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김헌동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 본부장이 현행 공공택지 공급체계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훈

아파트 분양가 거품 논란이 일면서 '로또 추첨식' 공공택지 공급체계가 거품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시행사들이 추첨으로 분양받은 공공택지를 팔아넘기면서 챙기는 수백억원의 웃돈이 고스란히 분양원가에 전가돼 아파트 분양가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택지는 한국토지공사나 대한주택공사 등 공기업이 택지개발촉진법에 따라 토지를 강제 수용하여 조성된다. 이렇게 조성된 공공택지 중 공공부문의 임대주택 건설에 사용되는 것은 20%에 불과하고 80%는 민간업체에 복권처럼 추첨으로 분양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999년 분양가를 자율화하기 전까지는 추첨으로 공공택지를 헐값에 분양하는 대신 아파트 분양가격을 규제해 왔다. 하지만 분양가 자율화 조치로 분양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지만 추첨식 분양제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로 인해 서민들의 주거안정에 사용되어야할 공공택지가 업체들만 배불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돼버렸다.

건설업계는 아파트 분양가능성이 높은 노른자위 택지지구를 '로또 택지'라고 부른다. 이곳에 당첨되면 아파트를 짓지 않고 시공권만 다른 업체에 넘기더라도 수백억원의 전매차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로또 택지

당연히 값싼 공공택지를 노리는 주택건설업자들의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현재 분양 경쟁률은 개발지구마다 수백대 1에 이른다. 당첨금이 수백억원임을 감안하면 당첨확률이 수백대 1이라는 것은 복권 중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높은 것이다.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에 돌입한 박병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은 "당첨되기만 하면 앉은 자리에서 수백억의 이익이 보장되는 공공택지 당첨확율이 불과 수백대 1"이라며 "이를 로또 복권의 당첨확율에 비교해 보면 얼마나 손쉽게 업체들이 이익을 독식하는지 드러난다"고 말했다.

작년 12월에는 경기도 화성동탄 신도시 시범단지에서 택지 분양에 당첨된 시행사들이 800억원대의 시행이익을 보전해주는 조건으로 국내 L건설과 시공계약을 맺은 사실이 밝혀졌다. 공공택지를 분양받은 W건설, I건설 등 3개 시행사가 직접 아파트를 시공하지 않고 시공권만을 L건설 측에 넘기면서 800여억원의 전매차익을 챙기려 했던 것이다.

파문이 일자 이들 시행사들은 약정서를 파기하고 직접 시공에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공공택지 웃돈 거래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대표적인 예로 거론되고 있다.

만약 이 계약이 성사됐다면 시행사들은 아파트를 짓지 않고도 800억원의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현행 공급체계상 아파트 분양원가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는 소비자들은 비싼 분양가를 그대로 떠안아야만 했다.

한 대형건설업계 관계자는 "수도권 신도시처럼 분양가능성이 높은 택지지구에는 택지분양업체(시행사)의 시공사 선정에 대기업들도 눈독을 들인다"며 "말이 시공사 선정이지 사실상 웃돈을 얹어주고 분양된 땅을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시행사들로서는 수십억에서 수백억에 달하는 개발 프리미엄을 보장받을 수 있고 대형건설업자가 건설을 하면 분양이 더 잘되기 때문에 일석이조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S 건설에 다니다 퇴직한 A씨는 "왜곡된 공공택지 공급 방식으로 인해 실제로는 아파트 시공능력이 없지만 서류상으로만 분양신청 자격을 갖춘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도 공공연히 공공택지 분양 추첨에 참여한다"고 귀띔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업체는 아파트 안짓고도 수백억 챙기기 가능

그러나 현재 공공택지 공급체계상 시행사들의 전매를 막을 뚜렷한 방법은 없다. 건교부가 지난해 12월 4일 공공택지의 분양전매 금지와 분양신청 자격 강화를 발표했지만 이를 피해나갈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아파트가 준공될 때까지 시행사가 명의를 그대로 가지고 시공권만 넘기면서 개발이익을 챙길 경우 전매행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법으로 시행사는 막대한 양도차익을 챙기면서도 양도소득세마저 물지 않는다.

'로또 택지'로 시행사들이 배를 불려가는 동안 피해를 보는 것은 소비자들뿐이다. 시공권을 넘겨받은 업체는 아파트 분양가에 시행사에게 넘겨줄 막대한 이익을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25-33평형 아파트 1492가구가 들어설 예정인 화성 동탄신도시의 경우 시행사가 만약 시공권을 넘기는 대신 800억원의 이익을 보장받기로 했다면 평당 180여만원의 분양가 상승요인이 생기게 된다. 이는 가구당 추가비용 약 5360만원(시행사 이익 보전분 800억/총가구수 1492)을 다시 들어설 아파트의 평균 평수인 29평으로 나눈 값이다.

