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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학사
'시간이란 무엇인가?'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우리는 분명 다소 철학적인 대답을 구하느라고 한참을 이리저리 머리 속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시계와 달력으로 명확하게 구분하고 측정하는 시간 속에서 생활하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시간'이란 철학의 문제지 과학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가 '시간'을 단지 철학 사유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까닭은 '시간'은 과학의 연구 대상이 되는 다른 많은 사물들이나 현상들과는 달리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며 인간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순수관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는 달리 리차드 모리스의 <시간의 화살>은 그 부제 '시간에 대한 과학적 태도'가 말해주듯이 '시간'에 대해 물리학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통찰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저자는 갈릴레오의 역학 이론, 뉴튼의 중력 이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모두 '시간'이라는 개념을 그 기반에 깔고 있음을 상세히 밝히면서, 물리학 전체는 사실상 시간에 관계되어 있다고 말한다. 물리학은 물리 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이며 변화란 시간과 함께 일어나는 것이기에, 물리학은 결국 시간을 다룰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리학의 기본 법칙들은 대부분 시간에 대하여 대칭적이고 가역적이다. 과거와 미래를 거꾸로 해도 마찬가지로 성립한다는 점에서 물리학의 기본 법칙들은 시간이 지나가는 방향을 나타내는 시간의 화살과는 무관하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시간의 간격이지 시간의 방향이 아니다.

그런데 엎지른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어떤 물리 현상은 시간의 화살을 되돌리면 성립이 안 되는, 즉 비가역적인 경우가 있다. 그 경우 시간의 방향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영국의 천문학자 아더 에딩턴 경은 이렇게 비가역적인 시간의 방향성을 두고 '시간의 화살'이라고 불렀다.

지금까지 발견된 네 가지 물리적 시간의 화살―열역학적 시간의 화살, 우주 팽창, 중성 K-중간자의 붕괴, 전자기학적 시간의 화살―이 바로 그러한 경우며 여기에 심리적 시간의 화살을 추가하여 모두 다섯 개의 시간의 화살이 존재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시간의 화살은 방향을 나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쏜살같이 시간이 지나갔다"고 말하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을 뜻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시간은 상류에서 하류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강물에 비유되기도 한다. 강물의 흐름은 인공의 힘이 가해지지 않고서는 자연스런 흐름의 방향을 거스르는 법이 없다.

시간도 강물처럼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다시 미래로 흘러간다. 강물이 높은 산중에서 발원하여 넓은 바다에서 그 끝을 보는 것처럼, 우리가 '시간의 흐름'을 생각할 때 시간의 시작과 끝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주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이기도 한 제9장에서 제11장까지는 바로 현대 우주론에서의 시간 탐구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상상력의 한계를 시험한다. 저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입각하여 중력에 의하여 시간까지도 정지되어 버리는 블랙홀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치고 있다.

예컨대 테너 가수였던 우주비행사가 타고 있는 우주선이 질량 밀도가 무한대가 되는 블랙홀의 한 지점, 즉 특이점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가 '도' 음을 내며 발성 연습을 하고 있었다면, 블랙홀의 중력이 미치지 못하는 바깥쪽 우주의 관측자의 귀에는 그가 영원히 '도' 음을 내고 있는 것처럼 들릴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는 두 개의 다른 시간, 즉 우주선 안의 정지된 시간과 바깥쪽 우주의 완전히 정상으로 흐르는 시간이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동시에 존재하는 이 두 시간 중 어느 쪽이 진실인가?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자. 빛이 태양에서 지구에 도착할 때까지는 약 8분이 걸린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태양은 8분 전의 태양이다. 마찬가지로 밤하늘에서 우리가 보는 별들 중에는 몇 억 광년이나 떨어진 것들도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그 별들의 몇 억 년 전 모습인 것이다. 우리가 느끼고 있는 이 시간은 현재와 과거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모순이 아닌가!

이처럼 현재 속에 동시에 존재하는 과거의 시간은 '지금'이라는 시간은 '여기'라는 공간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임을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시간이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은 공간 속에서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지닌 가장 중요한 함의 중 하나일 것이다.

리차드 모리스는 누구인가

리차드 모리스(Richard Morris)는 미국의 저명한 과학저술가이며 이론물리학자이다. 그는 뉴멕시코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예일대학교에서 이론물리학을 연구하였다. 그리고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독일 쾰른대학교, 일본 교토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하였다.

그는 세계 물리학계가 주목하는 주요 이론물리학을 중심으로 정력적으로 시간ㆍ공간 이론 연구에 몰두해 오면서 일반인들을 위해 알기 쉽게 쓴 교양 과학서적도 많이 저술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시간의 화살>을 비롯해서 <우주는 해체되는가?>, <우주의 전성기>, <우주의 운명>, <빛의 역사>, <과학의 끝은 어디인가?> 등이 있다.
시간이 빅뱅과 더불어 태어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현대 우주론에서는 시간의 기원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한다. 그렇다면 시간은 우주의 미래와 운명을 같이할 것이다. 이러한 가설은 마치 시간이 전자나 양자처럼 물질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추론일 뿐,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우리가 보는 이 우주 말고도 또 다른 우주가 있는 것인지, 우주의 종말이 과연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아직 우리는 완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과학자들은 가능한 모든 상상력을 동원하여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과학자들의 상상력은 때론 시인의 상상력을 넘어서기 때문에 따라잡기조차도 벅찰 때가 있다. 리차드 모리스의 <시간의 화살>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상상력도 바로 그러한 상상력들 중 하나다. 그것은 매혹적이다. <시간의 화살>은 우리의 상상력을 시험한다.

시간의 화살 - 시간에 대한 과학적 이해

리차드 모리스 지음, 김현근 옮김, 현정준 감수, 소학사(사피엔티아)(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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