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 사람들은 사람이 고향을 떠나서 죽음을 당하게 되면 성불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원혼이 된다고 믿었다. 이렇게 원혼이 되어 잠들지 못한 시체들을 일컬어 '강시'라고 부른다. 우리들이 흔히 무당이라고 불렀던 '영환술사'들은 이 시체들이 움직일 수 없도록 부적을 붙여놓고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  <강시선생>(1985) 포스터

강시는 근본적으로 시체이기 때문에 몸이 굳어 관절을 구부리지 못하고, 영환술사의 종소리에 맞추어 통통 뛰어다니면서 이동을 하게 된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강시들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무협소설에서 수련법의 대상으로도 종종 등장하였으며, 각종 신공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전설속의 강시가, 서양의 흡혈귀 신화와 맞물려 탄생한 것이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영화 속의 '강시' 이며, 이것은 홍금보의 <귀타귀>(80')에서 최초로 정의내려진 것이다. 이것은 마치, 기존의 좀비 신화를 조지 로메로 감독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에서 영화적인 언어로 재해석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후, 극의 중심에 강시가 위치하면서 본격적인 시리즈물의 시발점이 된 것이 바로 유관위 감독의 85년도 작품 <강시선생>(출시명: 생과 사)이다. 강시라는 괴물 캐릭터의 특성을 총체적으로 집약한 것이 바로 이 영화, <강시선생>이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강시'는 전 세계적인 최고의 인기 캐릭터였다. <강시선생>이 촉발시킨 강시 열풍은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어린이들을 위해 제작된 '유환도사 시리즈'는 아기 강시를 유행시키면서 최고의 유명세를 치렀다. 80년도에 홍금보가 연출한 <귀타귀>가 공전의 히트를 거두자, 유관위는 '강시'라는 괴물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시리즈물을 고안해 냈다. <귀타귀>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던 귀신 '강시'는 유관위의 3번째 작품인 <강시선생>에서 괴물의 모양새를 완벽히 갖추고 사람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유관위가 표현한 강시는 서양의 흡혈귀를 연상시키는 특성들을 가지고 있는데, 강시는 십자가와 마늘 대신에 팔괘와 찹쌀을 싫어하며 심장에 말뚝을 꽂는 대신에 화장시키거나 고향에 묻어야만 통제가 된다. 홍금보가 탄생시키고, 유관위가 발전시킨 강시 영화는 호러와 코미디, 그리고 무협을 절묘하게 접목시킴으로써, 매우 특이한 형태의 호러 장르를 개척해냈다. 블랙 코미디와 고어가 접목된 스플래터 류를 연상시킬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코미디 장르에 가까운 강시 영화는 기존의 호러영화들과는 달리 별다른 고어 효과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것은 강시 영화의 주 소비 대상이 어린이들을 비롯한 가족 관객들에게 치우쳐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강시선생>으로 인한 강시 열풍은 예상외로 거대한 것이었으며, 이후로 수도 없이 많은 강시영화들이 등장하였다. 일일이 기억하기조차 힘든 강시 영화의 계보는 단순히 정리하기가 매우 힘이 들지만, 크게 '영환도사 시리즈'와 '유환도사 시리즈'로 나눠볼 수 있다.

▲  유관위가 탄생시킨 강시 영화는 호러와 코미디, 그리고 무협을 절묘하게 접목시킴으로써, 매우 특이한 형태의 호러 장르를 개척해냈다.