공공택지 전매가 이루어지면 소비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택지를 분양받은 시행사가 직접 시공하는 경우보다 평당 180만원을 '울며 겨자 먹기'로 더 내놓아야 한다.

공공택지 전매할 경우 소비자는 평당 180만원 더 내야

'거품빼기 운동' 범국민 운동으로 확산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와 분양가 인하 운동이 범국민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12일 경실련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가 출범,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이후 각 지역별 운동본부도 속속 발족하고 있다.

부산경실련은 17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아파트 거품빼기 부산운동본부' 를 발족하고 다른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분양가 인하 운동도 전개해 나가기로 했다. 또 지역 경실련에서도 이날 동시에 기자회견을 갖고 각 지역 도시개발공사와 주택공사에 아파트분양원가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신청하는 등 아파트값 거품을 빼기 위한 본격적인 운동에 나설 것을 선언했다.

아파트 계약자 협의회를 중심으로도 건설사를 상대로 분양가 공개와 인하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경기도 공양시 풍동그린빌 계약자대표회의(위원장 민왕기)는 자체적으로 산출한 분양원가를 근거로 분양가가 원가의 2배에 달한다고 주장하며 시공사인 대한주택공사와 공방을 벌이고 있다. 대표회의는 주택공사에 분양가의 30%를 돌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표회의 측은 다른 지구 계약자대표회의 측과 연대해 이 운동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건교부가 주택공사의 건축비 공개 여부를 ‘주택공급제도 검토위원회’를 통해 6월께나 결정하기로 해 분양원가공개와 분양가 인하를 놓고 계약자 측과 주택공사의 줄다리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김헌동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 본부장은 "정부는 분양가 자율화 속에서 아파트 선분양을 허용하고 그것도 모자라 헐값에 공공택지를 업체에 분양하는 엄청난 특혜를 베풀고 있다"며 "이러한 특혜 속에 시공능력도 없는 건설업체조차도 서민들을 상대로 떼돈을 벌고 있다"고 비난했다.

따라서 건설업체만 배불리는 공공택지 공급체계의 대수술이 요구된다. 문제의 근본인 분양택지의 전매를 막기 위해서는 공공택지를 추첨으로 공급받은 시행사가 직접 아파트 시공에 나서도록 의무화해야한다는 지적이 강하게 일고 있는 것.

참여연대는 "현재 아파트 건설능력도 없는 부실기업이 공공택지를 공급받아 타 업체에 전매하여 엄청난 프리미엄을 취하고 대기업들도 수십 개의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공공택지를 노리고 있다"며 "아파트를 짓지 않고 전매차익만을 취한 건설업체에 대하여는 분양받은 공공택지를 환매조치하고 향후 공공택지 입찰에서 제외하는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택지를 이용한 업체들의 폭리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한 건교부도 지난 12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업체의 개발이익 독식을 막고 이를 환수하기 위해 채권입찰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채권입찰제는 공공택지를 분양할 때 구입해야하는 채권의 최고가를 써낸 업체에 낙찰하는 방식으로 시행될 경우 건설업체의 개발이익 독식은 불가능해진다.

업계만 배불리는 공공택지 분양 대수술해야

그러나 업계는 채권입찰제도도 채권 구입시 업체가 져야할 부담을 소비자들에게 전가시켜 분양가를 상승시킬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또 공익성이 강한 공공택지의 개발이익을 그 시기만 늦출 뿐 여전히 업체가 대부분 가져가도록 한다는 점에서 택지개발지구의 공익적 사업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실련은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택지개발지구내에 공영개발방식을 도입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영개발 방식이란 정부와 지자체나 산하 공기업이 택지개발부터 아파트 분양까지를 모두 책임지고 아파트 건설은 시공사를 선정해 추진하는 것이 골자다. 이렇게 되면 건설업체는 경쟁입찰을 통해서 아파트 건설에만 참여하게돼 택지 전매 등을 통한 폭리 확보는 불가능해진다.

김헌동 본부장은 "유럽이나 싱가포르의 경우 정부가 공공택지 조성공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택건설 공사만 건설업자에게 발주해주고 분양까지 모두 책임지는 공영개발방식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