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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8일 올해의 첫 번째 가족 나들이를 했습니다. 천안에 있는 딸아이를 제외한 가족 모두 안양에 갔습니다. 내 누님의 59회 생신인 까닭이었습니다. 7남매의 맏이이자 내 유일한 누님이신 지설희님의 50대 시절의 마지막 생신인 데다가 올해는 그 생신이 겨울방학 중에 있어서 아내도 아들녀석도 쉽게 나들이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오래 차를 타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는 데다가 지난해 12월 9일 좀도둑이 들어 컴퓨터 모니터를 가져간 후로는 불안한 마음 때문에 처음엔 나들이를 하실 마음이 아니셨지요. 그런데 아침에 생일 맞은 맏딸과 통화를 한 후로 금세 마음이 바뀌셨지요.

큰딸이 전화로, 세상에 태어나서 아들딸 낳고 착한 사위들도 보고 예쁜 외손녀들도 보고 재미있게 사는 것이 다 어머니 덕이라느니, 생일에 미역국은 본인보다 낳아주신 어머니가 잡숫는 법이라느니, 이런 계제에 딸네 집에 와보시지 언제 또 오실 기회가 있겠느냐는 둥 한 번이라도 더 늙으신 어머니를 보고자 하니, 어머니의 마음이 변하는 건 당연지사였습니다.

내 누님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로 쓴다 해도 한 권에는 다 못 담을 터이지만, 여기에서는 생략을 합니다. 내년 환갑 때 간략하게 잡문으로라도 간종그려 볼 생각입니다.

일단 누님 집에 도착해서 늦은 점심을 먹은 다음 우리 부부는 몸을 일으켰습니다. 우선 같은 안양의 다른 동네에서 사시는 장인어른을 찾아뵙고 새해 인사를 드렸습니다. 지지난해 홀로 되시고, 지난해 큰아들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신 다음 작은아들 집에서 사시는 장인어른께도 기가 막힌 사연들이 많아서 이야기꾼인 나로서는 다시 한번 내 피곤한 팔자를 생각하며 심란 상황을 겪지 않을 수 없었지요.

또 다시 신경성 위염 증세와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장인 어른께 위로와 함께 용돈을 쥐어드리고 집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전철을 타고 서울 신설동으로 갔습니다. 지하철역 근처 한 예식장에서 열리는 김찬수라는 아기의 돌잔치 참석이 그 날 우리 부부 서울행의 목적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누님의 생신과 김찬수 아기의 돌잔치가 같은 날인 것이 그렇게 다행일 수 없었습니다.

어언 50대 후반과 초반 세월을 살게 된 우리 부부가 피붙이 겨레붙이 인연붙이도 아닌 김찬수라는 아기의 돌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추운 겨울철에 서울행까지 하게 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답니다.

김찬수 아기의 아빠는 김지선이라는 사람이고, 엄마는 최미정이라는 사람이랍니다. 두 사람 다 인터넷 <가톨릭 굿 뉴스>의 자유게시판을 아주 가멸게 풍미하는 사람들이지요. 두 사람은 '굿 뉴스' 게시판에 글을 쓰다가 서로의 글이 마음에 들어 게시판 상에서 남모르게 교감을 나누던 끝에 마침내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굿 뉴스의 게시판에서 인연이 맺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중매를 서서 자신들의 인연이 맺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들 사이에 중매쟁이 역할을 한 셈이었습니다.

그들은 굿 뉴스 게시판이 인연이 되어, 즉 예수님이 중매를 서서 탄생한 제1호 커플이랍니다. 최초이자 유일한 굿 뉴스 게시판 커플인데, 아직까지 2호 커플은 탄생하지 않고 있지요.

그들은 30대 후반 늦은 나이로 지난 2002년 1월 19일(토) 오후 4시, 서울 중림동 성당 구내 <가톨릭출판사> '마리아 홀'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 혼인미사에는 굿 뉴스 게시판에 글을 쓰는 많은 형제 자매들이 참석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결혼식 장면은 <평화방송>에도 보도가 되었고, 그들의 결혼 사연은 <평화신문>에도 소개가 되었지요.

게다가 김수환 추기경님도 그들 부부에게 축전을 보내 주셨고….

1965년 생인 김지선씨는 실명제인 굿 뉴스 게시판에서 실명이나 도미니꼬라는 세례명보다 '피터팬'이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통합니다. 또 남편보다 한 살이 많은 최미정씨는 실명보다 나탈리아라는 세례명으로 더 많이 통합니다.

김지선씨는 1999년 8월부터 굿 뉴스 게시판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최미정씨는 같은 해 10월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모두 처음부터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어당겼고, 곧 조회 수가 가장 많이 기록되는 굿 뉴스 게시판의 사랑 받는 스타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인기는 지금도 변함 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도 한때는 굿 뉴스 게시판을 즐겨 보셨다고 하는데, 김지선씨의 글을 가장 많이 읽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김지선씨의 팬이라는 말씀까지 하셨는데, 굿 뉴스 게시판을 통해 김지선 최미정 커플의 결혼 소식을 아신 연유로 축전까지 보내신 거지요.

가톨릭 굿 뉴스 게시판은 수구와 진보가 가장 첨예하고 극심하게 충돌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다수의 알바성 수구들이 집요하게 포진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아마 우리나라의 수많은 인터넷 게시판들 중에서도 수구와 진보가 가장 첨예하고 극렬하게 충돌하고 대립하고 갈등을 연출하는 곳이 아마도 가톨릭 굿 뉴스 게시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상황에서 김지선씨는 진보적인 견지에서 예리하면서도 명쾌한 논리를 구사하곤 하지요. 어떤 사안이든 그는 전향적인 열린 시각을 유지하며 충실한 논리로 자신의 생각을 전개하곤 하는데, 때로는 해학적이기도 한 설득력이 일품이지요. 물론 아무리 탁월하고 사리가 분명한 논리를 전개한다 해도 그것으로 수구 세력을 설득할 수는 없지요. 이미 수구 세력에게는 세상 이치와 상식과 논리라는 것은 무의미하고도 무가치한 것이니까요.

