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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글을 집이 아닌 천안의 딸아이 원룸에서 쓰게 되었습니다. 오늘 새벽 5시에 태안을 출발하여 천안으로 왔습니다. 겨울방학(?)을 맞은 딸아이를 지난해 12월 29일 집으로 데려갔다가 오늘 다시 등교시간 전에 데려다 주는 일이었지요. 오늘은 아내도 동행을 했습니다. 딸아이의 냉장고 청소를 해주고 옷장 정리며 세탁기 돌리는 일도 좀 할 목적으로….

오는 도중 서해안고속도로 서산휴게소에 들러 이른 아침의 거의 텅 빈 휴게소의 스산한 풍경을 보는 일에서, 그리고 세 식구가 우동으로 아침을 먹는 일에서 조금은 낭만적인 감상을 맛보기도 했지요. 매번 우리 부녀 둘뿐이었는데 오늘은 아내도 함께 해서 좀더 안온한 기분인 것 같더군요.

딸아이는 천안에 오자마자 이내 학교로 갔고, 아내가 방 청소를 하느라 조금은 부산한 가운데서 나는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미 종이 매체에는 올해 2005년 1월호에 글을 올렸지만 웹상에는 지금 쓰는 이 글이 최초의 글이군요.

나는 지난해 12월 23일 무슨 일이 있어 서울에 갔다가 돌아가면서 천안에 들러 딸아이를 데리고 집에 갔습니다. 집에서 성탄절을 지낸 딸아이를 27일 새벽에 데려다주고, 다시 서울에 가서 볼 일을 보고 다음날 천안으로 내려온 나는 하루를 천안에서 묵고 29일 방학을 맞은 딸아이를 집에 데리고 갔던 거지요.

그리고 연말연시를 집에서 지낸 녀석을 5일만에 다시 천안으로, 겨울철 이른 아침의 찬 공기를 가르며 데려다 준 것이랍니다.

딸아이를 내 차로 태워가거나, 버스를 타고 집에 온 딸아이를 월요일 아침이나 연휴 다음날 새벽에 천안으로 데려다주고 한 일이 이제는 손가락으로 꼽아볼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것 같군요. 나이 마흔에 결혼하여 얻은 녀석을 키우고 가르치느라, 어언 50대 후반에 이른 이 나이에 이리도 고생하는 것을 녀석이 어찌 생각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답니다. 녀석이 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오늘의 아빠 모습이며 이런저런 풍경들을 더러 기억은 하게 될 테지만….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녀석이 이번에 집에서 보낸 연말연시 5일 역시 참 빠르다 싶습니다. 5일이 쏜살같이 지난 것 같습니다. 집에 간 시간과 다시 천안으로 돌아온 시간이 '동시'라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매번 그런 느낌을 갖습니다. 그렇게 빠른 시간을 사느라, 그 빠른 시간에 실려서 너나없이 바쁘게, 이런저런 고통도 겪으며 산다는 것이 때로는 허황하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그래도 내 딸아이는 이번 연말연시를 비교적 알차게 지낸 것 같습니다. 연3일 동안 성당에 가서 송년미사와 신년미사, 그리고 새해 첫 주일의 교중(敎衆)미사에 참례하며 오르간 반주를 했지요. 주일 교중미사와 대축일 장엄미사의 오르간 반주를 전담하는 반주자 자매가 연말연시 연휴를 이용하여 먼 길 출타를 했기 때문에 내 딸아이가 대신 수고를 한 거지요.

반주자 자매는 연휴 기간의 먼길 출타를 계획해 놓고 걱정을 많이 하다가 내 딸아이가 집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반색을 하더군요. 내 딸아이는 그 분의 피아노 제자였습니다. 그 분은 내게 대신 부탁을 하고, 또 내게 어찌나 고마워하는지….

나는 연 3일 동안 미사를 지내면서, 그리고 성가대 봉사를 하면서 내 딸아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능숙하게 오르간 반주를 하는 딸아이가 대견스러워지면서 지난 일들이 절로 떠올라 더욱 즐거움을 안겨 주더군요.

내 딸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성당 미사에 오르간 반주를 하기 시작했는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내리 4년 동안 평일미사 오르간 반주를 전담하다시피했습니다. 성가 없이 미사를 지내는 수요일 아침미사와 목요일 오전의 레지오 미사를 제외하고는 매주 화요일 금요일 토요일 저녁 미사에 오르간 반주를 쉰 적이 거의 없었지요. 그리고 한 달씩 아침과 저녁을 바꾸어가며 주일 아침미사와 저녁미사에도 반주를 했지요.

그것은 아이가 학원을 다니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는 상황에서 아이에게 학원 다닐 마음 없느냐고 물었더니,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면 학원을 다니겠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러고는 3년 동안 녀석이 학원을 다니지 않았으니, 아빠의 경제를 많이 도와준 셈이었습니다.

그런 녀석에겐 지금까지 학원이라곤 초등학생 시절 피아노 학원을 다닌 경험밖엔 없는 셈입니다.

녀석이 피아노 학원을 다닌 초등학생 시절은 내가 경제적으로 몹시 어렵던 때였습니다. 1993년 유치원 시절에 녀석을 피아노 학원에 넣었는데, 그 다음해부터 나는 '보증 빚'의 수렁에 빠져서 몇 년 동안 몹시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지요.

