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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14일은 충남 태안 지역사회에서 매우 특별한 일이 있었던 날로 많은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리라 믿는다. 아울러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기록이 있어야 한다고 믿기에 몇 자 적기로 한다.

오후 7시부터 태안문예회관 대공연장에서 펼쳐진 일이다. 그리고 <태안천주교회 본당 설정 40주년 기념 '경축의 밤' 행사>가 보여준 일이다. 태안천주교회는 새 성전을 건립하는 공사를 진행하는 관계로 본당 설정 40주년 경축행사를 부득이 지역 공공건물인 문예회관에서 치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도교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가톨릭교회는 40이라는 수를 특별히 기념하는 오랜 전통을 지녀왔다. 그래서 태안천주교회는 오래 전부터 <40주년기념행사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여러 가지 사업과 행사들을 기획, 준비해왔는데 올해 새 성전 건축공사가 겹치는 바람에 교회 밖에서 행사를 치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태안천주교회 40주년 '경축의 밤' 행사에서 '할머니성가대'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를 개사한 '태안은 우리 땅'을 부르고 있다.
ⓒ 지요하
태안문예회관 대공연장에서 행사를 치르기로 하면서 태안천주교회는 그 행사를 '지역 종교화합의 장'으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지역 개신교 중에서 역사로 보나 규모로 보나 으뜸 교회에 해당하는 태안장로교회의 찬양대를 초청했다. 또 불교 사찰 중에서 으뜸 사찰인 조계종 태안 공덕사의 찬불대를 초청했다. 태안장로교회와 공덕사에 정식 공문을 보내고 또 행사 기획 책임자가 직접 방문을 하기도 했다.

오래 전부터 예수성탄과 석가탄신 즈음에는 서로 축하 현수막과 연등을 교환하는 등 우호적인 분위기를 쌓아온 터라 공덕사의 찬불대를 초청하는 일은 처음부터 어려울 게 없었다.

그러나 태안장로교회 찬양대를 초청하는 일에는 약간의 진통이 있었다. 개신교 신자들에게는 대체로 주일 예배에 두 번 참석해야 하는 것이 하나의 의무로 되어 있다. 태안장로교회는 11월 14일 주일 제2부 예배가 저녁에 있다고 했다. 그 저녁예배 관계로 성가대를 보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런 통보를 받고도 태안천주교회 40주년 경축행사 기획 책임자는 포기하지 않고 이번에는 남제현 당회장 목사님께 직접 전화로 요청을 드렸다. 얼마 전까지 <태안신문> 지면에 열린 시야로 의미 있는 칼럼을 많이 쓰신 바 있는 남제현 목사님은 다시 한번 장로님들과 의논을 해보겠다고 하셨다.

그 결과 14일 저녁 2부 예배 관계로 성가대를 보내지 못하는 대신 '엘림 클라리넷 선교단'을 보내겠다고 하셨다.

태안천주교회 40주년 행사에 개신교의 찬양대와 불교의 찬불대가 참가한다는 소문은 지역사회에 일찍부터, 그리고 비교적 널리 퍼졌던 것 같다.

일반인들에게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던 반면 일부 개신교 신자들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았다. "천주교는 참 이상한 종교야.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교회 행사에 불교 신자들을 초청하는지 몰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건 예수님을 올바로 믿는 게 아니야"라는 말도 있었다.

일부 개신교 신자들의 그런 부정적인 시각에 개의치 않고 태안장로교회에서 엘림 클라리넷 선교단을 보내준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태안천주교회 신자들은 태안장로교회에 대해 각별히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 태안장로교회의 '엘림 클라리넷 선교단'이 태안천주교회 40주년 경축의 밤 행사 자리에서 클라리넷으로 찬송가를 연주하는 모습.
ⓒ 지요하
여성 1명을 포함하여 모두 7명으로 구성된 태안장로교회 엘림 클라리넷 선교단은 클라리넷으로 찬송가 두 곡과 대중가요인 유심초의 <사랑이여>를 멋지게 연주해 주었다.

대표인 이만규 집사는 "태안천주교회의 본당 설정 4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인사말도 해주었다. 태안문예회관 대공연장을 거의 메운 천주교 신자들과 일반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불교 조계종 태안 공덕사 찬불대는 10명의 여성 단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흰색 한복을 곱게 입고 나와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두 곡의 찬불가를 들려주었다.

공덕사 찬불대의 합창이 끝났을 때 행사 사회자는 이런 말을 했다. "천주교 행사에 와서 찬불가를 부르시는 불도님들이나, 자기 교회 행사에 불도들을 초청하여 찬불가를 듣는 천주교 신자들이나 마음이 바다같이 넓은 것 같습니다." 이 말에 객석에서는 큰 박수가 나왔다.

또 태안 공덕사의 신도회장인 조익호씨는 간단한 인사말을 하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우리 지역에서 종교간 교류가 더욱 확대되기를 바란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 불교 조계종 태안 공덕사 찬불대가 찬불가를 부르고 있다.
ⓒ 지요하

멀리 대전에서 와서 1부 순서인 '경축 교중미사'를 집전하고, 2부 '경축의 밤' 행사를 오래 지켜본 천주교 대전교구 부교구장 유흥식 주교님과 대전평화방송사장 방윤석 신부님은 인상적인 행사를 만든 태안천주교회 구본국 주임신부님과 관계자들에게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천주교 행사 자리에 개신교의 찬양단과 불교의 찬불대가 함께 한 것은 우리 지역에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특히 공덕사의 주지 스님과, 함께 오신 동료 스님은 끝까지 행사 자리를 지켜주었다.

▲ 천주교 대전교구 태안성당 성가대의 합창 모습.
ⓒ 지요하
태안문예회관 대공연장에서 펼쳐진 <태안천주교회 본당설정 40주년 '경축의 밤' 행사>는 천주교와 개신교와 불교가 함께 함으로써 더욱 의미 깊은 자리가 되었다. 종교 화합의 아름다운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종교 화합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아름답고 성숙한 모습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가를 확인시켜준 자리이기도 했다.

일반인 등 많은 이들이 태안천주교회와 태안장로교회, 그리고 불교 조계종 태안 공덕사에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이번의 태안천주교회 행사를 계기로 앞으로 종교간 교류가 더욱 확대되고, 이런저런 형태의 '종교 화합의 마당'이 많이 펼쳐지게 되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우리 태안 지역사회의 품위를 좀더 아름답게 가꾸어준 것으로 평가되는 이번 천주교회 행사에 클라리넷 찬양대를 보내주신 태안장로교회와 찬불대를 보내주신 조계종 공덕사에 감사와 존경의 뜻을 표하며,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미덕이 우리 사회에 더욱 번창하게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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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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