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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천안의 B여고에 다니는 딸아이에게서 엊그제 전화가 왔다. 오후 5시경인데, 학교에 있지 않고 집(자취하는 원룸)에 와 있다고 했다.

"왜, 몸이 안 좋아서 일찍 왔니?"

지레 짐작하고 걱정스런 소리로 물으니 아이는 그게 아니라고 했다. 학교에서 당분간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기로 결정을 해서 일찍 집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럼, 오늘 저녁은 토요일 일요일이 아닌데도 집에서 밥을 지어먹어야겠구나?"
"그래야 하겠지만 밥을 지을 기운도 없고, 밥맛도 없을 것 같아요."
"……?!"

나는 딸아이가 왜 그런 상태인지를 쉽게 헤아릴 수 있었다. 이미 사건 소식을 들은 터였다. 대꾸할 말이 없었다. 별 수 없이 침묵을 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 오늘 저녁 우리 성당에 미사 있어요?"
"우리 성당은 오늘 저녁에 미사가 없어. 신부님이 서산지구 사제 피정에 가셔서 안 계시거든. 그런데 왜?"

"오늘 미사가 있으면, 오늘 세상을 떠난 우리 친구 OO를 위해서 위령미사를 지내달라고 부탁을 좀 하려고 했더니…."
"아, 그래? 그럼, 어쩌지?"

"그럼요, 제가 이번 주 토요일에 집에 갈 거거든요. 토요일 저녁 학생미사에 가서 위령미사를 봉헌하지요, 뭐."
"그래. 그러는 게 좋겠다."

딸아이와 통화를 마치고 나서 나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금 안타까운 마음이 한량없고, 이상한 불안감 때문에 가슴이 괜히 뻑뻑해지는 것 같았다.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두 학생이 한 달 간격으로 변을 당했다. 1학년 수진이는 실종이 된 상태로 벌써 한 달째 생사조차 알 길이 없다. 그때로부터 한 달만에 이번에는 2학년 이아무개양이 자기 집이 있는 아파트 근처에서 목숨을 잃었다.

1학년 수진이는 실종된 다음날 성정동 유흥가 골목에서 옷과 가방과 휴대폰이 발견되었을 뿐 종적이 없다. 경찰 수사는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한다.

그 아이가 지금 살아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수진이의 부모는 아이가 부디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만약 살아 있다면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지….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부모는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할 것이다. 얼마나 애간장이 녹아날 것인가.


(2)

지난날 30일 우리 고장에서는 '거리축제'라는 행사가 열렸다. 태안 읍내 중앙통의 긴 거리를 하루 동안 '차 없는 거리'로 만들고, 길바닥 곳곳에 각 동네별로 천막을 치고 갖가지 먹거리를 팔았다. 기괴한 행색으로 노래하고 춤을 추며 엿을 파는 엿장수를 비롯하여 별의별 장수들이 다 모여들었다. 거리는 하루 종일, 또 밤늦게까지 그야말로 축제 마당이었다.

나는 저녁에 우리 가족과 동생 가족 모두를 이끌고 거리 축제에 참가했다. 세 군데를 다니며 꽤 비싼 고래고기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골 중국음식점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비록 비용은 도합 10만원 가까이 났지만 나는 우리 가족과 동생 가족을 함께 인솔해서 오붓한 시간을 갖는 것이 더없이 즐거웠다. 천안에서 딸아이도 와서 함께 하니 허전한 구석이 없이 더욱 좋았다. 거리축제를 함께 즐기자는 아빠의 호출에 기꺼이 먼길을 달려온 아이였다.

그런데 음식을 먹으면서 딸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다녀요. 벌써 보름 넘게 실종 상태인 1학년 수진이가 살아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뜻으로요."

우리 부부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 번 수진이와 수진이 부모를 생각하며 잠을 설치기도 했고, 기도 중에 그 가정을 기억하곤 했다. 그랬으면서도 이 날은 수진이의 실종 사건을 까맣게 잊고, 그저 거리축제를 즐기는 쪽으로만 열중했다.

"갑자기 수진이 생각이 나네요. 비록 학년이 달라서 그 아이의 얼굴도 모르지만…. 가족 모두와 함께 즐겁고 오붓한 시간을 갖다보니, 문득 수진이가 없어서 슬픔에 싸여 있을 그 집 생각이 나고, 괜히 미안해지는 마음도 드네요."
"녀석두 참…. 누가 아빠 딸 아니랄까봐 그런 생각도 다 하네."

아내가 조금은 웃음 섞인 소리로 대꾸했지만, 모두 함께 더욱 숙연한 기분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가족이 함께 하는 오붓한 풍경이 언제 불시에 깨어져버릴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가능성은 모든 가정에 두루 해당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군. 이상한 불안 가운데서 제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 세상을 더욱 희구하게 되고…."

