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지난 12일 뉴질랜드의 정치 지형도가 새롭게 그려졌다.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마오리당이 공식 출범한 것이다.

이날 실시된 테 타이 하우아우루(Te Tai Hauauru) 지역구 보궐 선거에 마오리당의 후보로 출마한 여성 정치인인 타리아나 투리아가 총 투표수 7454표의 92%를 넘는 6869표의 몰표를 득표했다. 이로써 투리아는 다른 다섯 명의 후보를 가볍게 따돌리고 마오리당이 배출한 첫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번 당선으로 타리아나 투리아는 지난 5월 14일 현 집권당인 노동당을 탈당하면서 잃었던 자신의 지역구 국회의원 자리를 2개월 만에 다시 탈환하게 되었다. 아울러 지난 6월 9일에 창당한 마오리당은 국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원내 정당으로 공식 출범하게 되었다.

뉴질랜드는 원주민인 마오리인들에게 국회 내에서의 대표권 부여하기 위해서 1867년부터 일반 지역구와는 별도로 마오리 국회의원만을 선출하는 마오리 지역구를 따로 두는 이중적인 선거구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마오리 인구수 비례에 의해 설정되는 이 마오리 지역구에 출마하는 입후보자들은 마오리인들이어야 하며 유권자들 역시 마오리인들로 한정된다.

따라서 선거 때마다 마오리 유권자들에 의해서 마오리 지역구 숫자만큼의 마오리인 국회의원들이 선출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선출되는 마오리 국회의원들은 기존 정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의원 활동도 결국은 소속 정당의 입장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현재 7개 마오리 지역구 중의 하나인 테 타이 하우아우르에서 실시된 이번 보궐 선거가 뉴질랜드의 정치 지형도에 있어서 매우 의미 있는 이정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즉, 노동당을 탈당하고 독자적인 마오리당을 창당하여 그 후보로 나선 타리아나 투리아가 이번 보궐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둠에 따라, 기존 정당 내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다른 마오리 국회의원들도 이제 마오리당에 합류하기를 요구받게 된 것이다.

마오리인들에게는 마오리당을

타리아나 투리아는 헬렌 클락 수상이 이끌고 있는 현 노동당 정부에서 마오리부 장ㆍ차관을 역임하는 등 당내에서 높은 서열을 차지하고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노동당과 갈라서게 된 것은 지난 5월에 국회를 통과한 '해안및해저법'에 대한 입장 차이 때문이었다.

해안및해저법은 '뉴질랜드의 공공 해안 및 해저는 국가가 소유하는 대신, 일반인의 자유로운 이용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는 새로운 법안이다. 여기서 '해안'과 '해저'는 만조시 바닷물에 잠기고 간조시 드러나는 해변의 땅과 그 아래 지층을 의미한다.

이 법안의 입법 추진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마오리 부족의 지도자들이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정부 내에서 마오리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유력한 정치인이었던 타리아나 투리아 역시 이들과 같은 입장에 섰다.

그녀는 이러한 법안의 내용이 오래 전부터 바닷가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온 마오리인들의 재산권을 제약하고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당론과는 배치되는 이러한 반대 의사의 표명으로 인해 그녀는 헬렌 클락 수상으로부터 각료직을 박탈 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마오리인들의 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노동당 정부가 해안및해저법을 입법 추진한 것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뉴질랜드 남섬에 있는 넬슨, 말보로 지역에 사는 한 마오리 부족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그 지역 해안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낸 소송이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얻게 되자, 정부가 막대한 보상금을 줘야할 형편이 된 것이다.

결국 마오리인들의 재산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끝도 없는 법적 분쟁과 그 해결에 소요되는 엄청난 규모의 정부 보상금에 대해서 식상해 있던 유럽 출신의 뉴질랜드인들은 "마오리인들의 해안 및 해저 소유권이 인정된다면, 이제 바닷가에도 마음대로 접근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니냐"면서 우려를 표명했다.

그래서 노동당 정부는 해안 및 해저에 대한 마오리인들의 관례적 권리는 인정하되, 그 소유권은 국가가 갖는다는 내용의 해안및해저법을 제정하여 마오리인들과 유럽출신의 뉴질랜드인들을 달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해안 소유권에 대한 승소 판결을 받아낸 바 있는 마오리인들이 이에 만족할 리가 없었다. 그들은 2주 동안 뉴질랜드 북섬을 걸어서 종단하여 법안 의결일에 맞춰 웰링턴의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 집결하는 대규모 도보 가두시위를 펼침으로써, 노동당 정부의 해안및해저법에 강력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마오리인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법안은 통과되었다.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진 타리아나 투리아는 결국 노동당을 탈당하고 마오리인들의 독자 정당인 마오리당을 창당하기에 이른 것이다.

