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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올해도 새해 인사를 꽤 많이 하며 사는 것 같습니다. 달리 말해 새해를 맞아 간단한 말 한마디로라도 인사를 건네며 복을 빌어드리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도 되겠습니다.

지난 1일 새벽에 고장의 명산 백화산(충남 태안)을 올랐습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백화산 정상에서 '새해맞이' 행사가 열린 까닭이었습니다. 지난해에 처음 시작된 백화산의 새해맞이 행사는 고장의 유수한 사회봉사단체인 <태안반도 태안청년회>에서 주최를 하고, 태안군에서 후원을 하는 행사이지요.

그 행사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내가 지은 '신년 축시'를 직접 낭송을 했습니다. 그 일을 맡았으니 새벽의 찬 공기를 무릅쓰고 산을 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그 일을 맡지 않았다면, 거의 매일 오후에 등산을 하는 것이 생활화·습관화되어 있는 내가 새해 첫날이라고 해서 이른 아침에 산을 오를지, 그 여부는 속단할 수가 없을 것 같군요.

산을 오른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백화산 정상 비교적 너른 공간을 거의 덮을 정도였습니다. 새해를 맞아 뭔가 새로운 마음으로 동쪽 하늘에 떠오르는 해를 보기 위해, 그리고 하늘에 기원을 띄워 올리기 위해 몹시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산을 오른 사람들이 저리 많다는 사실에 나는 야릇한 희열을 느끼게 되더군요.

그리고 그 행사를 주최하는 태안반도 태안청년회원들이 참으로 고맙게 느껴지더군요. 오래 전부터 고심하며 계획을 짜고, 이런저런 준비들을 하느라 당일 꼭두새벽부터 수고를 하고, 모든 진행이며 뒤처리까지 해야 하는 젊은이들이 여간 대견스럽지 않고, 참 믿음직스럽더군요.

산을 오르면서부터 이미 이 사람 저 사람, 많은 이들과 악수를 하며 새해 첫 인사를 나눈 나는 신년 축시 낭송을 하기에 앞서 모자를 벗고 운집해 있는 모든 이에게 머리를 숙이며 새해 인사를 했습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만드십시오."

'받으십시오'라는 말을 '만드십시오'로 바꾼 것인데, 나는 그 발음을 정확히 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입이 얼 정도로 추운 날씨였지만, 발음에 신경을 쓰며 시 낭송을 했습니다. 지난해 행사 때는 시가 너무 길어서 사람들을 고생시킨 것을 생각하고 올해의 새해 축시는 좀 짧게 지었기에 나도 읽기가 비교적 수월한 것 같더군요.

2.

올해도 첫날을 성당에 가서 미사를 지내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에게 해마다 1월 1일은 반드시 미사에 참례해야 하는 '의무축일'이지요. 1967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날'로 제정됨으로써 천주교회는 이 날을 '세계 평화의 날'로 부르기도 하지요.

또 이 날은 1970년부터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기도 한데 그것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새해 1월 1일 오전에 온 가족이 새 마음으로 성당에 가서 미사를 지내는 기분은 참 산뜻하지요. 새해의 첫 미사이기에 하느님께 올리는 기원도 그만큼 새롭고 절절할 수밖에 없지요.

새해 첫 미사를 지내며 우리 신부님은 강론 시작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먼저 모든 신자들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인사를 하시고는, 복은 내가 누구에게 주는 것도, 또 받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내용의 말씀을 하셨지요.

"하느님을 믿고 사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현세의 복을 추구하지 않고 영원한 삶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 영원한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늘의 이 현세에서 스스로 복 만드는 일을 많이 하고 살아야 합니다. 즉 더욱 열심히 하느님 사랑 안에서 살아야 하고 봉사와 희생의 공덕을 많이 쌓아야 합니다. 사랑과 봉사와 희생의 공덕이 없이는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없지요. 그러므로 우리 하느님 신자들이 남에게 '복 많이 받으라'고 하는 인사는 곧 사랑과 봉사와 희생을 많이 하라는 뜻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드시 그런 뜻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사랑과 봉사와 희생을 많이 하라는 뜻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하도록 합시다. 그러면 그 인사에 더욱 진심이 담기고 힘이 들어갈 겁니다."

예전에 나도 명료하게 해본 생각이고, 그 얘기를 가지고 글을 쓴 적도 있지만, 미사 강론 시간에 신부님에게서 그런 말씀을 들으니 더욱 새롭게 가슴에 와 닿는 것 같더군요. 가족들도 전에 내게서 그런 얘기를 들을 때는 시큰둥한 것 같았는데, 신부님의 강론에서는 감명이 깊은 듯 집에 오면서도 그 얘기를 하고….

