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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은 여성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함께 하는 운동을 위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 있지 않을까? 이 자리는 이런 의도에서 마련됐다. 그들의 생각이 한국의 여성 운동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제대로 판단하고 있는지 여부는 따지지 않기로 했다. 오롯이 '듣기' 위한 자리였음을 밝힌다.

특별히, 건강하고 진보적인 시각과 비판 의식, 일당백의 필력을 자랑하는 인터넷 매체의 인기논객 3인을 초대했다. "여성 운동에 귀 기울이고 같이 손잡고 고민하려 한다"는 이들이 자유롭게 여성 운동과 여성주의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놨다.

<참석자>

윤용인: 딴지일보(www.ddanzi.com) 이사. 딴지관광청장.
37세. 아내와 1남1녀.
"같은 코드를 공유한 사람들끼리만 좋아하는 여성운동. 문제제기에 대해 '남자가 뭘 알아?'라고 반응하면 곤란하지요."

최내현: 모바일보(www.mobailbo.com) 편집장. 33세. 아내와 1녀.
"이거 안 하면 배신자다, 가해자다, 그런 심각한 톤 말고요. 여성 운동도 전략적 차원에서 재미있게 웃겨가면서 하면 어떨까요."

변희재: 시대소리(www.sidaesori.com) 운영위원. 29세. 미혼.
"내일 당장 국정 운영을 맡겨도 안심할 수 있다 싶을 만큼 책임감과 실력 갖춘 여성 리더를 키워야 합니다."


사회자: 세 분은 그간 여성이나 여성 운동에 관한 글도 쓰고, 나름대로 관심을 가져온 걸로 압니다. 먼저 여성 운동에 관한 인상부터 얘기하는 걸로 풀어나갈까요?

변희재(이하 변): 제가 여성운동가들을 처음 접한 건 대학교 때예요.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한 98년이었는데 그때 나 같은 자유주의자와 래디컬 페미니스트는 숙명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죠.(웃음)

무엇보다도 저는 여성 운동이든 통일 운동이든 노동 운동이든 운동가는 리더의 자질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해요. 조직을 이끌 만한 성숙함이요. 그런데 내가 그때 만난 소위 '영 페미니스트'들은 그런 자질이 부족하더라구요. 싸우다 울고 삐지고 일 맡아 놓고는 기분 나쁘다고 사라지질 않나. 그런 사람들이 사회에 나가면 바로 박살나서 행방불명되고 말아요.

윤용인(이하 윤): 대학 다닐 때도 "여성학이 무슨 학문이지?" 할 정도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에서 '밖에서는 노동 운동을 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나는 가부장이다' 뭐, 이런 내용의 시를 봤어요. 그게 아마 최초의 문제 제기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 결혼을 했지요. 부모님이 만들어 놓은 질서,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순종적인 어머니의 질서를 와이프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운데 마찰도 생기고 나의 가부장적인 면도 보게 됐지요. 그러다 딸을 낳고 보니까 비로소 이게 내 문제가 되면서 관심을 갖게 됐어요.

최내현(이하 최): 전 학교 다닐 때부터 관심을 갖고 여성학 강의도 들어봤는데 여성 운동이라는 게 참 어려운 운동이다 싶어요.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규정하는 건 오히려 여성운동가라는 인상도 받았어요. 이를테면 80년대 이래 미국에서는 성추행 경력을 문제 삼아 공직자를 파면할 수 있도록 법제도가 마련됐는데 이 기반을 만들어 놓은 게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거든요.

고위 공직자 임명 청문회를 하면 그 사람이 어떤 성향인가의 기준이 온통 옛날에 성희롱을 했다, 성적 농담을 해서 여자들을 기분 나쁘게 했다, 플레이보이 잡지를 본다, 뭐 이런 게 다 들춰지고 그게 인준의 기준이 되는 거예요.

