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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연립주택의 1층집에서 산다. 1층집들은 2층집들에 비해 도둑을 맞기가 쉽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현관에다 매놓은 자전거를 도둑맞은 적이 세 번이나 된다. 그래서 자전거를 다시 구입할 생각은 아예 하지를 않는다. 학원에 다니는 아들 녀석이 요즘 자전거를 원하지만, 정말이지 다시 구입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현관의 자전거는 여러 번 도둑을 맞았어도 그 동안 집에 도둑이 들어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얼마 전에 양쪽 집에 차례로 도둑이 들어 난장판을 만들었어도 우리 집은 무사했다. 현관을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는 집이 30여만원의 현금을 도둑맞고 나서 "벼룩의 간을 빼먹어도 유분수지!"라고 한탄하며, 서둘러 더 많은 돈을 들여 방비 공사를 할 때도 나는 별로 위험을 느끼지 않았다.

또 다른 한쪽의 옆집이 도둑의 신속하고도 과격한 작업으로 집안 꼴이 엉망이 되고 100만원이 넘는 금품을 잃었을 때도 나는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도둑이 으레 침입을 하는 곳은 앞쪽 베란다의 아래 창문이었다. 두 집 모두 그 창문의 유리를 교묘하게 소리 없이 도려내어 구멍을 낸 다음 잠금 장치를 열고 침입을 한 경우였다.

나는 우리 집의 앞 베란다 창문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없던 창문들을 달아내어서 베란다 공간을 실내처럼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중간 난간에는 주로 화분들을 놓고, 그 아래에다는 낮은 책장을 놓고, 책장 위에는 여러 개의 수석들을 놓았다. 그러므로 도둑이 베란다의 아래 창문을 뚫고 들어오기에는, 우리 집은 장애물이 너무 많은 셈이었다.

물론 화분들을 놓은 중간 난간과 아래 낮은 책장 사이에는 약간의 공간이 있어서, 여름에는 아래 창문을 여니 바람이 소통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공간은 꽤 비좁아서, 여름을 날 때는 거기에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책장을 원망하시는 어머니와 신경전을 벌이곤 했다.

아무튼 앞 베란다의 아래 창문 앞에는 그렇게 책장이 있고 수석들이 있는 데다가 또 책장 앞에는 꽤 많은 책과 신문 따위가 쌓여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방비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안방의 창문은 이중창인 데다가 방충망도 붙어 있으니 외출을 할 때 문단속만 잘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뒤쪽 베란다의 창문들은 지면에서 꽤 높아서 벽 가까이 차량이 붙어 있지만 않다면 그쪽으로 도둑이 침입할 염려도 없었다. 게다가 집의 출입문은 예전에 이중으로 잠금 장치를 해놓아서 웬만한 좀도둑은 충분히 막아줄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그 동안은 안심을 하고 가족 나들이를 하곤 했다. 뒷동에서 사는 동생 가족과 함께 두 형제 가족이 주말에 먼 길 나들이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대개는 어머니까지 모시고 나들이를 했다가는 저녁까지 밖에서 먹고 늦게 돌아온 경우였다.

1999년 2월에는 가족 모두 제주도 여행을 한 적도 있다. 3박 4일이었다. 그리고 올해는 지난 8월에 온 가족이 중국 여행을 했다. 그때도 3박 4일 동안 집을 비웠다. 그래도 우리 집은 도둑이 범접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더욱 방심을 하지 않았나 싶다. 드디어 우리 집도 좀도둑의 민첩한 손에 맥없이 함락이 되고 만 것이었다.

지난 9일이었다. 그 날은 오후에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중요한 행사인 '대림절 판공성사'가 우리 동네에 있는 날이었다. 그래서 오후 3시쯤 어머니와 나는 판공성사가 거행되는 신자 집으로 갔다. 그 집에서 일단 성사를 본 다음 나는 집으로 와서 잠시 볼일을 본 다음 4시 30분경에 다시 그 집으로 갔다. 판공성사가 끝나면 구역 신자 가정들을 위한 미사를 지내기 때문이었다.