'영환도사 시리즈'는 유관위의 <강시선생>을 기본으로 하는 오리지널 스토리 라인이며, 모두 '임정영'이 영환도사로 출연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강시선생>부터 <구마경찰>에 이르기까지 끝도 없이 이어진 임정영의 활약은 대단한 것이었다. 다른 배우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허관문의 <미스터 부>시리즈로 유명한 허관영이 전성기의 화려한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으며, <칠복성>과 <태극권>, <이연걸의 정무문> 등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친숙한 전소호가 말끔한 마스크를 내세워 극을 이끌어 나간다. 허관영과 그의 유명한 형제들의 외모가 언뜻 매치가 안되는 바람에 국내에서 전소호와 허관영을 종종 혼동하는 촌극이 연출되기도 했다. <강시숙숙> 이후로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유관위는 <강시선생 93>을 통해서 끝까지 '영환도사 시리즈' 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과거와 같은 큰 반응은 이끌어내지 못했으며, 유관위와 함께 강시 영화도 몰락하여 지금은 그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영환도사 시리즈'에 깊숙히 관여하여 줄곧 제작을 맡았던 홍금보 역시 퇴물이 되어가는 강시를 소생시키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국에서 오리지널 '영환도사 시리즈'보다 오히려 더 큰 인기를 누렸던 대만의 '유환도사 시리즈'는 어린이들을 위해 제작된 영화이다. <강시소자>부터 시작된 유환도사 시리즈는 <헬로강시>를 거쳐 <유환도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유환도사 시리즈'는 거의 모든 시리즈에 등장하여 스토리 라인을 이어가는 '수박피'와 '텐텐' 그리고 '아기강시' 덕에 큰 인기를 누렸던 작품이다. 강시 영화의 인기 돌풍에 중심축이었던 '아기강시'의 존재는 <강시선생 2- 강시가족>에서 처음 등장하였으나, 본격적으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은 '유환도사 시리즈'로 보아야 옳다. '유환도사 시리즈'의 아기강시는 유별나게 귀여운 모습과 선악을 구분할 수 없는 특이한 캐릭터로 인해 큰 사랑을 받았으며, 이례적으로 시리즈 전편에 걸쳐 동일한 배우가 역할을 맡았다. 언뜻 보면 흡혈귀의 또 다른 사생아로 비추어질 뿐인 강시는, 그러나 다른 괴물들과 차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강시 영화를 살펴보면, 강시는 다른 여타의 괴물들과는 달리 피를 많이 섭취할수록 행동이 자유로워지고 지능이 발달하는 등, 살아 있는 사람의 행동양식과 차츰 비슷해져 간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미 죽어 있는 시체인 '강시'가 태생적으로 구세대를 의미한다는 것을 상기해볼 때,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새로운 세대들을 섭취함으로써 현실에 적응해나가는 이 구시대의 망령은 다시 살아난 아버지이며, 나아가 자식을 살해하고 과거의 지위를 획득하려는 신화적 딜레마를 생성한다. 하지만 은유적이나마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다른 괴물들과는 달리, 영화 속의 강시는 별다른 함의를 보여주지 않는다.

▲  <헬로강시>의 아기강시. '유환도사 시리즈' 의 아기강시는 유별나게 귀여운 모습과 선악을 구분할 수 없는 특이한 캐릭터로 인해 큰 사랑을 받았으며, 이례적으로 시리즈 전편에 걸쳐 동일한 배우가 역할을 맡았다.

강시가 근본적으로 '고향에 묻히지 못한 한'이 서려 있는 슬픈 괴물이라는 단서와 이 장르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유머감각은 경직되어있는 괴물에게도 인간성을 부여하고 (심지어 <헬로강시>에서의 여성 강시는 성욕을 느끼기도 한다), 결국 대중에게 친밀한 캐릭터로 다가가는 데 일조한다. 좀비의 정치적 메시지도, 흡혈귀에 내재된 성적 함축성도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대중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강시는 한 시대의 유력한 아이콘이 되었다. 강한 코미디 성향 덕분에 종종 무시되어지는 강시 영화는, 그러나 쉽게 폄하되기에는 너무나 특별한 하위 장르이다. 장르 전체를 아우르는 특별한 세계관과 유머러스한 설정들은 비록 서양에서 바라는 그들만의 오리엔탈리즘과는 거리가 있을지언정, 좀더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동양미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이 장르가 소화한 슬랩스틱 액션은 키튼이나 채플린이 그러했듯이, 친근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자아낸다. 이제는 TV에서도 자취를 감추어 버린 철 지난 강시 영화들이지만, 굳이 고색창연한 향수를 자극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거론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들이다. 이미 고인이 되어 버린 임정영과 너무 늙어 버린 유관위와 홍금보, 그리고 멸종해 버린 강시 영화들은 언젠가 반드시 그에 걸맞은 재평가와 발굴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 작업의 정점에는 텍스트적으로 가장 완벽한 완성도를 자랑했던 <강시선생>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