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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인 2002년 7월, 브라질에서는 통산 다섯번째 월드컵 우승이 가져온 열광과 감격의 여파가 한창이었다. 온 세상이 축구와 월드컵 이야기로 날이 지고 새던 그 때, 밀리언셀러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56)에게는 월드컵 우승보다 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브라질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학자들의 단체인 브라질 학술원 회원으로 마침내 선출된 것이다.

학술원 회원 38명의 투표에서 22명으로부터 찬성표를 얻어 회원이 된 소감으로 그는 "회원 선출은 그 동안 나를 비난해 온 평론가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며 그들은 이제 대답을 해야 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공격의 말을 날렸다.

<연금술사>와 <11분>으로, 우리 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파울로 코엘료. 그는 왜 고국 브라질에서 평단의 비난을 받는 작가였던 것일까?

세계 4천만명 매료시킨 파울로 코엘료 신드롬

브라질 출신 소설가 중에서 국내 국외를 통틀어 파울로 코엘료만큼 많은 책을 판매한 작가는 없다. 또 파울로 코엘료만큼 극과 극을 달리는 평가를 평론가들과 일반 독자들로부터 받으며 줄곧 논란의 대상이 되어온 작가도 일찍이 없었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집계한 8월 첫째주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11주 연속 1위에 올라 있는 <연금술사>는 파울로 코엘료 최대의 베스트셀러다. 1988년에 출간된 이 책은 6년 동안 브라질 국내에서만 165만부가 팔려나가 그 당시까지 브라질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후 전 세계 120여개국에서 번역되어 2천만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한국에 번역 소개된 <브리다>(1990) <피에트라 강가에 앉아 나는 울었노라>(1994)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1998) 등도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성공작들이었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그의 책들이 4천만부가 넘게 팔려나간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 출판가에도 지난 5월,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 장편 <11분>(문학동네)이 출간된 지 일주일만에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했다. 여기에 지난 2001년에 출간된 <연금술사>까지 동반 상승세를 타고 있어 때 아닌 '코엘료 열풍'이 부는 중이다. 2003년에 나온 <11분>은 지금까지 70여 개국에서 3백만부가 넘게 팔렸고 30개국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 연금술사
마술과 신비주의가 적당히 섞인 달콤한 마취제

파울로 코엘료의 책들은 번역되는 나라마다 큰 성공을 불러일으켰고 작가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정작 브라질의 문학계와 지식인들은 그의 작품에 대해 냉담하고 인색한 평가를 내려왔다. 그의 작품은 '현실의 복잡한 갈등 구조를 마술과 신비주의 같은 달콤한 마취제로 얼버무릴 뿐'이라는 것이 코엘료 소설에 대한 '식자'들 비판의 요지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은 싸구려 감성을 자극하는 얄팍한 속임수라느니 어려운 글을 읽기 싫어하는 '무식한 일반 대중'이나 좋아하는 킬링 타임용 잡문이라는 식으로, 브라질 지식인들의 코엘료에 대한 비판은 가혹하고 인정사정 없었다. 브라질 최고의 문학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하케우 케이로스 같은 작가는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을 읽어 보려고 시도해 봤지만 도저히 8페이지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였다.

브라질 문학 번역가 윤모씨는 "한국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문학 기자들이 코엘료의 소설에 감탄하고 즐겨 인용하는 것을 보고 좀 의아했다"고 말한다. 브라질 문학계에서는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을 진지하게 평론할 대상으로 간주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코엘료의 작품들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을 갖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문학적인 가치로 볼 때 그렇게 훌륭한 소설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 11분
코엘료 소설 독자는 멍청이?

파울로 코엘료 자신도 브라질 문단으로부터 당한 모멸에 대해 깊은 원한을 갖고 있다. 한 인터뷰에서 "이토록 대단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평론가들에게 신경을 쓰냐"는 질문을 받고, "그 동안 내 소설에 대해 비난한 글들을 모두 모아 놓고 있으며 언젠가 공개적인 평가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를 향한 공격은 참을 수 있지만 가장 마음 아픈 건 내 소설을 읽는 독자들더러 멍청이라고 부른 사실"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1947년에 브라질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코엘료는 일찍부터 문학가를 지망했다. 젊은 시절에는 극단 활동을 하고 히피 문화에 심취했으며 요절한 천재 록 가수 하울 쎄이샤스를 위해 노래말을 썼다. 그가 가사를 쓴 노래들은 지금도 브라질 젊은이들에게 가장 사랑받고 널리 불려지고 끊임없이 리메이크 음반이 나오는 명곡들로 남아 있다.

70년대에는 군사독재정권을 비판하는 풍자 만화를 출간했다가 경찰에 끌려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1979년에 화가인 크리스티나를 만나 결혼했다. 1999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국가 훈장인 레종 도뇌르를 받았고, 2001년에는 독일의 권위 있는 상 '밤비 2001'을 수상하기도 했다.

'책 한 권 읽어본 적 없는' 대중들의 마음을 아는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은 평범하고 쉬운 언어를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대답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제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브라질의 지식인들은 그를 경시했고 대중은 그를 숭앙한다.

<연금술사>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정체성을 발견하고 자신과 세계와의 조화를 이루라고 충고하는 신비주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11분> 역시, 이제 너무 샅샅이 파헤쳐져서 신비라고는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은 몸의 욕망, 섹스의 쾌락을 통해 영성에 이를 수 있다는 열망을 역설한다.

코엘료의 소설을 두고 문학성을 논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그의 소설의 위대함은 그 자신이 말한 것처럼, "단 한 번도 서점에 들어가 본 적 없고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어본 적 없는" 수많은 브라질 사람들로 하여금 책을 사서 읽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아마도 '코엘료 신드롬'의 정체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고 세상을 설명하는 지식과 정보는 넘쳐나지만 갈수록 삶의 공허함과 무가치함 때문에 가슴에 뚫린 구멍을 허전해 하는 사람들이 간절히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통찰과 지혜로움일 것이다.

연금술사 (리커버 한정판)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문학동네(2018)


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문학동네(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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