그 와중에 한 페미니스트가 쓴 글을 읽었는데 '페미니즘은 변혁 진보운동인데 이런 식으로 가면 결국 극도의 보수 정치와 페미니즘이 짝짜궁이 된다'는 내용이었어요. 공감이 가면서 역시 여성 운동은 쉬운 문제가 아니구나 싶었죠. '포르노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도 '금지해야 한다' 에서 '여자도 포르노를 만들어야 된다'까지 180도 다른 견해가 나올 수 있잖아요. 참 복잡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기 남자 새끼의 뻔뻔한 얼굴을 봐라

: <여자의 방>이라는 연극을 보러 간 적 있어요. '여자들의 이야기가 뭔지 공부 좀 하자'는 자세로 갔거든요. 관객 대부분이 여자고 그런 자리까지 온 남자는 소수잖아요. 다수가 소수를 너그럽게 품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극의 설정상 그랬는지, 남성의 기득권을 비판하는 말을 하면서 "저기 남자 새끼도 와 있구나. 저 뻔뻔한 얼굴을 봐라." 이러는 거예요. 여자들은 막 웃고 좋아했지만 나는 진짜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구요.

안티미스코리아대회에도 가봤어요. 여자들은 열광하는데 내가 받은 느낌은 '같은 코드를 공유한 사람들끼리만 좋아하고 있다'는 거예요. 뭐랄까, 어떤 섬에 억눌린 불만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들끼리 막 축제를 해. 그런데 누군가 "우리도 축제에 동참하고 싶소" 하면 째려보면서 "넌 그동안 우리랑 안 놀았잖아? 딴 섬에서 온 새끼가 어딜 끼려고…" 뭐, 이런 분위기가 느껴지는 거예요.

이런 문제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제기하고 토론한 적도 있어요. 그럼 한참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항상 마지막에 나오는 이야기가 "너는 그러니까 남자인 거야. 남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거야." 이래요. 내가 뭘 어쨌길래?

여성 운동도 또 하나의 권력이구나, 그 권력을 침해받기 싫어서 안티를 거는 사람들에게 '남자가 뭘 알아?'라는 식으로 무시해 버린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여성 운동이 구제도의 모순을 타파하려면 다른 여러 운동과 연대를 하고 참여하는 사람 수도 늘리고 홍보도 많이 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부족해요.

: 젠더의 문제라 그런지 여성 운동은 그 폐쇄성이 다른 운동권보다 더 심한 거 같아요. '넌 여자가 아니라 몰라'하면 거기서 끝나더라구요. 이런 경험이 있었어요. 영 페미니스트라는 모 신문 여기자와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인터뷰에서 "나는 강한 여성이 좋고 딸도 그렇게 키우겠다. 여성들은 근육질로 가야한다." 그런 말을 했거든요. 신문 나온 걸 보니까 제목을 '마초야 놀자'로 달아 놨어요. (웃음) 헤드라인은 또 "그에게 여성주의자와 연애할 것을 권했다"예요. 여성주의는 절대선인데 너는 여성주의를 모르므로 연애도 결혼도 여성주의자와 해서 배워야 하고 안 그러면 여성 운동에 대해 안다고 하지 마라. 이런 식이더라구요.

: 미국에 가면 미국 사람하고 연애를 해야 영어를 쉽게 배운다, 뭐 이런 식의 얘긴가?(웃음)

성형 수술하면 공영 방송 출연금지 시켜야

: 성의 상품화와 오늘 토론회 있으니 이쁘게 하고 나와라, 이런 말을 동일시하는 것도 문제이고. 한편으로는 성에 대한 지나친 피해의식, 환상, 나는 우아해야 하고 성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식의 핑크 콤플렉스에 빠져 깨려고 들지 않는 거 같아요.

: 사실 그걸 깨야하는 게 페미니즘인데 기존의 남성 여성 구분을 오히려 고착시키면서 여성 운동이라고 해요. 그러면 진보 운동이 아니라 보수 운동이 되는 거죠.

