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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생들에게 '문예강좌'를 한 경험은 일찍부터 제법 실팍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일이다. 교육부 정책에 의해 초·중·고등학교들에서 전문 문인이나 예술인들을 초빙하여 일정 기간 수업을 하도록 한 일이다.

1999년과 2000년 2년 동안 일주일에 하루 2시간씩 태안초등학교를 다니며 수강 신청을 한 40여 명의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쳤다. 아이들에게 많은 '옛날이야기'와 동화들을 들려주며 참 재미있게 수업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1999년에는 합덕여자고등학교에도 1년 동안 다니며 매주 목요일 오후에 2시간씩 수업을 했다. 그리고 2000년에는 태안여자중학교에서 1학기 동안 일주일에 1시간씩 문학 수업을 했다. 합덕여고는 수강 신청자가 20명이 넘었는데, 태안여중은 10명이 겨우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므로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고루 문학 수업을 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다가 1999년에는 또 공주영상정보대학 문예창작과에 출강을 했다. 매주 수요일에는 2시간 거리인 공주영상정보대를 다니며 오후 3시간씩 문창과 2개 학년 강의를 했다.

사사로운 얘기지만 대학생들에게 1년 동안 문학을 가르쳤던 일을 즐겁게 떠올리곤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인생을 가르치고 싶었다. 우선은 술 마시는 법과 낭만을 가르치고자 했다. 재미있는 일이 많았다. 고작 1년 동안의 생활이었는데, 어떤 학생들은 내게 편지를 보내며 나를 '스승님'이라고 불렀다.

거리 관계로 비록 고달프긴 했지만 나는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좀 더 하고 싶었는데, 공주영상대학의 문예창작과가 '방송극작과'로 간판이 바뀐 사정도 있고 해서 대학 출강을 1년 만에 접고 말았다.

대학의 문창과가 방송극작과로 간판이 바뀌었다는 것은 어떤 상징성을 내포하는 것일 수도 있을 듯싶다. 문창과라는 이름에는 어떤 낭만적인 분위기 같은 게 결부되기 마련이다. 그에 반해 방송극작과라고 하면 대뜸 어떤 ‘실리성’같은 게 떠오를 성싶다.

문학에 있어서도 어떤 기본보다는 현실적인 유리를 추구하는 것이 오늘의 풍토다.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야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당연한 것이겠지만, 혹여 그것이 기본을 무시하는 습성을 가지게 하는 쪽으로 작용을 한다면 역시 우리로서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별 필요 없는 얘기지만, 나는 기본을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모든 학문의 기본은 문학이라는 생각도 하고, 문학의 기본은 한 줄의 문장이고, 그 문장 한 줄의 기본은 '?!'라는 생각도 많이 하는 사람이다.

교단에서 학생들과 접촉하는 생활이 몇 년 전에 다 끝난 줄 알았는데, 2004년 올해도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전업문인 '객원문예교사제'라는 이름의 사업을 주선한 <민족문학작가회의>에 감사하는 마음 크다. 아울러 이런 뜻 깊은 정부 후원 사업에 기꺼이 동참하여 나로 하여금 학생들에게 문학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합덕여자고등학교에 깊이 감사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고장 태안에는 3개 고등학교와 8개 중학교가 있다. 또 인근 지역인 서산시와 홍성군에는 더 많은 학교들이 있다.

그런데 충남 서북부(당진·서산·태안·홍성) 지역에서 정부가 모든 비용을 대주는 이 '객원문예교사제' 사업에 참여한 학교는 당진군의 합덕여고 한 학교뿐이다. 섭섭한 느낌이 드는 가운데서도 합덕여고가 그만큼 더 고맙지 않을 수 없다.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당진의 합덕여고와 담당 교사인 신만희 선생님께 고마운 말씀을 드린다.


(2)

9월 첫 주부터, 그리고 매주 목요일 오후 2시 30분부터 3시 40분까지 1시간 10분씩 강의를 하기로 했다. 특별활동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어서 시간을 더 요구할 수는 없었다. 그 대신 청소 시간까지 강의를 하기로 했으니, 말하자면 문예강좌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는 청소 임무가 면제되는 셈이었다.

합덕여고 출강을 시작하기 전에 '강의계획표'를 만들어보았다. 그리고 과거 공주영상정보대학 문창과에 출강할 때 많이 만들어두었던 강의 자료들을 참고하고, 또 1999년 합덕여고에 출강할 때 활용했던 자료들을 찾아서 새롭게 '강의 자료집'을 만들었다. 그것을 미리 학교에 제출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나는 그 강의 자료집만을 가지고 강의 계획표대로만 수업을 하지는 않았다. 가급적 학생들이 글을 많이 쓰도록 유도했고, 학생들이 써낸 글을 가지고 수업을 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학생들로 하여금 글을 써서 미리 내게 인터넷으로 보내도록 했다. 학생들의 글을 전송 받아서 내 컴퓨터 문서 방에 일단 저장을 해놓고 수정 작업을 했다. 그리고 자세하게 평을 썼다.