하여간 신부님의 그 강론 덕분에 나는 새해 인사의 그 각별한 뜻을 나름대로 널리 써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인터넷 덕분에 간편하게 여러 지인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며, 천주교 신자이든 아니든 거의 모든 이에게 "복을 많이 받으라는 말은 사랑과 봉사와 희생을 많이 하라는 뜻"이라는 설명을 덧붙이곤 했지요. 복은 거저 주고받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3.

1일 아침 백화산 새해맞이 행사를 하고 와서 이내 여러 어른들께 전화로 새해 인사를 드렸습니다. 홀로 되신 이후 지난해부터 안양의 작은아들 집에서 살고 계시는 장인어른, 지난해 홀로 되신 서울의 숙모님, 사촌형님 세 분, 안양의 자형, 경기도 시흥에서 사시는 고교 시절 은사님…. 이 어른님들께는 "새해 복을 많이 만드십시오"하기가 좀 뭣해서 그냥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말을 사용했지요.

지난 2일 한 여성 지인으로부터 새해 인사 메일을 받았습니다. 그 메일 중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새해에는 건강하시고 복 많이 지으세요. (요즘은 받으라는 말 대신 지으라는 말들을 하더군요.)"

그 말을 접하는 순간, 종래의 내 인사법이었던 "복 많이 만드세요"보다는 "복 많이 지으세요"라는 말이 훨씬 부드럽고 정감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만드는 거나 짓는 거나 같은 뜻이지만 '짓는다'는 쪽에 더 질감의 폭이 큰 것 같고….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새해 인사법을 "복 많이 지으세요"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꽤 많은 이들에게 그 인사를 사용했습니다. 새해 들어 벌써 모임 참석이 두 번이나 되고, 추운 날씨에도 오후에 등산을 하면 만나는 사람들도 있고 해서 그 새 인사법을 많이 써먹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최소한 15일까지는 그 인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2월에 맞게 되는 설 때도 "새해 복 많이 지으십시오"라는 인사를 하게 될 겁니다. 또 그때도 대보름 때까지는 그 인사를 계속할 겁니다. 우리에게는 연초와 설 명절, 두 번의 '새해맞이'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새해 복을 빌어드리는 인사를 참으로 많이 할 수 있는(지을 수 있는) 복이 아주 많이 주어져 있는 셈입니다.

우리에게는 새해맞이가 두 번이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남에게 복을 빌어드리는 인사 기회가 많이 주어져 있으니 그걸 잘 활용하라는 하늘의 특전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절로 들고….

2월 9일 설날에는 여러 어른님들께 다시 전화로 명절 인사를 하게 될 겁니다. 그때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말 대신 "새해 복 많이 지으십시오"라는 인사를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복을 "만드십시오"하는 것보다는 "지으십시오'하는 것이 더 부드럽고 질감이 좋을 테니까요.

그래서 지난 2일 내게 "새해에는 건강하시고 복 많이 지으세요."라는 인사 메일을 보내 주신 그 여성 지인님께 감사하는 마음도 큽니다. 그래서 나도 이 글을 통해 그분께 같은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또 웹상에서 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께 같은 인사를 드립니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복 많이 지으세요."

끝으로, 지난 1일 고장의 명산 백화산 정상에서의 '새해맞이' 행사에서 낭송했던 '신년 축시'를 여기에 올려 드립니다. 우리 모두 함께 복 많이 짓게 되기를 축원하는 마음으로….



을유년 새아침의 꼬끼오 소리


2005년 새해가
을유년 '닭의 해'라는 것을 안 때로부터
나는 종종 꿈에서
꼬끼오 소리를 듣곤 했네

2005년 새해가 점점
내 머리맡으로 다가오면서
저 옛날 청소년 시절
새벽마다 꼬끼오 소리를 듣곤 했던
그 청결하고도 아늑했던 풍경을
그 감미로운 추억을
무시로 떠올리곤 했네

새벽에 저 먼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꼬끼오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속으로 파고들던
청아한 느낌
조금은 몽환적이기도 하면서
마치 동화 속에서 사는 듯한
아늑하면서도 신선한 기분에 젖어
내 베개 위에 수많은 은구슬
꽃망울들을 쏟아놓기도 했지

이제는 새벽에 꼬끼오 소리를
거의 듣지 못하고 사는 오늘
나는 다시금 저 청소년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내 마음속 가득 울려 퍼지는
꼬끼오 소리를 흐드러지게 안고
하늘 우러러 기도하네

저 꿈 많던 청소년 시절
새벽마다 듣기를 좋아했던 꼬끼오 소리
닭이 홰를 치며 내는
그 청아하고도 아늑한 소리가
올해에는 우리네 세상에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나마
더욱 힘차게 울려 퍼지기를…

그리하여
좀 더 청결하고 아늑하고 평화로운
살기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기를
하늘 우러러 기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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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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