: 학교 다닐 때 여학생회장이 쌍꺼풀 수술했다가 박살이 난 적도 있었어요. 요즘은 여성 운동하는 분들도 성형 수술하던 걸요. 이제 성형 수술이 일종의 통과의례가 되어버릴 판이에요. 이 외모지상주의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데 누가 하겠어요, 여성주의자들이 해야지 않겠어요? 요즘 방송 아카데미 같은 학원에 가면, 여자 아나운서는 6개월 학원 등록할 때부터 기본적으로 성형수술 받아야 한다고 조건을 건대요. 여성 운동에서 외모지상주의 비판으로 하는 게 안티 미스코리아인데요. 요즘 미스코리아는 힘도 없어요. 여학생들이 최고 선망하는 직업이 아나운서, 앵커 아니에요? 외모지상주의는 여성 아나운서, 앵커 같은 소위 커리어우먼들이 강화시키는 데 엉뚱한 데 가서 힘쓰고 있어요.

: 미의 기준이 획일화돼 있는 문제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해당돼요. 그런데 남편들이 아내한테 성형 수술하라고 요구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요?

: 수술 자체를 부정할 생각 없어요. 개인적으로 수술하겠다는 거야 어떻게 말려요. 단 수술한 사람은 공중파 TV에는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여성앵커 문제는 법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어요. 남녀 앵커를 비슷한 연령대로 선정해라 이겁니다. 똑같은 직종인데 한 성에만 15년 이하를 요구하고 있잖아요. 남녀차별금지법으로 걸어서 시정조치를 요구해야 해요. (이 대목에서 흥분)

TV뉴스를 보면 이건 완전히 룸살롱 문화예요. 아버지하고 딸이 진행하는 꼴이잖아요. 가부장적인 남자와 현모양처 이미지의 보조자 여성, 이걸 일년 365일 프라임 타임 뉴스 시간에 방송이 퍼뜨리고 있는데 여성 운동이 이걸 놔두고 뭘 하고 있냐, 이거야.

매매춘 문제, 성대립 구도 이슈 아니다

: 남녀대결 구도로 가지 않아도 될 이슈를 대결적으로 내놓는 것도 문제죠. 일례로 매매춘은 여성 운동이 해결할 수 있는 이슈는 아니라고 봐요. 발길 닿는 데마다 매춘업소인데 이건 우리 사회의 천박성이나 문화적 빈곤함의 반영이지요. 욕구의 배출을 말초적인 자극으로밖에 해결할 수 없는 환경이 문제거든요. 이건 남녀가 같이 고민해 풀 부문이지 법적으로 금지 내지 부분 합법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 매매춘 방지법을 만든다고 해도 효과는 없을 거예요. 법적으로 규제를 하든 풀든 매매춘이 사라지겠어요? 그런데 룸살롱 말고 마담 있는 카페 있잖아요. 남자들이 왜 그런 곳을 많이 찾나 했더니 그게 성적 쾌락, 욕구 해소의 차원이 아니더라구요. 이유는 외로워서래요. 결혼하고도 외롭고 허전해서 대화 상대가 필요해서….

: 중년의 마담이 있는 카페에 가면 홀로 온 남성들이 마담 주변에 앉아 있는 모습을 곧잘 보게 되죠. 또 한가지 이유는 40대가 넘으면 남성으로서 매력이 없다고 여겨지는데 그런데 가면 남성으로 대우를 받고 성적 매력을 인정받는다고 느끼게 되죠. 그렇게 대우해 주니까.
하지만 매매춘의 기업화는 막아야 한다고 봐요. 룸살롱을 자기 돈으로 가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주로 회사 접대비로 쓰죠. 음성적인 접대 문화가 매매춘 산업을 지탱시키는 이런 식의 구조는 없애야죠.

: 요컨대 매매춘 같은 문제는 여성이 주장하고 남성은 반대하고 그런 대립 구조 속에서 파악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성 자체를 떠나서 사회문화적인 차원에서 이야기 되어야 풀릴 문제라 보여요.