김지선씨에 비해 최미정씨는 '싸움 글'은 일체 쓰지 않는답니다. 그저 아름다운 글과 그림과 음악으로 혼탁해진 게시판을 정화하려는 쪽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지요. 하지만 그의 그런 글 속에도 중심을 잘 유지하면서 어떤 의중을 담고 있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지요.

나는 그들 부부에게 늘 빚을 지고 있는 심정이랍니다. 나는 2001년 8월부터 굿 뉴스 게시판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늘 게시판 수구들의 표적이었지요. 내 현실비판 글에는 반드시 시비를 거는 전문 스토커가 따라붙지요.

그런데 내가 수구들로부터 공격을 당할 때 김지선씨는 나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논리 정연한 글들을 올리곤 해서 내게는 더 없이 큰 힘이 되어주곤 했답니다. 그래서 그는 수구들로부터 나를 중심으로 해서 뭉쳐 있다는 뜻의 '5인방'이라는 소리도 듣고, 나를 추종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쥐빠'라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지요.

그들 부부는 만혼의 신혼생활을 참 멋지게 한 것 같습니다. 부지런히 깨소금을 수확하는 듯, 최미정씨는 달콤한 신혼생활을 느끼게 하는 글도 써서 아름다운 그림과 음악을 곁들여 굿 뉴스 게시판을 장식하곤 했지요.

그것이 알려져서인지 그들 부부는 2003년 6월 KBS의 '아침마당'에도 함께 출연하여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좋은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만혼의 신혼생활을 멋지게 장식하고 열심히 사랑하며 살건만 이내 아기가 생기지 않아서 본인들은 물론이고 양가 노부모님들의 애간장을 태웠지요. 그들의 나이 때문에 아기 소식은 한시가 급한데도….

그러다가 드디어 2003년 10월 최미정씨가 게시판에 아기 소식을 알리게 됩니다. 내년 2월쯤에 엄마가 될 것 같다는 말로…. 몸 속에 아기를 지녔으니 이미 엄마가 되어 있는데도 글쎄….

그리고 그들은 2004년 2월 7일 첫 아이를 낳았답니다. 낳고 보니 고추 달린 녀석이 아니겠습니까. 할아버지 김순경님께서 손자 녀석에게 찬수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지요. 그들은 찬수가 성당에서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으로 유아세례를 받을 때는 찬수를 천주교 사제로 키우고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고 하느님께 사제 성소를 청하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답니다.

찬수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찬수의 탄생을 축하하고 하느님 은총을 축원하는 많은 기도와 글들이 굿 뉴스 게시판을 아름답게 장식했지요.

ⓒ 지요하
그로부터 11개월 후인 2005년 1월 8일 그들은 신설동의 한 웨딩홀에서 찬수 돌잔치를 하게 되었답니다. 진짜 돌날은 2월 7일인데, 미국에서 살면서 일시 귀국한 김지선씨의 형님이 1월 14일 미국으로 돌아가기에 한 달 앞당겨 돌잔치를 하게 된 거지요.

찬수의 돌잔치에는 가톨릭 굿 뉴스 게시판에서 교우 겸 동지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형제 자매들이 많이 와서 축하를 해주었지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동지와 독자들 중에서 우리 부부를 합해 자그마치 21명이나 참석을 했고, 김지선 최미정 부부까지 합한다면 무려 23명이 한 자리에 모여 우의를 다진 시간이었지요.

곱게 한복을 입은 김지선 최미정 부부는 참 예쁜 모습이더군요. 특히 부인 최미정씨는 누구나 20대 새댁으로 볼 만큼 곱고 아름다운 모습이더군요.

찬수가 앞에 놓인 여러 가지 물품 중에서 연필을 잡는 것으로 끝을 장식한 돌잔치 본 행사를 마친 후에 최미정씨는 미리 준비한 시부모님께 올리는 글을 낭독했지요. 학원을 운영하는 바쁜 생활 탓에 찬수를 시부모님께 맡길 수밖에 없는 사정을 고백하고 기꺼이 손자를 키워주시는 시부모님께 감사하는 이야기가 구구절절 심금을 울리더군요.

그 글을 다 읽고 나서 최미정씨는 먼저 시아버지께 가서 목을 끌어안고 시아버지의 볼에 입을 맞추더군요. 그 모습이 너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께 가서 역시 포옹을 하고 볼에 입을 맞추는 장면도…. 다음에는 친정 부모께도….

ⓒ 지요하
참 즐겁고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나이 40에 결혼하여 아비가 된 나로서는(우리 부부로서는) 그들 부부와 일맥상통으로 좀더 죽이 맞는 것 같고, 한결 기꺼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김지선씨와 최미정씨 부부가 늦게 결혼하여 얻은 아들 찬수를 잘 기르고 가르쳐서 이 인간 세상에서 제대로 한 몫을 하는 사람으로 만들게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김찬수 아기의 돌잔치에 모인 '가톨릭 굿 뉴스' 게시판의 '굿자만사' 회원들
그들 부부와 돌을 맞은 찬수, 그리고 노부모님도 함께 하는 그들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이 늘 머무시기를 기원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이 글이 그들 부부에게 오히려 누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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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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