학생들이 쓴 원문과 내가 가필 수정한 글, 그리고 그 글에 대한 평을 모두 프린트를 해서 가방 안에 넣어가곤 했다. 학생의 시 한 편이나 수필 한 편을 가지고도 한 시간 동안 재미있게 수업을 할 수 있었다.

나는 학생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이야기 잔치를 벌이곤 했다. 학생들이 평소에 듣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고자 했다. 그 이야기들이 학생들에게 좋은 간접 경험이 되기를 바라고 기대했다.

22명의 학생들은 전반적으로 내 이야기에 감동을 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것을 학생들은 내게 메일로 표현하기도 했다.

나는 최근에 여러 지면과 웹상에 발표한 내 생활 산문들을 여러 개 활용하기도 했다. 강사 본인이 직접 써서 지면에 발표한 거의 육성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접하는 학생들은 그만큼 흥미를 많이 느끼는 것 같았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내가 기대했던 만큼 학생들이 글을 많이 쓰지 못한 점이다. 학생들이나 나 같은 전문가나 짧은 글 하나라도 쓰기 위해서는 고도의 긴장과 집중이 필요하다. 우선은 마땅한 글감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그런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성적위주, 시험기계로 내몰려갈 수밖에 없는 우리 교육 현장의 일단을 거기에서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는 인생 경험만큼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적절히 활용하여 학생들을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재미있게 이끌어갈 수 있었다.

또 나는 시를 많이 외우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 모국어로 빚어진 아름답고 의미 깊은 시들을 많이 외우고 있기에 언제 어디서든 어울리는 시를 찾아 암송하는 일이 가능하다. 한때는 100수가 넘는 시를 외웠는데, 세월과 함께 거의 잊고 지금은 30여 편 정도만 내 머리에 남아 있다. 그 시들 중에는 근 40년 전 고등학생 시절에 국어 교과서에서 읽고 외운 시들도 있다.

그리고 나는 시 낭송 법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모든 사람들을 휘어잡듯이 하며 시를 낭송한 경험도 많이 가지고 있다.

나는 수업 중간 중간에 시 낭송 실력을 보여주곤 했다. 수업이 자칫 지루하다 싶으면 내가 외우고 있는 명시들을 가지고 듣기 좋게, 때로는 열렬하게 낭송을 함으로써 수업 분위기를 좀 더 재미있고 진숙하게 가져갈 수 있었다.

수업 마지막 날에는 집에서 과자 보따리를 마련해 갔다. 음료수와 귤도 충분히 먹을 만큼 보따리에 담았다.

과자 파티를 열기 전에 우선 20분 정도 지나간 3개월 동안의 문학 수업에 대한 소감들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재미있는 말들이 없지 않았다. 소감을 정리하여 내게 메일로 보내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실제로 한 학생은 내 홈페이지에 와서 방명록에 그 약속을 지켰다.

마지막 수업이었으므로, 초봄에 해당하는 인생 시기를 살고 있는 학생들에게 인생무상, 세월의 덧없음에 관한 얘기를 해주었다. 우리가 함께 했던 3개월이었다. 9월 들판의 연둣빛과 석양빛이 길게 깔리는 초혼, 10월 들판의 황금빛과 저녁놀이 아름다운 황혼, 그리고 11월의 텅 빈 들판과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진혼의 의미에 대해서 시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생 초봄에 해당하는 시기부터 일찌감치 가끔은 가을을 생각해보며 사는 것도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얘기였다.

겨우 15시간에 지나지 않지만 개월 수로는 3개월이었다. 3개월 동안의 문학 수업을 마치고 모두 정답게 둘러앉아서 종알거리며 과자를 먹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흐뭇한 마음을 즐겼다. 1999년 일 년 동안 매주 목요일 합덕여고를 다니며 문학 강의를 할 때 종종 과자 보따리를 가지고 가곤 했던 일을 즐겁게 떠올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해 공주영상정보대학 문창과에 출강할 때 태안에서 내 차로 막걸리와 쭈꾸미, 오징어 따위를 싣고 가서 학생들을 강의실 밖으로 나오게 한 다음 잔디밭이나 동산에서 함께 술을 마시며 술 마시는 법과 낭만 따위를 가르쳤던 일도 즐겁게 추억할 수 있었다.

지난 3개월 동안 나는 매주 목요일 오후에는 1시간 거리인 합덕여자고등학교를 가고 오며 참으로 많은 가을 감상들과 상념들을 얻을 수 있었다. 자못 낭만적인 분위기 속에서 생활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시 한 번 문화관광부와 민족문학작가회의와 합덕여자고등학교에 감사한다. 3개월 동안 내 문학 강의를 열심히 들어준 22명의 여학생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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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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