25만원을 가지고 한 달 생활을 할 때 녀석의 피아노 학원비는 내게 적지 않은 부담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내 아이들에게 피아노만은 꼭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음악을 사랑하고, 악기 한가지쯤은 다룰 줄 아는 것도 좋으리라는 생각을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내 아이들을 피아니스트로 만들 욕심은 아예 없었습니다. 그저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면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서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피아노가 좋은 동무가 되어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지요.

딸아이와 아들녀석 모두 고비가 있었습니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지 2,3년쯤 되니 아이들이 피아노에 싫증을 내고, 아들녀석의 경우에는 학원에 가지도 않고 갔다 온 척 거짓말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아이들을 타이르고 설득하는 일에 무던히 공을 들였지요. 무슨 말로 아이들을 설득했는지는 지금 명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 타이름과 설득이 주효해서 두 아이 모두 차례로 다시 학원에 다니게 된 것은 지금도 내게 즐거운 기분을 갖게 합니다.

나는 1일 오전의 신년미사를 지내며 지난해 12월 16일 천안에서의 일도 즐겁게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 날 오전에 천안의 한 연극인과 만나 인터뷰를 한 다음 한 음식점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할 때 나는 딸아이를 불렀지요. 그때는 딸아이가 학년말 고사를 치르던 시기였습니다. 그 날도 오전에 시험을 치르고 오후 일찍 하교를 하기에 딸아이는 쉽게 와서 동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 우리는 그 연극인의 옛날 사연이 어려 있는 한 레스토랑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 레스토랑에서도 이어지는 그 연극인의 파란만장했던 지난 삶에 대한 얘기가 아주 흥미진진해서인지 딸아이는 시험기간 중임에도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때 내 딸아이가 남의 얘기를 열중해서 귀담아 들을 줄 아는 좋은 '품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의 얘기를 진지한 표정으로 귀담아 들어주는 그 품성을 내 딸아이에게서 느끼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나와 그 연극인은 그 날 내 딸아이에게 피아노 연주도 부탁했지요. 녀석은 사양하지 않고 레스토랑의 피아노 앞에 앉더니 쇼팽, 베토벤, 모차르트 등의 소품 피아노 곡들을 들려주더군요. 나는 녀석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그러고 보니 옛날 피아노 학원의 '발표회'를 제외하고는 집이 아닌 곳에서 녀석의 피아노 연주를 들어보기는 처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더욱 기분이 좋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녀석은 2년 전 천안의 B여고로 고교 진학을 할 결심을 하고는 아빠에게 그 희망을 말할 때 매우 당돌한 말을 했습니다. 경제적 부담을 걱정하는 아빠의 말에 "제가 중학교 3년 동안 학원을 다니지 않아서 아빠를 많이 도와드렸잖아요. 고등학교에 가서도 그럴 거구요"라고….

녀석은 지난 2년 동안 학원을 다니지 않았으면서도, 그리고 홀로 원룸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도 공부를 제법 잘해주었지요. 원룸에서나 집에 와서나 노상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이나 하고,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이나 보곤 해서 할머니의 걱정을 바가지로 들으면서도,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것 같았고….

녀석은 장래 꿈도 별로 크지 않은 것 같고, 공부 욕심도 없는 것 같고, "서울대는 없어져야 한다"는 소리나 하고, 제일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필경은 '똑똑한 바보'들이 될 거라며 부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경멸하는 태도랍니다.

오로지 공부 쪽으로만 달려가도 부족할 판에 <로마인 이야기> 같은 대하물을 완독하지를 않나, 어느 젊은 선생님이 "혹시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운동권 노래를 아는 사람 있느냐?"고 묻자 서슴없이 혼자 손을 들질 않나, "그 노래뿐 아니라 <산 자여 따르라>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도 부를 줄 알아요"해서 그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하지를 않나, 다분히 '문제성'도 있어 보이는 녀석입니다.

아기 시절에 녀석을 자전거에 태우고 다니며 내가 즐겨 불렀던 운동권 노래들을 녀석이 혹 기억하는 건 아닐까? 그 노래들로 발현된 아빠의 성향이 알게 모르게 녀석에게 전이된 것은 아닐까? 묘한 의문과 함께 괜한 두려움이 머금어지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런 녀석이 올해 고3이 됩니다. 올해 고3이 되는데도 녀석은 별로 심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식으로 공부할 거면 뭐 하러 천안까지 가서 몇 곱으로 돈 들게 하고 아빠를 고생시키느냐"는 할머니의 타박에도 녀석은 기분 나빠하는 표정조차 짓지 않습니다. 그러며 한다는 말이 조금은 걸작이었지요.

"올해는 고3이 되니까 아무래도 살도 좀 빠지겠지요, 뭐."

나는 오늘 아침에 녀석을 태우고 천안으로 오면서 녀석의 그 말을 떠올리며 혼자 미소를 지었습니다. 공부 때문에 살도 좀 빠진다면야 그야말로 금상첨화겠지만, 지금의 과체중이 그리 심한 것도 아니니 너무 무리는 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도 은근 슬쩍 들더군요.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공부보다는 독서 쪽에 더 집중을 하다가 교장 수녀님에게 들켜 걱정도 들었다는 녀석이 올해 고3 시절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나는 은근히 걱정과 기대로 마음이 조금은 무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나한테도 '비상'이 걸린 것 같긴 한데, 아직은 그 비상의 실체가 명확한 것 같지도 않고….

아무튼 그 모든 일의 결과는 쏜살같이 빠른 시간이 다 말해 주겠지요. 그리고 시간은 또 하염없이 쏜살같이 흐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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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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