: 군 가산점 문제가 남성 대 여성의 문제가 아닌데 마치 그런 것처럼 몰고 간 것의 재판이 되면 안돼죠.

쉽고 재미있는 여성 운동이 필요

사회자: 이왕 얘기 나온 김에 여성 운동에 해주고 싶은 충고나 제언이 있다면?

: 딴지일보에서 일했던 경험에서 말씀드리는데요. 우리는 예전 같으면 주먹 쥐고 구호 외치던 이슈를 웃겨 가면서 이해시키는 방식이거든요. 여성 운동도 전략적 차원에서 재미있게 웃으며 하면 어떨까 생각해요.

호주제를 예로 들면 택시 탔는데 운전 기사가 호주제 없어지면 김씨가 박씨된다는 식의 엉터리 막연한 공포를 갖고 있었어요. 쉽고 재미있게 이런 사람들 설득해 내는 방식이 필요해요.

: 재미, 그거 중요해요. 운동의 목적이 결국 메시지의 전달이라고 볼 때 즐겁게 웃겨주면 메시지 전달이 효과적이라는 거지요. 호주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자기는 딸 안 낳을 건가? 누이동생 없나? 그런데 그걸 인식 못시킬 정도라면 홍보에도 문제가 있지 않았나 싶어요.

: 그리고 하나로 뭉쳐서 단일한 목소리를 내려고 하기 보다는 좀 갈라져서 다양한 생각을 말했으면 해요. 여성주의 안에도 사실은 다양한 주장이 있는데 겉에서 보기에는 하나로 보이거든요. 그럼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키기 쉽고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딱지를 붙이기도 쉽지요.

: 페미니즘이란 말도 안 썼으면 좋겠어요. 여성 운동도 어려운데 페미니즘하면 더 막연하거든요. 예컨대 '새마을운동'하면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가 떠오르지만 '여성 운동'하면 너무 포괄적이에요. 자기들끼리만 소통되는 용어로는 대중 운동을 할 수 없지요. 용어와 슬로건에 대한 연구도 필요한 단계라 생각돼요.

사회자: 여성들의 정치 참여나 사회 진출, 리더십 문제가 여성계의 새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

: 남자들은 지연, 학연이 강하잖아요. 남자들이 학연으로 뭉치니까 여성들이 못 크는 이유도 돼요. 정말 신기한 게 점점 여자들이 나이가 들수록 사회 생활에서 빠져버린다는 거예요. 일단 결혼이 치명타 날리고 거의 다 하나 둘씩 사회 활동에서 날라 가고 없어져요.

그래도 이대 출신은 수가 많으니까 다른 대학 출신까지 품는 리더십을 더 발휘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자기네끼리 뭉치는 게 문제로 보여요. 학맥으로 뭉치는 것이 지금까지는 괜찮았는지 몰라도 이제는 생산적인 네트워크로 넓혀가야 하지 않겠어요?

: 그건 우리 사회의 잘못된 면을 이대도 따르고 있는 거죠. 고대를 나온 친구 하나가 하는 말이 네트워킹과 이지메가 여자들한테도 있다는 거예요. 정말 정치적인 여자들이라면 조직 안에서 여성의 힘을 키워야하는데 내부적인 분열을 일으킨다는 거지. 방위와 현역이 서로 따돌리듯이.

: 내가 하고픈 말은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예요. 여성 할당제 얘기 나오면 리더 자리를 여성에게 맡겼을 때 과연 제대로 굴러갈까 불안감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제부터 여성 운동이 할 작업은 그런 불안감을 없애는 거죠. '내일 당장 국정 운영을 맡겨도 안심할 수 있겠다' 싶은 책임감과 능력…. 이런 인상을 심어 줘야 하는데.

: 남자 중에도 그런 리더는 없잖아요.(웃음)

: 그러니까 지금이 여자가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예요. 장관부터 전부 다 여성으로 쓸어버릴 기회라니까요. 이제 진짜 제대로 된 여성 리더를 키우는 게 중요해요.

사회자: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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