나는 딸아이가 기특하게 느껴지는 마음 옆으로 딸아이처럼 수진이와 수진이의 부모를 생각하며 미안해지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윽고 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였다. 동생은 과식에다가 과음을 해서인지 뱃속이 좀 불편하다고 했다. 나는 동생의 등에서 잠들어 있는 초등학교 1년생 조카딸아이를 내 등으로 옮겨 업었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랜만에 조카딸을 업어 줘본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5분쯤 가는데 중국음식점 주인이 오토바이를 타고 쫓아왔다. 계산을 잘못해서 1만원을 더 받았다고, 그 돈을 돌려주려고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 돈을 조카딸을 업고 있는 나 대신 아내가 받았다. 그 돈은 아내 차지가 되었고, 나는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선 채로 1만원을 날치기 당한 셈이었다. 아내가 그 돈을 스스로 내준다면 모를까, 치사하게 그 돈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음날 아침 5시 30분쯤 나는 딸아이를 깨웠다. 10월 한 달 동안은 내 아들 녀석이 주일 아침미사 오르간 반주 당번인데, 누나에게 부탁을 한 모양이었다. 동생 위하는 마음이 여간 아닌 딸아이는 순순히 응낙을 하고 동생 대신 저를 깨워달라고 아빠와 할머니께 부탁을 했던 것이다.

이른 아침에 아이를 혼자 보내는 것이 왠지 저어되었다. 성당은 가까운 거리지만 골목을 지나야 하고 아직은 어둠이 걷히지 않은 시각이었다. 나는 딸아이를 차에 태웠다. 그런데 누가 깨워주지 않으면 절대로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는 만고강산 체질인 아내가 바삐 쫓아 나와 차에 올랐다.

"웬일이여? 아직 서쪽에서 해가 뜨지도 않었는디…."
"오늘은 아침미사를 지내려구요."

"왜, 모처럼만에 우리 딸이 오르간 반주하는 거 보려구?"
"아뇨. 우리 딸과 함께 박수진이를 위한 '생미사'를 지내려구요."

"그려? 그럼, 미사예물은…?"
"어젯밤에 만원이 생겨서, 내 수중에 있던 돈에다가 보태서…."
"그려? 나는 돈 만원을 멀쩡히 서서 날치기 당했다고 생각했더니…."

나는 성당 마당에 아내와 딸아이를 내려주고 돌아오면서 성호를 그었다. 아직 수진이의 생사를 모르니 연미사를 봉헌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부디 살아서 부모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생미사를 봉헌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수진이를 위한 생미사 봉헌을 생각하고 딸아이와 함께 아침미사에 참례하는 아내에게 나는 고마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3)

천안의 B여고 학생들은 1학년 박수진 학생이 실종된 다음날부터 계속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다녔다고 한다. 수진이가 살아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들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 노란색 리본이 검은색 리본으로 바뀌지 않기를 바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B여고 학생들은 엊그제 10일부터 가슴에서 노란색 리본을 떼고 검은색 리본으로 바꾸어 달았다. 수진이 때문이 아니었다. 아침에 자신의 집이 있는 아파트 근처에서 사체로 발견된 2학년 이양의 죽음 때문이었다.

딸아이는 그 사실을 내게 전화로 전해 주었다. 이양을 위한 위령미사 봉헌을 부탁하고 나서…. 신부님의 피정 출타 관계로 이양의 영혼을 위한 위령 미사는 딸아이가 집에 오는 토요일 저녁 학생미사 때 우리 가족 모두 함께 봉헌하기로 했다.

천안에서 한 달 간격으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두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편안한 하늘'이라는 뜻인 천안(天安)에서, 그 편안한 하늘 밑에서 그런 슬프고도 참혹한 일이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같은 학교의 학생들이 변을 당했다. 한 학생은 실종 한 달이 지나도록 아직 생사조차 알 수 없고, 밤에 독서실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한 학생은 집 근처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이양 부모는 어제 서둘러 장례를 치렀다. 학교 운동장에서 치러진 노제(路祭)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면서 아내는 눈물을 지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심약한 아내는 이양 사건이 터진 날부터 밥술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어머니는 범인이 자수를 하거나 꼭 잡히기를 기도해야겠다는 말을 했다.

딸아이를 천안에 두고 있는 나로서는 사실 마음이 편치 않다. 원룸에서 혼자 자취를 하는 딸아이 생각이 자꾸 난다. 같은 학교 학생들이 두 명이나 한 달 간격으로 변을 당한 사실에서 딸아이도 내심 충격이 큰 것 같다.

딸아이는 종교 담당 수녀님이 하셨다는 말을 내게 들려주었다.

"이런 슬픈 일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종교 담당 수녀로서 '세상은 좋은 것이다, 세상은 살 만한 곳이다'라는 말을 해야 하는지 너무도 난감하다."

하느님을 믿으며 사는 나 역시도 너무도 난감한 마음이다. 그 난감한 마음 때문에 이 글의 끝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난감하기 때문에, 난감한 마음으로 기도할 밖에는…. 자식을 기르는 같은 부모 처지에서 수진이와 이양의 부모에게 내 기도로 위로를 드릴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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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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