판공성사가 거의 끝나갈 때 아내에게서 내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학교에서 무슨 행사가 있어서 교직원 회식을 한다고 했다. 나는 아내에게 걱정 말고 회식에 참석하고 오라고 했다. 나와 어머니는 미사 후에 그 집에서 저녁식사까지 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또 아내는 구역 판공에 오지 못하더라도 며칠 후 직장인 판공 날에 성사를 보면 되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내의 저녁 회식 얘기를 어머니께 전해 드리니 어머니는 손자 걱정을 하셨다. 올해 중2인 아들 녀석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걱정 마세요. 한결이는 오늘이 시험 끝나는 날이라 친구 집에 가서 놀다가 좀 늦게 온다고 했어요. 또 한결이는 다음 주 토요일 학생 판공 날 성사 보면 되고요."

그러니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는 일이었다. 나와 어머니는 마음 푹 놓고 미사 후에 저녁식사까지 하고 가기로 했다.

5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미사를 지내게 되었고, 미사 후에 곧 저녁식사를 했다. 6시쯤 저녁식사가 끝났는데, 7시에 성당에서 또 미사를 지내야 하므로 신부님은 곧 자리를 뜨셨고, 나는 5분쯤 더 머물다가 어머니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그 집에서 우리 집까지는 1,2분 거리였다. 이미 어두워진 때이지만 가로등 불빛을 밟으며 곧장 집으로 왔다. 집 앞 땅바닥에 흰 운동모자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무심코 그 모자를 주워들고 누구 모자일까 하고 현관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 왜 문이 열려 있지? 이상허네"하며 어머니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와서 불을 켰는데, 거실 풍경이 이상했다.

"아니, 누가 왔었나. 왜 이렇게 방문들이 활짝 다 열려 있지? 베란다 문도 훤히 열려 있구…."

나는 어머니의 그 말을 들으며 순간적으로 뭔가를 직감했다. 대뜸 거실의 컴퓨터 자리로 눈이 갔다. 모니터가 없었다. 모니터가 놓여 있던 자리가 휑하게 비어 있었다. 그 순간 가슴이 덜컥 했다. 참으로 황당하고도 뭔가가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 정말이지 그 당혹스럽고도 우두망찰한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까.

그러나 나는 다음 순간 각도가 틀어져 있는 두 개의 물체를 보았다. 프린터기와 컴퓨터 본체였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프린터기와 함께 컴퓨터 본체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

도둑이 들었음을 거듭 확인하며 어머니와 나는 도둑이 어디로 어떻게 들어왔는지 흔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출입문은 내가 분명히 잠갔음을 기억할 수 있었다. 안방 창문도, 뒤쪽 베란다의 창문들도 온전한 상태였다.

결국 우리는 도둑이 앞쪽 베란다의 아래 창문으로 침입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깥 방충망을 떼어내고, 창문을 열고, 난간과 작은 책장 사이의 수석들을 밀어서 떨어뜨리고, 책장 앞에 쌓인 책들과 신문더미도 밀쳐내고, 그리고 도둑은 그 비좁은 공간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 침입 과정의 작업이 수월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시간도 좀 걸렸을 터였다. 그런데도 그는 너끈히 침입에 성공했다. 그 비좁은 공간으로 몸을 통과시킨 것으로 보아서는 몸피가 작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같았다.

하지만 그 침입 작업 과정과 담력으로 보아서는 아무래도 덩치가 작은 어른일 것도 같았다. 그리고 도둑이 거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내 아들 녀석의 30만원이 넘는 '엠피쓰리'를 분명히 보았을 텐데도 그냥 놓고 간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학생은 아닌 것 같았다.

도둑이 가져간 컴퓨터 모니터는 신형 엘시디 17인치였다. 돈이 될 만한 물건이었다. 화면은 넓어도 전체적으로 부피가 작고 또 납작하니 운반하기도 쉬울 터였다. 도둑이 가져간 것은 모니터뿐이었다. 안방의 장롱 문도 활짝 열어놓고, 어머니 방의 문갑도 열어놓고, 책 창고나 다름없는 작은 골방 안의 내 가방도 열어 젖혀놓았지만, 모니터 외에는 가져간 것이 없었다.

일단 경찰에 신고는 했다. 그리고 밤에 바삐 작업을 해야 할 원고가 있어서 컴퓨터 대리점에 전화를 걸어 똑같은 엘시디 17인치 모니터를 가져오게 했다.

