이며 올해 말에 전남 화순 백아산으로 귀향하여 <산채원(山菜園)>을 만들 작은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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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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