마오리당, 향후 정국에서 중요 변수로 떠올라

노동당은 타리아나 투리아의 탈당으로 공석이 된 테 타이 하우아우루 선거구의 이번 보궐 선거에 입후보자를 내지 않았다. 타리아나 투리아의 압도적인 승리가 너무나 확실하게 예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괜히 후보자를 내세웠다가 해안및해저법 제정을 둘러싼 논쟁에 다시 휩쓸리게 되면 오히려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정은 다른 주요 정당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승산이 없는 이번 보궐 선거에서 소모전을 하기보다는 내년 하반기에 예정된 총선에 더 신경을 쓰기 위하여 이번 보궐 선거에 입후보자를 내지 않았다. 따라서 뉴질랜드 정계에서는 이렇다할 경쟁자 없는 이번 보궐 선거에서 타리아나 투리아가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다.

노동당의 마이크 윌리암스 사무총장은 유권자의 3분의 2가 이번에 투표를 하지 않은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이번 보궐 선거가 "매우 하품 나는 일"이었으며 타리아나 투리아의 승리 역시 "혁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내년 총선에 타리아나 투리아를 능가할 강력한 후보자를 공천하여 다시 이 지역구의 마오리 의석을 되찾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 국회의원인 미디어 평론가 윌리 잭슨은 이번 보궐 선거에서의 저조한 투표율은 투표소 부족으로 인하여 야기된 결과라고 지적하면서 내년 총선에서는 마오리당이 5석의 의석을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오리당 내부에서도 내년 총선에서 7개 마오리 지역구의 의석을 모두 석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보이면서도 마오리 유권자들의 저조한 투표 참여율에 대해서는 걱정하는 분위기이다. 마오리당의 파타랑이 위니아타 사무총장은 마오리인들의 이러한 정치적 무관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이러한 저조한 투표율은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 있어서 마오리인들의 이해가 결여되어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현재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정당들은 유럽 출신 뉴질랜드인들의 관심사가 지배적인, 유럽 출신 뉴질랜드인들의 정당들일 뿐이다.”

이러한 그의 발언은 몇몇 마오리 부족 대표들의 마오리당 지지 선언으로 이어지면서, 현재 노동당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오리 국회의원들에게 큰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1840년 와이탕이 조약으로 뉴질랜드가 건국되기 전까지는 한 번도 통일된 국가를 이루어 본 적이 없이 부족 단위로만 살아온 마오리인들이 마오리당이 창당되었다고 일사불란하게 그 휘하로 집결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마오리당이 좌파 정당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역시 좌파 정당인 노동당과는 어떻게 차별성을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도 마오리당이 직면하고 있는 중요한 현안이다. 마오리당이 내세우는 정책이 노동당과 큰 차별성을 가지지 못할 때, 전통적으로 노동당 지지 성향이 강한 마오리인들이 단지 이름만을 보고 자신의 지지 정당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오리당이 공식 출범하기 이전인 지난 6월, 헤럴드 디지폴(뉴질랜드 헤럴드)과 콜마 브런튼 폴(TV1)이 실시한 지지 정당 조사에서 마오리당은 각각 2.4%와 2%이라는 기대 이상의 지지율을 얻어 신생 정당으로서는 매우 좋은 출발을 보여 주었다.

마오리당의 이러한 순조로운 출발이 앞으로 어떤 복병을 만나 어떻게 변화될지는 아직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집권 초기에 매우 안정적이었던 노동당의 지지율이 올해 들어 제1야당인 국민당에 밀려 이제는 근소한 차이로 국민당에게 선두 자리를 내주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새로 등장한 마오리당이 향후 정국의 전개를 좌우하는 주요 변수로 떠오를 것이라는 사실에는 모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또한 현재의 정당 지지율 분포로 판단하건대 내년 총선의 승자가 노동당과 국민당, 그 어느 쪽이 되든 간에 과반수 의석 획득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기에, 총선 이후에도 정국에 미치는 마오리당의 영향력은 클 것이라는 전망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