경찰이 와서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 도둑맞은 모니터의 품명을 적어갔다. 하지만 나는 별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좀도둑의 경우 범인이 잡히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개 그런 잡범이 잡히는 것은 우연한 기회에 검문으로 꼬리가 밟히거나 다른 곳에서 범죄를 저지르다가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경우뿐이며, 그렇게 잡히고 나서야 여죄를 추궁해서 이 범죄의 범인과 동일 인물임을 알게 되는 것뿐이다. 그나마도 이미 다른 무수한 절도에 묻혀서 도둑 본인도 우리 집에서 모니터 훔친 걸 기억이나 하게 될까?

생각하면 어처구니없고 억울한 노릇이지만 경찰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니, 도둑을 맞고 나서 범인이 잡히기를 기대하기보다는 내 쪽에서 미연에 방지를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일 터였다.

그럼에도 나는 두 가지 중대한 실책을 저질렀다. 하나는 여름에 열고 닫고 했던 앞쪽 베란다의 아래 창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았다. 또 나는 집을 나가면서 짧은 겨울 해를 생각하고 거실의 형광등을 켜놓고 나갔어야 하는데 그걸 깜빡 잊었다.

컴퓨터 모니터 값은 60만원이라고 했다. 잠시 동안의 방심 탓이었다. 집을 비운 2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에 벌어도 시원찮을 60만원을 아주 간단히 날려버린 셈이었다.

그런데 그 밤에 우리 바로 옆집에도 다시 도둑이 들었다. 밤 12시쯤 이웃들이 부르는 소리에 나가보니 옆집은 비어 있는데 앞 베란다 창문으로 도둑이 들어간 것 같은 흔적이 있다고 했다. 밖에서 플래시를 비쳐보니 거실과 베란다 사이의 이중문이 떼어져서 거실 안에 있었다. 주인들은 멀리에 가고 없으니 우리가 경찰에 신고를 해야 했다.

경찰이 왔을 때 함께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거실에 컴퓨터 책상이 있는데, 컴퓨터는 보이지 않았다. 그 집도 컴퓨터를 도둑맞은 게 분명했다(그러나 아내가 현재 천안에 가 있는 그 집의 안주인과 통화를 해보니, 전 날 밤에 바깥주인의 부동산 사무실에 도둑이 들어 컴퓨터를 도둑맞은 바람에 집의 컴퓨터를 사무실로 옮겨놓았다고 했다. 그리고 현금만 기십만원 정도 도둑맞고…).

그 집은 다음날 서둘러서 앞쪽 뒤쪽 베란다의 창문들과 안방의 창문까지 모두 방범 시설 공사를 했다. 두 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옳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그 집의 공사를 보면서도 우리 집의 방범 시설 공사는 하지 않았다. 내년 가을에는 이사를 가기도 해서지만, 컴퓨터 모니터 값 60만원을 지출해야 하게 생겼으니, 그만큼 여유도 없는 탓이었다.

이틀 후인 토요일 오후에 컴퓨터 대리점에 가서 모니터 값 60만원을 마누라 카드로 지불하고(카드회사에서 세 번으로 나누어 가져가도록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한숨을 푹 내쉬니 아내가 위로를 했다.

"컴퓨터 본체까지 도둑맞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에요. 정말 불행 중 다행이라구요. 그 도둑이 본체까지 가져갔으면 어쩔 뻔했어요."
"맞아. 그랬다면 난 미치고 환장하는 거지 뭐. 그걸 생각하면 오히려 도둑이 고마워지는 심정이야."

정말 그런 심정이었다. 내 컴퓨터 본체 안의 수많은 문서들은 지난 여름 8월 이전의 것들만 CD에 담겨져 있는 상태였다. 그 후의 문서들은 아직 백업을 해놓지 못한 상태인데, 만약 본체까지 도둑을 맞았더라면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한 나머지 어쩌면 이 글도 쓰지 못할 터였다.

그러나, 컴퓨터 본체는 가져가지 않은 도둑에게 감사하고 싶은 마음 가운데서도 누군지 모를 그 도둑의 처량한 삶에 연민이 생긴다. 그리고 좀도둑이 유난히도 기승을 부리는 현상에서 이중의 아픔을 겪는다. 그 현상 자체와 그 현상을 이용하여 그것까지도 정부 탓을 하는 현상까지 아파해야 하니….

어쨌든 오늘은 그 도둑의 개과천선을 위해 기도라도 해야 할까보다. 없는 살림에 60만원의 손실을 입은 가운데서도 컴퓨터 본체는 무사한 것을 다행스러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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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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