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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서울 강서구 발산동 ㅂ초등학교 부근 한 문구점 앞.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으로 보이는 또래 아이들 셋이 미니 자판기 형태의 게임기 앞에 모여서 소리를 지르고 있다.

"삼, 사, 칠 안돼 안돼. 또 꽝이잖아."
"맞아 또 꽝이야."
"천 원만 더 해보자."
"그래 그럼 인라인 탈 수 있어."

아이들이 열중해 있는 것은 100원을 투입한 뒤 2번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빙고 형태의 미니게임이다. 숫자 0부터 7까지 그려져 있는 회전판 안에는 화살표 모양의 핀이 돌아가 있도록 설정돼 있다. 주변에 있는 미니게임기들 또한 형태가 비슷비슷 하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 경품으로 배출되는 쇠구슬 또한 어른들이 어렸을적 가지고 놀던 유리구슬이라고 생각한다면 문제가 될 게 없다. 그러나 초등학교 앞미니 자판기 형태의 게임들을 단순한 게임기 정도로 치부할 수만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초등학교 앞 문구점을 중심으로 영업 중인 미니게임들을 단순한 게임기로 볼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는 아이들이 게임기를 단순한 게임기로 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중구 신당동 부근 한 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김모(10)군은 "학교 앞 미니 게임기들이 자꾸만 게임을 하도록 유혹하고 있다"면서 "반 친구들 대부분이 방과 후에 문구점 게임기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500원에서 1천 원 정도는 게임을 즐기는데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초등학교 앞 문구점 등을 중심으로 영업이 진행중인 미니게임기들은 경품으로 준 물건에 대해 환전이나 기타 다른 물품으로 교환해 주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다른 것이 현실이다.

아이들이 이처럼 미니게임에 중독돼 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미니게임기를 설치 운영 중인 문구점 주인들은 아이들이 게임으로 획득한 경품을 일정 정도 모아오면 아이들이 갖고 싶어하는 인라인스케이트나 바퀴 달린 신발, 완구 등으로 바꿔주거나 과자, 문구류 등으로 교환해 주고 있다.

심지어는 빙고에 당첨됐을 때 1천 원짜리 지폐가 경품으로 지급되는 게임기조차 영업되고 있다. 사행심을 조장하는 행태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셈이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한 초등학교 앞 문구점을 운영중인 주인 정모(38)씨는 "아이들 사행심을 조장해 영업을 한다는 비난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부근 문구점 등에서 이 같은 불법 영업을 통해 수익 내는 것을 보고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다"며 "솔직히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봤을 때 이 같은 영업행위는 떳떳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문구점 주인 박모(40)씨는 그러나 "아이들이 좋아서 하는 것을 못하게 할 수도 없지 않냐"면서 "어른들이 성인 오락실에 들러 몇 만 원에서 몇십만 원까지 게임을 즐기는 것에 비하면 몇천 원 정도 즐기는 것을 가지고 사행심 조장이라고 하는 것은 심한 것 아니냐"는 의견을 피력했다.

현재 초등학교 앞 문구점이나 구멍가게 등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는 게임기의 종류는 20여 종이 넘는다. 관할 구청이나 경찰서는 정확히 어느 정도 게임기가 유통돼 있는지 그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아케이드(업소용)용 게임물일 경우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심의 과정을 거쳐 필증을 받고 게임물이 유통되나 초등학교 앞 문구점에 설치된 게임물은 일부 제품을 제외하고 불법 제조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이유로 관할구청이나 경찰서측이 그 설치대수가 정확히 어느 정도이며 어떤 식으로 영업이 되고 있는지 조차 파악이 안된다면 단속은 더더욱 생각할 수 없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불법 게임물관련 단속은 문화관광부 게임음반과 산하 상설 단속반과 각 구청, 경찰서 등에서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관련 부처는 한정된 인원 등으로 단속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거주하고 있는 학부모 김미정(37)씨는 "용돈을 주면 꼬박꼬박 저금을 하던 아이가 최근에는 용돈 주기가 무섭게 다 쓰고 오기에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인라인스케이트를 경품으로 획득하기 위해 초등학교 앞 문구점에 있는 미니게임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이 너무 컸다"면서 "사행심을 조장하는 미니게임기들을 강력 단속해야 할 관련 부처가 인력난 등을 들어 단속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요즘 초등학교 문구점에서 발행하는 어린이용 복권 또한 어린이들 동심을 멍들게 하고 있다. 문구점에서 발행하는 복권은 100원이다. 복권에 당첨되면 아이들은 인라인스케이트, 게임기, 공책 등을 받게되고 '왕대박'이라는 세 글자를 모두 모으면 현금 8000원을 받게 된다. 복권의 생김도 시중의 로또 복권과 유사하다.

사행심을 조장하는 불법 복권을 발행한다는 것도 문제지만 복권 당첨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는 점도 문제다. 어른들의 잘못된 상술로 인해 복권이 발행되지만 어린이들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복권을 구입, 긁어대고 있다.

현행 청소년보호법에 따르면 만 19세 미만에게는 복권을 팔지 못하게 돼 있다. 그러나 처벌규정이 명확하지 않다. 당국은 처벌규정을 명확히 하고 불법으로 운영중인 미니게임과 복권 등의 단속에 나서야 한다. 아이들의 동심이 더 이상 멍들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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